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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의 작은집 日本王室⑦ 천손강림설은 김해 구지봉설화 모방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5/06/11 [05:49]
광복 70주년, 한·일 수교 50주년 기념 기획 시리즈

한민족의 작은집 日本王室⑦ 천손강림설은 김해 구지봉설화 모방

광복 70주년, 한·일 수교 50주년 기념 기획 시리즈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5/06/11 [05:49]
신무왕 즉위 ‘서기 전 7세기’는 거짓
천손강림설은 김해 구지봉설화 모방

 
전호에서 밝힌 내용을 독자들의 이해를 위해 다시 한 번 신무왕에 관한 부분을 요약한다. 『일본서기』『고사기』『신찬성씨록』에 신무왕의 생부(生父)는 하나 같이 히꼬나미사다께 우가야후끼아에즈노미꼬도(彦波瀲武鸕鷀草葦不合命)임이 확인 됐다.
 
『일본서기』‘신무기(神武記)’에서는 신무왕인 넷째아들을 가무야마도 이와레히꼬(神日本磐余彦)라고 했고,『고사기』상권에는 넷째아들(신무왕) 이름을 와까미께누 노미꼬도(若御毛沼命)라 했다. 그리고 『신찬성씨록』우경황별 하편 ‘시라기(新良貴= 新羅)’에는 도반명(稻飯命)이 신라 국왕이 됐다고 했다.
 
그런데 『고사기』에는 2남 이나히도 미꼬도(稻氷命)가 신라국 시조라고 했다. 신라국 시조는 박혁거세(朴赫居世)이다. 그런 만큼 2남 稻氷命=稻飯命(혹은 稻飮命)은 다 같은 한 인물로서 박혁거세 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넷째아들 ‘가무야마도 이와레히꼬’와 ‘와까미께누 노미꼬도’ 역시 같은 한 인물로서 신무왕인 것을 확실히 알게 됐다. 그러니 형은 신라시조, 아우는 일본국 시조왕인 셈이다. 둘 다 한민족이다.
 
여기서 또 하나 짚고 넘어 갈 것은 이 네 형제의 아버지 ‘히꼬나미사다께 우가야후끼에아즈노미꼬도’가 신라국왕 ‘조령(祖令)’의 후손이라고 한 것이다. 박혁거세가 알에서 나왔다고 한 것은 그의 탄생에 관한 하나의 설화적 표현이고 실제 그의 아버지가 『성씨록』에 기록된 데로 조령이라 했으니 이 방면의 전문가들이 앞으로 좀 더 연구해 주었으면 한다.
 
한편 신무(神武)의 일본식 시호는 앞에 말한 것처럼 ‘가무야마도 이와레히꼬(神日本 磐余彦)’이다. ‘이와레’란 야마도 지방의 이와레(石村 또는 磐余彦)이며, 후세에 게이따이 왕(繼體王) 등이 궁전을 세운 곳이다. 현재의 나라현(奈良縣) 고시군(高市郡)에 있는 지명이다.
 
도대체 일본의 건국설화는 횡설수설이다. 박혁거세의 신라건국이 서기전 57년이라면 그의 넷째 아우 신무도 그 보다는 조금 늦은 년대(적어도 서기전 1세기 미만)에 즉위 하는 것이 타당한 상식인데 일본의 사서들은 신무왕의 즉위년대가 서기전 7세기경이라고 했다. 이는 거짓이다. 이 부분은 다음호에서도 밝혀질 것이다.
 
그 시대 일본 땅에 통일국가가 있었을 리 만무하다. 원래 일왕의 일본식 이름에는 그의 출생지, 성장지, 도읍지 등의 지명이 붙여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야마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신무왕에게 ‘이와레’라고 이름 붙인 것은 8세기 초 『고사기』와 『일본서기』의 편집자가 고심 끝에 창작한 증거로 생각된다.(사사고꾸메이<佐佐克明>저『천황가<天皇家>는 어디서 왔는가』참조)
 
『일본서기』가 후세로 내려오면서 더욱 윤색, 과장, 위작된 부분이 많음은 일본 사학계도 인정하는 터다.
 
19세기에 이르러 메이지(明治) 때 교육 칙어에도 신무왕을 만세일계 통일국가의 황제로 승격, 위세도 당당 했으나 군국일본이 패망하면서 오늘에 이르러서는 일본 사학계에서 신무왕이 하나의 전설이요, 실존인물이 아니라고 하기에까지 이르렀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또 하나 언급할 것은 신무왕에서 개화(開花)왕까지의 9대왕들이 금관가라(金官加羅) 즉 가락국(駕洛國) 출생이라는 설이다. 신무왕이 한반도 남쪽 신라계인 것은 일본의 각종 사서들로 밝혀진 사실이나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왕(金首露王)의 왕계와 대응시키는 것은 또 다른 관심을 모으는 일이다.
 
일본 사학자 사사고꾸메이(佐佐克明)는 『천황가는 어디서 왔는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금관가라의 구지봉(龜旨峰)에의 강림신화는 그것이 만들어진 년대(3세기?)로 치면 숭신(崇神) 이전의 것이다. 그 신화를 보유한 정복왕조와 그 일당이 일본열도에 건너와 ‘구시부르 다께(槵觸峰)’에의 강림설화도 함께 옮겨 오게 되었을 것이다.”
 
경상남도 김해(金海)에는 가락국을 창시한 김수로왕이 탄생했다고 전하는 구지봉(龜旨峰)이 있다. 『일본서기』‘신대기(神代記)’에 나오는 천손강림의 구시후루(靈峯槵觸)봉도 김수로왕의 탄생설화를 모방한 것으로 유력시 된다.
 
‘구시후루’나 ‘구시부르’는 ‘구시(‘龜旨’는 ‘구지’ 또는 ‘구시’로 읽을 수 있음)의 벌판’ 또는 ‘구시의 땅’이라는 뜻으로 성산(聖山)·영지(靈地)라는 것이다. ‘구시후루’와 구지봉의 ‘구지’도 발음상 유사하다. 그래서 이 구지봉이 아마데라스 오오미가미(天照大神)가 있었던 다까마가하라(高天原)의 발상지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어쨌든 이 같은 설들은 어디까지나 신무왕을 비롯한 일본왕계가 한반도에서 건너간 우리 한민족의 후예들임을 확실히 말해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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