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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란 박사의 종교가 산책●내가 만난 달라이 라마①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4/12/12 [14:11]
WFB 한국본부의 달라이 라마 초청 대법회 추진과정에 얽힌 이야기

이치란 박사의 종교가 산책●내가 만난 달라이 라마①

WFB 한국본부의 달라이 라마 초청 대법회 추진과정에 얽힌 이야기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4/12/12 [14:11]

▲ 1991년 10월, 인도 다람살라의 달라이 라마가 주석하고 있는 남걀 사원을 방문 친견하고 방한 초청장을 전달, 달라이 라마께서 읽고 있는 모습. 이치란 박사(오른쪽)와 故 박동기 박사(가운데· WFB한국지부 회장 및 본부 부회장역임).     © 매일종교신문


나는 지난 30여년이 넘게 국제 불교 활동을 하면서 세계불교계의 많은 불교지도자들을 만난 적이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이신 달라이 라마 성하(聖下)를 친견한 순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설렌다. ‘90년대 초만 하더라도 달라이 라마 성하께서 티베트 망명정부를 이끌면서 티베트 독립운동을 전개하시던 인도 북부 히마찰 프라데시 주의 다람살라를 찾는 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여정이 아니었다. 지금이야 많은 한국불교인이나 일반인들이 쉽게 찾아가는 길이 트였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그리 간단한 노정이 아니었다. 나와 故 박동기 회장은 일본 동경에 있는 티베트 망명정부의 연락사무소(동북아대사관 역할) 다와(Dawa) 대사의 안내를 받아서 달라이 라마를 친견했다. 달라이 라마를 친견한 목적은 간단했다. 한국에 초청하기 위해서였다. 달라이 라마 성하를 친견하게 된 배경을 조금 설명하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한국불교로서는 1990년 세계불교도우의회 대회를 개최하기 전 까지, 대형 국제 불교 행사를 여법하게 치러본 적이 없었다. 세계불교도우의회(World Fellowship of Buddhists, WFB)는 1950년 5월 스리랑카에서 세계불교지도자들이 모여서 창립한 세계불교기구이다. 쉽게 말하면, 불교의 유엔과 같은 기관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현재 본부는 태국의 수도 방콕에 소재하고 있다. 전 세계에 3백여 지부를 거느리면서 매 2년마다 대회를 개최해 오고 있다. 1990년 10월 한국에서 제17차 대회를 개최 한바 있고, 지난 2012년에도 한국에서 두 번째로 유치한 바 있다. 1990년, 한국에서 WFB 대회를 개최하면서, 달라이 라마의 존재가 부각되기 시작했다. 1989년 노벨평화상 수상이기도 했던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 불교의 정신적 지도자의 위치를 넘어서 세계적인 평화운동가로 부상하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한.중 수교 직전이어서 달라이 라마의 초청과 방한은 그리 어려워 보이지가 않았다.     

WFB 한국본부는 달라이 라마를 초청해서 대법회를 개최하기로 결정하고, 방한추진 작업에 착수했다. 박 회장과 나는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초청장, 동국대학교 총장 초청장을 휴대하고 다람살라로 향해서 달라이 라마를 친견하고, 초청장을 전달하고 방한을 수락한다는 즉답을 받았다. 우리는 날라 갈 듯 기쁨을 금치 못했다. 귀국해서 성하(聖下) 방한을 추진하면서 정부와 접촉, 비자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자, 그러면 방한 추진 문제는 잠시 접어 두고 여기서 달라이 라마와 티베트 불교를 잠깐 살펴보기로 하겠다.     

달라이 라마(Dalai Lama)는 티베트 불교 겔륵파 또는 황모파의 수장(首長) 승려이다. 한국불교식으로 말하면, 종정에 해당하는 직위를 말한다. 그러나 종정의 지위와는 조금 다른 것은 달라이 라마는 전생 달라이 라마가 전세(轉世)하여 환생한다는 것이다. 현재 달라이 라마는 제 14세가 되며 이름은 텐진 가쵸(Tenzin Gyatso)이다. 달라이(Dalai)는 몽골어로 ‘대양(大洋)’이란 의미이고, 라마(Lama)는 티베트어로 ‘스승’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대양과 같은 스승이란 뜻을 함유하고 있다. 여기서 라마는 산스크리트어 '구루(guru)'에서 온 말인데, 스승이나 멘토르와 의미가 일치한다. 달라이 라마는 관세음보살의 화신이라는 은유를 지니고 있다. 이 타이틀은 몽골제국의 칸으로부터 부여된 칭호이다.     

티베트 불교는 5세기부터 인도에서 승려가 왔었지만, 공식적인 기록은 7세기부터이다. 당시 손챈 감포(松贊干布;c569-649) 왕 치세 때, 네팔과 중국을 거쳐서 불교가 수용됐다. 손챈감포 왕은 티베트를 통일하고, 중국 당과 네팔에서 온 공주를 아내로 맞이했다. 중국에서는 티베트를 토번(吐藩)이라고 불렀으며, 그는 토번국의 33대 왕으로 주변 왕국을 정복하여 최초로 토번을 통일하였다. 비단길과 쓰촨(사천성) 방면을 공격하여 토번 세력을 확대하여 당을 압박했다. 634년, 당에 공주와의 결혼을 요청하였으나 당이 이를 거절하자, 토욕혼을 공격하여 함락시켰으며 20만 대군을 이끌고 당의 국경을 공격하였다. 이후 당나라는 손챈감포 왕과 당 공주의 결혼을 허락하였다. 네팔도 비슷한 경우로, 네팔공주와 결혼하고 네팔을 통해서 인도불교를 수용했으며, 카시미르에서는 문자를 도입하고 중국의 한역불교(漢譯佛敎)인 대승불교도 들어왔지만, 나중에는 마가다의 날란다 대학에서 직접 불교철학과 모든 학문을 직접 수입해서 모든 경장(經藏)을 번역했다. 이로써 티베트 불교는 인도 후기 대승불교인 금강승(밀교) 딴뜨라 불교가 압도하게 되었다.    

티베트불교에는 4개의 종파가 있는데, 닝마파(Nyingmapa), 가규파(Kagyupa), 사캬파(Sakyapa)와 겔륵파(Gelugpa)가 그것이다. 이 파는 인도로부터 경전의 번역에 따른 구별이다, 닝마파는 가장 오래된 종파로서 인도에서 온 파드마삼바바(Padmasambhāva)와 산타락치타(Śāntarakṣita)라는 대학승이 창종한 종파이다. 파드마삼바바는 연화생상사(蓮華生上師)라는 칭호를 갖고 있으며 부탄과 티베트에 딴뜨라 불교를 전했고, 아미타불의 화신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이 파의 라마들은 홍모(紅帽)를 착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이 파의 경전을 구역(舊譯)이라고 부른다. 가규파는 명상위주의 종파로서 가장 유명한 스승은 티베트 출신인 밀라레파(Jetsun Milarepa(c.1052–1135)이고, 이 파의 라마들도 홍모를 착용하지만, 경전번역을 신역(新譯)이라고 부른다. 사캬파는 1073년에 창종되었고, 홍모를 착용하고 경전은 신역이라고 부르는데, 이 파를 발전시킨 분은 사캬 판디타(Sakya Pandita 1182–1251)이다. 이 파는 불교학문을 중시 여긴다.    

다음은 겔륵파이다. 달라이 라마는 바로 이 겔륵파 소속이다. 겔륵파는 개혁성향의 종파이며, 불교논리학과 토론을 강조한다. 겔륵파는 종가파(Tsongkhapa 1357–1419)에 의해서 창종되었다. 종가파는 학행일치(學行一致)를 강조했다. 이 겔륵파의 정신적 수장을 간덴 트리파(Ganden Tripa)라고 불렀고, 종가파로부터 연유하는 자체의 정신적 수장인 간덴 트리파의 법맥을 유지하고 있으며, 현재 102대까지 이르렀다. 임기는 7년이다. 이 간덴 트리파는 달라이 라마와는 다른 개념이다. 달라이 라마는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서 몽골 제국의 칸이 부여한 전세(轉世:세상을 바꾸어서 환생)의 의미가 있다. 겔륵파는 황모(黃帽)를 착용하며 신역에 속한다. 계승된 달라이 라마는 신정(神政)의 지위로써 17세기 중반부터 1959년 까지 티베트를 통치했다. 현재 제14세 달라이 라마는 1950년에 신정의 최고 수장에 올라서 1959년 인도로 망명하여 현재까지 그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밖에 사캬파에서 갈라진 조낭파(Jonangpa)가 있었으나 1658년 겔륵파에 흡수되었다. 하지만 19세기 이 조낭파는 닝마파 가규파 사캬파와 더불어 겔륵파의 독주에 반발하고 티베트 동부 지역인 지금의 중국 청해성 사천성 감숙성 더 나아가서 몽골지역까지 일종의 초종파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 리메(Rime)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으며, 최근 14세 달라이 라마는 조낭파의 수장인 제 9대 젭춘담바 쿠투쿠의 취임식에서 조낭파의 성장을 격려했다. 젭춘담바 쿠투쿠는(Jebtsundamba Khutughtu,1932–2012)는 제 8세 젭춘담바 쿠투쿠였던 몽골의 신정 왕 복드 칸의 환생이다. 티베트 불교전통에서 정신적 지도자로서 서열 3위에 해당한다. 달라이 라마, 판첸 라마 그리고 젭춘담마 쿠투쿠이다. 젭춘담바는 겔륵파의 법맥에 의한 몽골 불교의 수장이다. 1936년 몽골의 신정 왕으로서 카간이었던 복드 칸의 환생이 확인되었지만, 1990년 까지 비밀에 붙여졌다가 달라이 라마에 의해서 증명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 지역에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은 불교 종파는 아니지만, 티베트 고유의 민속 종교인 ‘본’교가 있다. 하지만 불교의 다른 종파와 더불어 불교의 한 종파로 인정되었다. 이 본교에 대해서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소개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달라이 라마에 대해서 집중해 보겠다.     

지금까지 달라이 라마를 이해하고 소개하기 위해서 장황한 설명이 필요했다. 다시 달라이 라마의 방한 추진 문제로 돌아가 보자. 1991년 이후 나는 1992년 박 회장과 함께 다시 다람살라를 찾게 되고, 달라이 라마의 방한 문제가 가시화되어 가는 듯했다. 한국방문에 즈음해서, 우리는 방한준비 위원회를 구성하고 정치.종교간의 지도자들과도 접촉하였다. 일본 주재 달라이 라마 연락사무소 다와 대사가 여러 차례 한국에 왔었고,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당시는 야당 지도자)의 요청으로 만나기도하고 강원룡 목사도 우리와 함께 만난 바 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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