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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만난 달라이 라마⑥●세 가지 좌우명은

매일종교신문 | 기사입력 2015/01/13 [07:37]
인간가치추구, 종교간 대화, 티베트 전통문화보존

내가만난 달라이 라마⑥●세 가지 좌우명은

인간가치추구, 종교간 대화, 티베트 전통문화보존

매일종교신문 | 입력 : 2015/01/13 [07:37]


▲ 달라이 라마 성하가 인도 서부 구자랏 주, 수랏 시에서 한 인도인이 어머니를 기리기 위해서 제정하여 수여하는 제7회 산톡바 평화상을 받고 기     ©매일종교신문
▲ 단지브 쿠마르 대강당에 운집한 5천여 명의 수랏 시민들이 달라이 라마의 설법을 듣고 있다. 2015년 1월 2일(사진:텐진 췌조르 촬영).     ©매일종교신문
▲ 티베트 망명정부 롭상 상가이 총리가 한 모임에서 연설하고 있다.     ©매일종교신문
▲ 롬상 상가이 총리는 언론과도 자주 인터뷰를 갖고 티베트 인권문제와 문화 보존을 위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2012.3.12일자 힌두스탄타임스.     © 매일종교신문

 
달라이 라마 성하는 인도로 망명과 동시에 세계 뉴스의 초점이 되었다. 달라이 라마는 망명 직후, 네루 수상과 회담을 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것은 티베트 난민들에 대한 교육 문제였다. 티베트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한 인도정부 교육부 산하에 독립 부서를 설치해주고 모든 비용을 부담해 줄 것을 요청하자 네루 수상은 즉각 동의했다.
 
자와할랄 네루(1889-1964) 수상은 인도의 독립 운동가 겸 정치가로 사회주의 성향으로서 비폭력, 평화주의자였으며 그의 후견인이기도 했던 마하트마 간디와는 달리 적극적인 파업과 투쟁적인 독립운동을 주도했던 인도정치가이다. 인도독립이후 초대 인도총리를 역임한 분이고 그의 딸인 인디라 간디 수상, 외손자인 라지브 간디 수상 등, 인도 현대 정치사의 주역들을 가족으로 두고 있다. 달라이 라마는 네루 수상과는 수차례 만났으며, 인디라 간디 수상과 라지브 간디 수상과도 각별한 교분을 유지한 바 있다. 달라이 라마가 망명 정부를 구성하면서, 전통적인 티베트 내각인 카샤그 정부 형태를 지양하고, 현대 정치제도에 의한 정부체제를 갖추었는데, 공보, 교육, 내무, 안전, 종교와 경제 부서를 편성하고, 의회와 자체 사법부 기능을 두는 3부의 형태를 갖추게 된다. 달라이 라마는 망명 3개월 후인, 1959년 6월 20일 내외신 기자회견을 열고, 중공정부와의 맺었던 17개 조항을 포기하고 부인하면서 망명정부를 공식적으로 내외에 선포하게 된다.
 
달라이 라마 망명 정부는 1960년 3월 10일 티베트 봉기 1주년을 맞아서 기념행사를 하고, 이 행사는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티베트 망명 정부의 가장 중요한 정치행사가운데 하나이며, 티베트 문화 전통 보호가 망명정부의 핵심 정책이기도 하다. 달라이 라마 망명 정부는 유엔과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59년 61년 65년 세 차례에 걸쳐서 티베트 독립과 자유 인권문제에 대한 유엔 본회의 결의안을 도출해 내기도 했다. 달라이 라마는 2011년 정치적 수장의 지위를 그만두기까지 50여 년간 망명 정부의 수장으로서 매우 적극적으로 정치적 활동을 하셨고, 현재는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란 위상에서 설법(說法)을 하면서 세계의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있다. 그는 1959년 인도로 망명하면서 네루 수상을 시작으로 세계의 수많은 정치수뇌와 종교지도자 과학자 사상가 등을 만났으며, 공식 비공식적으로 세계의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과도 만나서 정신적 영감을 나누었다.
 
달라이 라마 성하가 1954년부터 지금까지 만났던 세계의 주요 인사들은 그야말로 세계 현대세계인물사라고 할 정도로 현대 국제무대의 주연급 인물들로서 흥미진진하다. 망명 전에는 마오쩌둥 덩샤오핑 주은라이 등 중국 공산당 정치 지도자들을 만났고, 인도에서는 네루 수상을 비롯한 인디라 간디 수상 등 인도의 정치 지도자들을 만나고 1966년에는 태국에 초청되어 태국 국왕과 태국불교의 최고 수장인 썸뎃 냐나상와라 승왕(僧王), 수상 장관 등을 만났으며, 1967년에는 바티칸에 초청되어 교황을 만났으며 이후 73년에도 교황을 만났고 이후에도 역대 교황들과는 수차례 만났으나 지난 2014년에는 바티칸에서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고 만나주지 안았다는 의심을 산 가운데, 노벨평화상 수상자들과의 모임에 참석했다가 만남이 불발되어 세계 평화주의자들에게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1989년에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 위해 노르웨이를 방문해서 국왕과 수상 장관 등을 만났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고 나서 그의 보폭은 더 넓어졌으며 1990년부터는 더 많은 세계각계의 지도자들과 만났는데, 미국의 대통령들에게는 단골손님이 될 정도로 대통령들과 차례로 만났고, 62개국을 방문하면서 많은 지도자 일반인들과 만나서 정신적 영감을 주면서 히말라야의 성자란 칭호를 받기도 했다. 한국의 정치 지도자들과는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유는 우리가 추진했던 달라이 라마 방한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정말 아쉬운 일이 되고 말았는데, 나는 항상 이 점을 지금도 매우 아쉽게 생각하고 있다.
 
달라이 라마 성하는 왜 세계의 많은 지도자들로부터 만나고 싶다는 콜을 받는가이다. 힘없는 하나의 망명정부 수반이며, 티베트 불교의 지도자일 뿐인데 세계의 많은 지도자와 일반 시민들은 그와의 만남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중국정치지도자 말고는 말이다. 달라이 라마는 평화를 주창하고 있다. 세계평화와 환경문제에 직접 발 벗고 나서고 있다. 평화와 환경문제라면 세계 어디라도 주저하지 않고 달려간다. 그는 평화메시지를 발표하고 비폭력을 강조하고 종교 간에도 상호이해를 바탕으로 서로 존중해야한다고 말한다. 또한 지도자들은 민족주의를 초월해서 우주적(세계) 책임과 자비(사랑)를 가져야 한다고 메시지를 주면서, 자신은 소박한 보통 라마(승려)임을 강조하고 평범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에게서는 권위와 위엄보다는 친근감과 자비스런 도인의 모습이 풍긴다. 그리고 단순하지 않는 무한한 영감을 지닌 성자 같은 모습이 만나는 사람들로 하여금 감동을 받게 만든다. 안티 달라이 라마 주의자들도 그를 한번 만나보면 달라이 라마의 진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안티 달라이 라마 주의자들이 제법 있다는 것을 감지했고, 이들의 배후가 누구이며 어디인지 알 필요도 알려고도 하지 않지만, 내가 만난 달라이 라마는 성자와 같은 분이라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다.
 
달라이 라마가 정치 수반으로 망명정부를 이끌 때 그의 정치노선을 중도주의(中道主義)라고 불렀다. 중도란 불교의 용어인데, 간단히 정의하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는 의미로서, 극단주의적인 폭력이나 무력에 의한 독립운동을 하지 않겠다는 메시지일수 있다. 그러므로 그는 비폭력 무저항주의를 택했는데, 이 같은 노선은 불교의 중도사상과 맥을 같이 한다. 이런 정치노선 때문인지 망명정부는 티베트 독립을 위해서 무장 게릴라전 같은 무력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그는 항상 평화적인 방법에 의한 정치 메시지를 중국정부에게 보냈고, 티베트 전통 문화 인권에 대한 문제를 세계에 호소해 왔다. 그렇지만 근래 티베트 자치구에서 분신사태가 발생함으로 인해서 그는 깊은 우려를 표하고 자제를 당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정부는 분신으로 인한 티베트인들의 저항에 민감하게 대처하면서 다람살라의 망명정부를 비난하고 있다. 중국정부는 달라이 라마가 정치일선에서 은퇴했다고 하지만, 액면 그대로 믿지 않는 분위기이다.
 
이 글을 쓰는 나도 더 이상의 정치적 이슈는 자제하려고 한다. 한국에도 친중파(親中派)가 많이 생겼고, 경제교류에 따른 중국과의 관계는 시간이 갈수록 긴밀해지고 있다. 불교계의 일부에서 달라이 라마 방한을 재추진하려는 움직임이 있지만, 정작 불교제도권에서는 냉담한 반응을 보일 뿐이다. 그만큼 한국정부나 제도권 불교계가 달라이 라마 방한 추진에 대한 기류가 20여 년 전과는 상당히 변해있다는 것을 필자는 피부로 느끼고 있을 뿐이다. 구호성 분위기를 몰아가면서 일방적 추진은 자유이지만, 시대의 흐름을 읽어가면서 가능성이 있는 방향으로 방안을 모색해가는 불교 자체 내의 공감대 형성이 급선무라고 본다.  

달라이 라마는 자신의 인생철학이라고도 할 수 있는 세 가지 좌우명을 갖고 있는데, 첫째가 인간가치추구이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원하고 고통을 싫어한다는 아주 소박한 인간관을 갖고 있다. 종교인이 아니라도 누구나 행복을 원하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자비를 베풀고 용서하고 관용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사회적 윤리덕목이라고 강조하신다. 자신은 이것을 실천하려고 노력하기 위해서 이 같은 덕목을 첫째 삶의 지표로 삼는다고 한다. 두 번째는 자신은 종교인이기에 종교적 수행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한다. 하지만 종교 간의 조화와 이해는 중요하며, 서로가 서로의 종교적 전통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신다. 그러므로 종교 간의 대화와 상호이해는 절대 필요하기 때문에 종교 간의 모임이나 대화에는 주저하지 않고 만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고 있다. 하나의 진리, 하나의 종교는 인류에게 해로울 뿐이라고 강조하신다.
 
개인에게는 하나의 진리만이 하나의 종교만이 필요하고 인정될지 모르지만, 인류라는 큰 공동체는 여러 개의 진리 여러 개의 종교가 필요하다는 기본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는 성하는 티베트인이고 달라이 라마란 이름을 갖고 있으니, 티베트의 불교문화를 평화롭게 비폭력적으로 보존하는 일을 해야 하는 의무감에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는 84개의 상을 받고 여러 개의 명예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지금까지 72권의 저서를 남기고 있다.
 
2011년 3월 19일 티베트 봉기 52주년(1959년 3월 10일) 티베트 국민 대표자대회에서 정치적 지도자로서 은퇴를 선언하고 달라이 라마로서의 정신적 지도자로서의 임무만 수행한다고 메시지를 발표했다. 이후 티베트인들의 직접 민주적 선거인 투표에 의해서 2011년 4월 27일 3명이 입후보해서 젊은 롭상 상가이(1968-)를 티베트 망명 정부의 제13대 총리로 선출했다. 롭상 상가이는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출신으로 법학자이면서 정치가이다. 제12대 총리는 롭상 텐진 린포체였다. 티베트인들은 젊은 롭상 상가이를 선택해서 뭔가 개혁적인 정책을 요구한다는 표심을 나타낸 바 있다. 2001년부터 제12대 총리직을 수행해왔던 롭상 텐진 전 총리는 37.4%를 얻었지만, 55%를 득표한 젊은 롬상 상가이에게 자리를 내주어야만 했다. 제3후보는 6.4%에 그쳤다.
 
▲ 2009년12월 호주 멜버른에서 개최된 세계종교의회에 참석한 롭상 텐진 전 총리. 필자(좌) 우측은 조계종신도회 손안식상임부회장.     © 매일종교신문
 
롭상 텐진(삼동 린포체 1939-)전 총리는 티베트의 대학승(大學僧)으로서 사라나트(녹야원)의 티베트 대학 총장을 오랫동안 역임하신 분이다. 그는 교수 라마 삼동 린포체로 더 잘 알려진 분이다. 달라이 라마와는 매우 가까운 사이이며 티베트 망명 정부를 2001년부터 2011년까지 10년간 쌍두마차로 이끌어 왔다. 롭상 텐진은 티베트 동부지역에서 출생했으며, 한 린포체의 화신으로 인정되어 라싸의 드레 펑 사원으로 옮겨져 사원대학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중관학(中觀學)의 대가(大家)로 알려져 있다. 달라이 라마와 함께 망명길에 올랐으며, 인도내의 여러 티베트 학교 교장을 거쳐서, 1988년부터 인도 사라나트에 있는 티베트중앙 고등연구원(대학) 총장으로 재직하다가 2001년 총리로 옮겨가면서 총장직을 사직했다.
 
필자도 그가 총장으로 계실 때, 몇 차례 만난 적이 있으며. 한국에서 불자들을 인솔해 가서 이 대학에서 연수를 받기도 해서, 롭상 텐진 린포체는 잘 알고 있는 사이이다. 이 대학은 1967년에 설립되었고, 문화부 산하의 티베트학 고등연구교육기관이었다가 1977년부터 인도 중앙정부 교육 문화부 산하 자율고등교육 기관으로 1988년부터는 인도정부로부터 티베트학 불교학 히말라야학 분야의 연구대학으로 인정받았고, 2009년에는 달라이 라마에 의해서 티베트중앙대학으로 선포되고 모든 재정지원은 설립당시부터 인도 중앙정부에서 받아 오고 있다.
 
이 대학의 설립은 달라이 라마의 자문과 요청에 의한 네루 수상의 도움으로 이루어진 결과이다.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의 젊은 난민과 히말라야 국경의 티베트계 젊은이들을 위한 인재양성에 따라 이 대학 설립에 상당한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이미 인도에서는 사라진 산스크리트 불교전적(佛敎典籍)을 티베트어에서 산스크리트어와 힌디어를 비롯한 다른 인도 언어로 번역하는 것도 이 대학 설립목적의 하나이다.
 
인도에는 지금 16개 공용어가 있을 정도로 다언어 국가이다. 한문으로도 산스크리트어 본(本) 불경이 많이 번역되었지만, 산스크리트어에서 티베트어로 번역된 불교경전 등 기타 전적의 번역에 비교하면 그 양이 적다. 산스크리트어 불교관련 전적의 90%가 티베트어로 번역되어 있다고 하는데, 이제 티베트어 본(本)에서 산스크리트어로 역번역(逆飜譯)되고 있는 것이다.
 

티베트 중앙정부는 어떤 나라로 부터서도 주권정부로 인정되지 않고 있지만, 다른 나라들의 정부나 국제기구로부터 인도내의 티베트 망명 난민들의 복지사업을 위한 재정지원을 받고 있다. 1998년 달라이 라마 망명 정부는 1960년대부터 미국 중앙정보부(CIA)로부터 매년 170만 불을 받아왔다고 밝힌 바 있다. 콜로라도의 헤일 캠프에서 티베트 게릴라 부대가 훈련을 받아 왔음도 발표했다. 티베트 중앙정부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1991년 2월 11일 대표 없는 국가 민족 기구(Unrepresented Nations and Peoples Organization, UNPO)의 설립에 창립 멤버로 참여했다. 이 기구는 원주민, 소수민족, 미승인 국가, 점령당한 국가를 자칭하는 정치 단체, 정부의 국제기구이다.
 
달라이 라마는 금년에 80세가 된다. 이제 의사의 권유를 받아들여서 무리한 활동을 자제하고 있다. 망명 이후, 수없는 공식 비공식 만남을 해왔었고, 수십 개국을 방문하면서 세계평화와 환경운동을 해 오고, 설법여행(說法旅行 Dharma Tour)을 해왔다. 활동을 자제하라는 의사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2015년에도 최소한의 활동 스케줄은 가득 잡혀있다. 올해 첫 행사로 기자들과 신년 인터뷰를 시작으로 1월 2일에는 구자랏 주, 수랏 시에서 수여하는 평화상시상식(사진)에 참석하는 등, 여전히 활동력을 과시하고 있다.
 
달라이 라마는 평소에 비교적 일찍 일어나고 저녁에는 가능한 일찍 업무를 끝내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달라이 라마 성하께서 다람살라에 계실 때에는 새벽 3시에 기상하시어, 샤워를 하시고 새벽 예불을 드리고 5시까지 명상을 하신다. 5시 후에는 잠깐 산책을 하시고, 아침은 5시 30분에 드시고, 아침 메뉴는 대개 따끈한 보리죽과 빵 차를 마신다. 아침을 드시면서 영국 BBC 라디오 세계뉴스를 듣는다고 한다. 필자가 80년대 영국 유학시절 그의 영어법문을 들은 적이 있고, 내가 1991년 달라이 라마를 직접 친견해서 대화를 나눴을 때, 신라 출신인 원칙스님의《해심밀경解深密經》주석서인《해심밀경소解深密經疏》를 영어(Sūtra of the Explanation of the Profound Secrets)와 산스크리트어(The Saṃdhinirmocana Sūtra)를 섞어가면서 티베트어(dgongs pa nges 'grel Gongpa Ngédrel)로 번역되어 있다면서 매우 전문적이고 학구적인 진지함을 나타내시면서 강조하셨다.
 
아마도 우리가 한국에서 왔기에 특히 강조하신 것으로 이해되지만, 실제로 달라이 라마께서는 유식계통의 이 주소(注疏)를 연구하셨다고 당시, 망명정부 공보차관인 까르마 유톡 라마가 들려주었다. 2009년 호주에서 그리고 2010년 인도 등지에서 들은 그의 영어 연설은 대단하셨다. 원고 없이 즉흥적으로 불교철학은 물론 시사문제나 과학적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그의 영어실력은 수준급이라는 것을 직접 들은 사람들은 평가하고 있다.
 
달라이 라마 성하께서는 아침 식사 후 6시부터 9시까지는 불교 경전이나 과거 고승들이 남긴 주석서(원측의 해심밀경소 포함)등을 읽고 연구하는 시간을 갖는다. 점심은 11시 30분이며 주로 채식이다. 그리고 오후에는 먹지 않는다. 오후불식(午後不食)의 계율을 지키신다. 오후에는 주로 측근들과 토의하거나 손님을 맞이하든지 인터뷰 등을 한다. 대개 손님은 12시 30분부터 3시 30분 사이에 만난다. 다섯 시에는 차 한 잔을 하시며 저녁 예불과 기도 명상을 하시고 7시에는 하루 일과를 끝내신다고 한다.
 
2014년부터는 손님 만나는 것을 많이 줄이고 있다고 한다. 꼭 필요한 경우에만 접견하고 선별해서 만난다는 전언이다. 그동안 수없는 분들을 만났기에 이제는 연로하시기 때문에 의사의 권유를 받아들인 것은 순리라고 생각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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