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守岩 칼럼
감사와 사랑의 호흡명상
 "아픔이나 갈등은 과거의 것, 감사호흡하면 '지금'을 살게 돼“
기사입력: 2015/08/12 [08:39]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문윤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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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기본적인 가르침은 연기법(緣起法)에 있다. 연기법이란 이 세상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홀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인연들이 화합함으로써 연하여 일어난다는 이 세상의 법칙을 말한다. 어떤 한 가지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은 홀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이 우주법계의 장엄한 동참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다. 이른 봄에 피는 꽃 한 송이조차 저 홀로 피는 것이 아니라 이 우주법계의 일체 모든 존재가 참여하고 도운 것이다.
 
연기법의 관점에서 본다면, 지금 우리의 삶 위에 놓여 있는 일체 모든 존재며 존재가 만들어내는 상황들은 하나도 예외 없이 우주법계의 도움을 받아 수많은 얽히고설킨 인연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나무에 초록의 새순이 돋아나는 것조차 그 나무 혼자서 초록을 틔우는 것이 아니라, 흙과 물과 바람과 햇살과 나아가 일체의 모든 존재가 크고 작은 연관관계 속에서 크고 작은 도움을 주었기 때문에 거기에서 그렇게 싹을 틔울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먹는 쌀 한 톨조차 그 안에는 무수히 많은 유정 무정의 일체 모든 존재들이 도왔고 참여했기에 가능하다. 하물며 지금의 ‘나’라는 존재는 어떠한가? 내가 이렇게 먹고 자고 입고 살아가는 것, 그것 또한 내가 잘나서, 내가 돈 잘 벌어서 이렇게 잘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또한 조금 깊이 연기적으로 사유해보면, 일체 모든 사람들과 하늘 바람 구름 햇살을 비롯한 이 우주법계 전체가 어머니의 품처럼 나를 돌보며 먹여 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그러한 법계의 도움에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 우리는 지금까지 그러한 우주법계의 크고 작은 도움들을 아주 당연하게 생각해 오면서 오히려 더 많은 도움을 주지 않는데 대해 탓하고 미워하며 원망만 하고 살아오지는 않았는가? 일체 모든 존재의 무량한 베풂에 무한한 감사를 느끼며 살기 보다는 더 많이 주지 않음을 원망하며 살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보편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이러한 연기법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이러한 연기적인 우주의 도움을 매 순간 감사하며 고맙게 여기고 살아야 한다. 그러한 감사의 삶이야말로 우리가 우주의 은혜에, 법계의 도움에 보답하는 삶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삶에서 ‘감사’가 중요한 이유이다.
 
‘감사’의 실천은 그냥 무조건적으로

이러한 연기적인 ‘감사’의 실천은 생각하고 따져봐서 감사할만한 이유가 있을 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무조건적인 감사, 밑도 끝도 없이 대책 없는 감사를 온 우주에 펼쳐내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생각은 이 우주의 드넓고도 깊은 차원의 전방위적 도움을 도저히 다 헤아리고 알아차릴 수 없다. 어떻게 우리의 생각으로 그것을 다 보고 알 수 있겠는가. 우주법계의, 일체 모든 존재의 도움과 은혜는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더 넓고 깊다. 그것은 시작을 알 수 없는 영겁의 생과 전생에서의 업장과 인연들 전체를 아우르는, 시공을 초월하는 작용으로써 우리를 무한히 돕고 있으며, 우리를 살려주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반드시 짚어야 할 아주 중요한 삶의 핵심 키워드가 있다.
 
이러한 무한히 살려주는 연기의 법칙이 우주 법계의 방식이라면 우주법계의 진리와 하나 되는 길, 법계의 진리를 깨닫고, 우주의 힘을 끌어 쓸 수 있는 근원적인 힘이 바로 ‘감사’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삶에 대해, 나라는 존재에 대해, 지금 나에게 갖추어진 상황과 조건에 대해, 완전히 받아들여 수용하고, 나아가 그 모든 것들에 대해 ‘감사’의 에너지를 뿜어내고 방사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우주의 크나큰 도움에 보답하고 작게나마 회향(回向)할 수 있는 길인 것이다.
 
더구나 우주법계에서는 언제나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고 도와 줄 준비를 항상 해놓고 있다. 언제든 우리가 그 도움을 요청하고, 은혜를 받아들일 준비만 되어 있다면 우주법계는 모든 것을 내어 준다. 그래서 우주법계는 언제나 우리를 돕는 일만 하고, 항상 우리를 돕고자 하는 자비로운 방식으로 우리에게 100%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사람들은 우주법계의 도움을 마땅히 뿌리친다. 뿌리칠뿐더러 우주법계의 도움에 대해 여전히 부족하다고 아쉬워하고 원망하며 심지어 증오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우주법계의 도움을 받으려면

그러면 어떻게 하면 우주법계의 도움을 고스란히 받을 수 있는가? 첫째, 나를 열어놓아야 한다. 우주법계의 도움이 아무런 걸림 없이 나에게 도달할 수 있도록 나를 열어두고 허용해야 한다. 마음을 닫아두면 들어 올 수가 없다. 마음을 활짝 열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우주법계의 자비롭고도 밝은 힘은 나에게 와 닿으며 나를 변화시키고 내 주위를 변화시킨다. 그러나 여기에다 우주법계의 도움을 조금 더 적극적인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심지어 법계를 감동시키고 움직여 나에게 더 많은 도움이 올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바로 끊임없이 ‘감사’하는 것이다.
 
감사한다는 것은 우주법계가 나를 돕고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받아들이고 나아가 그 사실에 대해 고마워한다는 뜻이다. 일체를 받아들이되 대 긍정으로, 감사로써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모든 상황에 대해 충분히 만족스러우며 충분히 감사하다는 뜻이다. 충분히 누리고 있으며, 충분히 느끼고 있다는 뜻이다.
 
바로 이것이 이 우주법계로 인해 더 많은 감사와 더 많은 도움을 우리에게 오게 만드는 핵심 에너지이고, 마음 하나로 세상의 주인이 되는 방식이며, 이 우주법계와 하나 되는 진리의 방식이다. 만족과 감사는 그냥 단순한 도덕적인 덕목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진리의 언어요, 참된 말 즉, 진언(眞言)이다. 단순하다.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하라. 만나는 모든 존재, 모든 사람, 모든 상황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가져라. 그것이 어렵다면 그저 ‘감사’를 외쳐라. 그저 ‘감사합니다’ 하고 말하라. 이 세상 모든 존재를 향해 밑도 끝도 없는 무조건적인 감사를 외쳐라. 나 자신을 향해, 이 세상과 우주를 향해, 법신 부처님을 향해, 풀 한 포기와 나무 한 그루를 향해, 그리고 자동차와 집과 하늘과 구름과 읽고 있는 책과 신고 있는 신발과 버스 기사, 미화원 아저씨, 심지어 미워하는 사람이나 싫어하는 물건이나 원수처럼 증오하는 대상에까지 무작정 대책 없는 ‘감사’를 외쳐라.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라.
 
이것이 바로 붓다의 오랜 방식이며, 예수의 오랜 방식이기도 하고, 인류 모든 성인들의 방식이며, 호오포노포노(Ho'oponopono)를 비롯한 수많은 성인과 명상가와 영적인 교사들의 공통적인 방식이기도 하다.

참된 기도의 의미는 ‘감사’에서 찾을 수 있어
 
보통 사람들은 절에 가거나 교회에 가면 “부자 되게 해 주세요”, “진급하게 해 주세요”, “좋은 성적 나오게 해 주세요”하며 비는 기도를 하곤 한다. 그러나 비는 것은 진리의 방식이 아니다. 빌게 되면 사실은 거꾸로 연습하게 된다. 부자가 되게 해 달라는 말은 돌이켜 보면 가난과 결핍을 연습하는 말이다. 부자가 되게 해 달라고 비는 마음은 가만히 살펴보면 지금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돈으로는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말이 아닌가. 그것은 결국 내 안에 가난과 결핍과 부족을 연습하게 되고, 우주법계는 내가 마음에서 연습한 것을 고스란히 보내주게 될 것이다.
 
그래서 모든 종교에서 말하는 기도의 참된 의미는 ‘감사의 기도’에서 찾을 수 있다. 참된 기도는 비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다고 외치는 것이다. 부족과 결핍에 집중하는 마음에서 감사와 만족에 집중하는 마음으로 전환시키는 것이야말로 참된 기도이다. 평소에 당연하게 생각했던 모든 상황을 당연하게 바라보지 말고 새롭게 감사한 상황으로 바꿔라. 모든 상황, 모든 사람, 모든 소유물, 모든 존재에게 감사하라. 내가 받고 있는 현재의 연봉과 월급에 대해 완전히 만족하며 감사를 느껴라. 내 남편, 내 아내, 내 자녀들에게 온전히 감사하라. 더 나은 조건의 직업, 더 나은 성적을 받아오는 자녀, 나에게 더 잘 해주는 아내, 더 많은 돈을 벌어오는 남편을 바람으로써 결핍과 부족과 불만족에 에너지를 집중하지 말고 그 모든 상황이 내포하고 있는 긍정과 만족과 감사한 것들에 마음을 모으라.
 
우주는 항상 우리 마음이 만들어낸 것을 100% 가져다준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인간의 마음은 그림을 잘 그리는 능숙한 화가와도 같아 마음에서 그린 것은 분명히 현실로 나타나게 되어 있다. 그것이 우주의 창조원리이다. 내 마음이 부족과 결핍에서 만족과 감사로 바뀌게 되면 내 마음의 그릇이 감사하고 만족스러운 것으로 바뀜으로 우주법계는 내 마음의 요구를 100% 들어주게 된다. 전에는 부족과 결핍을 가져다주다가 감사할 일들로 삶을 수놓게 된다.
 
진언을 외듯이 ‘감사합니다’는 말을 하루에 100번에서 1000번 정도 반복해 외우라. 모든 상황에서 ‘감사합니다’라는 진언을 관세음보살 염불하듯, 아미타불 염불하듯 할 수 있는 모든 순간 외쳐라. 이 작은 외침이 우리 삶에 경이로운 변화를 가져다 줄 것이다. 아침 잠자리에서 깨어나는 순간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라. 모든 상황에 ‘감사합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더라도 ‘감사합니다’ 심지어 나를 욕하고 비난하는 사람에게도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라. 최악의 상황에 처하더라도 언제나 계산하거나 따지지 말고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라. 도저히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나 증오하고 미워하는 원수에게도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라.

감사의 이유는 우주법계가 항상 나를 돕기 위한 일만 준비하고 있기 때문
 
그래야 하는 이유가 있다. 우주법계는 항상 나를 돕기 위한 일만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우주법계의 본질적 에너지는 언제나 넘치는 자비와 사랑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것이 괴로운 상황이고, 꼬이는 상황이며, 답답하고 힘겨운 상황일지라도 법계에서는 나의 업장을 소멸시켜주기 위해서, 또는 나를 조금 더 성숙시켜 주기 위해서 그 일을 벌인 것이다. 더 깊은 차원에서는 모든 상황이, 모든 최악의 조건이 나를 위해 법계에서 준비한 최상의 자비로운 상황으로 바뀐다. 아무리 힘들고 괴롭고 답답한 상황일지라도 사실은 우주가 그것을 통해 나를 돕기 위해 만들어 놓은 인생의 오묘한 장치인 것임을 완전히 대긍정으로 받아들여라.
 
그러한 대긍정의 받아들임의 표현이 바로 ‘감사합니다’라는 외침이다. ‘감사합니다’라고 계산하고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적으로 외쳐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우주의 근원적인 파장은 언제나 무한한 자비와 사랑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어리석은 생각이나 얕은 의식 속에서는 감지하지 못할지라도 우주법계는 언제나 우리를 넘치는 사랑과 자비로 이끌어 주고 있다. 바로 그 사실에 대해 감사하는 것이다. 이 정도면 감사할 이유가 충분하지 않은가.
 
여기에서 아주 중요한 또 하나의 배움이 있다. 감사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사랑과 자비라는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모든 종교와 사상, 성자와 현자들의 가르침에서 사랑과 자비를 가르침의 근원적 원리로 이야기하지 않는 이들은 없다. 이 우주의 바탕, 깊은 차원의 근원을 이루는 에너지는 끊임없이 넘쳐흐르는 자비와 사랑의 에너지 파장에 있다. 그렇기에 우리가 이 우주의 근원적 진리와 이치와 합일(合一)을 이루려면, 우주의 진리를 깨닫고자 한다면, 우주적인 삶의 방식과 조화를 이루고자 한다면, 우리 삶의 방식 또한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자비와 사랑이 넘쳐흐르는 삶, 그것이야말로 우리를 깨닫게 하고, 신(神)에 이르게 하며 근원적인 차원과 연결해 주는 유일한 삶의 목적이다.

자비와 사랑을 연습하는 오랜 방법
 
불교에서 수행을 통해 해탈이라는 깨달음에 이르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것은 깨달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일체 중생을 자비로써, 사랑으로써 구제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깨달음이 먼저가 아니라 중생구제(衆生救濟)라는 동체대비가 먼저 있다. 『금강경』에서도 ‘어떻게 마음을 머물게 하고 다스려야 합니까?’ 하는 질문에 ‘존재하는 일체 모든 구류중생(九類衆生; 존재하는 모든 중생의 종류, 즉 난생, 태생, 습생, 화생, 형상이 있는 것, 형상이 없는 것, 생각이 있는 것, 생각이 없는 것,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닌 것들)들을 열반에 이르게 하리라 하고 마음을 내야한다’고 설하고 있다. 즉 일체 중생을 참된 행복과 평화인 열반으로 이끄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수행을 하고, 마음을 다스리는 이유인 것이다.
 
결국 부처는 자비 그 자체이고, 신은 사랑 그 자체이다. 이 우주에는 오직 자비와 사랑 밖에 없는 것이다. 부처가 되고 싶다면, 신에게 가까이 가고 싶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사랑과 자비를 나누는 것밖에 없다. 사랑을 연습하고, 자비심을 연습하는 것이야말로 삶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진리이다. 오랜 불교경전인 『숫타니파타』에서도 이러한 자비의 중요성을 간파하여 자비심을 연습하는 수행법으로 ‘자비관(慈悲觀)’을 말하고 있다. “수행자는 세상을 향해 이렇게 외쳐야 한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다 행복하라. 평안하라. 안락하라. 어떤 생물일지라도, 강하거나 약하거나 가까이 있거나 멀리 있거나 태어났거나 앞으로 태어날 것이나 살아있는 모든 것은 다 행복하라. 평안하라. 안락하라. 남을 속여도 안 되고, 경멸해서도 안 되며, 화를 내어 남에게 고통을 주어서도 안 된다. 마치 어머니가 목숨을 걸고 외아들을 지키듯이, 살아있는 모든 것에 대해 한량없는 자비심을 발하라. 온 세계에 대해서 무한한 자비를 행하라. 위로 아래로 옆으로 장애도 원한도 적의도 없는 무한한 자비를 행하라. 서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앉아 있을 때나 누워있을 때 잠들지 않는 한 이 자비심을 굳게 가져라.” 이것이 바로 자비와 사랑을 연습하는 오랜 방법이다. 이 세상 모든 존재를 향해 ‘행복하라. 안락하라. 평안하라’고 외치는 것이다. 세상을 향해, 모든 존재를 향해 자비심을 연습하는 것이다. 위로 아래로 옆으로 장애도 원한도 적의도 없는 무한한 자비를 연습하는 것이다. 온 세계를 향해 무한한 자비를 행하며 잠들지 않는 한 이 자비심을 굳게 지키는 것이다.
 
이 오랜 자비관을 삶 속에서 연습하고 실천하는 아주 쉬운 방법 중에 하나가 바로 ‘사랑합니다’ 하고 외치는 것이다. 살아있는 모든 존재에게 ‘사랑합니다’ 하고 외쳐라. 어머니가 외아들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온 우주를 향해 ‘사랑합니다’라고 외쳐라. 위로 아래로 옆으로 원한도 적의(敵意)도 없는 무한한 사랑을 외쳐라. 잠들지 않고 깨어있는 한 이 사랑의 외침을 실천하라. ‘감사합니다’라고 외치는 것처럼 ‘사랑합니다’라고 외치면 된다. 모든 상황에, 모든 사람에게, 눈 뜨고 있는 모든 순간에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라고 외쳐보라. 이 두 개 단어야말로 우주 진리를 우리 삶의 한복판으로 끌어당기는 특별한 에너지를 가진 참된 말, 진언(眞言)이다. 이 특별한 에너지를 가진 진리의 언어를 매일 매일 매 순간순간 염불하듯 독송해 나간다면 우리의 삶은 경이로운 변화를 시작하게 될 것이다. 감사할 일들이 넘쳐나고, 세상은 사랑으로 물들 것이다.

우주의 법칙에서 중요한 것은 보내는 그대로 받아
 
우주의 법칙에서 중요한 것은 보내는 그대로 받는다는 점에 있다. 나에게서 나가는 것을 고스란히 받는 업보(業報)의 원리다. 돈을 베풀면 돈을 얻게 되고, 병든 사람을 간호하면 건강을 얻게 되며, 나이든 분들을 공경하면 장수를 얻게 된다. 인색함을 내보내면 들어오는 것도 인색해지고 성냄과 다툼을 내보내면 싸울 일들이 줄을 선다. 마찬가지로 감사를 내보내면 감사할 일들이 넘쳐나고, 사랑을 내보내면 사랑할 일들이 많아진다.
 
감사와 사랑이 한없이 나를 향해 파도쳐 들어오는 삶을 상상해 보라. 그러한 삶이 바로 정토(淨土)이고 극락(極樂)이며 지복의 천상세계가 아니겠는가. 이 우주의 근원적 진리의 에너지 파장을 담고 있는 핵심 언어인 ‘감사’와 ‘사랑’의 진언을조금 더 수행과 연결해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아름다운 방법이 있다. 그것은 바로 ‘호흡관’이다. 숨이 들어올 때 ‘감사합니다’ 하고 외치고, 숨이 나갈 때 ‘사랑합니다’ 하고 외치는 것이다. 이른바 ‘감사와 사랑의 호흡관’이다. 호흡관이란 호흡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관찰함으로써 마음을 호흡에 모아 집중하고 관찰하는 오랜 수행방법이다.
 
호흡을 관찰하는 이 수행법은 불교에서뿐 아니라 모든 명상법에서도 필수적이면서도 근원적인 수행법으로 잘 알려져 있다. 들어오고 나가는 호흡을 알아차림으로써 온갖 망상과 번뇌를 비우고, 탐진치(貪瞋痴) 삼독을 비우고 지금 이 순간이라는 현재에 깨어있는 수행법이다. 호흡은 오직 ‘지금 여기’에서의 일이며 과거나 미래의 일이 아니다. 호흡을 관찰함으로써 우리는 과거나 미래로 끊임없이 끄달리는 마음을 다스려 지금 이 순간이라는 본질로 통하는 통로와 연결될 수 있다. 호흡은 언제나 자연스럽게 우리 삶과 연결되어 있다. 살아있는 동안은 언제나 호흡과 함께 한다. 이렇듯 자연스럽게 삶과 연결되어 있는 호흡에 우리의 의식의 빛을 쏘아 줌으로써 의식적으로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바로 수 천년을 이어 온 수행의 전통인 호흡관에 감사와 사랑의 진언을 연결시키는 수행법, 그것이 바로 ‘감사와 사랑의 호흡관’이다.

감사와 사랑의 호흡관

숨을 들이쉬면서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고, 숨을 내쉬면서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또는 숨을 들이쉬면서 ‘감사!’라고 짧게 말하고, 숨을 내쉬면서 ‘사랑!’하고 짧게 말해도 좋다.호흡이 들어올 때 ‘감사합니다’, 호흡이 나갈 때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며 지금 이 순간의 호흡에 집중하여 관찰하는 것이다. 이렇게 호흡에 집중할 때 우리는 ‘지금 여기’에 온전히 존재한다. 과거나 미래로 혹은 생각이나 망상에 끄달리는 것에서 벗어나 지금 이 순간과 함께 연결된 호흡에 깨어있는 것이다. ‘지금 여기’라는 텅 빈 명상의 장(場)에 머물면서 우주와 연결된 그 현재의 순간을 통해 감사와 사랑의 파장을 우주로 보내는 것이다.
 
‘나’라는 존재는 언제나 우주 전체와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평소에 우리는 우주와의 연결고리를 잃고 헤맨다. 평소에 끊어져 있던 바로 그 우주와의 소통을 연결해 주는 유일한 때가 바로 ‘지금 여기’라는 때이고, 현재라는 통로를 통해 우리는 우주 전체와 연결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지금 여기’에 영민하게 깨어있어야 한다. 우리의 삶에서 ‘지금 여기’를 반영해 주는 가장 투명한 것이 바로 호흡인 것이다. 우리는 호흡관찰을 통해 ‘지금 여기’라는 우주와의 연결고리와 조화로운 소통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텅 빈 마음으로 지금 여기의 호흡에 머물면서 감사와 사랑의 진언(眞言)을 우주로 보내는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나에게 돌아오는가? 그것은 바로 우주법계의, 진리세계에서 보내주는 무한한 감사와 사랑의 창조 에너지이며, 그것을 통해 우리는 우주법계와 하나되는 차원에 연결되는 것이다. 감사와 사랑의 호흡관을 통해 우리는 ‘지금 여기’라는 명상의 장과 연결되고, 또한 감사와 사랑이라는 우주적인 아름다운 파장과 연결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근본법과 방편법을 아우르는 수행법이다. 본질적인 진리에 다다르는 수행법이자, 삶을 풍요로운 감사와 사랑의 에너지로 가득하게 만드는 현상계와 본체계를 아우르는 수행법인 것이다. 숨을 들이쉬면서 ‘감사합니다’라고 외쳐라. 숨이 들어오면서 이 단순한 숨을 들이마시는 것조차 무한 감사로써 들어온다고 느끼는 것이다. 숨을 내뱉을 때 ‘사랑합니다’라고 외쳐라. 숨이 들어왔다가 내 몸을 스치고 밖으로 나가면서 모든 존재를 향한 사랑으로 나가는 것이다. 단순한 공기, 호흡 한 자락조차 나에게 들어올 때는 감사함으로 들어오고 나를 스쳐 나갈 때는 사랑으로 나간다.
 
이 호흡관을 통해 호흡만 감사함으로 들어오고 사랑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 모든 것이 감사로 들어오고 사랑으로 나가도록 하는 것이다. 물질이든, 음식이든, 호흡이든, 말 한마디든, 행동이든, 생각이든, 그 모든 것들이 나에게 들어올 때에는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내 존재와 함께 파도치고 흘러 나갈 때는 무한한 사랑으로 내보내는 것이다. 음식을 먹을 때도, 밥 한 공기 물 한 모금을 먹을 때도 그냥 먹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게 받아들여 먹고 음식을 통해 힘과 에너지를 쌓은 뒤, 그 힘으로 세상에 사랑과 자비의 일을 행함으로써 내보낸다. 누군가가 나에게 한 마디 말을 하더라도 그 말을 받아들일 때는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다시 말이 나갈 때는 ‘사랑’스러운 말, 애어(愛語)로써 나가도록 하는 것이다.
 
이처럼 감사의 숨을 들이쉬는 의미는 ‘나’라는 존재에 흘러들어오는 모든 것은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사랑의 숨을 내쉬는 의미는 ‘나’라는 존재에서 나가는 모든 것은 ‘사랑’으로 흘러나가게 하는 상징을 담고 있다. 다시 말해, 내 삶에 등장하는, 내 삶에 나타나는 모든 상황, 조건, 사람 등 일체의 모든 것들을 감사로써 받아들이고, 내가 이 세상에 내보내는 모든 행동, 말, 생각, 파장 등 일체 모든 것은 사랑을 내뿜고 자비를 방사하는 의미로 확장되는 것이다. “나에게 들어오는 모든 것은 감사로 받아들이고, 나에게서 나가는 모든 것은 사랑으로 나갑니다”라고 외치는 것이다. 이렇게 ‘감사와 사랑의 호흡관’을 10번만 해도 에너지가 바뀌는데,하루에 10번씩 10번을 반복해 100번 이상을 실천한다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경이롭게 에너지가 바뀌게 된다. 어떻게 생각해 보면 이 수행법이 아주 단순한 것 같은데, 우리의 내면세계는 아주 민감하기 때문에 이 사소하고 단순한 것 같은 수행법에 우리의 생각으로는 판단하기 어려운 신비로운 힘이 붙게 되는 것이다.
 
하루에 100번만 감사와 사랑의 호흡관을 실천해도 인생이 바뀐다
 
사람의 말은 그 자체로써 에너지를 갖고 있다. 그냥 헛소리처럼 지껄이는 말이라도 일정한 양의 파장이 형성된다. 『물은 답을 알고 있다』라는 책에서도 찌그러진 물의 결정에 ‘감사’와 ‘사랑’이라는 말을 외쳤을 때, 순식간에 물의 결정이 얼마나 아름다워지는지를 밝히고 있다. 그야말로 가장 아름답게 바뀌는 언어가 바로 ‘감사’와 ‘사랑’이라는 단어이다.
 
사람의 몸은 70% 이상이 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한 번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하고 외칠 때, 몸의 모든 결정이 한꺼번에 아름답게 바뀔 것이고,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세포 하나하나가 싱그럽고 이상적인 세포로 바뀌게 된다. 하루에 100번만 감사와 사랑의 호흡관을 실천해도 우리의 인생이 아름답게 바뀐다. 조금 민감하게 깨어서 지켜보는 사람은 직접적으로 느낄 것이다. 이 작은 실천으로 생각하지도 못했던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모든 상황에 ‘감사와 사랑의 호흡관’을 연결해 보라. 잠자리에서 깨어나는 순간 즉시 호흡을 관찰하며 들숨에 감사, 날숨에 사랑을 붙여보라. 세수를 하고 양치질을 하면서 옷을 입으면서도 감사와 사랑의 부드러운 호흡으로 깨어나라. 운전 중이거나 지하철 안에서도, 일하다가 잠시 짬나는 시간 동안에도, 언제나 의식적으로 호흡을 관찰하며 감사와 사랑을 연습하라.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 신호등에서 대기하는 시간, 커피를 뽑아 마시는 시간, 중요한 발표를 앞두고 두근거리는 순간, 앞차가 끼어들기를 하는 순간, 누군가에게 욕을 얻어먹는 순간 등 이 수행을 통해 하루 중에 만날 수 있는 모든 시간을 수행의 순간, 명상의 순간, 삶에서 깨어나는 순간으로 바꿀 수 있다.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수행이란 그리 거창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몇 시간의 고통을 참아가며 좌선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3000배나 1만배를 통해 선정(禪定)을 얻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이 작은 감사와 사랑의 호흡을 통해 즉각적으로, 직접적으로 삶 속에서 명상과 수행을 실천할 수 있다. 그리고 수행이란 사실 그런 것이다. 이처럼 삶 속에서 삶과 하나 되는 것이다. 삶과 동떨어진 수행은 참된 수행이 아니다. 좌선하고 앉아 있을 때만 고요하고 일어나 다시 삶 속으로 들어갈 때 흩어진다면 그것을 어찌 참선이고, 명상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하루 중 만날 수 있는 모든 상황에 대해 감사하라, 사랑하라. 원수 같은 사람에게 도저히 “감사한다, 사랑한다”는 말을 못 하겠다면, 내 안에 무언가 좋지 않은 업(業)이 그 원수를 만나게 한 것이므로 내 안에 있는 바로 그 업에다 대고 감사와 사랑을 외쳐라. 괴롭고 답답하고 힘겨운 그 상황을 만들어낸 내 안의 꽉 막힌 어떤 에너지를 향해 무한한 감사와 사랑의 부드러운 호흡을 보내주어라. 그랬을 때 막힌 기운은 뚫리고, 거친 업은 눈 녹듯 활짝 녹아내리게 된다. 몸에 병이 있는 사람일지라도 그 병을 미워하고 바이러스를 죽여 없애려는 마음을 내지 말고, 대신 그 병과 바이러스를 향해 감사와 사랑의 따뜻한 호흡을 보내주어라.

감사와 사랑의 호흡관은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아름다운 수행법
 
불교적인 방식은 암세포도 사랑하는 방식이고 자비로 감싸주는 방식이며 암 세포조차도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다시 말해, 나의 업(業)이 암세포라는 방식으로 밖으로 나와 줌으로써 ‘업이 풀리고 소멸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구나’하고 ‘고맙다’고 받아들여 사랑으로 감싸주는 방식이다. 암 세포 또한 동체대비로써 나와 싸울 적(敵)이 아니라 사랑으로써 품어 주어야 할 세포인 것이다.
 
감사와 사랑의 힘을 호흡관을 통해 매 순간순간 암 세포에게 보내줄 때, 그 수행은 우주법계를 감동시키고 작동시킴으로써 작게는 내 안의 모든 세포들이 치유의 작업을 시작하게 하고 넓게는 암을 치유할 수 있는 의사나 치유자를 보내주는 작업을 시작하기도 한다. 이처럼 명상적이고 수행자적인 방식은 세상 모든 것을 사랑으로 안아주는 방법이다. 심지어 암 세포일지라도 사랑으로 품어주고 안아줌으로써 우리 안에는 사랑의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모든 좋지 않은 상황, 경계, 대상은 미워하고 싸워서 이겼을 때에는 잠시 꺽일 뿐이지만, 감사로 받아들이고 사랑으로 녹여냈을 때는 완전히 그 근원까지 녹아내려 치유가 된다.
 
이처럼 감사와 사랑의 호흡관은 온 우주의 근원과 연결되어 있는 나의 본연의 힘을 이끌어 내어 우주가 함께 나를 도와주는 작용을 시작하게 해준다. 내 안의 모든 세포가 나를 위한 사랑의 도움을 시작할 뿐 아니라, 주변의 분위기, 일의 흐름 등을 바꿈으로써 우주 전체가 나를 돕는 일에 전체적으로 나서기 시작한다. 이 신비롭고도 경이로운, 그러나 지극히 단순한 명상을 삶 속에서 실천하라. 당장 실천하지 못할 무슨 이유가 있겠는가.
 
매일 절이나 교회에 나가야 하는 것도 아니고, 가부좌를 틀고 몇 시간을 앉아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며, 몇 시간씩 방석위에서 절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무슨 준비물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부작용이 있는 것도 아니며, 시간과 장소에 그 어떤 제약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마음을 내어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아름다운 수행법이다. 잠시 모든 것을 멈춰보라. 지금 당장 시작하라. 들어오는 숨을 지켜보며 ‘감사합니다’ 나가는 숨을 지켜보며 ‘사랑합니다’ 들숨에 감사!, 날숨에 사랑! 바로 그것이다.
 
들이쉬며 ‘감사’ 내쉴 땐 ‘하하’…한결 행복해져요 
- '감사발전소' 운동 펼치는 원불교 권도갑 교무

 
"자, 숨을 들이쉬면서 '감사합니다' 하시고, 내쉴 때는 속으로 '하, 하, 하' 해보세요. 어떤가요? 훨씬 마음이 가벼워지지 않습니까?" 원불교 권도갑(66) 교무는 요즘 만나는 사람에게 대뜸 이렇게 권한다. 그가 2014년 초부터 펼치고 있는 '감사발전소' 운동이다. 운동 방법은 간단하다. '감사 호흡'이 사실상 전부다. 상대방이 호흡을 마치면 그는 세 번씩, 아홉 번씩, 나아가 스물일곱 번씩 더 해 볼 것을 권한다. 그리고 "자, 이제 ○○○님은 감사발전소 소장이 되셨습니다. 이제 가슴이 열리고 운이 열리며, 주변에 좋은 기운을 퍼뜨릴 것입니다"라고 '선포'한다. "우리는 누구나 하나씩 감사발전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 몸이죠. 들숨 날숨을 쉬는 우리 몸이 발전소입니다. 우리는 기왕 가지고 있는 발전소를 가동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감사호흡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감사합니다' '하, 하, 하'를 하면서 호흡을 하다가도 이내 놓쳐버리기 일쑤다. 그래서 감사발전소 운동은 '깨어 있기 운동'이기도 하다. "아픔이나 갈등은 과거와 미래 속에 있는 것입니다. 과거와 미래 때문에 늘 현재 이 순간을 놓치는 것이지요. 감사호흡을 하다 깜빡 잊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사호흡을 의식하면 이 순간을 제대로 살 수 있고, 내 삶에 행복의 창조주가 되는 것이지요."
 
동아대 화공학과 출신으로 대기업에 근무하다 뒤늦게 출가한 권 교무가 대중을 상대로 한 마음공부 운동에 나선 것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갑자기 대상포진에 걸려 1년여를 고생했습니다. 그때 돌이켜보니 수행자임에도 저 역시 앞만 보고 달려왔더군요. 그때 일을 내려놓고 쉬면서 마음공부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게 됐습니다." 그 결과는 2007년 "아무도 나를 괴롭히는 이는 없다"는 메시지를 담은 『우리 시대의 마음공부』란 책으로 정리됐고, 매달 개최하는 1박2일 과정의 '행복캠프'로 이어졌다. 캠프는 지난 6월로 91회를 맞았다. 연인원 3000명이 참가했다. 2015년에도 『당신은 나의 거울입니다』란 저서를 펴냈다. 감사발전소 운동은 '행복캠프'의 연장선에 있다. "캠프를 통해 마음공부를 전파했지만 '더 쉬우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어요. 누구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려고 하는데 그게 쉽지 않거든요. 연구 끝에 감사발전소를 착안했죠."
▲ 권도갑 교무는 “사람을 만나기 전에 꼭 호흡하며 속으로 ‘감사합니다. 하, 하, 하’ 해보세요. 분명히 과거와 다른 결과가 나올 것입니다. 그렇게 감사의 파동이 ‘나비효과’처럼 세상을 채웠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
 
권도갑 교무는 “사람을 만나기 전에 꼭 호흡하며 속으로 ‘감사합니다. ', 하, 하’ 해보세요. 분명히 과거와 다른 결과가 나올 것입니다. 그렇게 감사의 파동이 ‘나비효과’처럼 세상을 채웠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감사호흡 아이디어는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少太山) 박중빈(朴重彬·1891~1943) 대종사의 말씀에서 나왔다. 공기와 땅, 해와 달, 바람과 비 모두가 은혜라는 사상이다.
 
권 교무는 "누구나 하루 24시간 숨을 쉬지 않는 사람은 없지요. 그렇지만 그 숨 쉴 수 있는 것을 은혜라고 여기며 감사해 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라고 말했다.
 
지난 1년 사이에 그가 추대한 감사발전소장이 1000여명에 이른다. 그는 1~2주에 한 번씩 그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소장'으로서 임무를 깜빡하지 않도록 독려한다. 그는 하루 중 감사호흡이 꼭 필요한 때로 ▲아침에 깨어났을 때 ▲사람을 만나기 전 ▲잠들기 전 ▲자다가 깼을 때를 꼽는다. 불면증에 시달리던 사람도 감사호흡으로 치유했으며 늘 불만을 가졌던 사업가도 상대를 만나기 전 감사호흡을 하면서 사업도 잘 풀리고 있다고 했다. 권 교무는 이렇게 말했다. "매사에 감사하면 감사할 일과 인연이 찾아옵니다. 자신이 공기정화기가 될 것인가, 공해제조기가 될 것인가는 호흡에 달렸습니다. 일단 한번 감사호흡을 해보세요." <精吾 문윤홍·칼럼니스트·moon47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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