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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잃은 세상 ‘아포리아’ 시대의 삶과 희망-각자도생에서 찾는 공감의 확산

신민형 | 기사입력 2023/12/09 [13:42]
하늘소풍길 단상

길잃은 세상 ‘아포리아’ 시대의 삶과 희망-각자도생에서 찾는 공감의 확산

하늘소풍길 단상

신민형 | 입력 : 2023/12/09 [13:42]

아침에 일어나 신문을 읽으면 온통 혼란스럽거나 암울하다. 지긋지긋한 정쟁 기사는 그날그날의 이슈에 따라 주제어만 바뀔 뿐 반목과 갈등이 반복된다. 여야 혁신, 내각개편, 방송법, 중대재해법, 노랑봉투법, 기후위기, 청문회, 외교와 노조문제날마다 똑같이 치고받는 모습의 연속으로 똑같은 가십을 보는 기분이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양 팩트체크를 한답시고 보고싶은 것만 보고 자신의 주장만 강변한다. 유트브 등 SNS도 가세해 왜곡편파의 극치를 이른다.

 

▲ 온통 혼란스럽거나 암울한 정치기사. 날마다 치고받는 반복되는 가십을 보는 듯 하다.

 

국제정치세계도 다를 바 없다. 참혹한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을 국내외 언론들은 양 극단 진영의 눈치를 보아가며 전쟁놀이 중계를 하는 듯하다. 그래서 상대를 전멸시킬 해충으로 보는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국민 전체를 적군으로 보는 하마스의 비극은 끝이 보이질 않는다. 이런 갈등과 반목이 생기게끔 만든 국가는 그 책임은커녕 여전히 정의의 사도인 양 행세하고 있다. 처음의 분노 열기는 사라지고 비참한 현실만 드러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마찬가지다.

  

▲ 방화와 자살, 몰카, 막말의 종교지도자들을 보며 아포리아 시대를 절감한다.

 

세상의 규범이 되어야하지만 오히려 일탈을 일삼으며 걱정만 안기는 종교 뉴스는 어떤가. 살생과 폭력을 금하는 불교계의 지도자가 휘발통을 들고 절간을 방화하며 자살을 한 사건은 교리와는 딴판으로 사는 종교인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해탈 경지의 삶을 추구하는 스님이 무슨 번뇌가 그리 깊은지 자살을 선택했는가는 본인만 알고 있겠지만 이를 소신공양(燒身供養)이라 추켜세우며 종단장까지 치뤘다. 자살을 범죄시 하는 정부는 훈장까지 수여하고 종교계의 표를 두려워하는 여야정치인들은 앞을 다투어 추모에 나섰다. 기성 언론의 눈지보기 추모도 정치인과 같은 행태이다. 한편 스님 반대편 세력들은 사자의 죽음에 난도질을 하고 있다.

 

개신교 목사는 대통령 부인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하고 선물을 주는 것을 몰카에 담아 이를 언론에 넘겨 정치적 반대세력에 흠집을 유도했다. 천주교의 한 신부는 여성 정치인의 출판기념회에 가서 방울 달린 남자들이 여성 하나보다 못하다는 막말로, 편향적 정치 활동과 성희롱 의식을 드러냈다.

 

온갖 국내외 비참한 현실은 슬그머니 외면하는 정치와 종교가 가면을 벗고 보통사람의 그릇된 행태보다 더한 본색을 드러내는 모습이다.

 

꿈과 희망없는 '막다른 골목'의 아포리아 시대와 각자도생의 삶

 

꿈과 희망이 없는 아포리아 시대이다. ‘아포리아는 그리스어로 '막다른 골목' 정도의 뜻으로 쓰인다. 기원전 8세기 페르시아 전쟁과 펠레폰네소스 전쟁,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겪는 아테나가 처했던 상황을 이른다.

 

현재의 상황은 그 때보다 더욱 암담, 우울하다. 길들여진 종교 사상과 윤리로 삶의 의미를 새기던 시대가 끝났다. 그나마 삶을 윤활하게 해주었던 윤회 부활 영생 삼강오륜 사상이 전혀 영향력이 없다. 목숨과도 바꿀 수 있었던 대의명분은 찾을 수 없다. 결국 각자도생의 길을 찾아나서야 한다.

 

오전의 혼란과 암울함을 호수 산책으로 해소한다. 햇볕을 쐬며 잡념없이 걷다보면 아포리아 시대임을 잊게 된다. 기적처럼 태어나 기적으로 살아 남고 이렇게 맑은 공기 마신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가. 20세기말 인터넷에 이어 21세기 들어 스마트폰과 AI젯봇의 햬택을 산책 중에도 누리니 인간문명 이래 최고의 선물아닌가. 여름 에어컨과 겨울 난방의 호강은 수십년 전에도 누리지 못한 거 아닌가.

 

호수공원 도서관이나 체육센터 카페에서 몇시간 독서의 즐거움을 갖는 것도 큰 복이다. 역사,심리, 환경, 철학서 등 다양한 책을 읽으며 늙어서도 배우고 깨닫는 즐거움을 느낀다. 공자말씀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不亦說乎)’가 새삼스레 다가온다. 내 이념과 다른 책도 읽다보니 내가 배우며 공감할게 너무 많다는 것을 느낀다. 나이 먹도록 이룬 거 없고 할일 없다는 자책으로 살 뻔한 걸 구제해준다. 살아온 삶에 대해서 참회하되 스스로를 용서해 후회와 괴로움을 떠나 보내게 된 것도 다행이다.

 

특히 최근에 읽은 동화책 긴긴밤’(루리 글.그림, 문학동네 )은 어떤 무게있는 저술보다 감동을 주었다. 코풀소와 팽귄의 수난 속 동행, 그 가운데 발견하는 허망함 가운데에서의 삶의 의미와 희망, 사랑을 일깨워 줘 여운이 컸다. 그 여운으로 몇시간 산책과 늦은 밤 잠자리에서도 행복감을 느꼈다. 게다가 오랜만에 친구와 친지와 만나 고난했던 삶을 이야기하며 함께 동행해 왔음을 깨닫고 우리로서의 공감과 연대감을 갖게된다. 이렇게 오래 살며 누리는 복이 아니겠는가. 일찍 세상 떠났으면 어찌 이같은 덤을 얻을수 있었겠는가.

 

아포리아 시대의 만족과 행복은 무책임, 이기적인가? 아포리아 극복의 시도인가?

 

길 잃은 아포리아 시대에 너무 행복감을 만끽하기에 내가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보신과 사고에 젖어있는 건 아닌지 반성을 해본다.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사명감 없이 그저 안주하고 있는 거 아닐까 하는 자책으로 변명거리도 찾게 된다.

 

애초 아포리아라는 용어가 생겨난 그리스 시대의 철학자들은 아포리아를 헤쳐나갈 수사학(lehtoric)을 강조했다. 명확하고 합리적 논리로 대중과 소통, 설득하는 로고스(logos)를 지도자의 덕목으로 가르쳤다. 그리고 그 윗단계로 감동을 주는 열정적 태도 에토스(ethos)가 제시됐고 최상의 덕목으로 아픔과 고통, 슬픔에 공감하는 파토스(pathos)를 꼽았다. 파토스적 공감이야말로 아포리아를 극복하는 경지인 것이다. 이같은 수사학의 단계를 보면 그리스의 소피스트들을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궤변론자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렇다면 소크라테스도 궤변론자라고 할 수 밖에 없다. 

 

▲ 동화 긴긴밤의 삽화, 코뿔소의 고난속 동행에서 허망함 가운데에서의 삶의 의미와 희망, 사랑을 배우게 된다. 동화에서의 공감대를 확산해 아포리아 시대의 좌표를 찾을수도 있을 것이다.

 

동화책 긴긴밤을 보내준 며느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삶의 고난과 기적’‘우리’ ‘동행’ ‘공감긴긴밤을 통해 만나게 해줘 고맙다. 서윤이도 읽었나? 느끼는게 있을 거 같다. 사촌동생 하연이도 한글을 깨우쳤으니 읽게 해보자. 루리의 글뿐 아니라 그림도 좋으니까~ 할머니도 읽으시겠단다. 우리부터 시작해 동행의 의미와 감사함을 확산시켜보자. 그러다보면 언젠가 세상 어지럽게 하는 정치 사회 종교도 서로 소통, 공감, 정화되고 제대로 갈을 찾을수 있을거 같네~ ”

 

. 외가 식구들하고 친구들한테도 엄청 추천하고 있어요. 아버님께서 공감해주시니 너무 기분이 좋습니다!” 

 

동행하며 공감하니 살맛이 난다. ‘아포리아는 절망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지닌 희망이라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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