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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종교질문에 각기 다른 진리의 답변-종교의 목적은 같은데, 교리의 차이는 크다

매일종교신문 | 기사입력 2012/01/13 [14:19]

이병철 종교질문에 각기 다른 진리의 답변-종교의 목적은 같은데, 교리의 차이는 크다

매일종교신문 | 입력 : 2012/01/13 [14:19]

 이병철 종교질문에 각기 다른 眞理의 답변


종교의 목적은 같은데, 교리의 차이는 크다


“어떤 답변도 해답을 주지 못한다.”

“어떤 종교와 종파든 나름대로 확고한 답변을 해주고 있다.”

위와 같은 상반된 해석이 모두 틀리지 않는 상황이 벌어졌다.

지난해 말 24년 만에 드러난 ‘이병철의 종교질문’이 차동엽 신부의 답변, ‘잊혀진 질문’이란 책으로 나와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 가운데 각 종교와 종파에서는 자신들의 답변을 쏟아냈는데 이에 대한 해석이다. 그 답변의 내용이 해당 종교, 종파에겐 절실한 해답을 주기도 하지만 더욱 종교간 신념의 골을 깊게 만든다. 때론 적대감까지 표출된다. 이 사회의 양극화, 보수․진보의 극단 대립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래서 이병철 종교질문에 대한 대답이 해답을 주기도 하지만, 질문을 더욱 꼬이게 만든다.

 

사서삼경,불경,성경, 코란 등 진리를 담고 있는 경전들마다 큰 뜻은 같으나 화법이 다르며 해석도 제각각이다.

 

“나만이 옳은 진실을 말한다”

확고한 답변만큼 혼란에 빠진 진리


차 신부는 대중적인 책을 펴내는 입장에서(혹은 ‘스마트’한 가톨릭 의견으로) 특정종교의 시각을 벗어나 범종교적 시각으로 답변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각 종교, 종파의 신념에  따른 답변은 명확했다. 다 옳기도 하고 그르기도 하다고 볼 수 있었다. 또한 이병철과 재벌기업에 대한 선입견으로 인해 과격한 답변이 나오기도 했다. 격분해서 나온 발언이 그에게는 그의 종교신념에 따른 진실로 보였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사적 감정에 따른 폭언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일례로 차 신부는 ‘종교의 종류와 특징은 무엇인가?’란 질문에 조심스럽게 답변했다. “계시 종교와 자연종교가 있다.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이슬람교는 계시종교다. 힌두교와 불교는 자연종교에 속한다.”라며 교과서적 설명으로 끝냈으며 다른 종교에 대한 평가를 하지 않았다. 타 종교를 자극하지 않으려 한 것이다.     

한편 근래 많은 신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신천지교회의 이만희 교주는 단호한 답변을 했다. 그의 답변은 인터넷과 SNS 등을 통해 끊임없이 번져나갔다. 최근의 공격적 선교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해준다. 그렇기에 더욱 확고한 신념을 바탕으로 답변했다. 그래야 신자들을 더욱 단합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슬람교, 힌두교, 칼빈교 등이 있으나, 이 종교들의 교주는 하나님께서 택해 세우신 자들이 아니다”고 단언한다. “자의적으로 하나님을 찾았고 종교 정신으로 하늘의 계시를 받아 기록을 남긴 자도 그 뜻을 아는 자가 없다”며 장황하게 답변한다. 그 예로 석가는 생로병사를 알고자 도의 길을 걸었고 계시를 받아 기록하였으나 그 뜻을 알 길이 없었다고 한다. 또한 ‘언제든 예수가 오면 내가 가르친 교육은 기름 없는 등(何時耶蘇來 吾道無油之燈)’이라 하고, 오백 년 후 석가의 도인 불교가 끝날 것을 기록하였다며 불교를 자극, 폄하한다. 불교가 있어도 기름 없는 등인 것이며 ‘야귀발동(夜鬼發動)’이라 하였다. 또한 “유대교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자들을 죽였고(마 23:34~37, 행전 7:51~53, 살전 2:15), 아들 예수를 보냈으나 상속자라며 죽였고, 죽인 이유는 교회를 자기 것으로 하기 위해서였다(눅 20장 참고). 어찌 여기에 은혜와 구원이 있겠는가?”라고 하며 “참 구원은 주 재림 때 약속한 목자와 다시 창조된 열두 지파에 있다”는 성경만을 강조한다.

개신교계 한 언론인의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냉소적이다. “중학생도 달달 외우고 있는 건데”이다. 그는 24개 질문 자체도 “비록 대한민국 최고 부자일지언정 사형선고를 받고 저승 문턱에 다다른 한 늙은이가, 돈 외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지난날을 후회하며, 미구(未久)에 자신을 심판할 절대자[神]의 존재를 희미하게 자각하고 있음을 웅변한다”고 했다.

이어서 그는 타종교인의 구원여부, 타종교의 이단시 문제에 대해서는 가톨릭의 스마트함을 강조한다. 개신교인이면서도 “천주교는 스스로만 제일이라고 결코 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일부 개신교 대형교회 목사가 그렇게 강변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또한 “로마 교황청은 1633년 6월에 있었던 종교재판에 대해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했다. 1663년 사건이란 이탈리아 천문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지동설 주장에 대한 종교재판을 말하는 것으로 교황청은 그 때의 오류에 대해 사과하고 갈릴레이를 360년 만에 완전복권시켰다”며 가톨릭의 스마트한 면을 추켜세우고 있다. 차 신부의 ‘타 종교인의 구원 여부는 신이 결정할 문제다. 우리는 모른다’는 입장에 공감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이만희 교주는 나름대로 해석한 성경을 놓고 모든 것을 ‘성경대로 해야 한다’고 단언한다. “선한 일, 착한 일, 봉사 일을 많이 해도 다시 나지 않으면 천국에 못 간다”며 천국에 갈 수 있는 조건은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 하며(마 7:21), 물(말씀: 씨)과 성령으로 다시 나야 한다(요 3:5, 벧전 1:23)”는 성경구절을 인용한다. “하나님의 씨인 말씀으로(눅 8:11) 다시 나고,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 하고, 하늘의 계시 말씀으로 인 맞아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됨으로 하나님의 가족이 되어 천국에 간다(계 20:15, 21:27 참고)”고 강조한다. 그리고 “ 천주교도 다른 종교도 다시 나지 못하면 같은 이단이다”며 “하나님의 씨로 다시 난 자가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 받게 된다”고 답변한다.


“신은 인간이 창조한 개념”

‘믿음의 종교’와 ‘이해의 종교’의 차이


이병철의 종교질문에서 천주교를 불교로 대치한 답변은 기독교의 입장에선 더욱 받아들이기 힘들다. 깊은 내용으로 들어가선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지만 화법(話法)부터 그렇다.

첫 번째 문항이자 가장 근원적인 질문인 “신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 신은 왜 자신의 존재를 똑똑히 들어 내보이지 않는가?”에 대해서 “2600년 전부터 없다고 했다” “신? 나의 신은 댓돌에나 있습니다” 등의 식이다. 이런 물음에 답하는 것조차 어리석다고 보고 있다. 모든 종교가 공동선(善) 행복을 추구하고 있어 생활하고 사는 데에선 아무런 차이를 발견할 수 없지만 ‘죽음과 천국’의 문제를 놓고선 평행선의 대립을 보여주는 것이다.

불학연구소장 허정 스님은 “창조신이라는 단어는 유한한 인간이 영원한 것을 추구하여 창조해 낸 개념” 이라고 답변했다. 부처님이 사셨던 2600년 전에도 영원한 것을 추구하는 시대였다. 내 안의 영원한 것을 아트만(atman)이라 불렀고 밖의 것을 브라흐만(Brahman)이라고 불렀다. 부처는 이것들이 사실이 아닌 개념일 뿐이라고 보고 아트만과 브라흐만을 부정했는데 이것을 무아(無我)사상, 연기의 법칙이라는 불교의 교리로 설명한다.

또한 종교의 종류를 ‘자력의 종교’와 ‘타력의 종교’, ‘믿음의 종교’와 ‘이해의 종교’로 나누고 불교는 ‘자력의 종교’이며 ‘이해의 종교’이라고 답했다. 자력의 종교라는 것은 신이나 절대자를 상정하지 않고 스스로 수행하여 깨닫는다는 것, 스스로 부처가 된다. ‘이해의 종교’란 이해되지 않으면 모른다고 할지언정 이해되지 않는 것을 믿지 않는 태도를 말한다.

구원의 문제에 대해서도 이와 같은 입장이다. 불교에서도 욕계, 색계, 무색계의 무수히 많은 천상세계가 있고 인간이 상상할 수도 없는 즐거움과 행복이 있으나 적극적으로 그곳에 가라고 권유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 세계도 자아(自我)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한 존재들이 사는 윤회의 세계이기 때문이라는 것. 

다른 종교를 이단시 하는 것 역시 “종교마다 선(善)의 정의와 행복을 추구하는 방법이 다른데 자신의 종교가 최고라고 집착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다른 스님은 “중생과 대부분의 인간은 자신을 합리화하고 미화하기 마련이며 그래서 다른 것을 이단시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스님의 ‘나의 신은 댓돌에서나 존재한다’는 선문답(禪文答)은 ‘계시종교, 믿음의 종교, 타력의 종교’에 치중하는 종교들에겐 여간한 거부감을 주는 표현이 아니다. 그 역시 부처라는 ‘자연종교, 이해의 종교, 자력의 종교’에 따른 종교적 신념에서 표현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의 신은 존재한다. 남대문시장의 ‘신’발 가게에도, 구두수선공의 작업공간에도, 유명상표 운동화 매장에도 있어서 증명된다”는 답변은 다른 종교인들의 분노를 일으키게끔 하는 냉소적 비아냥이다. 그러나 어어지는 “고단한 인생 역경의 길 위에서… 여름날 뜨거운 아스팔트와 추운 겨울의 길 위에서 그리고 삶의 현장에서 고단한 나를 버티게 하는 양다리의 발을 보호하는 그 신(고무신, 운동화, 구두 등등)이야 말로 진정한 ‘신’이며 항시 여기저기서 신을 마주한다”는 선문답은 일부 불교도나 다원주의자들에겐 훌륭하게 깨우친 선문답으로 들릴 것이다.


“신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話法은 다르지만 종교의 취지는 같아


불자시인 송현의 답변과 평가는 더욱 계시 종교인들을 경악하게 한다. 심지어 구제할 길 없는 ‘불쌍한 영혼’으로 보게 된다.

그는 “얼마나 자신과 자기 삶에 확신이 없었기에 그딴 유치한 질문들을 죽음을 앞두고 신부에게 서면으로 적기까지 해야 했단 말인가”라며 내가 평소에 알고 기대하던 이병철 회장이라면 겨우 신부에게 그딴 유치한 질문을 할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 신부에게 인생의 선배로서 다음과 같이 젊잖게 한 수 한 수 가르쳐 주어야 한다고 했다.

‘이보게 신부! 내가 한 평생을 치열하게 살아보니, 인생이란 이런 것이고, 죽음이란 이런 것이라고 생각하네. 그대는 신부 유니폼을 입고 종교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살았지만 나는 들판에서 온몸으로 치열하게 살았다네. 그러니 내가 생각하기로 인생이란 이런, 이런 것이라네!… 내 말을 귀담아 듣고 자네 수행에 참고를 하시게’

그리고 이병철의 질문이라고 자료를 공개한 것을 가톨릭 홍보로 치부한다. 게다가 ‘고등학생 교리문답 수준으로 오해 받기 알맞은 모범답안(?)을 만들어서 책으로 발간하는’ 빅 코미디라고 평가하기까지 했다.

그는 이어서 자신이 철저히 신봉하고 있는 불교의 설화를 장황하게 인용하며 자신의 믿음과 생각을 강변했다.

부처가 유신론자에게는 ‘신은 없다’고 답변했으며 무신론자에게는 ‘신은 있다’, 구도자에게는 침묵으로 답했다. 이를 지켜본 아난다가 혼란스러워 미칠 지경이라며 그 이유를 물었으며 붓다가 답한 이야기다.

유신론자는 신의 존재를 믿고 이미 주어진 대답을 가지고 왔으며 주변사람들에게 ‘내가 옳다. 붓다도 신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려 나의 협조를 청하러 왔을 뿐이라고 했다. 붓다는 그의 믿음을 깨트리기 위해서 신이 없다고 말해야만 했다. 믿음은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신론자 역시 ‘신은 없다’는 주어진 대답을 들고 왔고, 붓다가 그의 불신을 강화시켜주길 원했다. 그래서 붓다는 그에게 ‘신은 존재한다’고 대답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 의도는 같았다. 유신론자에겐 선입견적인 믿음을 깨트려주었고, 무신론자에겐 선입견적인 불신도 깨뜨려주었다. 신앙은 긍정이고 불신은 부정적이지만 양쪽 다 같다. 둘 다 아는 자도 아니고, 둘 다 경험한 구도자도 아니다. 그들은 이미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선입견이 없는 구도자는 ‘믿는 사람들이 있고,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 자신은 신이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알지 못합니다. 도와주십시오’ 라고 묻자 붓다는 침묵했다. 이에 구도자는 “선생님의 자비는 한량없습니다. 선생님은 제게 대답해 주셨습니다”라며 감사해 했다. 붓다는 그에게 말이 필요 없었다. 그는 분명히 지성적이고 열려 있는 민감한 사람이었다. 붓다가 침묵 속으로 들어가자 구도자는 붓다의 침묵과 현존의 일부가 되었다. 그는 침묵 속으로 각성 속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무신론자, 무종교인의 단호한 답변

“무지와 교만의 ‘무례한 언행’”


이병철 종교질문에 대한 답변은 각 종교, 분파마다 확신이 넘쳐난다. 확신이 있기에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 답답해 때론 격렬해지고 논란과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런 답변에 초월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열정적인 종교인들을 한심케 하는 대답도 있다. 공자는 ‘사는 것도 모르는데 어찌 신과 죽음을 알랴(부지생언지사․不知生焉知死)’라는 현실적 해법을 내놓았다. 공자는 이병철의 종교질문에 답하기 보다는 삼강오륜(三綱五倫),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등 생활규범을 갖고 세상이 편하고 행복하게 사는 길을 제시했다. 종교의 목적이 ‘모두 착하게 살고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란 의미에서 유교는 주요종교의 하나이며 훌륭한 가르침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유교전통에 젖어 있던 이병철도 끝내 가톨릭 신부에게 ‘신과 하늘’을 묻지 않았던가.

무종교인, 무신론자들의 답변은 더 명쾌하며 확신에 차 있다. 이슬람이라면 ‘코란’을, 힌두교라면 ‘베다’ ‘우파니샤드’와 같은 경전에서 신과 천국, 죄와 벌에 대한 장황한 대답을 찾을 수 있지만 이들은 더욱 간단하고 단조로운 신념이 있을 뿐이다.

‘만들어진 신’의 저자 리차드 도킨스는 “신이 없어도 인간은 열정적이고 영적일 수 있다”는 확신을 갖기에 더 이상 종교적 질문에 대한 직설적 대답을 할 수가 없다. 대표적 무신론자인 호킹 박사는 “천국이나 사후세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믿음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들이 꾸며낸 ‘동화’에 불과하다”며 ‘우주는 신이 창조한 것이 아니라 우연히 발생한 것’이라고 단언한다. 이에 대해 성공회, 유대인, 무슬림들은 ‘무례한 언행’이라며 그의 무지와 교만을 비판하지만 그는 여전히 “우리 행동의 가장 위대한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 우리의 삶을 제대로 활용해 우리의 잠재력을 달성해야 한다”며 삶의 방향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우주의 신비와 질서를 다룬 ‘코스모스’의 저자 칼 세이건은 “인간은 10조개 별 중 하나인 ‘창백하고 푸른’ 지구라는 행성에서 살고 있는 우주의 나그네”임을 일깨워주며 “이 세계는 더할 수 없이 아름다우며 크고 깊은 사랑으로 가득 찬 곳이기 때문에 증거도 없이 포장된 사후세계 이야기로 내 자신을 속일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신을 속이기보다는 약자 편에 서서 죽음을 똑바로 보고 생이 제공하는 짧지만 강렬한 기회에 매일 감사하는 게 낫다.”는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드러냈다.

무신론과 유신론, 종교인과 무종교인의 종교적 질문에 대한 답변과 삶의 해법이 극명하게 갈리는 현상이 여기에서도 발생한다.


 

나와 나의 종교는 어떤 대답을 내 놓겠는가

 

이병철과 종교질문지

 

이병철의 종교질문은 그 자체로서 우리의 삶과 죽음을 생각해 보게 한다. 그의 24가지 질문을 음미하며 왜 이런 질문이 나왔으며 나름의 정답을 찾아보는 작업은 종교인으로서 귀중한 시간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병철의 질문을 다시 게재한다.


1. 신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 신은 왜 자신의 존재를 똑똑히 드러내 보이지 않는가?

2. 신은 우주만물의 창조주라는데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3. 생물학자들은 인간도 오랜 진화 과정의 산물이라고 하는데, 신의 인간 창조와 어떻게 다른가? 인간이나 생물도 진화의 산물 아닌가?

4. 언젠가 생명의 합성, 무병장수의 시대도 가능할 것 같다. 이처럼 과학이 끝없이 발달하면 신의 존재도 부인되는 것이 아닌가?

5. 신은 인간을 사랑했다면, 왜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주었는가?

6. 신은 왜 악인을 만들었는가?

7. 예수는 우리의 죄를 대신 속죄하기 위해 죽었다는데, 우리의 죄란 무엇인가?  왜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 내버려 두었는가?

8. 성경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그것이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

9. 종교란 무엇인가? 왜 인간에게 필요한가?

10. 영혼이란 무엇인가?

11. 종교의 종류와 특징은 무엇인가?

12. 천주교를 믿지 않고는 천국에 갈 수 없는가? 무종교인, 무신론자, 타종교인들 중에도 착한 사람이 많은데, 이들은 죽어서 어디로 가는가?

13. 종교의 목적은 모두 착하게 사는 것인데, 왜 천주교만 제일이고, 다른 종교는 이단시하나?

14. 인간이 죽은 후에 영혼은 죽지 않고 천국이나 지옥으로 간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나?

15. 신앙이 없어도 부귀를 누리고, 악인 중에도 부귀와 안락을 누리는 사람이 많은데, 신의 교훈은 무엇인가?

16. 성경에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을 약대(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에 비유했는데, 17. 이태리 같은 나라는 국민의 99%가 천주교도인데, 사회 혼란과 범죄가 왜 그리 많으며, 세계의 모범국이 되지 못하는가?

18. 신앙인은 때때로 광인처럼 되는데, 공산당원이 공산주의에 미치는 것과 어떻게 다른가?

19. 천주교와 공산주의는 상극이라고 하는데, 천주교도가 많은 나라들이 왜 공산국이 되었나? (예: 폴란드 등 동구 제국, 니카라구아 등)

20. 우리나라는 두 집 건너 교회가 있고 신자도 많은데, 사회 범죄와 시련이 왜 그리 많은가?

21. 로마교황의 결정엔 잘못이 없다는데, 그도 사람인데 어떻게 그런 독선이 가능한가?

22. 신부는 어떤 사람인가? 왜 독신인가? 수녀는 어떤 사람인가? 왜 독신인가?

23. 천주교의 어떤 단체는 기업주를 착취자로, 근로자를 착취당하는 자로 단정, 기업의 분열과 파괴를 조장하는데, 자본주의 체제와 미덕을 부인하는 것인가?

24. 지구의 종말은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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