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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광(重光) 우리 국교의 광복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6/02/29 [12:27]
고려 말 끊긴 700년 만에 밝힌 우리 國敎의 맥

중광(重光) 우리 국교의 광복

고려 말 끊긴 700년 만에 밝힌 우리 國敎의 맥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6/02/29 [12:27]
우리민족에게 원초적 우리종교가 있음을 기록했다.
 
단군(檀君) 왕검께서는 신성(神聖)하시고 문명(文明)하시니 인애(仁愛)하시고 자비하셨다. 또한 도(道)는 천지에 통하시고 덕이 사해(四海)에 미쳤으며 많은 사람을 만나 가르치셨다. 또한 종교(宗敎)를 창립하시어 삼일신고(三一신誥)를 천하(天下)에 널리 알리시고 366사(事)의 신정(神政)으로 정성스럽게 교훈하시니 그 덕이 천지에 견줄 수 없고 그 밝음은 해와 달과 같았다.
그 교화를 받은 모든 백성들은 10월 3일에 총회를 열어 임금으로 추대했다. - 「단기고사」
 
우리 국교(國敎)의 탄생을 기록하고 있다. 그 후 부여에서는 대천교(代天敎) 고구려에서는 경천교(敬天敎) 신라에서는 숭천교(崇天敎) 발해에서는 진종교(眞宗敎) 고려에서는 왕검교(王儉敎)로 우리 민족의 교맥이 이어오다가 고려말 칭기즈 칸의 침략으로 교맥이 끊기게 된다.
 
그 후 백두산에 선인 백봉신사를 중심한 13인이 단군교(檀君敎) 포명서를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1904년 나철 선생은 백전선인을 통하여 종로에서 만나 그 사명을 전한다.
 
1908년 일본에서 동양평화를 외치며 애국하던 나철 선생은 두일백 선인을 보내시어 국망도존(國亡道存) 즉 나라는 망해도 도는 존재한다는 말씀을 깨우치게 하시고 영계식을 행하시니 그때에 몸에 강한 진동의 깨달음을 얻고 급히 귀국하시어 종로 취운정 초가에서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과 1909년(음력 1月15日) 단군대황조 신위(檀君大皇祖神位)를 모시고 단군교 포명서를 선포하시니 이것이 바로 중광(重光)이었다.
 
그러므로 700년 만에 우리 국교의 맥을 나철 홍암대종사로 하여금 단군교(대종교)라는 교맥으로 다시 밝히는 역사적인 날이었던 것이다.
 
대종교는 우리민족의 역사와 함께 흥망성쇠를 같이한 우리 민족의 고유한 뿌리종교였으며 애국의 종교였다. 동아일보 제호를 짓고 편집 고문과 황성신문 사장으로 독립운동과 민족계몽운동에 앞장서셨던 석농(石儂) 류근(柳瑾)선생은 대종교는 조선족의 정신적 양식이라고 선언하시고 민족의 얼과 역사정립에 앞장서시었다.
 
대종교를 신봉한 이시영 부통령, 이범석 총리, 조완구, 김좌진, 신규식, 신채호, 정인보, 안호상, 주시경, 최현배, 이극로, 최남선 등등 종교계 정치계 인물들이 우리 민족의 종맥을 국교를 믿음으로 지켜왔다.
 
단국대와 홍익대 경희대등 대학을 세워 홍익인간 교육에 대종교 원로들이 앞장서 인재 양성에 마음을 다했다.
 
대학에 우리 민족 신학과를 두어 기독교와 불교처럼 정신적 인재를 키우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지만 종파나 파벌에 매이지 않는 우리 민족의 종교로써 신앙은 각기 다르다할지라도 단군한배검을 모시는 민족적 뿌리는 하나이기 때문에 종교적 편견을 넘어 민족의 동질성과 민족적 공감을 이루어 남북의 통일에도 기여해야할 것이다.
 
홍암대종사의 예언하신대로 행봉(幸逢)한 문명시대에 백두산에 총 천궁을 높이 세우고 천신교(天神敎)로 다시 중창(重創)하는 새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이때는 만교가 하나로 통일되고 오색인류가 한 형제로 돌아오는 인류의 평화시대(平和時代)를 예언하셨다. 지금이 바로 그 시대의 문에 이른 것이다. (단군정신선양회장·전 대종교 총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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