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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병의 '아이들'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4/10/29 [09:01]
지상에 소풍 왔다가

천상병의 '아이들'

지상에 소풍 왔다가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4/10/29 [09:01]

아이들
천 상 병
 
나는 55세 되도록
나는 아이가 하나도 없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을 좋아한다
동네 아이들이 귀여워서
나는 그들 아이들의 친구가 된다
 
아이들도 순진하고 정직하다
예수님도 아이가 되지 않으면
천국에 못 간다고 하셨다
나는 아이같이 순진무구하게
지금까지 살았다
 
아이들아 아이들아
크면 어른이 되는데
커도 순진하게 살아
내일을 살아다오
그러면 하느님이 돌보시리라
(-<아이들> 전문)
 
지상에 소풍 왔다가
 
우리에게 있어, 천상병 시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구절은 ‘소풍’이란 시어이다. 그렇게도 한 생애의 삶이 철저히 망가져 살다 갔으면서도 이 지상 마치고 돌아가는 날 즐거운 소풍 마치고 돌아왔다고 말하겠다는 그의 심성은 역설적으로 그 무엇으로도 망가뜨릴 수 없는, 어쩌면 영원히 존재할 순진무구함이었기 때문이다.
 
천상병은 1930년 일본 효고현 히메지에서 태어나 중학교 2학년 때까지 거주하다가 해방이 되어 귀국한다. 마산중학교 3학년에 편입한 그는 매우 조숙한 천재의 면모를 보인다. 그의 재능은 당시 마산중학교 국어교사이던 김춘수의 눈에 띄어 1949년 시 <강물> 등을 “문예”지에 발표하기도 한다. 곧 한국전쟁이 터지고 전란 초기에 미군 통역관으로 근무한 그는 1951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에 입학한다. 이 무렵 그는 송영택, 김재섭 등과 함께 동인지 “처녀지”를 발간하고, “문예”에 <나는 거부하고 저항할 것이다>라는 제목의 평론을 내놓으며 시작(詩作)과 더불어 비평 활동도 겸한다. 1952년 “문예”에 시 <갈매기>로 완료 추전을 받고 정식으로 문단에 나온다.
 
1954년, 그는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을 그만두고 문학에 전념한다. 그는 이때 “현대문학”에 월평을 쓰는가 하면 외국 서적의 번역을 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1964년부터 2년 동안 김현옥 부산시장의 공보비서로 일하는데, 이것이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직장 생활인 셈이다.
 
1967년, 그는 자신도 모르는 가운데 ‘동백림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국사범으로 몰리게 되었다. 이 사건은 재불 화가 이응로, 재독 작곡가 윤이상 등 유학생들이 동베를린을 구경하고 돌아온 것을 두고 북한의 배후 조종에 따른 어마어마한 ‘간첩단’ 사건으로 확대⋅조작된 것이다. 서울대 상대 동문이자 친구인 강빈구는 유학 중 동독을 방문했다는 얘기를 천상병에게 털어놓은 것이 화근이 되었다.
 
천상병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6개월 동안 갖은 고문과 취조를 받았다. <그날은 새>라는 작품에 나타나듯이 “아이론 밑 와이셔츠같이” 전기고문을 세 번씩이나 당했다. 그는 고문의 휴유증으로 정신병원에도 다녀오고 결국 아이도 낳을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위의 인용시 <아이들>은 마치 그의 자전적 삶을 감정 없이 드라이하게 표현한 듯하다. 이는 그의 시가 한 조각 산문인 것처럼 긴장감 없이 서술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55세 되도록/ 나는 아이가 하나도 없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을 좋아한다”에서를 보면 그가 아이를 좋아하는 것은 결국 55세 되도록 아이 없어서이다. 그러나 그 이유가 이렇게 단순한 결말로 매듭짓지는 않는다. 그의 의식은 자연스럽게 성서의 ‘어린이와 같지 않고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예수의 말씀에 가 닿는다. ‘아이들은 순진하고 정직하다’면서 “예수님도 아이가 되지 않으면/ 천국에 못 간다고”고 말씀을 직접 인용하면서 결국 “나는 아이같이 순진무구하게/지금까지 살았다”고 자신을 고백한다. 이 고백의 파장이 단순한 산문을 넘어 독자의 가슴을 울리는 것은 그가 살아온 한 생애의 고백이기 때문이다. 비록 자연인으로써는 잉여인간의 삶을 살았지만 그 누구도 침범치 못할 순진무구함이라는 대명사의 표상이었기 때문이다.
 
이어, “아이들아 아이들아/ 크면 어른이 되는데/ 커도 순진하게 살아/ 내일을 살아다오/ 그러면 하느님이 돌보시리라”는 마지막 연 역시 ‘아이’라는 ‘순진’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아이들아’를 외치며 ‘내일을 순진하게 살라’고 부탁하면서 ‘하느님’을 등장시키는 것은 그의 인생 역정을 돌아볼 때 그가 제3자를 향한 당부라기보다 자신을 향한 다짐이자 실천이었던 것임을 생각할 때 독자의 가슴을 더욱 아리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이길연 ·시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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