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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형식 목사의 창세기 산책●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②

주형식 목사 | 기사입력 2022/06/13 [11:56]
지상설교

주형식 목사의 창세기 산책●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②

지상설교

주형식 목사 | 입력 : 2022/06/13 [11:56]

창세기 1장에는 하나님의 창조기사 중 총 일곱 번의 좋았더라라는 말씀이 등장합니다.

 

(1:4)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1:10)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1:12)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1:18) “주야를 주관하게 하시며 빛과 어두움을 나뉘게 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1:21)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1:25)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육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1:31)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창조하신 세계의 순서와 체계를 살펴보면, 특별한 질서와 계획이 있음을 명료하게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사역은 첫 삼일과 둘째 삼일로 구분할 수 있으며, 그 완성은 제칠일의 안식으로 마무리가 됩니다. 첫 삼일은 창조의 공간을 설정하시고, 후 삼일에는 각각의 공간에 상응하는 창조물을 채워 넣으셨습니다. 첫 사흘 동안 빛과 궁창과 뭍을 만드시고, 후 삼 일 동안 빛을 주관하는 해, , , 공중의 새와 물 속의 물고기, 그리고 땅에서 사는 동물과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이러한 창조의 계획과 질서는 "각기 종류대로",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보시기 좋았더라"라는 반복되는 구절들과 함께 일정하게 배분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했을 때, 성경은 모든 것이 질서있고 조화롭게 창조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창조주께서는 각 날의 창조가 마칠 때면, 여섯 차례에 걸쳐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하셨고, 31절에서 한번 더 말씀하시면서 질서와 조화의 창조 세계를 치하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정말 좋았습니다. 창세기 1장의 이 선포는 천지와 만물, 그리고 모든 존재하는 것이 본질에서 선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기사는 단지 하나님께서 만드신 창조물을 바라보시고, 나의 작품에 만족한다는 그런 의미로 이해를 해야 할까요?

 

저는 목회의 부르심을 받아 강원도의 한 작은 교회를 섬기면서 신혼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큰 아이가 출생했습니다. 큰 아이가 출생할 때가 25년 전이지만 지금도 그 때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아내의 배가 점점 불러오면서 아기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장만하기 시작합니다. 옷을 사고, 양말을 사고, 기저귀를 사고, 놀이기구를 사는데, 상점에 들려서 아내와 함께 이것 저것을 보면서 가장 좋은 것을 골라서 삽니다. 아기를 위한 선물을 받기도 합니다. 선물을 받아서 풀어보면 얼마나 이쁘고 좋은지 너무 마음이 기쁘고 행복합니다. 지금도 양말을 선물로 받아서 받은 양말을 제 손가락에 끼워보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제 손가락에 쏙 들어가는 양말, 그것을 잠시 후에 만날 아기가 신을 것을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여러 신학적인 해석들이 있을 수 있지만, 저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말씀을 이렇게 이해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창조의 최고 걸작품인 인간을 위해 가장 좋은 것으로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이 놀랍도록 배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존재 자체의 선함을 넘어서,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시며 우리에게 유익한 것을 기뻐하시고 '좋다'고 하시는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에게 가장 실제로 필요하고 유익한 것을 안겨 주시며, 도리어 기뻐 미소 짓는 아버지가 되심을 성경은 말해 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 하나님의 마음은 인간의 유익과 행복을 가장 좋은 것으로 여기시는 아버지의 마음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 앞에 모든 것이 제공된 창세기 131절에서 하나님은 한번 더"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외치신 것입니다. 사람을 위해 최상으로 갖추어진 세상, 빛과 공기, , 바다, 식물, 어류, 조류, 짐승, 사시사철의 변화, 우주의 질서와 조화, 이 모든 것이 사람을 위해서, 사람의 유익을 위해 질서 정연하게 운행되도록 창조하신 것입니다.

 

세상이 적자생존의 법칙에 의하여 진화하였다는 주장을 믿는 이들의 세계관은 어떻습니까? 세상을 치열한 생존경쟁의 장으로 바라봅니다. 진화론의 확산이 너무 강력해서 기독교에서도 이를 인정하라는 강력한 요청으로 생겨난 것이 바로 유신론적 진화론’(Theistic Evolution)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셨으되 진화론적 방법도 사용하셨다는 것입니다. 유신론적 진화론의 가장 강력한 타겟이 바로 창세기 1장입니다.

 

그런데 이 유신론적 진화론의 치명적인 맹점이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라는 말씀을 설명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세상은 생존경쟁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가장 좋은 창조의 산물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말씀에서 창조하시니라라는 말씀은 히브리어 원어로 바라라는 말입니다. 성경에 총 52회 나오는 말인데, 아무 것도 없는 무에서의 창조에만 사용되는 단어이고, 오로지 하나님만을 주어로만 사용할 수 있는 단어입니다.

 

(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도 이 바라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는데, 창세기 127절을 한글성경에서는 창조하시다라는 단어가 2번 등장합니다.

 

(Gn 1:27, KJV) “So God createdman in his own image, in the image of God createdhe him; male and female createdhe them”

 

하지만 성경의 원문은 물론이고, 영어성경에서도 창조하시다라는 단어가 3번 등장합니다. 이렇게 바라라는 단어는 특별한 창조에서만 사용되는 단어이고,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는 3중적으로 강조하면서 이 창조는 절대적으로 전능하시고 자비하신 하나님의 주권적 영역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세상은 스스로 생겨나거나, 치열한 생존경쟁의 과정에 의한 것이 아닌, 사람을 위해, 우리를 위해, 가장 유익한 것들을 공급하시고, '심히 기뻐하신'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이 되심을 성경은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인류 문명에 큰 사상적 영향을 끼친 두 민족이 있는데 헬라, 즉 그리스와 이스라엘입니다. 그런데 이 두 민족의 사고방식은 확연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리스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어떻게?”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현상을 보면서 어떻게 이렇게 되었을까?”, “어떤 과정을 거쳤을까?” 끊임없이 어떻게의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리스 철학도 이런 질문에서 시작이 되었고, 이것이 발전해 나가면서 오늘날 과학의 근간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이스라엘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라는 물음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나는 왜 존재하는가?”, “하나님은 왜 사람을 만드셨는가?”와 같은 ?”라는 질문은 수없이 던졌습니다. 창세기 11절은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기도 한 것입니다. “왜 우리가 사는가?” 하나님이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가 존재하는가?” 하나님이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이 말씀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규정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천지에는 우리도 포함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 존재의 근원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또한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하나님 없이는 우리가 살아갈 수가 없고,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 아니라면 우리의 삶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가리키는 말씀인 것입니다.

 

(2:1-2, 개역한글판) “1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2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 하나님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창세기 2장은 1장과 마찬가지로 창조를 다루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과 2장은 서로 보충의 관계에 있습니다. 1장에서는 초월적이고 전능하신 능력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엘로힘 하나님을 보여준다면, 2장에서는 친히 찾아오셔서 함께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으로 나타납니다.

 

창세기 21~3절을 보시면 하나님3번 등장합니다. 또한 일곱째 날3번 등장하지요. 이렇게 성경은 어떠한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3번씩 반복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일곱째 날이 이렇게 3번씩 반복된 것은 하나님의 안식도 창조의 완성의 범위 안에 들어간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일곱째 날 안식일은 다른 날과 같지 않게 복을 받았습니다. 그로 인하여 이 날은 특별한 날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날을 다른 날과 구별하여 거룩하게 만드셨습니다. 휴식하는 날의 거룩함을 일곱째 날에 부여하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께서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안식하심으로 인간을 위한 모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안식일은 그분의 존재에 대한 계속적인 증거이며, 그분의 위대하심과 그분의 지혜와 그분의 사랑을 상기시켜 주는 방편이 되었습니다.

 

출애굽기 208~11절에서 인간에게 주신 넷째 계명과 이 창조의 기사는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이렇게 친히 모본을 보여주셨기 때문에 일하는 6안식하는 일곱째 날의 순서는 모든 인간이 일곱째 날’ ‘제칠일에 안식함으로 하나님의 형상에 참여해야 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1:26~28)을 따라 만들어진 사람이 모본을 보여주신 하나님을 따르라는 초청을 하나님께서는 넷째 계명을 통하여 다시 한번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3절에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에서 마치다는 말은 완성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안식하다라는 말에 사용된 샤바트중단하다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안식은 피곤해서 어쩔 수 없이 쉬는 그런 안식이 아니라, 창조주께서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쉼을 피조물들에게 제공하신다는 그런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특별한 시간을 내주셨다는 의미입니다.

 

엿새 동안 하나님은 일을 완성하셨고, 제칠일에는 중단하셨습니다. 중단은 안식 개념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쉬지를 못합니다. 창세기의 저자는 노동의 중단을 통한 하나님의 안식을 강조하고 있는데, 하나님이 안식하셨다는 표현을 거듭해서 하므로 하나님의 안식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러하신 것처럼 우리도 제칠일에는 안식해야 하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의 첫 번째 을 표시하는 안식일은 고통 중에 있는 인류와 신음하는 세상을 위한 희망의 표징이 되었습니다. .타락 이후, 한 주의 끝에 자리 잡고 있는 안식일은 새 창조의 기적을 통해 마침내 이루어질 구원의 기적을 가리킵니다(65:17, 21:1). 안식일은 이 세상의 고통과 시련들도 결국 끝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기 위해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일주일이라는 시간 끝에 새겨진 표징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안식일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하신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적 세계관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완벽한 창조, 그 다음에 이어지는 인간의 타락과 저주, 그리고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한 완벽한 세계의 성취를 말하는 것입니다. 아직도 인간의 타락과 저주 가운데 살아가는 오늘 우리들에게 있어서 장래의 소망이 무엇입니까? 죄로 인해 잃어버린 하나님의 완벽한 세계가 다시 성취되는 것이고, 이것은 곧 창조의 확신과 직결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죄많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는 엿새의 일을 마치고 제칠일에 안식함으로 중단”, 즉 세상의 모든 일들이 마쳐지고, 다시금 창조주 하나님과의 복되고 거룩한 시간 속으로 들어갈 것에 대한 소망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주형식 목사는 다수의 교회와 교단행정직에서 봉사를 하다가 미국 미시간주에 위치한 Andrews Theological Seminary에서 목회학 박사(Doctor of Ministry)를 취득한 후 귀국하여 현재 묵동교회 담임목사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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