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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우영 조선 명예회장 별세 기사로 본 보혁의 인식과 평가 차이, 그리고 종교의 자세

신민형 | 기사입력 2016/05/09 [20:58]
功過를 한데 엮을 수 있는 중도언론지처럼 중도정신의 종교 모습을 기대하며

방우영 조선 명예회장 별세 기사로 본 보혁의 인식과 평가 차이, 그리고 종교의 자세

功過를 한데 엮을 수 있는 중도언론지처럼 중도정신의 종교 모습을 기대하며

신민형 | 입력 : 2016/05/09 [20:58]
功過를 한데 엮을 수 있는 중도언론지처럼
중도정신의 종교 모습을 기대하며 부음기사 분석
 
8일 별세한 한 신문사 사주의 별세를 평가하는 보혁신문의 논조가 엇갈린다. 언론 역사에 대한 이념과 해석차이가 드러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종교간의 평가와 해석을 보는 듯하다. 다행히 신문사 동업자끼리의 예우 차원인지 진영이념을 달리하는 진보언론이 ‘공(功)’에 대한 해설도 잃지 않으면서 ‘과(過)’를 부각시켜놓은 것이 ‘과(過)’만 드러내놓고 비난하는 종교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피아를 막론하고 ‘공과 과’를 밝히는 중도정론지의 출현이 필요하듯이 중도적 종교정신을 발휘하는 종교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에 종교전문지의 난에 조선일보 방우영 명예회장에 대한 엇갈린 평가를 다룬 보혁 신문의 내용을 분석해본다.(편집자 주)
 
-경향 한겨레...‘1등’ 내세우는 가운데 권언유착, 기자 해고, 보수정립 등 ‘過’ 부각
-동아 중앙...동업종 고인예우, 외길 족적과 ‘功’ 부각, ‘1등신문’은 내세우지 않아
-한국...동아 중앙과 같은 논조, 80년대 정언유착‘ 간접적으로 거론한 것은 차별화

 
한국은 8일 오전 별세한 조선일보 상임고문 별세에 관련한 기사를 9일자 28면 ‘사람들’ 톱 기사로 다뤘다. ‘한평생 신문 외길...한국언론사에 큰 족적 남기다’(라제기 기자)기사로 그의 일대기와 성공적인 언론사주로서의 업적과 그에 대한 평가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동업 사업자에 대한 예우가 충분히 방영된 긍정적 기사였다. 70-80년대 1등 경쟁을 하던 한국의 포용력있는 기사내용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 중도지를 표방하는 한국의 인터넷면 부음기사. 제목과 전반적 내용은 찬사 일변도였으나 ‘정치권력과의 유착의혹’에 대해서 간접적으로 한 줄 거론해 조선을 비롯한 여타 보수신문의 공에 치중한 평가, 공보다는 과에 치중한 진보신문과 차별화했다.     © 매일종교신문

 
조선은 자사 사주의 별세 소식을 1면 ‘方又榮 조선일보 상임고문 별세’ 기사로 내보내며 '1등 신문'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했다. 그리고 5면에서는 ‘記者와 울고 웃은 64년… 신문의 巨人이 잠들다’라는 제하의 수석논설위원의 기사를 그의 연표와 함께 올렸다. “재정 독립해야 언론 자유… 신문은 기자들에 맡겨라… '두 원칙' 실천으로 보인 삶”이라 부제목에서 보여주듯 언론사주로서는 최고의 찬양 일변도의 기사였다. 정권과 맞서 싸운 투사로서도 미화, 조명해 놓았다. 조선으로선 당연한 보도였다.
 
한때 경쟁지로서 판매전쟁까지 불러 일으켰던 동아도 고인에 대한 예우차원의 칭송을 부음기사로 내보냈다. 1면에 ‘방우영 조선일보 상임고문 별세’ 소식을 전하는 가운데 ‘명복을 빕니다’라는 컷 제목 하에 ‘신문인 외길 64년… 조선일보 성장 이끌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역사가 같은 신문으로서 조선과 같이 비중을 키운 것이다. 다만 한국과 마찬가지로 ‘1등 신문’이란 평가를 드러내지 않았다.
 
중앙도 ‘삶과 추억’ 이란 컷 제목을 달아 ‘신문인으로 63년…한국 언론사에 굵직한 발자취 남기다’라고 추모했다. 진보언론의 ‘과(過)’를 부각시키는 기사내용이 아니었다. 빈소 현장 소식을 전하면서는 한국일보 기자 출신인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기자들의 공적 사명을 늘 강조하셨고, 사회를 위해 일한다는 마음으로 늘 파이팅하라고 힘을 불어 넣어주셨다”는 고인추모내용을 소개하기도 했다.
 
경향과 한겨레의 평가는 달랐다. 그의 신문으로서의 일대기는 동업자로서 비중있게 다루었으나 제목과 리드에서는 공(功)보다는 과(過)를 앞세웠다.
 
경향은 ‘방우영 상임고문 별세…조선일보 성장 이끈 신문인, ‘보수 논조’ 정립 주도‘라는 제목 하에 “1등 신문 조선일보에 대한 압도적인 지배력을 행사했다. 국내 정·관·언론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밤의 대통령’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라는 리드를 앞세웠다. ‘유신·군사독재 정권을 거치며 조선일보 성장기를 주도했다’며 1975년 박정희 정권의 언론탄압에 맞서 제작 거부와 편집국 점거농성에 들어갔던 기자 32명을 무더기로 해고한 사건도 내용에 넣었다. 조선이 이들 해고사건을 미화, 해명해 놓은 기사와는 대조를 이뤘다. 반공과 안보제일주의로 대표되는 조선일보의 보수성향 논조도 그의 시대에 정립됐다는 분석도 했다.
 
한겨레는 제목에서부터 ‘밤의 대통령’을 내세웠다. ‘살아있는 언론권력·밤의 대통령…영욕의 신문인’이란 제목의 부음기사에서 ‘신문사집 아이로…최대 신문 확장’라는 일대기를 다뤄놓은 한편 ‘75년 34명 해고…조선투위 미제로’라는 부제목으로 부정적인 발자취에 대한 비판을 가했다. 특히 80년 5·17 쿠데타 뒤 전두환 신군부의 통치기구인 국보위에 언론계를 대표하는 위원으로 참여한 고인의 이력을 오점으로 평가했다. 한겨레 창간 때 조선을 떠나 한겨레로 가는 기자에 대한 회한을 다루는 것도 놓치지 않았다.
 
* 한국 행간의 ‘정언유착’ 간접 지적‘...진보보단 완곡하게, 보수와는 차별화
 
한국을 비롯해 동아 중앙이 신문사의 자존심으로 ‘1등 신문’으로 만들었다‘는 평가는 빠져있는데 반해 진보언론은 이를 내세우는 가운데 ’권언유착‘이라고 매도한 게 방우영 부음기사에서 돋보인다. 다만 그가 ’기자들을 존중하고 지면에 대한 개선을 주도‘한다는 등의 평가는 대부분의 언론들이 인색하지 않았다.
 
중도정론지를 표방하는 한국의 보도는 조선이나 여타 보수언론과 다른 면이 딱 한줄로 드러났다. “고인의 책에서 80년대 정치권력과의 유착의혹에 대한 언급은 피했다”는 구절이다. 나름대로 중도정론지의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보다 더 ‘공과’ 양면을 부각시키는 면모를 보여주었으면 중도정론지로서의 논조가 돋보였을 법 하다. 이를테면 진보언론들이 강하게 비판하는 내용을 ‘권언유착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는 식의 코멘트나 분석이 한줄 더 들어갔으면 중도지로서의 면모가 더욱 빛났을 것이다. 동아, 중앙 등이 권연유착, 정경유착 등에 대해 진보언론과 같은 논조로 나설 수 없는데 반해 한국은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 자사의 명예회장에 대한 칭송을 1면에서부터 내세운 조선의 9일자 5면 지면.     ©

 
*‘권언유착서 자유로운 정론’,‘보수 논조 정립 주도‘란 조선 평가보다 귀한 이정표
 
방우영 고문 부고의 조간종합지 논조는 이렇듯 보혁의 차이를 보였는데 여타 신문이나 수많은 인터넷 매체들의 기사내용도 그 성향에 따라 이러한 기사내용을 벗어나지 못했다. 일부 자유로운 인터넷 매체에서 ‘방우영의 功과 過’를 대등하게 보도했는데 중도정론지로서의 바람직한 모양새를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고인이 된 동업종 사주에 대한 예우가 중요하더라도 여타 진보언론에서 거론되는 비판적 시각도 비춰 주어야 중도적이고 많은 독자를 아우를 수 있을 것이다.
 
한겨레가 자사의 기자 이야기를 하며 방우영 별세소식을 전했듯이 한국도 70-80년대에 조선과 1등 경쟁을 치열하게 했었다며 사실상 ‘1등 신문’으로 인정해주는 아량과 함께 나름의 평가를 했으면 좀 더 차별화된 중도정론지로서의 모습을 독자에게 보여주었을 것이다.
 
실상 방우영 부고를 통해 각 신문이 30-40년 훗날 어떻게 평가받게 될 것인가에 대한 역사인식도 갖게 될 것이다. 중도정론지로서 자리매김하고 평가받을 지면을 만드는데도 방우영과 조선에 대한 엇갈린 평가가 반면교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이 ‘보수 논조 정립 주도‘라는 평가가 한국언론사의 새 이정표를 만들었다고 자타가 인정하듯이 ’중도정론지의 정립‘이란 과제는 더욱 인정받을 이정표이기도 할 것이다.(발행.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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