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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 목사(미국 아틀란타 한인교회)의 설교
사람을 살리는 사랑의 마음<요나 3장 10절~4장 11절>
기사입력: 2014/12/25 [09:44]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김정호 기자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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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성경말씀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요나는 자기 의로움의 잣대로 볼 때 니느웨 성에 있는 사람들이 다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그 성 안의 어린아이 12만 명을 살려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잃은 양 한 마리를 찾고 천하를 얻는 기쁨을 말씀하시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사람을 살리는 사랑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물론 교회마저도 하나님 마음과 예수님 뜻과 거리가 멀 때가 많습니다.
 
공부 많이 하고, 세상에서 성공해서 잘 먹고 잘 사는 교인 가운데도 가난한 사람들, 억울함 당하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에 대해 야박하고, 때로는 잔인한 마음 씀씀이를 보면 당황스럽고, 마음이 아픕니다.
 
미국에는 불법체류자가 천만 명이 넘습니다. 대부분 먹고 살려고 국경을 넘어온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 한인들 가운데도 이들이 살 수 있도록 법을 열어주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본문 내용을 봅니다. 포도원 주인이 추수를 앞두고 일용직 노동자를 구하러 노동시장에 나갔습니다. 포도원 주인이 아침 일찍 한 데나리온에 합의하고 품꾼들을 고용해 포도원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약자의 아픔 모르는 사람들
 
그런데 주인은 아침 아홉 시경 다시 노동시장에 나갑니다. 그리고 해가 높도록 ‘장터에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을 포도원 품꾼으로 고용했습니다. 주인은 정오, 오후 세 시쯤 품꾼을 샀습니다. 심지어 오후 다섯 시, 즉 파장 무렵 그 때까지 서 있던 사람들까지 고용했습니다.
 
저녁이 되자 하루 일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주인은 가장 늦게 온 사람들, 오후 5시가 되어서야 일을 시작한 사람들에게 한 데나리온을 주자, 새벽부터 일한 사람들은 하루 종일 일한 자신들은 분명 더 받을 거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모든 사람에게, 새벽부터 일한 사람들에게도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지불했습니다. 그들은 투덜거렸습니다.
 
“마지막에 온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았는데도, 찌는 더위 속에서 온종일 수고한 우리들과 똑같이 대우하였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그들이 한 데나리온에 합의하고 일하기로 결정했음을, 그리고 주인은 그 돈을 지불했음을 상기시킵니다. 계약을 위반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인은 “당신에게 주는 것과 똑같이 이 마지막 사람에게 주는 것이 내 뜻이요.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요? 내가 후하게 준 것이 당신의 눈에 거슬리오?”
 
예수님은 이야기의 마지막을 이렇게 장식합니다.
“이와 같이 꼴찌들이 첫째가 되고, 첫째들이 꼴찌가 될 것이다.”
 
그런데 다른 고대 사본에는 다음의 구절이 첨가되어 있다고 합니다.
“부름 받은 사람은 많으나, 택함 받은 사람은 적다.”
 
우리나라 개역성서와 표준 새 번역은 이 뒷부분을 생략했습니다. 킹 제임스 버전에는 “For many are called, but few chosen.”을 덧붙였습니다.
 
이런 질문들을 던져봅니다. 첫 번째, 그 주인은 일꾼 모두에게 한 데나리온씩 줄 것이면 일찌감치 다 불러다 일을 시킬 일이지, 왜 찔끔찔끔 불러 들였을까? 두 번째 질문은, 해가 높도록 남아있던 사람들은 왜 그랬을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마음은 부모의 마음
 
우리가 자칫 잘못 생각하면 이 사람들은 게으른 사람들, 삶의 목적 없이 빈둥거리는 건달이나 한량으로 보기 쉽습니다. 가난한 것은 게으르거나 무슨 문제가 있어서 그럴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오후 다섯 시에 나가 그들에게 던진 주인의 질문과 그들의 대답을 들으면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왜 당신들은 온종일 이렇게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고 있소?”
“아무도 우리에게 일을 시켜주지 않아서 이러고 있습니다.”
 
이들은 일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일해서 식구들과 밥 먹고 살고 싶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인력시장은 어떨까요? 새벽 일찌감치 품꾼으로 뽑혀 가는 사람들은 젊고, 건장하고, 튼튼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일꾼을 구하는 사람들의 경우 그날 하루 가장 많은 양의 노동, 혹은 가장 효율적인 노동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고르겠죠. 만약 그 일이 숙련된 기술을 요하는 일이라면 품꾼들의 이력을 본 뒤 결정할 것입니다. 결국 시장 문을 닫기 한 시간 전까지 그 곳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힘도 없고, 특별한 기술도 없는 사람들일 확률이 큽니다. 다 뽑혀 갔는데도 그들이 그곳을 떠나지 않은 까닭은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힘없는 사람들의 현실이 이러했을 것입니다. 로마의 식민지배와 유대제사장과 헤롯에게 이중 삼중 착취를 당했던 사람들은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먹고 살 수 없었을 것입니다. 분명 상당수의 사람이 하루하루 자신들의 노동력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였을 것입니다.
 
하루의 임금 ‘한 데나리온’은 그와 그의 가족이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는 비용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자리도 경쟁이 치열합니다. 포도원 주인은 최소한의 생계비용이 필요했을 ‘최하위 등급의 인간’들을 자신의 포도원 일꾼으로 뽑았습니다.
 
한동안 한국의 청소년들 사이에서 유행한 말 가운데 ‘잉여인간’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남아도는 인간”, “아무도 필요하다고 불러주지도, 알아주지도 않는 인간”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땅에도 여러 기준으로 이런 ‘잉여인간’들이 어떤 모습으로든 존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시하시는 천국은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되리라.”, “부름 받은 사람은 많으나, 택함 받은 사람은 적다.”의 원칙이 있는 세상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은혜 받아들여야
 
듣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엄청 기분 나쁠 수 도 있고, 좋을 수도 있는 말씀입니다.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고, 먼저 된 자가 나중 되다니…. 그럼 아침부터 뼈 빠지게 일한 사람들의 운명이 ‘나중 됨’이란 말일까요? 아무리 하나님의 ‘가난한 자 지향성’을 이해한다 해도 그런 뜻이라면 정당하지 않습니다. 이러면 누가 일찍 나와서 일을 할까요? 그런데 이 문제를 해결해 주는 말씀이 어떤 성경번역에는 있고 없는 “부름 받은 사람들은 많으나, 택함 받은 사람은 적다.”에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부름은 모두가 받았습니다. 그러나 새벽 다섯 시 팀부터 오후 다섯 시 팀까지, 그 노동시장에 있던 사람 모두 포도원 주인의 부름을 받았지만 ‘하루 한 데나리온’의 선포를 알게 되었을 때, 그것이 하나님나라의 원리라는 것을 듣게 되었을 때, 이를 ‘기쁜 소식’(희년의 소식, 복음)으로 알고 기뻐하고 감사했을 사람들, 그 행복함이 가장 컸을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당연히 한 시간 일한, 가장 나중에 온 자들일 것입니다.
이들이 기뻐한 까닭은 겨우 한 시간 일하고 하루 일당을 받았기 때문은 아닐 것입니다. ‘하하, 저 사람들은 쌤통이다. 하루 종일 일하고도 나랑 똑같이 받다니.’ 이런 심보에서 기뻐하는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나를 불러 일 시켜준 고마움도 큰데, 한 데나리온이나 주다니. 이 돈이면 우리 식구 내일은 굶지 않겠구나. 감사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러하다는 것! 한 데나리온이 보장되는 것은 분명 가장 나중 된 자가 가장 먼저, 가장 으뜸으로, 가장 절절히 기뻐할 일입니다. 이것이 은혜의 체험입니다.
 
자신이 더 많이 일했다고 생각하는 사람, 더 받을 자격과 권리가 있다고 믿는 사람, 그게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이 은혜의 질서를 받아들이기 힘들 것입니다. 기뻐하기는 더욱 힘들 것입니다. 탕자비유에서의 큰 아들처럼 이런 사람들은 결국 이 하나님나라 은혜의 질서를 받아들이는 가장 나중 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영영 받아들이지 않아 택함 받지 못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첫째였던 사람들이 꼴찌가 되는 것입니다.
 
그들의 수고가 헛되어서도 아니요, 그들의 능력이 무시되거나 평가절하 되어서가 아닙니다. 다만 약하고, 병들고, 가난하고, 뒤처진 마지막 남은 그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주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질서를 받아들일 수 없음으로 인해, 그 질서를 기뻐할 수 없음으로 인해, 그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꼴찌가 되는 것입니다.
 
천국의 질서가 무엇인가요? 모든 인간이 인간답게, 공평하게, 평화롭게, 서로 섬기고 나누며, 서로를 살리고, 건설하는 그런 삶입니다.(정리: 김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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