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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 스님의 명법문
“욕심으로 기도하면 더 나쁜 일 생긴다”
기사입력: 2015/03/23 [08:46]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이화서 기자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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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륜 스님(사진출처: SF정토회 게시판)     © 매일종교신문

“오늘은 1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다는 동짓날입니다. 동지는 4절기 가운데 하나이고, 전통적으로는 24절기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런데 ‘동지가 불교와 무슨 관계가 있기에 동지기도한다고 이렇게 소집하느냐?’ 이런 생각이 많이 드실 겁니다.
 
불교는 두 가지 성격이 있습니다. 하나는 부처님의 가르침인 진리를 말하는 불법이 있고요. 또 하나는 불교문화입니다. 불교는 불법을 전파하는 데에 목적이 있지 문화를 전파하는 데에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에요. 그래서 불교는 불법을 전파할 때 그 나라 사람들의 문화를 불교문화로 수용했습니다. 불교의 명절이 일반 국민의 명절이 된 것은 초파일이고, 반대로 일반 국민들의 명절이 불교 쪽으로 들어와서 자리 잡은 것이 정초기도, 동지기도입니다. 이것은 신도들이 갖고 있는 전통적인 문화를 절에서 수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기도효력 당장 안 나타나
 
왜 동지를 명절로 삼았을까요? 계절과 우리의 삶을 비교할 때 ‘매우 춥다’는 것은 ‘삶의 고통’을 말하는 것이고, ‘따뜻하다’는 것은 ‘괴로움에서 벗어난 것’을 상징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려움을 극복했다고 할 때 ‘겨울이 지났다’, ‘새 봄이 왔다’ 이렇게 표현하잖아요? 봄이 왔다는 징표는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누구나 봄이 왔음을 알 수 있는 것은 꽃이 피고 새싹이 돋는 때입니다. 새싹이 돋았다 하면 누구나 봄이 왔음을 알 수 있지요. 적어도 계절적으로는 춘분이 지나야 봄이 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한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옴을 알 수 있어요.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고 얼음도 꽁꽁 얼어있지만, ‘입춘’이 되면 봄에 들어섰다고 말합니다. 입춘은 2월 4일이니까 한참 추울 때입니다. 그런데 그때 벌써 봄이 시작되었다고 말하거든요. 입춘을 우리는 새해의 시작으로 잡습니다. 봄이 시작될 때를 한해의 시작으로 잡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동짓날이 지나면 이미 봄이 온다’는 것을 압니다. 오늘이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길죠. 내일부터 해가 조금씩 길어지니까 이미 봄은 올 수밖에 없는 겁니다. 봄은 오늘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런데 날씨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낮이 길어지는데도 불구하고 더 추워져요. 한 달 가까이 더 추워지는데, 그것은 한 달 전에 낮이 짧아진 것에 대한 결과물이 지금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지구에 햇볕이 쪼이고 그 결과가 드러나는 데에는 실제로 한 달 정도 시차가 생겨요. 만약에 우리 몸에 병이 걸렸다면, 세균이 몸에 침투하고 병이 나는 데에는 잠복기가 한 달 정도 걸린다는 것과 같은 얘기입니다.
 
겨울에 군불을 때면 몇 시간이 지나야 방이 따뜻해지죠? 불을 때는 데도 방이 싸늘하고, 나중에는 불이 없는 데도 방이 뜨끈뜨끈하고 그러잖아요. 불이 없는 데도 방이 따끈한 것은 이미 불을 지펴놓은 결과이고, 지금 불을 넣는데도 방이 찬 것은 불이 없었을 때의 결과입니다. 해가 제일 짧은 것은 12월 22일인데 제일 춥기는 한 달 후입니다. 그래서 동지가 지나고 나서 소한이 있고, 대한이 있는 겁니다. 그러니 동지가 봄이라는 것을 알기가 어렵죠. 동지가 지났는데도 날이 점점 추워지니까요. 봄이 온다는 것을 예측하기가 어렵지요.
 
기도는 빚 갚는 것
 
이런 계절의 문제가 우리들의 수행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오늘부터 부처님 법에 귀의해서 부지런히 기도를 시작합니다. 그럼 오늘부터 좋아져야 되잖아요? 그런데 기도를 해보면 대부분 그렇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나빠집니다. 그래서 ‘기도를 잘못하고 있나?’ 하는 의심이 들어서 ‘기도해봐야 소용없다’ 하고 그만둡니다. 이것은 동짓날 이후에는 해가 길어진다고 하니까 ‘이제 추위 끝났네’ 하고 있는데 더 추워지니까 ‘봄은 없구나’ 하고 절망에 빠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기도 입재를 해서 정진하면 100일까지는 상황이 더 나빠집니다. 바로 좋아지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입니다. 그러나 100일을 계속 정진하면 ‘아, 내가 고집이 좀 있는 사람이구나’, ‘내가 짜증이 많은 사람이구나’, ‘내가 끈기가 없는 사람이구나’, ‘내가 잔소리가 많은 사람이구나’, ‘내가 분별심이 많은 사람이구나’ 이렇게 자기에 대해서 좀 알게 돼요. 이것을 알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기도하지 말라고 해도 스스로 기도합니다.
 
한 1000일 쯤 기도하면 어떠냐? 꽃 피고 움 트는 것과 비슷해서 ‘요즘 너 좀 변했다’고 다른 사람들이 그 변화를 알아요. 그래서 여러분이 오늘 입재를 하면 이치적으로는 오늘부터 좋아지는 거예요. 그런데 드러나는 현상은 기도해도 더 나쁜 결과가 나타나요. 기도를 하면 화가 덜 나는 것이 아니고 화를 더 내고, 짜증도 더 나고, 잔소리도 더 하게 되고, 갈등도 더 생기고, 재수 없는 일들도 더 많이 생겨요.
 
왜 그런가? 이것은 기도하기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니라, 그 전에 지은 인연의 과보가 지금 몰아쳐 오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는 사람은 ‘기도하니까 좋아진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되고, ‘기도하면 빚을 갚는다’ 이런 생각을 해야 돼요. 이전에 지은 인연의 과보를 받는다, 즉 ‘빚을 갚는다’ 이런 자세로 기도하면, 기도하면서 온갖 어려움이 닥쳐도 ‘아이고, 내가 빚을 많이 졌구나’ 하고 어려움을 쉽게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다 욕심으로 하기 때문에 좋은 일은커녕 더 나쁜 일이 생기니까, 돈이 들어오기는커녕 빚 받을 사람이 더 많이 나타나니까 ‘기도해봐야 오히려 재앙만 온다’고 생각하고 기도를 그만두게 됩니다.
 
그래서 입재하는 날은 ‘동지’와 같고, 100일쯤 지나서 내 꼴을 아는 때는 ‘입춘’과 같고, 한 3년 정도 1000일 기도하고 나면 꽃피고 움트는 춘삼월과 같아서 주위에서 ‘변한 것 같다’ 고 얘기하기 시작합니다. 그 전에는 나는 변한 것 같은데 주위에서는 인정을 안 해줘요.
 
고통과 인내가 수행자자세
 
잘못이 잘 안 고쳐지는 이유가 잘못을 하면 바로 그 자리에서 손해가 탁 나타나면 누구나 다 잘못을 안 하겠죠? 그런데 잘못을 해도 그 과보가 금방 안 드러나요. 이것도 잠복기가 있기 때문에 그래요. 잘못을 해도 과보가 안 드러나니까 잘못에 대해 자꾸 유혹을 느끼게 됩니다. 좋은 일은 해도 금방 안 드러나니까 하기가 싫은 겁니다. 그래서 사람이 잘못된 행동은 하기가 쉽고, 좋은 행동은 하기가 어려운 겁니다. 그런데 조금만 길게 보면 잘못하면 그것의 과보가 드러나는 것이고, 좋은 일을 하면 그것의 공덕이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뜨거운 컵을 쥐었을 때 ‘앗, 뜨거!’ 하는 것처럼 그 과보가 즉시 나타나면 우리가 굳이 “잘못된 행동을 하지 마라” 이런 말을 할 필요가 없어요.
 
또 우리는 나쁜 것은 가능하면 안 밝히고 숨겨 놓으려고 하잖아요. 좋은 것은 요만큼 해놓고 이만큼 했다고 선전을 하려고 하잖아요. 그러나 좋은 일을 하고도 없었던 일처럼 묻어두면 나중에는 어마어마한 이자가 붙어서 공덕이 한량이 없어집니다. 예를 들어 김밥 할머니가 장학금 100만 원 내었다고 하면 신문에 기사가 작게 납니다. 그런데 김밥 할머니가 장학금을 100만 원 내었는데 조사를 해봤더니 지난 10년 간 묵묵히 했다 이러면 어떻게 돼요? 기사가 크게 나가게 되는 겁니다. 반대로 나쁜 일을 조금 했다면 기사가 작게 나가는데, 그 사람 알고 봤더니 지난 10년 동안 못된 짓을 했다고 하면 기사가 더 크게 뻥튀기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 나쁜 일은 빨리 드러내 놓아서 더 이상 새끼를 못 치게 해야 합니다. 실수를 하고 나서 그 자리에서 싹 엎드리면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나는데, 숨기다 보면 문제가 커집니다. 나쁜 일은 빨리 드러내는 것이 좋고, 좋은 일은 좀 묻어 두는 것이 좋은데, 우리는 성질이 급해서 그렇게 못하죠.
 
우리는 계절을 보면서도 이런 수행의 이치를 알 수 있습니다. 진정한 수행자는 ‘동지’의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기도를 하면서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라고 생각하지 말고, ‘내가 알게 모르게 지은 과거의 모든 과보를 내가 다 받아내야 되겠다’ 이렇게 과보를 받을 생각을 해야 합니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도 ‘공덕을 쌓겠다’ 이렇게 생각하지 말고 ‘빚을 갚는다’ 이런 마음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빚을 갚는다고 생각하면 내가 어떤 일을 해주고 상대로부터 칭찬을 받으려는 마음이 없겠죠? 남을 도와줄 때도 ‘내가 옛날에 진 빚을 갚는다’ 이런 마음을 내면 이것이 바로 ‘무주상보시’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좋은 일을 하면서도 ‘내가 세상을 위해서 일한다’ 이런 생각을 자꾸 하니까 나중에 억울해지는 겁니다. 내가 사는 것 자체가 세상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입은 은혜 중에 전부는 못 갚더라도 일부라도 갚고 가야 되겠다 이런 마음을 내어 봉사도 하고 보시도 하면 저절로 수행자의 자세가 됩니다.
 
우리가 여기까지 있게 된 것은 조상의 은혜가 큽니다. 자기를 있게 해준 부모님과 조상을 생각하는 것은 자긍심을 심어 줍니다. 오늘처럼 좋은 날은 항상 나를 있게 한 부모님과 조상님을 생각하면서 차 한 잔이라도 올리는 자세가 필요합니다.(정리: 이화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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