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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란의 종교가 산책
내가만난 달라이 라마④
달라이 라마가 주석하고 있는 현장, 인도의 다람살라
기사입력: 2014/12/28 [20:17]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이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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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4세 달라이 라마 성하께서 주석하고 있는 쭈갈라캉(Tsuglagkhang).사원 본전 건물, 라싸의 조캉 사원을 그대로 모방해서 건립(다람살라).     © 매일종교신문

나는 3회에 걸쳐서 달라이 라마의 제도(制度)에 대해서 그리고 달라이 라마의 전세(轉世)에 의한 환생을 통해서 역대 달라이 라마를 주마간산 격으로 간단하게 살펴봤다. 달라이 라마 제도는 몽골(北元)의 알탄 칸이 정치적 목적으로 부여하여 티베트 불교의 제도와 전통으로 자리 잡게 되었음을 간략하게 소개한 바 있다.
 
나는 달라이 라마 성하를 직접 다람살라까지 가서, 친견하고 성하께서 방한하겠다는 약속아래, 달라이 라마 방한을 직접 추진했던 경험담과 더불어서 달라이 라마께서 인도로 망명하기 전 까지, 성장하고 정교일치의 신정 왕으로서 집무하셨던 티베트 라싸의 포탈라 궁까지 가서 촬영한 사진까지 공개한 바 있다.
 
이제 달라이 라마 聖下에 대해서 본격적인 소개를 하려고 한다.
 
제14세 달라이 라마를 소개하려면 먼저, 달라이 라마 성하께서 현재 주석하고 계시는 현장인 인도의 다람살라(Dharamshala(धर्मशाल)를 먼저 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다람살라는 달라이 라마 성하께서 1959년 망명 처(處)로 정해지기 전에는 조그마한 타운으로 크게 주목받는 곳이 아니었다. 물론 브리티시 인디아(대영제국 인도식민지 통치)시기에는 인도 총독의 여름 임시관저 겸 휴양지의 별장 정도였다. 인도 독립 이후에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었다. 인도 북부 지역인 히마찰프라데시 주 캉그라 구에 있는 작은 지자체 타운이다. 상주인구는 3만 명 정도이지만, 성하께서 주석하는 사원과 티베트 망명 정부와 티베트 난민촌이 있는 멕그로드 간지(McLeod Ganj) 등지의 인구는 공식적으로 3만 명 정도이지만, 실제로는 방문객 등을 포함하여 십만 명이 넘는 꽤 북적 거리는 국제 타운 형 소도시쯤으로 생각하면 되겠다. 이곳은 해발 평균 고도가 2천 미터나 된다. 고산지대로서 여름에도 시원한 지역이다. 사람들은 이곳 멕그로드 간지를 “리틀 라싸(Little Lhasa")라고 하고 티베트인들은 다람살라를 줄여서 “다사(Dhasa)"라고 부른다.
 
▲ 다람살라에 있는 티베트 문서 및 아카이브(기록물) 도서관     © 매일종교신문
 
“리틀 라싸”로 부르는 이곳은 세계적인 명소가 되었는데, 이유는 단 하나, 달라이 라마가 그곳에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 일행이 90년대 초 그곳에 갈 때만 해도, 방문객들 대부분이 서구인들이었고, 한국인들은 극소수만이 방문할 정도였다.
 
2천 년대 이후, 이곳은 한국인들에게도 인기 있는 명소로서 많은 불자와 일반들이 찾고 있을 정도며, 개중에는 방까지 얻어서 기거하는 분들도 있다. 어원상으로 다람살라는(Dharamshala)는 다르마(dharma)와 살라(shālā)의 합성어로써, ‘초인(超人)이 사는 곳’ 또는 ‘신성한 곳’ 정도의 의미이다. 이름값이라도 하듯, 세계적인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가 주석하게 되고, 세계의 많은 구도자(求道者) 기인(奇人) 탐험가와 영적 목마름에 뭔가 찾고자 하는 여행객들이 이곳에서 정신적인 득력(得力)과 깨달음을 얻고자 저마다 진지한 모습으로 반(半) 도인(道人) 같은 구도행각(求道行脚)을 하는 그야말로 성스러운 초인(超人)들의 타운이다.
 
그런가하면 보다 학구적인 사람들은 티베트 문서 및 아카이브 도서관(The Library of Tibetan Works and Archives)에서 지식의 욕구를 충족하고 있다. 이 도서관은 달라이 라마 성하께서 직접 설립하신 도서관으로 1970년에 오픈했는데, 세계의 티베트 관련 도서관 가운데 아주 중요한 티베트 도서를 보관하고 있는 곳이다. 聖下가 1959년 망명 올 때에 라싸에서 가져온 불교 필사본과 티베트 역사, 정치, 문화 및 예술 관계 기록문서 등이 보관되어 있다. 8만 점 이상의 필사본, 기록문서와 도서와 6백점 이상의 오래된 당가(탱화)와 6천 점이 넘는 불상과 예술품이 보관되어 있고, 이곳에선 티베트어 강좌와 리서치 활동 등이 한 린포체 게쉬(박사) 도서관장의 지도하에 이루어지고 있다.
 
1974년에는 3층에 박물관을 개설해서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달라이 라마 성하는 티베트 라싸에서 성장하고 교육받았으며 신정(神政)의 왕으로 등극했다. 이제 무대를 다시 중앙 티베트 라싸로 옮겨서 그의 환생 선택과 성장, 교육과정과 활동을 살펴보자.

▲ 제13세 달라이 라마가 환생한 라모 돈드릅(제14세 달라이 라마)의 두 살 때 모습.     © 매일종교신문
▲ 중국 칭하이 성에 있는 제14세 달라이 라마 생가.     © 매일종교신문
달라이 라마의 공식 직명은 제14세 달라이 라마(The 14th Dalai Lama)이다. 그렇지만 이 직명 앞에 성하(His Holiness)를 붙여서 ‘聖下 제14세 달라이 라마(His Holiness The Fourteenth Dalai Lama)‘라고 호칭한다. 종교적인 이름은 텐진 갸쵸(Tenzin Gyatso, 1935-)인데, 제춘 잠펠 나왕 롭상 에쉐 텐진 갸쵸를 줄인 이름이다. 태어날 때 아명은 라모 돈드룹(Lhamo Dondrub)이다. 또는 톤둡이라고도 불렀다. 1935년 7월 6일생으로서 현재 만 79세로서 역대 달라이 라마 가운데서는 가장 장수를 누리고 있으며, 티베트 겔륵파 종파의 수장(首長)이기도 하다. 그는 198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고, 그의 주된 활동은 티베트의 독립을 주창(主唱)하고, 동시에 세계평화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제 그의 생애를 단계적으로 탐색해 보자.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 인들에게 암도라고 알려진 지금의 칭하이 성, 탁체르에서 태어났다. 티베트는 네팔과 인도 쪽의 우짱 지역과 운남.사천성과 인접한 캄 지역 그리고 청해성 지역인 암도 지역으로 3분된다. 제13세 달라이 라마가 입적하고 난 2년 뒤에, 그는 제13세의 환생으로 선택된다.

라모 돈드룹(또는 톤둡)은 부모가 평범한 농부로서 농사도 짓고 말(馬) 무역을 하는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7남매가운데, 하나이다. 큰 누나는 그에게 18세나 위였다. 그의 큰 형인 툽텐 지그메 노르부는 8세 때, 한 고승인 린포체의 화신으로 인정되었다. 그의 누이동생 젯순 페마는 다람살라의 티베트 어린이 마을 프로젝트에 평생을 바치고 지금은 은퇴했다. 어린 달라이 라마가 화신으로 선택되었을 때, 그는 신장(新疆) 지역의 방언을 구사했다고 한다. 신장방언은 일종의 만다린(北京官話)으로서, 감숙성 난주와 청해성 시닝 등지의 중국어 방언을 말한다. 중국은 이 무렵, 무력으로 이 지역을 중국에 편입시켜서 통치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13세의 환생을 찾는 조사단은 제13세가 입적(入寂)하여 방부처리 할 때, 얼굴이 분명히 남동쪽을 향하고 있었는데, 환생을 찾으려고 친견했을 때 보니, 불가사의 하게도 얼굴이 북동쪽을 향하고 있었다. 당시 섭정(攝政)이었던 린포체는 정좌하고 명상을 한 결과 라모 라 초 호수 위에 상서로운 구름이 일면서, 한 농가 주택으로 빛이 향하는 것을 느꼈다. 예시해 준 그 농가 주택에 가서보니 두 살 된 어린이가 있었다. 조사단은 전통대로 조사절차에 의해서 직관적 관찰과 시험을 통해서 이 어린이가 제13세의 환생임을 인지했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제13세에게 속했던 물건하나와 다른 여러 개의 물건들을 함께 그의 면전에 놓았는데, 톤둡은 단박에, “이것은 내 것이야! 이것은 내꺼야!”라고 하면서 움켜쥐었다고 한다. 환생으로 선택되면, 라싸로 옮겨 가서 교육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이 지역의 군벌로써 지역 사령관이었던 마 부팡(馬 步芳1903–1975)은 이 같은 선택에 제동을 걸면서 라싸 행을 방해했다. 은 10만 냥을 요구했다는 비화가 전해진다.
 
칭하이 성은 고대 시대부터 티베트계 부족이 많이 살던 곳으로서, 중국에서 가장 큰 칭하이 호수가 있고, 해발고도 3천 미터가 되며 티베트 북동남단에 위치하고 있고 대부분의 영토는 칭장고원(靑藏高原)에 위치하고 있다. 이 지역은 당나라와 티베트 간에 항상 다툼의 영역이었는데, 일찍이 몽골 계통 유목민족으로 선비족 모용씨로 부터 내려온 부족이 이 지역의 초지(草地)에 정착하여 3세기부터 토욕혼(吐谷渾)을 건국하고 663년 토번의 침공으로 완전히 멸망하기 전까지 존속한 유목 민족국가가 있던 곳이다. 티베트 왕국의 손에 넘어간 다음, 항상 당과의 분쟁지역으로서, 티베트인들이 점령하고 살았다. 티베트계 탕구트 족은 서하( 西夏 1032-1227)를 세웠는데, 전성기에는 북으로는 고비사막 남으로는 난주 동으로는 황허 서쪽은 둔황의 옥문관에 이를 정도로 강성했다. 국교는 불교였으며 자체 서하문자를 갖고 있었고, 상당한 수준의 문화를 가졌었으나, 칭기즈칸에 의해서 멸망당했다. 한때 둔황석굴(莫高窟)은 서하의 통치하에 있었다.
 
이후 송(宋)을 거쳐 원(元) 나라 통치시기에는 티베트-몽골 족이 공생하는 형국이었고 명-청을 거치면서 티베트 중국 간에는 영토에 대한 크고 작은 분쟁이 그치지 않았던 지역이다. 티베트는 외부로 통하는 관문이 네팔을 경유하여 인도로 향하는 길과 카시미르와 중앙아시아로 통하는 서쪽 길과 북동쪽의 칭장고원을 통해서 중국으로 빠지는 길이 있다. 그리고 험하긴 하지만 스촨성 청두(성도)로 가는 길과 운남성으로 나아가는 길이 있다.
 
이런 역사적 배경에 의해서 1930년대 중국은 이 지역을 무력으로 점령했고, 당시 이 지역의 군벌인 중국 뚱간(回族) 무슬림 장군인 마 부팡은 라싸로 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는 환생 라마가 칭하이 성에서 라싸로 가는 것을 지체시켰고 은화 10만 냥을 노골적으로 챙겼다고 한다. 달라이 라마는 라싸에 간 다음, 6세 때부터 23세 때 까지 17년간 집중교육을 받았고, 교육과목은 필수 5과목과 교양 5과목이었다. 필수는 논리학, 티베트 예술문학 산스끄리뜨어, 의약과 불교철학 등이다. 불교철학은 5개 범주로 나뉘는데, 반야(般若Prajnaparimita),중론(中論Madhyamika),율장(律藏Vinaya),아비다르마(俱舍論Abidharma, 불교형이상학), 프라마나(인식논리학 Pramana)이며, 교양 보조과목은 시 음악 드라마 점성학 작문 등을 수업했다고 한다. 달라이 라마는 1959년 23세 때, 라싸의 조캉(대소사) 사원에서 마지막 시험에 합격, 불교철학박사학위와 동등한 게쉬(geshe 善知識)학위를 받았다.

▲ 중국 칭하이 성 시닝에 있는 큼붐(Kumbum,塔尔寺 1583년 창건)사원     © 매일종교신문
▲ 티베트 겔륵파 6대 사원 가운데 하나로서 한 때 수천 명의 라마가 공부하던 큼붐사원대학(2014년 필자).     ©매일종교신문

간쑤성 칭하이성 스촨성 운남성 등지에는 티베트 족과 티베트 사원이 존재하고 있다. 칭하이 성의 성도(省都) 시닝에는 겔륵파의 6대 사원 가운데 하나인 큼붐(Kumbum 塔尔寺) 사원이 있고, 겔륵파를 창종한 종가파(쫑까파)가 이 사원 근처에서 탄생했으며. 제14세 달라이 라마 또한 칭하이 성에서 환생한 것이다. 이 사원은 1583년에 협곡에 건립되었으며, 이 사원은 라싸에 있는 드레 펑 사원의 수말사(首末寺 직속사찰)가 되었고, 라싸에서 온 티베트 고승이나 달라이 라마가 몽골이나 북경에 갈 때는 이 사원에서 유숙하는 것이 관례였다.
 
1958년 이전만 하더라도 5천여 명의 라마가 있었고, 산하에 4백여 개의 암자를 거느린 대형 사원이었으며, 티베트 동북부 지역에서는 가장 큰 사원 대학이었다고 한다. 이 대학의 전성기에는 간쑤성 난주 지역의 라브랑(Labrang,拉卜楞寺 1709년 설립)에서 온 티베트 라마 유학승, 외몽골과 내몽골에서 온 라마 유학승들이 대부분 이 대학에서 공부했다고 한다. 지금도 수 백 명의 라마 학승들이 공부하고 있다.
 
간쑤성 난주에서 그리 멀지 않은 시아헤(夏河)에 있는 라브랑(Labrang,拉卜楞寺) 사원도 겔륵파의 6대 사원 가운데 하나로서 수천 명의 라마들이 공부하던 유명한 사원대학이 있었다. 큼붐 사원이 역사는 더 오래되었지만, 한때는 쌍벽을 이루는 사원대학이 이 라브랑 사원에 있었고, 근세에는 중국 무슬림들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 티베트 독립과 관련한 분신(焚身) 등의 사건 등이 있지만 민감한 문제이기에 더 이상 언급은 자제하려고 한다. 타베트 불교는 중앙 티베트만이 아닌 칭하이성 간쑤성 스촨성과 몽골에도 티베트 사원을 세워서, 장전불교(藏傳佛敎)를 전파했고, 이 지역에 뿌리내렸다.
 
▲ 중국 간쑤성 난주 시아헤에 있는 라브랑(Labrang 拉卜楞寺 1709년 창건) 사원     © 매일종교신문
 
대개 사람들은 티베트 불교가 라싸나 인도의 다람살라에만 있는 줄 알지만, 아직도 이들 중국영내의 티베트 권에는 장전불교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필자가 직접 이들 사원들을 방문해 본 결과, 큼붐사원은 중국과의 어느 정도 상생을 하면서 조화를 이루려고 노력하는 흔적이 보였고, 라브랑 사원은 티베트 불교의 독립성을 유지하려는 듯했다. 지금도 수백 명의 라마와 빅슈니(여자 라마) 스님들이 공부하고 있었고, 수많은 티베트인 몽골인 중국인들이 참배하고 순례하고 기도하는 불도량(佛道場)이었다.

▲ 한 때 수천 명의 라마들이 공부하던 라브랑 사원대학(2014년 필자).     © 매일종교신문

다음 회에서는 달라이 라마로 등극하여 신정의 왕으로서의 섭정(攝政)과 중국정부와의 관계 그리고 1959년 라싸에서 일어난 봉기(蜂起).폭동에 대해서 살펴보고, 망명(亡命)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당대의 긴박했던 상황을 소개하고자 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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