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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지도자 아잔 브람 스님의 법문
“불교가 가르치는 것은 고통과 고통의 끝”
기사입력: 2015/01/31 [23:01]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김정호 기자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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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유명한 사찰(봉은사)에서 법문을 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이생에서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습니다. 불교가 전혀 없는 곳에서 태어난 게 제가 전생에 많은 악업을 쌓아서 그렇지 않나 생각합니다.
 
제가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기는 했지만, 장학금을 통해서 캠브리지 같은 명문 대학에 가서 뛰어난 업적을 이룬 사람들을 만났어도 인생에 있어서는 참 바보 같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학생 때부터 계율을 지키고, 술도 끊었고, 명상생활을 하다가 결국 태국에 가서 승려가 됐습니다.
 
제가 태국 북부 정글에서 제 스승님이신 아잔 차 스님을 만났는데, 이 분이 제가 캠브리지에서 만난 노벨상 수상자보다도 훨씬 더 현명한 분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학교라고는 4년밖에 다니지 않은 아잔 차 스님 같은 분이 어떻게 캠브리지 대학에서 이론물리학을 전공했고, 좋은 성적으로 졸업한 저 같은 사람보다 더 똑똑할 수 있을까요?
 
그 이유는 우리가 대학에서 배우는 모든 것들이 우리 바깥세상에 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불교는 인간 내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이해하는 방법입니다. 태국에서 수행하고, 호주에서도 30년 동안 수행하면서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이해하고, 마음을 어떻게 해야 행복하게 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건 바깥세상에 대한 것
 
부처님께서 “불교가 가르치는 것은 고통과 고통의 끝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수 년 동안 사람들한테 고통을 끝내려면 어떻게 하는지를 가르쳐 왔고, 그 덕분에 제가 아주 인기 있는 스님이 되었습니다.
 
사실 인간이 겪는 많은 고통과 행복은 결혼에서 옵니다. 불교적 가르침에 따라서 결혼을 좀 더 행복한 것으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특히 스님으로서 제가 해야 되는 일 중의 하나가 결혼식을 집전하고 주례를 보는 일입니다. 제가 주례를 봐서 결혼을 했는데, 결혼이 행복하게 안 풀리면 저한테 와서 저를 비난합니다. 그래서 제가 늘 결혼하려는 사람들에게 닭과 오리의 얘기를 해 줍니다.
 
젊은 신혼부부가 점심을 먹고 호숫가로 산책을 나갔습니다. 호숫가를 걷고 있는데 이런 소리를 들었습니다. “꽥꽥, 꽥꽥.”
 
아내가 남편에게 “여보, 저 소리 들었어요? 닭이네요.” 그러자 남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건 닭이 아니야. 오리야!” 부인은 “아니에요. 저건 닭이에요.”라고 고집합니다. 또 꽥꽥 소리를 들었습니다. 남편이 또 아내에게 “저게 어떻게 닭이야, 오리지.”라고 우깁니다. 아내는 또 “닭이다.”며 화를 내고 마침내 웁니다. 남편이 아내의 눈물을 보고 왜 내가 결혼을 했는지, 그리고 자신이 불자라는 것이 생각나서 아내의 손을 잡고 “여보 미안해, 저게 닭일지도 몰라.”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남편이 굉장히 현명한 불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닭이다, 아니다 오리다.’고 다투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을 기쁘게 해주는 것보다 중요한 일일까요? 자비가 싸우는 것보다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모든 중생에게 자비롭고자 하는데 내 아내, 내 남편만 예외입니까? 자비가 내가 맞다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꽥꽥 하고 울어도 오리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겁니다. 혹시 유전자 변이가 일어난 닭일지도 모릅니다. 꽥꽥 소리를 낸다고 해도 오리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자비가 싸우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결혼생활에서 ‘내가 항상 맞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실 누가 옳으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평화와 화합 속에서 잘 사는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말싸움하려 하고 불평하면 오늘 법문을 드리고 “꽥꽥.” 이러십시오.
 
제가 이런 얘기를 해드렸는데, 옛날부터 사람들이 이렇게 이야기하면 기억을 잘합니다. 사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들으면 참 재미있고 이렇게 배우면 기억도 잘 할 수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걱정을 너무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이 저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합니다. 저는 비행기를 많이 탑니다. “요즘 테러범들이 구두나 속옷 같은 데 폭발물을 숨기고 타서 비행기를 공중에서 폭파하려고 하는데, 스님, 그렇게 비행기를 많이 타시는데 무섭지 않으세요?” 그러면 제가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요, 만약 제가 공중에서 비행기 폭발로 죽게 된다면 저는 굉장히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중에서 비행기 폭발로 죽게 되면 이점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아주 효율적입니다. 거기서 순간적으로 화장이 되기 때문에 가족이 장례 준비하고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두 번째로는 공중에서 죽으면 장례비용을 쓸 필요도 없고, 오히려 보험금까지 받게 됩니다. 세 번째는 높은 데서 죽게 되면 천국에 가기도 쉬울 겁니다.
 
제가 이 얘기를 만들어 낸 이유는 사람들이 걱정 좀 하지 말라는 겁니다. 늘 걱정하다 보니 평화를 누릴 시간이 없어지는 겁니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서 사람들이 스스로 인생의 관점을 바꿔서 좀 더 행복하고 좀 더 평화로워졌으면 합니다.
 
제가 태국 북부 지역에서 9년을 지내는 동안 장례식에 많이 참석하고, 또 장례식 주재도 맡았습니다. 그 동안 단 한 번도 장례식에서 우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한국에서는 사람이 죽었을 때 많이 웁니까? 왜 그러세요? 애가 막 태어나서 울면 주변 사람들은 행복해 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어느 분이 돌아가시면 관에서 그 분은 평화롭게 웃고 계시는데 주변 사람들은 다 웁니다. 뭐가 잘못된 것 아닙니까?
 
제 아버지는 제가 16살 때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아버지를 굉장히 많이 사랑했는데 돌아가셨을 때 전혀 슬프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이유로 운 적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불자였기 때문에 놓아 버리는 법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제 감정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는 콘서트에 비유하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1951년 런던에서 태어났습니다. 그 덕분에 유명한 레드제플린이나 롤링스톤즈 같은 전설적인 그룹들의 콘서트에 갈 수가 있었습니다. 밴드나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마치고 나면 갑자기 이제 이 멋진 음악을 다시 못 듣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것 때문에 운 적은 없습니다.
 
내 인생의 멋지고 아름다운 것 생각하라
 
그 대신 이 멋진 음악 속에서 오랜 시간 있었던 것에 대해 감사하고, 내가 이것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행복감을 느낍니다. 이것이 제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느꼈던 바, 정확히 그대로입니다. 이렇게 관점을 바꾸는 것이 인생의 많은 고통을 없애게 합니다.
 
제가 처음 사찰 건립을 시작할 때는 직접 벽돌담을 쌓아야 했습니다. 완벽하게 잘 하고 싶어서 아주 천천히 했습니다. 벽을 완성하고 보니 벽돌 2개가 약간 비뚤어져 있어서 바르게 해 보려고 했지만 이미 굳어서 불가능했습니다. 그 벽돌 2개로 인해 밤에 악몽까지 꿀 지경이었습니다. 세 달 동안 무척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방문객이 그 벽을 보더니 “참 아름다운 벽이다. 비뚤어진 벽돌 두 개도 보이지만, 998개의 아름다운 벽돌도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세 달 만에 다른 벽돌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눈이 멀었던 건 저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벽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이후 그 벽을 폭파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사실 이와 같은 이유로 사람들은 자살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폭파해 버리고 싶어 합니다. 인생에 일어났던 딱 두 가지 나쁜 일 그것만을 보고. 다른 멋지고 아름다운 일들, 내 인생의 그런 일들은 보지 못한 겁니다.
 
일이 잘 안 풀리면 바깥으로 화내지 마시고 가슴에 잘 묻어 두십시오. 인생의 모든 고통과 실망은 지혜와 자비심을 길러 주는 가장 좋은 비료입니다. 다음번에 고통과 실망이 오면 ‘내 사과나무를 위한 더 좋은 비료가 생겼구나!’ 하고 기뻐하십시오.
 
이것이 우리가 인생에서 좀 더 지혜로워지고 좀 더 자비로워지는 방법입니다. 이것은 책에서 볼 수 있는 이론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직접 쓸 수 있는 실용적인 지혜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절에서 돌아왔을 때 더 평화롭고, 더 친절하고, 더 지혜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이 집에 갈 때 길에서 이미 살아 있는 불교 광고판이 되시는 겁니다.
이렇게 불교가 인생의 측면, 그게 결혼이든 죽음이든 자살이든 심지어 사업에까지도 아주 효과가 좋기 때문에 많은 서구 사람이 지금 불교를 배우려 합니다.(정리: 김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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