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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잊었습니다!(坐忘·좌망)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5/11/16 [10:36]
장자 쉽게 읽기

다 잊었습니다!(坐忘·좌망)

장자 쉽게 읽기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5/11/16 [10:36]

顔回曰: 「回益矣.」 仲尼曰: 「何謂也?」 曰: 「回忘禮樂矣!」 曰: 「可矣, 猶未也.」 他日復見, 曰: 「回益矣.」 曰: 「何謂也?」 曰: 「回忘仁義矣.」 曰: 「可矣, 猶未也.」 他日復見, 曰: 「回益矣!」 曰: 「何謂也?」 曰: 「回坐忘矣.」 仲尼蹴然曰: 「何謂坐忘?」 顔回曰: 「墮肢體, 黜聰明, 離形去知, 同於大通, 此謂坐忘.」 仲尼曰: 「同則無好也, 化則無常也. 而果其賢乎! 丘也請從而後也.」
 
안회가 말했다.
“저는 뭔가 이룬 것 같습니다.”
 
공자가 물었다.
“무슨 말이냐?”
 
안회가 말했다.
“저는 인仁이니 의義이니 하는 것을 다 잊었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좋구나, 그러나 아직 충분하지 못하다.”
 
얼마 뒤에 안회가 다시 공자를 만나 말했다.
“저는 더 좋아졌습니다. 저는 예禮니 악樂이니 하는 것을 다 잊었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괜찮구나, 그러나 아직 멀었다.”
 
다른 날 안회가 다시 공자를 만나서 말했다.
“저는 뭔가 이룬 것 같습니다.”
 
공자가 물었다.
“무슨 말이냐?”
 
안회가 대답했다.
“저는 좌망坐忘의 경지에 이르른 것 같습니다.”
 
공자가 깜짝 놀라 안색을 바꾸면서 말했다.
“무엇을 좌망이라 하는가?”
 
안회가 대답했다.
“손발과 몸에 대한 생각을 놓아버리고, 귀와 눈의 작용을 쉬게 하고 육신을 떠나고 일상적인 지식에서도 벗어나서 그리하여 큰 트임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좌망입니다”
 
공자가 말했다.
“자연의 대도와 하나가 되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경계가 없어지고, 대도의 변화를 따라 함께 가면 집착하는 데가 없게 되니, 자네는 역시 훌륭하네. 나도 자네의 뒤를 따르고 싶네.”
 
 
益矣(익의): 진보함이 있다는 뜻.
可矣猶未也(가의유미야): 괜찮기는 하지만 아직 멀었다.
坐忘(좌망): 앉아서 모든 것을 잊음. 四肢百體(사지백체)를 다 버리고 이목의 감각작용을 물리치고 육체를 떠나고 지각작용을 없애서 대통의 세계와 같아지는 경지로 인위적이고 차별적인 지식을 잊어버리는 상태를 뜻한다.
蹴然(축연): 깜짝 놀라서 얼굴빛을 고치는 모습.
?枝體(휴지체) 黜聰明(출총명): 사지백체를 다 버리고 이목의 감각작용을 물리침.
離形去知(이형거지) 同於大通(동어대통): 육체를 떠나고 지각작용을 없애서 대통의 세계와 같아짐. 대도와 일치가 된다는 뜻.
同則無好也(동즉무호야) 化則無常也(화즉무상야): 대도의 세계와 같아지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없게 되며, 대도의 변화와 함께하면 집착이 없게 됨.
而果其賢乎(이과기현호): 너는 과연 현명하구나. 而(이)는 2인칭.
 
 
좌망坐忘은 단정하게 앉아서 나와 사물, 시시비비 등 일체의 구별하는 마음과 차별을 잊어버린 경지를 뜻한다. 좌망에 이르기 위해서는 인의 예악을 잊고 나아가서는 세속적인 자아의식도 잊어야만 한다. 앎의 지극함은 잊음에 있다. 제가 가진 수족手足을 잊고, 배우고 익힌 총명聰明을 잊고, 마음에 새겨 삶의 모범으로 따른 인의와 예악을 잊고 마침내는 대도(大道)와 하나 되는 경지에 들어라. 배우고 익혔으면 거기에 갇히지 말고 그것을 잊으라. 지극히 통하였으면 버려라 는 것이다.
 
그래야만 이 세속적인 자아는 천지 대자연과 하나가 되는 ‘큰 자아’로 변화될 수 있다. 공자는 안회가 인의예악과 같은 외면적인 윤리의식을 없앤 것을 뛰어 넘어 세속적인 자아마저 잊은 것에 대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장자는 공자나 안회에게 유가 사상의 핵심 가치들을 거부하게 함으로써 장자 자신의 주장을 더 극적으로 전달하려 한다. 공자나 안회라는 역사적인 인물의 권위를 이용하여 장자 자신의 주장을 펼친 것이다.
 
좌망은 나를 구속하고 있는 여러 고정 관념들을 잊어야만 비로소 발전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점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일체의 차별적 지식과 세상에 대한 인식이 만물을 공평하게 바라보는 무차별한 큰 지식 및 큰 인식으로 탈바꿈하는 것이 좌망의 경지이다.
 
나의 자연스러운 본성을 억압하고 있는 인위적인 의식들을 끊임없이 걷어내어 우리 정신의 가장 원형적 영역인 ‘무의식’에 도달해야만 한다. 우리의 정신이 창조성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무의식이라는 자양분이 필요하다.
 
그래서 창조성을 갈망하는 사람들은 무의식이라는 방대한 자원을 활용하여 생기를 되찾기 위해 산이나 강을 찾아 은거하는 이유이다.
 
좌망은 현실을 새롭게 구축하기 위해 기존의 현실을 발전적으로 해체하는 정신의 경지이다. 비워진 자리에 새로운 전망을 세우는 것이고, 잊음을 통한 채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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