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守岩 칼럼
왜 서양에서 ‘불교 바람’이 불고 있나
토인비 “동양의 불교가 서양으로 와서 기독교를 대체할 것”
기사입력: 2015/05/11 [08:27]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문윤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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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놀드 토인비(1889~1975)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역사학자 중에 한 사람이다. 영국 옥스포드대 교수였던 그가 세상을 떠나기 몇 년 전 옥스포드 학술회의에서 긴 연설을 한 적이 있다. 이 자리엔 수많은 학자들과 학생, 언론인들이 참석했다.

연설이 끝나자 누군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흥미로운 질문 하나를 던졌다. "아놀드경, 당신은 오늘날 가장 위대한 역사학자로 존경받고 있다. 만약 미래에 그러니까 200, 300년 뒤에 역사가들이 20세기 가장 중요한 사건을 꼽으라고 한다면 무엇을 꼽을 것인가? 2차 세계대전이나 히틀러의 대량학살일까, 아니면 공산주의의 몰락 또는 여성 인권의 신장인가? 우리 시대의 최고의 사건은 과연 무엇일까?"

그러자 토인비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이렇게 말했다. "동양의 불교가 서양으로 건너와 기독교를 대체하는 일이다." 너무나 의외의 답변 앞에 청중들은 할 말을 잃었다. 수군거림까지 있었다. 그날 그의 말은 생전에 남긴 대표적인 어록으로 남아 있다. 그는 인간문명에 대해 방대한 역사를 썼고 수많은 칼럼을 썼으며 세계적으로 많은 연설과 강연을 했지만, 이제 많은 이들은 토인비 하면 그가 얘기한 ‘동양 불교의 서양유입'을 먼저 떠올린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지금, 세계 사람들은 새로운 세기에 맞는 새로운 철학이 무엇인지 찾고 싶어 한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이다. 경제적인 진보는 이뤘지만 전쟁, 폭력, 환경 파괴는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미래는 어둡고 길은 보이지 않는다. 이미 70억이 넘어버린 인구는 지구를 만원으로 만들고 있고, 천연자원은 바닥나고 있으며 무절제한 소비와 쓰레기는 기후 패턴마저 변화시키고 있다. 우리는 지난 세기에 이것을 '진보'라고 생각했다.

지금 서양인들이 찾고 있는 21세기의 철학은 동양사상이다. 미국·유럽의 지식인들과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동양 사상에 심취해 가고 있다. 그중에서도 불교는 거대한 홍수처럼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베스트셀러 리스트인 <뉴욕 타임스>의 베스트셀러 10위권 안에 지난 5년 동안 불교 관련 서적이 빠진 예가 단 한 번도 없다. 할리우드 스타들과 모델들에서부터 작가·예술가·철학자에 이르기까지 불교를 통해 상처와 문제투성이인 세상을 치유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앞으로 몇 년 안에 불교가 가톨릭, 이슬람교에 이어 세 번째로 신도가 많은 종교가 될 것이라고 한다. 폴란드·이탈리아·러시아에서도 불교 신자들은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1996년 커버스토리에서 미국의 불교 신자 수가 적어도 1000만명으로 추정했다. 지금은 이 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미국에는 현재 불교 사찰과 명상센터가 5000여개에 이른다.

토인비의 예언은 정확히 적중했다. 서구 역사는 과학 발전의 역사이다. 좀 더 나은 것, 좀 더 편리한 것, 좀 더 빠른 것을 위해 오직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다 어느 한 순간 ’왜? 무엇을 위해?‘라는 질문 앞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위대한 과학자 앨버트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미래의 종교는 우주적 종교가 돼야 한다. 그동안 종교는 자연세계를 부정해 왔다. 모두 절대자가 만든 것이라고만 해 왔다. 그러나 앞으로의 종교는 자연세계와 영적인 세계를 똑같이 존중한다는 생각에 기반을 둬야 한다. 자연세계와 영적인 부분의 통합이야말로 진정한 통합이기 때문이다. 나는 불교야말로 이런 내 생각과 부합한다고 본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현대의 과학적 요구에 상응하는 종교를 꼽으라고 한다면, 그것은 '불교'라고 말하고 싶다."

▲ 베트남 출신 틱낫한 스님은 달라이 라마와 함께 세계적인 불교 지도자로 꼽히는 선승이자시인이며 평화운동가이다. 그는 1982년 프랑스 보르도 인근에 명상공동체 ‘플럼 빌리지’를 창설하면서 마음의 평화에 이르기 위한 수행을 세계인들에게 본격 전파하고 있다.     © 매일종교신문

미국의 현대불교 전파와 현황
 
불교는 미국에서 세 번째 큰 규모의 신도를 가지고 있는 종교이지만 불교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종교이다. 2007년 퓨 리서치센터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불교 신자는 0.7%로, 기독교 (78.4%) 무교 (10.3%) 유대교 (1.7%) 다음이었다.
 
사실 미국의 불교가 언제부터 시작됐는가에 관한 것은 확실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몇몇 학설이 그 맥을 이루고 있다. 어떤 학자들은 중국의 스님들이 콜럼버스가 미국을 발견하기 전에 미국에 정착했다는 주장을 했고, 또 다른 학자들은 아직 서부에 정착한 아시아계의 이민 집단, 중국, 일본인들에 의해 미국에 불교가 소개됐다고 주장한다. 또 이와는 달리 옛날 미국의 원주민 인디언들이 티베트인들의 후손으로서 티베트불교가 아메리칸 인디언 속에서 자리 잡았다고 주장한다. 미국불교의 시작에 관한 여러 학설이 있으나, 여기에서 결론지을 수 있는 것은 미국 불교의 역사는 일반인들이 인식하는 것보다는 훨씬 깊고 오랜 역사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불교 역사의 출발에 관한 다수의 학설은 1893년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종교의회에서 시작돼 100년이 넘었다.
 
현대 미국불교의 시작은 미국에 이주한 아시아인들이 함께 옮겨온 그들의 불교정신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이들 이민자들이 그들의 종교를 바꾸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가장 활발히 종교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은 1898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된 ‘진도신수’이다. 이 진도신수는 북미에 종교 전파의 임무를 띠고 1942년에 미국 불교로서 종단을 형성해 현재에까지 이르고 있다. 또한 천태종(중국인), 신종수(일본)등이 미국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사실 하와이가 1959년 미국의 한 주(州)로 편입됐지만, 불교는 그들이 사탕수수밭의 노동력으로 이주할 때부터 함께 해온 1868년에 뿌리를 두고 있다. 미국불교의 중요한 역사적 현상은 1893년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종교대회를 통해 찾아볼 수 있다. 이 대회에 참가한 불교인들에 의해 불교 정신이 미국인들에게 심어지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불교 신도의 수를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다. 불교 명상을 배우면서도 ‘불교도’라는 명칭을 붙이는 것을 꺼려하기도 하는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여러 연구들에 따르면, 미국의 불교 신자는 200만에서 1000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기독교가 국교처럼 받아들인 나라인 미국에서 이제 불자는 250만 명 정도로 늘었고 명상 인구는 벌써 1000만 명을 넘어섰다.

이러한 미국불교는 일본불교와 수행이 엄격하기로 유명한 티베트불교가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 최소한 10만번의 절, 보살계 10만번 암송, 10만번의 염불, 10만번의 만다라 봉정, 10만번의 만트라 암송은 필수코스다. 티베트불교를 수행하는 많은 미국의 청․장년불자들이 학교와 직장을 다니는 상태에서 본수행도 아닌 이런 예비수행을 착실하게 해내고 있다. 그 중에 로버트 서먼은 1997년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25인 중 한 명이며, 달라이 라마로부터 비구계를 받은 최초의 미국인이다. 현재는 환속해 불교학자, 작가로 활동 중이다. 구글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도 유명한 미국인 불교도였다.

◆ 미국불교의 일반포교는 禪에서 시작돼
 
미국불교의 일반포교는 선(禪)에서 시작됐다. 불교학교의 스승인 사쿠 소우엔이 미국에 선을 전파했다. 이 사쿠의 선을 통한 불교의 가르침은 1905~6년에 미국에서 크게 부흥했고 이러한 불교활동을 통해 뉴욕에 미국불교협회를 설립했다, 미국불교협회는 1930년에 사쿠의 제자에 의해 설립됐다. 현재 이 협회는 뉴욕 맨해튼31가에 ‘미국불교참선센터’로 존재하며, 선을 가르치고 있다. 또한 아시아 불교학자들이 미국에 그 분교를 설립하여 미국불교의 포교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미국인들이 아시아의 불교 부흥에 기여한 미국불교의 역할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1870년대에 불교가 한국, 일본, 스리랑카, 인도 등에서 퇴보하고 있을 때, 현대기술과 서구문화를 아시아에 소개하는 서구인들이 아시아인들의 전통적인 문화 즉, 불교 등을 함께 발전시키는데 기여했다. 예를 들면 미국불교 부흥의 초석을 마련한 견신론자(견신론이란 1815년 뉴욕에서 생긴 견신론파의 믿음으로, 주로 신지학이라 불리며 일반적인 신앙과 추론으로 알 수 없는 신의 심오함을 신비적인 체험이나 특별한 계시에 의해 알게 된다는 이론을 추구하며 신비주의에 기반을 둔 종파)들이다.
 
많은 아시아인들이 서구문화에 영향을 받아 그들의 전통종교인 불교를 멀리하고, 서구종교인 개신교나 가톨릭으로 개종할 때 견신론자들은 아시아인들에게 불교정신의 지혜를 전했다. 불교정신은 물질만능주의 시대에 개인의 정신과 마음의 향상을 가져올 수 있는 유일한 등불이라고 가르쳤다.
 
세계불교의 부흥에 기여한 서양 불교도인 헬레나 페트르바 발베스티키((1831~1891)와 헨리 스틸 올코트(1832~1907)에 관해 논하고자 한다. 사실 아시아의 위대한 불교 학자나 스승들은 서구 불교학자들의 제자였다. 인도의 유명한 불교학자인 다하마나다 카삼바(1871~1947)는 헨리클락 왜렌의 제자였으며, 일본의 불교전문가인 먼쥬 나지오(1849~1927)는 독일의 마르크스 밀멀의 제자였다. 이에 아시아 불교에 미친 서구불교의 영향과 장단점을 떠나 한 가지 고려해야할 것은 물론 아시아 불교가 서구인들에 의해 부흥되었음은 좋은 현상일지라도 서구문화의 기본이 되는 기독교에 의해 불교의 정신이 곡해되었다는 점이다.

▲ 미국의 한 젠(禪)센터에서 수련하고 있는 모습     © 매일종교신문

◆미국불교는 한국 중국 등 아시아의 전통 불교에서 유래
 
미국불교는 대부분 한국, 중국, 일본, 미얀마, 스리랑카, 인도, 대만, 홍콩 등의 전통불교에서 유래되며 또 영국불교, 캐나다불교 등 서구불교의 전통도 미국불교에서 찾을 수 있다.
 
먼저 미국불교의 전통이나 그 종파를 찾음에 있어 스리랑카, 베트남, 서동아시아에서 출발된 테란벤을 들 수 있다. 이 테란벤 불교도들의 집회를 텍사스, 오클라호마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이들 미국불교의 가르침은 "어떠한 것도 영원하지 않음에 모든 것은 순간순간 변한다. 그 순간성의 사실은 어디에서나 발견할 수 있다. 한 생명이 태어나고, 다른 생명이 죽고, 또 모든 사람은 늙고 죽는 것이다."에 있다.
 
서구의 심리학자들이 ‘자아’나 ‘아집’을 연구함에 우리의 경험을 통해 이것들을 확립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모든 것이 영원성을 소유하지 않는다고 가르치는 불교는 인간의 경험 또한 영원성과 확실성을 갖고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불교도들은 세상의 영원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으며, 자아의 인식은 허상이라고 가르친다. 좀 더 상세히 설명하면, 우리 인간이 자아를 인식함은 우리의 욕망, 욕구 등을 갈구하며 또 이것을 이기심으로 인식한다. 이러한 개인의 허상을 자아라고 믿는 마음의 상태가 모든 인간에게 생(生)의 고통을 준다고 가르친다. 마음이 단지 개인의 인식에 의한 기능으로서 우리들이 인식하는 개인 혹은 자신 등은 단지 변화하는 육체적, 정신적인 힘이나 에너지라고 불교는 가르친다.
 
여기에서 잠깐 다섯 가지의 기(氣: 에너지), 즉 △물질 △감각 △인식 △정신작용 △의식에 관해 논한다. 이러한 다섯 가지 에너지의 변화와 작용하는 사실이 우리에게 ‘자아’로 잘못 인식된다. 이러한 잘못 인식된 자아는 우리에게 집착과 고통을 준다. 사실 고통이란 인간에게 주어진 불가분의 경험으로서 우리는 숨기거나, 부정하거나 그 고통을 잊기 위해 다른 허상 혹은 환상을 믿으려고 노력할 뿐이다. 사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이러한 고통을 이겨 내거나 막으려고 반복되는 행위를 멈출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불교인의 길이란 우리 인간이 필연적인 이 고통을 이기는 다른 세상을 찾는 것이다.
 
테라바다(Theravada)에서 네가지의 진실은 인간의 숙명적 삶의 고통의 근본이라고 가르친다.
 
첫번째의 진실은 인간의 고통에 관한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우리의 고통은 인간이 주위에 존재하는 현상이나 환경과의 교차상태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인간은 삶을 영위함에 있어 정신·육체적인 고통을 경험한다. 즉 사람이 그들이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하거나 또는 원하지 않은 것을 해야 하는 등의 실망에서 고통을 경험하게 된다. 또한 자연의 섭리로서 인간에게 존재하는 고통이란 생로병사(生老病死)로서 우리 인간이 아무리 자신을 정신적, 육체적으로 돌본다 할지라도 우리 인간은 이것에서 벗어날 수 없다. 또한, 우리의 ‘자아의식’ ‘이기심’ 등이 고통을 일으킨다. 모든 사람들이 우리의 생에 대한 고통을 숨기기 위해 쾌락이나 환상을 추구하고 또는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미래에 대하여 꿈으로서 고통을 잊으려고 하지만, 자아의식의 그릇된 확신은 항상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다.
 
두번째 진실은 사실의 근원이 고통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본능과 욕구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정신·육체적 고통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조정하거나 극기하기는 참으로 힘든 것이다. 테라비디엔은 우리의 욕망이 고통의 원인이 됨으로 우리가 이 욕망을 분명히 밝혀 이 욕망에서 벗어남으로서 고통을 없애야 한다고 가르친다. 개인의 감정이 욕망과 집념을 생기게 했으며, 이것이 우리의 생을 만들었고 또 생명이 고통의 근원이 된다.
 
세번째 진실은 개인의 노력으로 인간의 고통을 멈출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는 모든 불교종파에서 주장하는 개념이다. 생로병사의 윤회에서 벗어남이 고통을 이길 수 있는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가르친다.
 
네번째의 진실은 이러한 인간의 고통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을 말한다. 즉, 개인이 어떤 범주에서 믿음으로 살면서 고통을 끝낼 수 있는 지혜를 말한다.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기본적으로 행해야 할 8가지 정도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인간이 가장 기본적으로 해야 할 것은 다음의 8가지 정도이다. 이러한 8가지의 훈련은 개인의 생활을 통해 성사 여부에도 불구하고 계속되어야 하며, 이에 첨가해서 3가지의 마음 수양을 가르친다.
 
첫째, 지혜로서 우리 인간은 모든 사물의 현상을 바른 생각으로 이해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둘째, 우리의 삶을 밝혀줄 수 있는 도덕성을 말한다. 즉 인간의 행위는 정의로움에서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참선(參禪)으로서 정신집중력과 통찰력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우리가 집중해 있을 때만 이 우리의 지혜가 밝혀지며, 여기에서 우리는 정의로운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넷째, 바른 이해로서, 불교에서는 바른 이해를 불교의 시작이며 끝이라고 가르친다. 다시 말해 개인의 이해는 어떤 개인의 신념이나 인식에서 결정되어져서는 안 되며, 개인의 극기에서 출발되어 형성된 지식과 통찰력에서 결론지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다섯째, 이기심을 이해하는데 불교의 바른 이해란 이기심의 버림에서 출발되어 개인의 깊은 심성에서 생겨난 완전한 이해를 말한다. 카르마의 법칙 또는 인과설(因果說)에서 우리는 바른 이해와 인간관계를 살펴볼 수 있다. 바른 생각이란 남이나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파괴적인 이해와는 다르다. 바른 말이란 아무런 해가 없는 말을 뜻한다.
 
여섯째, 불교도가 되기 위해 우리의 마음에서 출발하는 바른 결정이다. 비록 우리 인간이 삶을 살아감에 있어 여러 가지 유혹이나 어려움을 당할지라도 항상 우리의 의지를 곧게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일곱째,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정신·육체적으로 항상 깨달아 올바른 마음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위에 나열한 불교의 정도를 기본원칙으로 삼아 끊임없이 마음의 훈련을 쌓아가는 것을 말한다. 이는 자기수양 중에 겪는 우리의 마음이 이 상태에서 허상과 실상을 발견하고자 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또 우리는 수행 중에 ‘아집’을 극복해야 한다.

◆10가지 마음의 정신 상태
 
불교에서는 마음을 정신의 상태라고 규정한다. 그 마음의 상태를 건강한 상태와 건강하지 않은 상태의 두 가지로 규정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불건전한 마음의 상태란 혼미, 찬상, 혐오, 거만, 거짓환각, 이기심, 창피, 질투, 무지, 무식의 상태 등을 말한다. 또 건강한 상태의 마음이란 깨달음, 통찰력, 융통성, 겸손, 신뢰, 확신, 침착, 신중 등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통찰력과 주의성을 좀 더 깊이 설명한다. 통찰력이란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고 바르게 인식하는 것이다. 또한 이는 삶의 진실성을 인식하는 것이며, 신중성이란 전체적인 삶을 바르게 이해하며, 이 둘이 개인의 마음에 균형을 잡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인간이 바른 통찰력과 주의력을 가지고 있을 때에 바르고 건강한 마음의 상태를 가질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사실의 근원이 고통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본능과 욕구를 말한다.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정신·육체적 고통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조정하거나 극기하기는 참으로 힘든 것이다.
사람은 과거 현재 미래를 이해함으로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최고의 정신적인 상태를 누린다. 이러한 10가지 마음의 상태는 서로 연관되어 있으며, 이 10가지 마음의 상태는 다음의 10가지 사실들에 의하여 형성된다.
 
1. 사물의 주어진 형상: 이는 고통의 외형이다.
2. 개인의 마음, 정신과 지혜 : 우리의 마음의 상태가 얼마나 불교정신과 어긋난다.
3. 위의 1.2가 일으키는 결과
4. 힘: 유전되는 육체와 정신의 근본
5.정신·육체적인 힘: 개인은 내적인 힘이 있으나 이것은 밖으로 넓혀지지 않으며, 이 힘의
외형의 긍정적, 부정적인 요소
6.선천적인 원인은 현상을 가져온다. 선천적인 힘은 항상 현재 삶의 부분이 된다.
7.내부의 원인이나 상태가 행위를 통하여 유전적인 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모든 행동은 내부 원인에 따른 결과이다.
8.잠재력은 선천성과 후천성의 결과로 나온 것이다.
9.명확한 효과, 선천성의 원인은 선천성의 결과에 의한 후천성의 원인에 의해 증가된다.
10. 위의 9가지 요소는 서로 분리돼 존재하지만, 그것은 전체적으로 서로 연관되어 있으므로 여러 요소 중에 하나가 빠져도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 미국에서 가장 널리 퍼진 불교는 티베트 전통불교
 
미국불교에서 가장 널리 퍼져있는 티베트 전통의 불교에 관해 논한다. 사실 이 티베트 전통의 불교도가 되기 위해서는 선생이 필요하기 때문에 다른 불교 종파보다는 개인적인 경제성이 불교도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므로 이 불교는 경제적 여유가 있어 선생을 구할 수 있는 미국 중상류계층에 널리 퍼져 있다.
티베트 전통불교가 미국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는 두 가지 요소는 첫째, 그들의 가르침은 남성과 여성의 힘과 그 힘의 통합에 중심을 두고 있고 둘째, 이 가르침은 인간들이 죽음에 임할 때 보다 나은 다음 세대의 출생을 위하여 행하여야할 것을 가르친다.
 
◆미국인들은 왜 불교도가 되는가 
 
그러면 왜 미국인들은 불교도가 되는가? 불교가 왜 미국에서 점점 성장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먼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가장 많이 주장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사실 아시아의 종교에 매혹되었던 미국인의 숫자는 1960년대를 계기로 조금씩 감소하고 있으며, 또 이러한 미국인들은 주로 그들 가족의 종교나 문화에 만족하지 못하자 불교도가 되었다. 또 다른 해석으로는 사회에 널리 퍼져있는 어떤 종교의 종교인이 되지 않음에 따른 사회적 소외감을 느낌으로 이 소외감을 이기기 위해 다른 종교를 찾는다. 이 문제에 관한 해답은 1960년과 1970년대의 해석으로는 충분하나, 현대 미국에서 성장하는 불교도들에게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현대문명 속에서 돈과 부의 물질만능을 자신의 행복으로 추구하는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인 안정을 찾고자 종교를 찾기 시작했으며, 특히 인간성이 상실되는 미국인들에게 그들 나름의 종교성과 신념을 발견할 수가 있다. 또한 현재 많은 미국인들이 그들 종교의 전통성을 고수하지는 않고 있다.
 
◆미국에서 불교가 성장하는 이유
 
불교가 미국에서 뿌리를 내리고 성장하는 이유는 실용성에 기반하여 가르치고 각 개인이 마음을 밝혀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답을 주기 때문이다. 즉 불교는 가능성의 종교이다. 불교는 깨달음을 통해 죽음을 인정하고 주어진 삶을 부정하지 않으며 건강하게 사는 방법을 가르친다. 또한 불교에서는 많은 수업을 대중에게 무료로 제공해주고 있다. 사실 미국에서는 많은 상업적인 단체들이 불교의 교리를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이 단체들의 훈련이나 세미나에 참가할 시간이나 돈이 없는 많은 미국인들이 절이나 불교 센타에서 개설하고 있는 프로그램에 참가하여 그들의 지식을 넓힘에 있는 것이다. 또 더 나아가 미국 내에 불교학자들의 수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많은 대학에서 불교철학을 가르치며, 또 일부 대학에서는 불교연구 학위를 제공하기도 한다. 게다가 많은 불교신도들이 기독교를 전공하며, 대학에서 교재로 사용되고 있는 책들은 기독교를 전공한 불교인들에 의해서 씌여진 것들이다. 또 미국에서는 불교학자들을 많이 양성하고 있다. 그들은 불교국의 언어를 익히고 그 나라의 문화나 전통까지 배운다. 결론적으로 미국에서 불교가 성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이 또한 어느 종교나 어느 나라에서나 마찬가지로 불교인들의 종교적 신념도 그 개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다.

◆미국불교의 장래성
 
신비한 불교(티베트 불교)는 장래성이 없다. 신비의 불교는 일반인들이 책을 읽거나 공부할 수 없을 때 발전되었으며, 이때에는 남묘호렌게교나 여러 종파들의 개인적인 해석으로서 그 종파의 성격을 특정지었다. 하지만 어떤 개인이 어떤 종파에 속해야 한다는 확신의 사실들은 현대문명 속에서 사라졌다.
 
미국불교는 미국의 문화에 접할 수 없었던 그 당시 특수한 집단의 성격 때문에 여러 종파로 소개되었다. 불교는 그 경전들이 가장 기본적인 것만 해도 60권이 넘는다. 이는 2, 3권의 기본 경전을 가지고 있는 다른 종교와는 비교를 할 수가 없다. 사실 불교가 융성한 아시아의 불교인들이 이 책을 다 읽지는 못한다. 하지만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문서화된 불교의 가르침은 정교하고 값진 하나의 현대사회의 과학이다. 불교는 인간과학이며, 인간이 그들의 삶을 통해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는 과학이다. 만약 사람이 그들의 삶의 목적을 규정짓기 위해서 왜 이 세상에 존재하는가, 왜 사는가 등을 밝히고 싶다면 불교의 가르침에서 그것을 찾을 수 있다. 사실 불교철학은 하나의 해답을 내리기보다는 확신의 해답을 주는 것이다.
 
불교의 미래는 형이상학에 기인함이나 문화적인 배경 즉, 불교국가들(인도, 한국, 중국, 스리랑카, 일본, 버마 등의 아시아 국가들)에서 벗어나 인간 삶의 과학으로 발전을 계속할 것이다. 또한 불교종파의 이기적인 해석을 주로 한 종파들은 실천을 통해 이론적인 왜곡을 수정할 것이다. 어떤 선생의 인간성이나, 어떤 종파의 성격을 떠나 개인 자각의 종교로서 발전할 것이다. 미국불교인들이 형성한 ‘구미불교회’ 등은 이에 따른 새로운 경향으로 해석된다. 사실 이 구미불교회의 모든 회원들이 자신을 불교인으로 믿는 것은 아니다. 불교의 가르침을 숭배하고 존경하는 미국과 캐나다의 기독교인들이 이 조직의 회원이기도 하다. 또한 무신론자들이 이 불교의 가르침을 통해 자신의 마음 상태를 이해하고 향상시키기 위해 이에 참가하기도 한다.
 
평화로운 세계를 기원하는 사람이나, 마음의 승리로서 자신의 육체적인 아픔을 이겨 보고자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에 동참한다. 사실 미국불교협회는 모든 불교인들을 ‘함께 뭉쳐보자’는데 그 뜻을 두고 있으며, 종파를 떠나 인류에 이익을 주는 과학으로 불교정신을 발전시키고자 한다. 이제 불교의 장래는 아시아보다는 미국에서 그 장래가 결정될 것이다.

한국불교의 해외 포교 실태
 
고대에는 일본에 불교를 전파해줌으로서 해외 포교의 역사는 참으로 깊다. 1985년 현재 세계 10여 개국에 한국 사찰 75곳에 스님 83명이 해외에 나가 있다. 미국에는 사찰 50곳에 스님 34명, 일본에선 사찰 8곳 스님 25명, 홍콩에는 사찰 1곳 스님 2명, 대만엔 사찰 1곳 스님 8명, 캐나다는 사찰 2 곳 스님 3명, 폴란드는 사찰 8곳, 독일은 사찰 1곳, 프랑스는 사찰 1곳, 스위스는 사찰 1곳 스님 1명, 호주는 사찰 1곳 스님 2명 등이 포교활동을 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모든 젠 티처(선사)들이 일본 불교의 전통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 일부는 ‘찬’이라고 부르는 중국 불교의 젠을 가르치며, 한국 불교의 젠인 ‘선’, 베트남 불교의 젠인 ‘씨엔’을 가르친다. 조계종 수덕사 출신인 숭산스님은 미국에서 유명한 한국 불교 선사였다. 그는 서울에 있는 화계사의 조실이었고 홍콩, 일본에도 절을 세웠다. 1972년 미국으로 건너 갈 때에는 영어를 전혀 못했다. 로스앤젤레스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한국계 미국인 승객이 숭산 스님에게 로드아일랜드 프로비던스에 있는 세탁소에 일자리를 제공했다. 숭산 스님이 세운 오늘날 관음스쿨의 본부가 되었다. 프로비던스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어 그는 프로비던스 젠 센터를 세웠다. 관음스쿨은 6대륙에 100여개의 젠 센터를 세웠다.

▲ 프로비던스 젠 센터는 관음스쿨의 본부이면서 한국 조계종의 미국본부이다.     © 매일종교신문

한국인 젠 티처로는 부산 범어사 출신인 삼우스님이 있다. 1971년 캐나다 토론토에 선불교 사찰을 세웠다. 그는 시카고멕시코시티에 사찰을 세운 자혜불교회(Buddhist Society for Compassionate Wisdom)의 대표이다. 자혜불교회의 승려는 결혼을 하여 부부 둘 다 승려가 될 수도 있다.

유럽의 불교 현황
 
이제 불교는 동양의 종교일 수만은 없게 됐다. 서구 지성인의 양심으로는 불교를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케 하고 있다. 불교가 서양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에 벌써 지중해 연안과 그리스 로마에까지 전해졌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불교가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초부터였으며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상당한 수준에 올라왔다.
 
서양 종교의 선교사들이 식민 정책의 후광을 업고 주입시켰던 아시아에서의 선교와는 달리 불교는 서양인들 스스로의 자각과 관심에 의해 불교를 연구하고 전법(傳法) 활동을 벌이고 있다. 지금 서양에서는 활발한 불교 연구가 전개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1. 영국불교
 
대영제국의 식민지인 인도, 버마, 스리랑카의 영향으로 초기에는 소승 불교가 주류를 이루었지만, 1920년대쯤에서는 스즈끼 박사의 선(禪)에 관한 책들이 출간됨으로써 영국불교는 선불교가 급성장하게 됐고 선불교와 더불어 대승 불교가 서서히 영국에 소개되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 들어와서는 영국불교는 완전히 수행위주의 불교가 됐으며, 불교가 영국에 완전히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됐다.
 
영국불교 단체의 주소록에 따르면 약 300여개의 단체가 있는데, 우리나라의 본사(本寺)격에 해당하는 수도원으로부터 집 한 채에 이르는 포교당 내지는 선(禪)센터에 이르기 까지 다양하다. 불교 대학도 하나 있고 전문 불교 서적만 소장하고 있는 도서관만도 대여섯 군데나 된다고 한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는 실제적이고 철두철미한 성격의 영국인들이 불교를 탐색하는 데는 거의 100년이라는 세월을 필요로 했다. 결국 영국불교는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영국불교의 장래는 매우 밝다고 하겠다.
 
2. 프랑스불교
 
프랑스는 가톨릭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국가이다. 인구 약 6600만명 가운데 형식적이나마 거의 대부분이 가톨릭이다. 대부분의 프랑스인이 가톨릭이라고는 하지만 중산층과 젊은 세대의 절대 다수가 종교적 신앙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이 공식 여론조사에서 밝혀졌다. 프랑스의 불교는 인도차이나에서 온 이민 불교가 현재 막강하다. 프랑스인들은 처음에는 이론적인 연구가 주가 되었으나,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직접 수행하는 불교 인구가 나타났다.
 
1960년대부터 프랑스에서는 선 센터와 티베트 불교센터가 생겼으며 80년대 이후에는 수행하는 불교인이 현저하게 증가하고 있다. 1985년 7월 세계적인 권위지인 <르 몽드>에서는 그때 스위스에 와 있는 달라이라마와의 인터뷰 기사를 전면 게재하는가 하면, 티베트 불교를 4회에 걸쳐서 소개하는 등 불교 붐을 일으킨 바 있다. 영국에 비해 불교 단체의 수는 적으나 질적인 면에서는 만만치 않다. 파리에 본부가 있는 한 선센터는 지방에 큰 성 을 매입하여 전용 수도장으로 사용하는 등 연간 3000여명 이상이 이 곳에서 수행하고 있다. 본부 산하에 약 40여개의 선센터가 프랑스 곳곳에 있고 3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이 선센터는 자영 출판사까지 운영하면서 쉴새없이 불서(佛書)를 간행하고 있다.
 
3. 이탈리아불교
 
가톨릭의 총본산인 교황청이 있는 바티칸 시티가 수도 로마 안에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신부나 수녀들이 불교에 대한 관심이 대단하다. 산스크리스트어를 서구에 알린 것도 신부였으며, 인도나 페르시아의 유명한 경전을 라틴어로 옮긴 것도 신부들에 의해서였다. 이처럼 불교가 단편적으로나마 바티칸에 알려진 것은 꽤 오래 된다. 이탈리아 불교는 소수이나 앞으로 가장 기대되는 종교 중의 하나로 부각되고 있다. 1970년대에 이탈리아 불교 협회가 조직되었고 현재 로마를 비롯한 몇몇 도시에 선센터와 티베트 불교의 포교당이 있다. 그리고 이탈리아인들 중에는 해외 불교를 공부하려고 나간 사람들도 많이 있다. <精吾 문윤홍·칼럼니스트·moon47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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