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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형식 목사의 창세기 산책⓹ 타락(2)

주형식 목사 | 기사입력 2022/07/25 [08:48]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 아담과 하와...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어린 아이의 숨바꼭질“

주형식 목사의 창세기 산책⓹ 타락(2)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 아담과 하와...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어린 아이의 숨바꼭질“

주형식 목사 | 입력 : 2022/07/25 [08:48]

(2:16,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3:1,4,5)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이 두 말씀들을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217절을 보시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열매를 맺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 먹지 않도록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31절에 보면 사탄이 하나님의 이 말씀을 어떻게 왜곡합니까?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사탄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2장의 명령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왜 이렇게 왜곡된 질문을 하였을까요? 우리는 31절을 통해 사탄의 치밀한 간교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유혹이 하나님 말씀으로 시작되는 것이 놀랍습니다. 사기꾼들은 처음부터 뻔한 거짓말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들통이 쉽게 나게 됩니다. 대신 완벽한 진실에 한 방울의 거짓을 첨가합니다. 뱀이 그랬습니다. “모든이란 말만 빼면 옳은 말이었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이라는 말을 모든이라는 말로 교묘하게 대치해서 함정을 판 채 여자에게 접근한 것입니다.

 

또한말라 하시더냐는 질문을 통해서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의문형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너희에게 그 어떤 나무의 실과도 먹지 말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잖니?”라고 교묘하게 뉘앙스를 비틀어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너그럽게 주신 은혜를 사탄은 이렇게 교묘하게 왜곡합니다.

 

또한 사탄은 이 말씀을 잘 보시면 하나님이라는 명칭만을 사용하였습니다. 지난 연재를 통해 말씀을 드린 것처럼 하나님으로 번역한 히브리어 엘로힘은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강조하는 명칭입니다. 또한 여호와 하나님은 언약을 세우시고 그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강조하는 명칭입니다.

 

216, 17절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분명히 여호와 하나님으로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사탄은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았을까요? 그 이유는 사탄이 언약의 하나님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부정하면서 동시에 하와로 하여금 인간과 신실한 언약을 맺으시는 여호와 하나님과의 언약을 떠올리지 아니하고 그 언약을 어기도록 유도하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뱀의 이 질문에 하와가 어떤 대답을 합니까?

 

(3:2,3) “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창세기 217절에서는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이 말씀을 원문으로 보시면 무트라는 단어를 두 번 겹쳐서 사용하는데, “무트 타무트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번역한다면 죽고 또 죽으리라는 것으로 죽는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두 단어가 시제가 조금 다릅니다. 그래서 좀 더 이해하기 쉬운 말로 번역을 한다면 반드시 죽도록 죽어간다는 말로 이해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2번 죽는다는 말이 아니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순간에 죽음이 시작되고, 결국에는 반드시 죽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와는 어떻게 대답을 합니까?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여기서 죽을까 하노라라는 말의 히브리어 원문은 펜 테무툰인데 이 말은 죽을 지도 모른다라는 가정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것을 먹는 날에는 정녕,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신 선언을 하와는 죽을 지도 모른다는 말로 바꾸어버린 것입니다.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한 것은 이것이 다가 아닙니다. (3: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 나무의 열매를 가리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라고 분명히 그 열매의 명칭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런데 하와는 그 열매의 이름을 정확하게 이야기하지 않고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라고 일반화시켜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31절과 2절을 지금 살펴봤지만, 뱀의 간교한 질문이 31절에서 던져지고, 하와의 변형된 답변이 2절과 3절에서 짝을 이루어서 사탄의 간교한 계획이 정확하게 들어맞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용기를 얻은 사탄은 전격적으로 거짓말을 더욱 확대해 나가게 됩니다.

 

(3:4,5)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4절에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는 사탄의 말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정면 도전입니다. 4절 말씀의 주석을 찾아보니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단의 첫 번째 질문이 정말 그러했듯이 의심을 불러일으키고자 의도된 것이었다면, 그가 뒤이어 한 진술은 권위적인 선언의 모습을 띤 기만이다.”(SDA Bible Commentary vol 1, 197)

 

이 주장은 히브리어로 할 수 있는 최고의 강조법 형태인데, 하나님의 분명한 명령에 대한 반박인 것입니다. 5절 말씀에서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될 것이라는 사탄의 말은 지금 여자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게 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그 열매를 금하신 동기에 대하여 의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금지된 열매를 먹기로 결심한 순간, 하와는 마치 하나님이 더 이상 존재하시지 않으시는 것처럼, 자신이 하나님인 양 행동하였습니다. 하와에게 일어난 이러한 변화를 성경은 하와가 하나님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모습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하와에게 금지된 열매는 본즉...좋았습니다(NKJV, 3:6). 이는 하나님께서 자신이 창조한 것들을 보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나게 합니다(1:4).

 

그 여자는 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 과실을 금하셨을까 하고 자문하였다. 바로 이 때가 유혹자의 절호의 기회였다. 그는 이 여인의 마음의 생각들을 통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양 그 여자에게,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3:1)라고 말을 걸었다. 하와는 자기 생각의 메아리를 듣는 것 같았으므로 소스라치게 놀랐다.“ (Patriarchs and Prophets, p 53)

 

결국 문제는 평상시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희미하게 붙잡은 하와의 영적상태였습니다. 이 영적상태를 감지한 사탄이 그것을 파고들어 결정적인 미혹의 화살을 던진 것입니다. 너 스스로 네가 하나님같이 되라- 그러므로 창세기 3장의 사건은 단순히 선악과 사건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한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 때문에, 그것을 이용한 사탄 때문에, 아담의 말처럼 하와 때문에 누구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 절대 아닙니다. 나 중심의 영적상태. 나라는 것에 집착하여 스스로 내가 하나님같이 되려고 하는 그 정욕의 우상이 있었기 때문에 사탄이 그것을 교묘히 활용한 것입니다. 누가 뭐라고 하던지 누가 무슨 짓을 하던지 간에 내가 언약의 여호와 하나님과 분명하고 확고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문제는 내가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3장 문제는 바로 나의 문제입니다.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오늘도 사탄은 우리에게 교묘하게 속삭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사탄의 교묘한 속삭임을 거절합니다. 그리고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그리스도께서 사시도록, 나와 함께 하시는 언약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3: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 가장 먼저 일어난 변화는 그들의 눈이 밝아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얻은 지식은 그들이 기대한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벌거벗은 것을 발견하고, 죄책감과 수치심을 느꼈습니다.

 

그들이 누려 왔던 사랑과 평화는 사라지고, 그대신 그들은 죄에 대한 의식, 장래에 대한 공포, 영혼의 벌거벗음을 느꼈다. 그들의 몸을 두르고 있었던 빛의 두루마기는 이제 사라져 버렸다. 그리하여 그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가리개를 만들어 빛의 옷을 대신하려고 노력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벌거벗은 채로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 설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Patriarchs and Prophets, p 56)

 

부끄러움을 느낀 아담과 하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치마로 삼은 것입니다. 7절 말씀을 한글 개역개정판이나 개역한글판에서는 그냥 치마로 삼았더라라고 기록했지만, 원어성경으로 보면 그 앞에 “(자기를 위하여) 치마로 삼았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말 성경으로 보시면 원문과 같이 번역이 잘 되었는데 그들은 자신들을 위해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옷을 만들었습니다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여기서 그들이 자신들을 위해 옷을 만들었다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너 스스로 네가 하나님같이 되라는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 범죄한 인간이 한 일은 자기를 위하여 스스로 자신이 방법을 선택하여 벌거벗음을 가리는 행위를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자기를 위하여의 정신을 주의하라고 경고하십니다. 신명기 58절 말씀에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너는 자기를 위하여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밑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범죄한 인간이 자기를 위하여행하는 모든 일들, 이러한 우상숭배는 결국 무엇과 같습니까? 수치를 가리기 위해 두른 잎사귀와 같습니다. 그 잎사귀는 햇빛을 받아 금방 말라버리고, 금새 다시 부끄러움이 드러나는 것처럼 인간의 자기를 위한모든 행위는 일시적이고 순간적인 방법일 뿐입니다.

 

7절 말씀을 신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으로 보면 “and they sewed fig leaves together and made themselves coverings”(Gn 3:7, NKJV)- 이렇게 되어 있는데 여기서 밑줄 친 부분을 번역하면 그들 스스로 덮개를 만들었다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사용된 만들다라는 동사는 오직 창조주 하나님께만 사용되던 말이었는데, 이제 범죄한 아담과 하와가 자신들의 죄를 가리기 위해 스스로 창조주의 자리를 차지한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3: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9절 말씀에서 다시 하나님의 주도권이 회복되어집니다. 9절 말씀에서 범죄한 인간에게 다가가시는 하나님을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 즉 언약의 하나님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범죄하기 전에는 항상 하나님의 방문을 환영하던 아담이 이제 숨었습니다. 죄가 가져온 결과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불편해지는 것입니다. 가장 친밀하고 편안해야 할 하나님과의 관계가 거북스러워진 것입니다. 무언가 잘못을 저지른 아이는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지레 겁을 먹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그랬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자 친밀함이 두려움으로 바뀐 것입니다. 그때부터 인간에게 숨기는 역사가 시작됩니다.

 

그래서 범죄한 인간이 어디에 숨습니까? (3:8)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기껏 숨은 곳이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그런데 그 동산이 어떤 곳입니까? 동산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동산 구석구석을 가장 잘 아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세계에서 가장 큰 부자들 중의 한 사람으로 아랍에미레이트의 왕자이고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시티의 구단주이기도 한 만수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느 날 그의 딸이 가출을 결심하고 멀리 도망을 쳤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기 나름대로는 엄청 멀리 도망쳤다고 생각했는데, 자기가 아빠 품에서 그렇게 멀리 도망쳐왔다고 생각한 거기도 아빠 만수르의 땅이었다고 하는 일화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숨바꼭질하던 모습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책상 밑에 머리는 집어넣고 엉덩이는 나와 있습니다. 부모가 보기에도 참 우습죠. 8절 말씀을 보시면 이 숨바꼭질 장면과 똑같습니다.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아담과 하와, 그런데 동산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동산에 거니시고 계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이 어린 아이의 숨바꼭질과 똑같아 보이실 것입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 범죄한 인간이 절망적인 것은 숨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피할 수 있는 데로 숨어보려고 하고, 자기 스스로 죄를 은폐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나무 사이에 숨고, 나뭇잎으로 옷을 만들어 부끄러움을 숨기고, 이렇게 죄는 무언가를 가리고 숨기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인간에게 하나님은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범죄한 인간에게 자신의 모습을 자각하고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디 있느냐고 묻는 것은 그가 어디 숨었는지 몰라서가 아니라, 그를 불러 회개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질문의 진정한 의미는 왜 거기 있느냐?” “거기서 무엇을 하느냐?” “왜 거기 있게 되었느냐?”는 질문입니다. , 아담의 장소적 위치를 묻는 질문이 아니라, 하나님과 아담 사이의 관계의 위치를 묻는 질문이었던 것입니다.

 

인간이 죄를 지은 그 순간부터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구원과 구속을 위해 일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으로 인도하는(3:15) 회개를 유도하기 위해 이 과정을 거치신 것입니다. 이것을 두고 스펄전 목사님은 하나님께서 죄인에게 가지시는 거룩한 관심이라고 불렀습니다. 찾아오지 않으셔도 되는 분이 찾아오시고, 말씀하지 않아도 되는 분이 말씀하시며, 부르시지 않아도 되는 분이 불러주신 것입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 이 질문은 타락한 아담에게 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주어지는 동일한 질문입니다. “, 하나님. 부끄럽게도 제가 여기, 동산 나무 사이에 숨어 있습니다. 이게 제 꼴입니다. 그러나 제가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저에게 찾아오셔서 복음을 주신 하나님. 약속대로 여자의 후손, 그리스도 예수를 보내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내가 받을 모든 형벌을 대신 받으신 그리스도께 나아가 그분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오니, 부끄러운 이 죄인을 용서하시고, 주의 구원으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나의 모습이 동산 나무 그늘 아래 숨어있는 존재가 아니라 십자가 그늘 아래, 주님 곁에서 쉼을 얻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형식 목사는 다수의 교회와 교단행정직에서 봉사를 하다가 미국 미시간주에 위치한 Andrews Theological Seminary에서 목회학 박사(Doctor of Ministry)를 취득한 후 귀국하여 현재 묵동교회 담임목사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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