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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이 더 깨달으며 본 ‘반가사유상의 미소’에 대한 단상

신민형 | 기사입력 2023/07/30 [20:56]
이익 다툼과 편싸움으로 보지 않는 것들, 나이 들어도 보지 못하는 것들

시각장애인이 더 깨달으며 본 ‘반가사유상의 미소’에 대한 단상

이익 다툼과 편싸움으로 보지 않는 것들, 나이 들어도 보지 못하는 것들

신민형 | 입력 : 2023/07/30 [20:56]

▲ 반가사유상의 미소. 시각장애인은 두 반가사유상의 발끝은 만져보며 일반사람보다 각기 다른 미소의 의미를 깊이 들여다 봤다.

 

지난 한주도 방통위원장 임명, 증여세 등 세법개정, 이상민 탄핵기각, 학생인권조례, 양평자료공개 등을 놓고 정치판과 언론들은 소모적인 다툼을 벌였다. 이념과 사상, 보혁과 좌우의 대립도 아닌 진영 이익과 편싸움의 난장판에 피곤함이 쌓여간다.

 

그런 짜증나는 뉴스들 속에서 읽은 시각장애인의 국립박물관 반가사유상 견학기’(동알일보)는 눈을 확 뜨이게 했다.

 

반가사유상은 모나리자의 미소 이상으로 신비롭게 다가온다. 깨달음을 얻은자 만이 지을 수 있는 은은한 미소로 사랑을 받고있는 국보이다.

 

손끝으로 불상의 반가사유상 미소와 발가락을 하나하나 만지던 시각장애인은 일반사람보다 더 깊이 미소의 의미를 발견했다. 반가사유상 1호가 발끝에 힘을 빼고 있다면 2호는 힘을 꽉 주고 있어 미소의 의미는 서로 달랐다는 것이다. 2호가 마음속으로 어떤 결단을 내린 듯 하다고 봤다.

(https://n.news.naver.com/article/newspaper/020/0003510976?date=20230724)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는 비유는 틀렸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는 일부분을 알면서도 전체를 아는 것처럼 여기는 어리석음이 아니라 마음 속 까지 통찰해내는 혜안일 수 있다. 온갖 사안을 놓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목소리 높이는 세상 사람들이 가져야 할 혜안일 것이다.

 

나이들어가면서 세상을 통찰하는 혜안이 생긴다고 하는데 그도 아니다. 세상에 초연해지며 너그러워졌다고 하는데 뼛속 깊은 독선, 아집, 신념이 도사리고 있는 건 아닌지 장님 코끼리 만지기와 견줘 볼일이다. 

 

▲ 산과 호수에서의 즐거움, 그리고 그 안에서의 독서와 사색의 즐거움만을 강조하며 사는 것보다 모두를 인정하고 조화를 이루게 하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  © CRS NEWS


산과 호수에서의 즐거움, 그리고 그 안에서의 독서와 사색의 즐거움만을 강조하며 사는 것보다 모두를 인정하고 조화를 이루게 하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

 

호수 산책을 등산보다 못하다고 무시하던 내가 발목에 철심을 박고부터는 호수 산책을 즐기게 됐다. ‘知者樂水 仁者樂山을 들먹이며 산을 예찬하던 내가 급변한 것이다. ‘뭐가 좋고 뭐가 싫다고 단정했던 독선, 아집, 신념이 있지 않았을까. 호수가 좋다는 아내를 이해 못하고 산행을 강요하진 않았을까. 그리고 이제 와서 산보다는 물이 더 좋다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을까도 생각해본다. 골프 낚시 음악 등 여타 각종 취미에 대한 호불호 역시 마찬가지. 내 취미만 고수하고 남의 취미는 무시하지는 않았을까. 내 취미가 달라지면 내 취미관이 급변하는 것은 아닐까.

 

산에 다니며 사계를 관찰하며 사색하는 즐거움엔 깊이가 없고, 호수 산책하며 산에서 못했던 독서를 즐기는 것엔 내 나름의 성찰 기회가 없다. 세상과 인간을 통섭한 양서가 주는 지식과 지혜에 압도당해 감히 내 생각을 차분히 정리할 시간이 없는 것이다. 지난 몇주 동안의 호수 산책 기간이 그랬다. 그래서 가벼운 수필들을 들고 나가 산책하니 다소 사색의 시간이 주어졌다. 나이들면서 독서냐 사색이냐를 놓고 그 중요성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것을 벗어나 산과 호수에서의 즐거움, 독서와 사색의 즐거움을 모두 인정하며 조화를 이루는 생할은 할 수 없었을까.

 

나이들어가며 또 하나 만족하며 자부했던 생활이 있다. 이제 굳이 만남의 필요성에 따라 만남이 이루지지지 않고 편치 않은 사람은 만나지 않아도 좋은 경지에 들어, 혹 편치 않은 아무나 만나더라도 아무 상관없다는 착각이 그 중에 하나이다.

 

好不好는 여전히 남아있어 불호는 불편하게 다가오는 겻이다. 호불호는 내 마음과 편견일뿐 상대는 하나하나 나름의 장단점을 갖고 그대로이란 것을 느끼면서도 단점만 보게 된다. 장단점 이해하고 공감하며 어울려 지낸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차리리 존재를 무시하는 게 편하다. 아직 아름답게 늙는 경지에 이르기엔 멀어질 수 밖에 없다.

 

종교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성경 불경 꾸란 논어 베다 말씀이 다 귀중하니 다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말은 하지만 특정 종교에 매몰되어 있는 사람들을 보면 아직 공감을 못한다. ‘和而不同보다 더 나아간 각자의 믿음세계의 진정성을 보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맹목적 믿음을 가진 이들이 여타 믿음을 이단, 미망으로 보듯이 나 역시 그들을 이단, 미망시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나이 들어 나는 종교에서 자유롭다는 착각 또한 미망, 미신일 수 있다는 것을 더 절감해야 할 일이다. 내 독선과 아집으로 나이들면서도 아직 보지 못하는 것들이 널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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