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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효큰스님(활인선원 선원장)의 법문

김정호 기자 정리 | 기사입력 2015/01/17 [18:36]
만근 짐을 더는 법

대효큰스님(활인선원 선원장)의 법문

만근 짐을 더는 법

김정호 기자 정리 | 입력 : 2015/01/17 [18:36]

태어나는 모든 존재는, 생겨나는 모든 존재는, 행복하려 하고 잘 살려고 합니다. 행복을 향해서 가지만 가다가 가끔 뒷걸음질도 치고 삼천포로 빠지는 때도 있어요. 그렇지만 내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안하든 행복을 위해서 가고 있어요. 그런 사실을 많은 사람이 모르고 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숨 쉬고 살지만 무엇 때문에 사는지 모르고 살 뿐이에요.
 
무슨 일을 하면서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 일한다, 그게 전부인 줄 알아요. 자기 눈앞에 있는 게 전부인 줄 알고 거기에 빠집니다. 거기에 갇혀 버려요. 무엇 때문에 빠지느냐. 사실은 나라는 게 없으면 빠지지 않지요. 그런데 그걸 모르고 살다 보니까 빠져버리는 거예요. 빠졌던 게 어디에 있어요. 여기에(가슴에) 다 있어요.
 
거짓된 나를 ‘참나’로 삼고 살아
 
여기 있는 걸 뭐로 삼습니까. 가슴속에 저장해 놓고 그걸로 나를 삼아서, 자신으로 삼아서 손을 놀리고, 발을 놀리고, 몸짓을 하고. 여기 저장된 걸로 행복을 향해 가면서 자꾸 뒷걸음질 하는 거예요.
 
뒷걸음질 한 걸로 끝나면 되는데 뒷걸음질 하는 걸 이 스승(마음)은 알고 있어요. 이 안의 스승이. 그래서 뒷걸음질 하는 것에 불만이에요. 이 불만이 자꾸 쌓여 저장돼요. 그래서 삶이 뒤죽박죽됩니다. 실타래 얽히듯이 뒤죽박죽해서 살아요. 그러면 자포자기하고 나는 별 볼일 없다, 세상을 한탄하고 그렇게 세월을 보내는데, 그게 전부냐. 그게 전부가 아니에요.
 
아무리 자기가 한탄을 하고 잘못됐다고 해도 그것이 전부가 아니야. 엄청 때가 끼고, 엄청 상처를 입고, 엄청 보잘 것 없이 형편없이 된 줄 알고 있는데 마음속의 스승이 이 지혜를 바로바로 써요. 바로바로 써도 전혀 지장이 없어요. 바로 쓰는데. 이렇게 사람들은 행복을 향해서 다가가고 있어요. 자기도 모르게 행복을 향해 가고 있어요.
 
흉악범은 자기 몸과 마음을 가누지 못해요. 사람을 죽이고, 해롭게 하며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했으니까 시원시원하고 통쾌하게 살 것 같지만 안 그래요. 심각한 상태에 빠져 있어요. 몸과 마음을 가누질 못하는 거예요.
 
이 마음이 갇혀 있는 줄 아는데 갇혀 있는 게 아니에요. 갇혀 있는 줄 알죠. 갇혀 있다는 마음뿐이지 갇히느냐, 안 갇힌다. 그래서 흉악범이 죽어가는, 신음하는 생명을 보고 살리고 간다 이거에요. 스승이 있어서 바로 쓰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이 바로 쓰는 마음, 이게 뭐냐. 이게 ‘최상의 지(知)’에요. 한을 품은 사람이 마음 쓰는데 지장 있느냐. 지장 없어요. 한을 품은 사람도 재미있는 것 보고 웃어야 되잖아요. 재미있는 것 보면 웃음이 나오잖아요. 그런데 한을 품은 사람은 남이 웃을 때 웃음이 나올까봐 꼬집어요. 안 웃으려고. 그렇게 하려고 인상을 더 써요. 자기 자신을 학대해요. 웃음 나올 때 웃는 게 쉽겠어요, 이걸 억지로 참으려고 하는 게 쉽겠어요. 웃으면 그냥 웃어진다는 거예요. 웃어져. 그러니까 바로 쓰는 마음이 어렵다는 거예요, 쉽다는 거예요. 쉽다는 거예요. 어려운 것 아니에요. 바로 쓰는 마음이.
 
조작 없는 마음이 참마음
 
 
바로 쓰는 마음은 조작이 없는 마음이에요. 교재에서 방편으로 얘기하잖아요. 업장, 업, 죄. 이게 상관없이 바로 써지게 돼요. 상관없이. 그래서 방편에서는 그런 얘기한다고. 그게 녹아났다. 녹아버렸다는 거예요. 억만 겁 동안 쌓인 게 녹아버려. 바로 쓰면 녹아버리는 거예요.
 
연쇄살인범이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고 나서 무슨 생각이 드느냐. 홀가분해져. 홀가분해져요. 감추고 살려고 했는데 자기 죄를 다 뉘우치고 이제 벌 받겠다고 자수하려가는 거예요. 이 바로 쓰는 마음이 어려운 게 아니고 쉽다는 거예요. 조작 안하고 쉬운 거예요. 바로 쓰는 게. 바로 안 쓰는 것이 뭐예요. 요기(가슴) 있는 것 꺼내서 쓰려는 마음이에요.
 
참선은 바로 쓰는 마음을 얘기하는 거예요. 바로 쓰는 거. 참선에서 스승이 제자를 지도할 때 보면 회초리로 종아리 때리고 이런 게 없어요. ‘불법이 뭐냐.’ ‘삼 세근이다’ 바로 깨달아버려요. 사람들이 이걸 들을 줄을 몰라요. 이걸 들을 줄 아는 마음이 바로 쓰는 마음이에요.
 
바로 안 쓰는 마음은 어떤 마음이냐. 아이고, 나는 저거 무슨 말인 줄 모르겠다. 이거 바로 안 쓰는 마음이요. 알아들을 말로 하지. 그건 뭐예요. 계산하는 거예요. 알아들으려고 생각하는 거예요. 알아들으려고. 뭘 알아들어, 그냥 듣지. 생각을 해요. 그냥 들으면 그게 바로 쓰는 마음이에요. 그냥 들으면.
 
우리가 사물을 보면 알 수 있는 것도 있고 모르는 것도 있잖아요. 처음 보면 잘 모르잖아요. 그래서 그렇구나 하면 돼요. 바로 안 쓰는 사람은 모른 게 계속 이어져. 그러면 아이고 세상에 모르는 것 투성이네, 먹통뿐이네. 불만이야. 왜, 보는 게 불만이냐. 먹통이면 먹통이지. 이 불만이 생긴다. 바로 쓰지 못하면.
 
마음 바로 쓰면 모든 業 녹아 없어져
 
바로 쓰면 만족이야. 아 이거 모른 거네, 이것도 모른 거네. 다 모른 거네. 이게 있지도 않아요. 여기 있다고, 저장됐다고 생각할 뿐이요. 사람들은 여기에 갇혀 살아요. 내가 잘못하고 있을 때 옆 사람이 ‘아, 그만 하라고!’ 이런 말하는 사람 있어요, 없어요. 있잖아요. 정말 필요한 말이고, 좋은 말이 아닌 말을 하고 있을 때 바로 쓰는 사람은 딱 중단하는 거예요. 맞아. 내가 왜 이런 말을 하지. 그런데 한이 맺히고 응어리진 사람은 하지 말라고 하면 한풀 더해, 더한다고요.
 
우리가 바로 쓰지 못하는 마음은 뭐냐. 마음을 바로 쓰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구렁텅이로 몰고 가요. 옆에서 구렁텅이로 빠지지 말라고 하면 더 빠져드는 게 바로 쓰지 못하는 마음이다. 옆에서 지적해 주면 얼마나 고마워요. 바로 쓰는 마음은 그걸 바로 받아들이는 거예요. 바로 쓰는 마음은 뭐예요. 단순해요. 단순해. 뒤도 없고 앞도 없어요. 앞뒤가 없어요. 앞뒤가 없으니 상처가 있겠어요, 없겠어요. 마음의 그늘이 있어요, 없어요. 없어요.
 
바로 쓰는 데는 나라는 존재, 나를 찾을 필요도 없어요. ‘나를 찾아야 된다’ 이것도 방편이요. 나를 찾으려면 먼저 뭐부터 해야 돼요. 마음을 바로 쓰라는 거예요. 곧바로 쓰라는 거예요. 이 ‘바로’는 삐뚤어지게 쓰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곧바로 쓰라’는 거예요. 바로 지금 이 순간. 굼벵이는 굼벵이로 쓰고. 앉은뱅이는 앉은뱅이로 쓰고, 누워 있는 사람은 누워 있는 대로 쓰고. 바로 쓰다 보면 어떻게 돼요. 바로 쓸 때 그 짐을 싹 버리게 돼요.
 
사람이 만근의 짐을 지고 살아요. 그런데 바로 쓰면서 짐이 확 줄어요. 확 줄어버려요. 바로 쓰면. 조상대대로 진 빚을 당대에 싹 갚은 이게 지혜요, 이게 바로 쓰는 마음이에요.(2012. 5. 11)( 녹취 및 정리: 김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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