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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문화와 불교-㉑ 불교경전 결집의 역사, 6차 미얀마가 주도

보검 이차란 스님 | 기사입력 2021/05/17 [09:16]
모든 종교는 경전을 갖고 있으며, 한 종교의 교리를 집대성한 정경으로 인정받아야

서양문화와 불교-㉑ 불교경전 결집의 역사, 6차 미얀마가 주도

모든 종교는 경전을 갖고 있으며, 한 종교의 교리를 집대성한 정경으로 인정받아야

보검 이차란 스님 | 입력 : 2021/05/17 [09:16]

모든 종교는 경전을 갖고 있으며, 한 종교의 교리를 집대성한 정경으로 인정받아야   

 

 

종교에 있어서 경전은 매우 중요하다. 경전 존재의 유무에 따라서 한 종교의 운명은 결정된다. 경전이라고 하면 한 종교의 믿음이나 교리의 근간을 이루는 문서이다. 기독교의 성경, 불교의 불경 등을 말하는데, 경전은 한 종교의 교리를 적은 책이라고 간단히 정의할 수 있다.

 

세계 주요 종교의 경전을 보면, 유교에는 사서삼경, 불교에는 상좌부의 삼장(경율론)과 대승불교의 대장경이 있다. 유대교 경전은 타나크이며, 이슬람은 꾸란이다. 기독교의 경전은 성경이며 책을 뜻하는 헬라어 ‘Biblion’을 번역한 말이다. 성경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으로 나뉜다. 힌두교의 경전은 베다이다. 이란의 조로아스터교의 성전은 아베스타이며, ‘가자로 불리는 시편에 자라스슈트라 본인의 교의(敎義)가 남아 있다. 자라투스트라는 자라스슈트라의 독일어 번역으로 철학자인 니체의 유명한 저작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주인공을 가리킨다.

▲ 미얀마 양곤 까바에 파고다 마하빠사나 구하 케이브에서 1954에서 1956년까지 개최된 제6차경전결집회의 모습.  

 

세상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고, 그 종교의 경전이 존재한다. 종교 경전에는 정경(正經)이냐 외경(外經)이냐의 논란도 심각하다. 이 논란은 특히 기독교에서 의미를 갖는다. 플라비우스 요세푸스(기원후 37년 경~100년 경)유대 전쟁사를 쓴 제정 로마 시대의 유대인 출신의 정치가이자 역사가이다. 요세푸스는 정경이란 하느님(하나님)의 영감을 통해서 특정한 기간에 저술된 한정된 수량의 현존 문헌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했다. 기독교의 정경 논란은 사도들의 사망 후인 2세기부터 영지주의, 마르키온주의 등의 이단들이 출현하자, 무엇이 기독교의 경전인지를 구분할 필요가 생겼다. 마르키온(85~ 160)은 초기 기독교의 신학자로서 스스로 사도 바울의 후계자로 여겼다. 그는 구약성경의 하느님()은 신약성경의 하느님과 다르다고 주장하였다. 당시 영지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문서를 갖고 있었고, 교회 내에서도 수많은 문서들이 검증되지 않은 채 읽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1세기 교회에서는 예수를 따르며 그의 복음과 행적을 목격한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올바른 발언 및 행적을 신도들에게 가르쳤기 때문에 정경의 구분이 필요하지 않았다.

 

유대교에서는 타나크(히브리어 성경) 24권만을 정경으로 인정한다. 타나크는 유대교의 경전으로, 기독교의 구약 성경이 이에 해당한다. 중립적 용어로 '히브리성경'이라고도 한다. 로마 가톨릭 교회와 정교회는 구약성경 46(1경전 39권에 제2경전 7권을 포함), 신약성경 27권을 포함한 총 73권을 정경으로 인정하고 있다. 개신교에서는 히브리어 성경에 준하는 구약성경 39권 및 신약성경 27권을 포함한 총 66권을 정경으로 인정한다. 성공회는 제2경전(외경)을 준정경으로 여기고 있다.

▲ 인도 보드가야 보리수 금강보좌에서 승려들이 경전을 암송하면서 정진하고 있다.  

 

불교의 경전을 이해하기 위하여 참고로 이웃 종교의 경전에 대해서 주마간산격으로 일별해 봤다. 불교경전역사도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불교경전사는 지금까지 6차 경전 결집회의가 개최됐다. 상좌부 경전 결집은 6차가 이루어 졌으며, 대승불교권은 쿠샨제국에서 카니슈카 대왕의 후원으로 개최된 제4차만 인정받고 있다.

 

결집(結集)은 범어로 상기티(saṁgῑti)’라고 한다. 본래 부처님의 가르침은 제자들이 함께 암송하면서 합송을 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부처님이 열반에 들고 난 다음에는 제자들이 모여서 암송을 했는데, 질서가 없었다. 이에 부처님의 상수 제자들이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하여 결집회의를 개최해서 부처님의 가르침 내용을 확정하여, 제자들과 제자의 제자들이 차질 없이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경전결집회의는 석가모니 부처님 열반 직후에 결집회의가 열렸다. 부처님은 자신의 말씀을 글로 남기지 못했다. 붓다가 입멸하게 되자 제자들은 그의 가르침의 내용이 올바르게 후대에 전해질 것인가가 의심스러워졌다. 상수 제자인 마하가섭은 붓다의 가르침을 옳게 파악해 놓지 않으면 사이비나 마설(魔說) 같은 설법이 세상에 나돌아 결국에는 정법정률(正法正律)이 없어지게 될 것임을 두려워하여 붓다가 입멸한 다음 해의 우계(雨季)에 왕사성 밖의 칠엽굴(七葉窟)5백 명의 비구를 모아놓고 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결집을 거행하였다. 이때의 결집을 오백결집(五百結集)이라 한다. 다문제일의 아난존자가 경()을 독송하고 계율은 우빨리 존자가 율()을 송출(誦出)하였다. 경이라 함은 교리와 사문(승려)에 관한 설법이며, 율은 행위와 교단에 관한 규정이다.

 

1차 결집이 있고난 다음, 100년 후에는 제2차 결집, 붓다 일별 200년 후에는 3차 결집이 이루어 졌고, 상좌부는 스리랑카에서 4차가, 대승불교권은 쿠샨제국 카슈미르에서 4차 결집이 각각 열렸다. 이후 미얀마에서 제5차와 6차 경전 결집이 이루어졌다.

 

미얀마가 요즘 군부 쿠데타로 시끄럽지만 불교 전통 고수에는 세계불교계에서 으뜸이라고 할 수 있다. 미얀마에서 거의 2천년 만에 불교경전 결집이 이루어진 것은 그만큼 미얀마 불교가 불교 전통을 잘 간직하면서 정통성을 지켜오고 있었다는 증좌이다. 물론 남방불교의 역사에서 스리랑카 불교가 역사가 길긴 하지만, 인도의 원형불교 전통과 역사를 계승해 오는 데는 미얀마가 그래도 적통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 미얀마 불교의 최전성기를 구가한 바간 왕조 시대의 천불 천탑 유적.    

 

미얀마 불교의 역사는 매우 길다. 그렇지만 지금과 같은 인도 불교의 원형성을 간직한 순수 상좌부는 바간 왕조 시대부터 형성됐다. 바간 왕조(8491297)는 버마의 최초 통일왕조로서 중세시대의 불교왕조였다.

▲ 버마 최초의 통일 왕조인 바간 왕조 최전성기 때의 지도.

 

티베트버마어계의 민족인 버마족이 이라와디 강 유역으로 진출하여 1044년에 바간에서 미얀마 최초의 통일 왕국인 바간 왕조를 세웠다. 바간 왕조를 세운 아노라타는 이라와디 강 유역을 중심으로 아라칸 지방에서 하()미얀마에 이르는 주변 지역을 정복해 세력을 확대했다. 1057년에는 남부에 있는 타톤으로 원정을 가 몬족 포로를 많이 데려왔다. 이를 통해 몬족의 문화가 들어왔고, 몬족의 세력을 합쳐 강대해졌다. 3대 챤지타 왕의 치세까지 반세기는 종교·문학·미술 등 몬 문화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독자적 문화가 차차 형성되어 현재의 미얀마 문화의 요람기라고 말한다. 실론과의 접촉으로 수용된 상좌부 불교는 국가적인 보호를 받아 번성하게 되었다.

 

불사·불탑 등 사원이 많이 건축되었고, 이때 세운 웅장한 불교 사원들은 현재에도 수천 개가 남아 있는데 대표적으로 아난다 사원이 있다. 그들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13세기에 찾아온 마르코 폴로가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 있는 도시라고 견문기에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불교문화가 화려하게 꽃피었지만, 바간 왕조는 사원 건축에 지나치게 국력을 소비해 쇠퇴하기 시작했다. 또 이 무렵 몬 문자를 기초로 버마 문자가 만들어졌다.

 

미얀마가 불교 역사상 거의 2천년 만에 경전결집을 하게 된 것은 사실상 미얀마 불교 승단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점검하여 자신 있게 내세울 수 있는 잠재력을 의미한다. 빨리어 삼장을 제대로 계승해 오고 있는 승단이 바로 미얀마 승단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시사해 주고 있다.

▲ 미얀마 현지 국민들이 군부 쿠데타에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미얀마는 바간 왕조 이후에 작은 왕국(12871531), 따웅우 왕조(15311752), 꼰바웅 왕조 (17521885)로 이어지는데, 꼰바웅 왕조의 민돈 왕(1853~1878)1859년에 만달레이를 세워 수도로 삼았다. 그는 1871년 민돈 왕의 후원으로 2400명의 비구들이 운집하여 경전 결집 회의를 개최했다. 사실, 5차 경전결집은 미얀마 밖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1954년에서 1956년 사이에 양곤에서 제6차 경전결집을 개최하게 된 것이다.

 

미얀마에서 이런 엄청난 프로젝트를 실시할 수 있었던 것은 식민지 시대(1886-1948)를 지나서 버마 민주 공화국 연방 (19491962) 시대에 가능했다. 세계불교사에서 가장 획기적인 대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는 제6차 경전 결집 회의는 세계불교계에 큰 공헌을 한 것이다. 미얀마양곤에 있는 카바에 파고다에 특별히 건설한 동굴 안 큰 홀에서 개최된 회의였다. 이 회의에는 8개의 테라와다(상좌부) 불교 국가에서 온 2500 명의 비구들이 참석했다. 이 회의는 1954년 웨삭일(부처님의 탄생 성도 열반 일)에서 1956 웨삭일 때까지 지속되었다.

보검<세계불교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 필자 보검스님이 인도 콜카타 힌두. 불교전문서점에서 자료 구입을 하고 있다.  


 

필자 보검스님이 인도 콜카타 힌두. 불교전문서점에서 자료 구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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