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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대만 지도자 분단 66년만에 정상회담

문윤횽 | 기사입력 2015/11/10 [11:30]
양안관계 새 역사 쓰는 시진핑 “대만의 AIIB·일대일로 참여 환영"

중국-대만 지도자 분단 66년만에 정상회담

양안관계 새 역사 쓰는 시진핑 “대만의 AIIB·일대일로 참여 환영"

문윤횽 | 입력 : 2015/11/10 [11:30]



중국과 대만의 정상이 분단 66년 만에 처음으로 손을 잡았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마잉주(馬英九) 대만 총통은 11월7일 오후 3시(현지시간) 싱가포르 샹그릴라 호텔에서 첫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관계의 평화적 발전 방안을 논의했다고 관영 신화통신 등이 전했다.
 
1949년 분단 이후 양안 지도자가 국가원수이자 정부 대표 자격으로 한 테이블에 앉은 것은 처음이다. 시 주석은 “양안 관계의 역사적인 한 페이지를 열었다”며 “역사는 오늘을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과 마잉주 대만 총통이 11월7일 싱가포르 샹그릴라 호텔에서 회담에 앞서 악수한 것을 두고 ‘분단 66년만의 악수’라고 중국 언론은 평가했다.     ©


시 주석과 마 총통은 1992년 합의한 '하나의 중국'이란 원칙을 골자로 한 '92공식(九二共識)의 중요성을 재확인했다. 시 주석은 회담에서 양안 동포가 ▲'92공식' 견지 ▲공동의 정치적 기초 공고화 ▲평화발전의 길 견지 ▲양안관계의 발전이란 정확한 방향 견지 ▲양안 교류협력 심화 ▲양안 동포의 복지 증진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의 공동 모색 ▲민족 부흥의 위대한 영광 공유 등을 해 나가자고 제안했다.
 
시 주석은 대만이 적절한 방식으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가입하고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에 참여하는 것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AIIB는 중국 주도로 설립되는 첫 국제금융기구로 한국 영국 등 57개국이 창립멤버로 올해말 출범할 예정이다.
 
마 총통도 양안의 평화발전을 위한 5대 주장으로 ▲'92공식'의 공고화 ▲적대 상태의 완화와 분쟁의 평화적 처리 ▲양안교류의 확대 ▲양안 핫라인 설치 ▲공동 중화문화 진흥을 제시했다. 양안 핫라인 설치와 관련, 양측은 우선 양안 사무 담당 기구에서 먼저 핫라인을 개설하기로 합의했다. 양측은 양안 정상회담을 정례화하는 데에도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회담이 끝난 뒤 양측은 각자 기자회견을 했으며 마 총통은 기자회견에 직접 나서 자신이 시 주석에게 중국이 양안 문제를 풀려면 무력이 아니라 평화를 사용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중국에 미사일 배치에 대해 주의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시 주석은 '미사일 배치는 대만과 관계없는 문제'라고 답했다고 전했다.
 
장즈쥔(張志軍) 중국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 주임은 기자회견에서 시 주석은 회담에서 '하나의 중국' 원칙을 강조하면서 "양안의 최대 위협은 대만 독립 세력"이라며 대만의 독립 세력이 재앙을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전했다. 시 주석은 회담 모두 발언에서도 "우리는 뼈와 살이 터져도 끊을 수 없는 형제이자 피가 물보다 진한 한 가족(친척)"이라고 강조했다.
 
▲ 신화통신은 양안 지도자 역사적인 만남이라는 이름으로 특집코너를 마련해 11월7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마잉주 대만 총통의 회담 소식을 전했다.     ©


시 주석의 대만 독립 경고는 2016년 1월 대만 대선에서 집권 가능성이 큰 야당인 민진당 차이잉원(蔡英文) 후보가 집권시 대만 독립 노선을 추구할 가능성에 대해 미리 경고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시 주석은 회담에서 "양안의 66년 역사는 그 어떤 비바람에도 우리를 갈라놓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강조했다고 중국 언론들이 전했다. 두 정상은 회담에 앞서 샹그릴라호텔 아일랜드 볼룸에 등장해 70초 정도 손을 맞잡고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양측은 중국이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점을 감안해 일반적인 정상회담의 형식을 취하지 읺았다. 회담장에는 중국의 오성홍기(五星紅旗)도, 대만의 청천백일기(靑天白日旗)도 보이지 않았다. 시 주석은 붉은 넥타이, 마 총통은 파란 넥타이를 맸다.
 
정상회담 뒤 기자회견도 따로 가졌다. 마 총통은 직접 기자회견을 했지만 시 주석은 기자회견에 나오지 않았다. 양측은 그러나 두 정상이 대등한 지위에서 만났음을 보여주려는 노력도 보였다. 두 정상은 상대방을 '선생(先生)'으로 호칭했다. 양측은 이날 기자회견 뒤 진행된 만찬의 비용을 절반씩 부담했다. 회담장 대여료도 절반씩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양안이 동등한 자격으로 만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만찬은 '편찬(가벼운 식사)' 형식으로 진행하지만, 마 총통이 가장 좋아한다는 대만 ‘마쭈라오주(馬祖老酒)’ 8통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만의 유명 고량주인 '마쭈라오주‘로 66년 만의 '화해 건배'를 하려는 것이다. 마쭈(馬祖·대만의 지명)라는 술 이름을 직역하면 '마씨 조상'이란 의미가 된다.
 

지난 2005년 4월 후진타오(胡錦濤) 당시 공산당 총서기와 롄잔(連戰) 국민당 주석이 베이징에서 첫 국공 수뇌회담을 가진 이후 지난 5월 시 주석과 현재 국민당 대선후보인 주리룬(朱立倫) 주석간 회담, 지난 9월 중국 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한 롄잔 명예주석과 시 주석간 회담에 이르기까지 모두 7차례의 수뇌회담이 있었다. 그동안 양안 사이에서는 지난 10년간 대만 국민당과 중국 공산당 일인자 간 접촉이 7차례 있었을 뿐 양안 최고 지도자 간의 만남은 없었다.
 
중국과 대만은 1920∼30년대 항일전선에서 두 차례의 국공합작이 결렬된 끝에 양측 간에 수많은 희생자를 낸 처절한 국공내전을 거쳐 지난 1949년 분단됐다. 냉전시기 '대만통일'과 '대륙수복'이라는 상이한 통일정책과 함께 무역, 교통, 서신왕래 등 공식 관계를 단절하는 '삼불통(三不通)' 정책을 실시하고 민간 교류도 엄격히 금지하며 극도의 대립관계를 보여왔다. 그러다 1992년 11월 중국의 해협양안관계협회와 대만의 해협교류기금회가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중국과 대만이 각자의 해석에 따른 국가 명칭을 사용하기로 하는 것을 골자로 한 '92공식'에 합의하면서 본격적인 대화의 물꼬가 트였다. 1993년 4월에는 왕다오한 해협회장과 구전푸 해기회장이 싱가포르에서 양안 고위당국자간에 처음 공식 접촉을 갖기도 했다. 이번 정상회담으로 주로 경제, 인적교류 방면에 치중했던 양안 협상이 앞으로 정치·군사 영역으로 확대되면서 본격적인 해빙 무드에 접어들지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하지만 2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대만의 총통선거 결과에 따라 양안관계가 달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번 양안 정상회담이 내년 1월 대선에서 패색이 짙은 친중(親中) 국민당을 지원하기 위해 성사됐다는 해석이 나오지만 집권 가능성이 큰 민진당에도 신호를 보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양안 정상회담의 정례화 논의로 차이잉원 민진당 대선후보에게 '하나의 중국' 원칙을 견지하며 독립노선을 추구하지 않는 한 어떤 총통이라도 만남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려 한다는 것이다.
 
中·대만 분단 후 첫 정상회담…"시마공식 채택"
 

중국과 대만의 현직 최고지도자가 11월7일 분단 66년만에 첫 정상회담을 하고 서로 상대를 정부로 인정했다. 이번 회담은 1949년 분단 이후 양안의 지도자가 국가원수이자 정부 대표 자격으로 만난 것은 처음 있는 일로 긴장과 대립으로 점철됐던 66년 양안 분단사에 한 획을 긋는 역사적 회담으로 평가된다.
 
마 총통은 지난 5일 기자회견에서 "이번 회동은 양안 정상회담의 상시화를 위한 첫걸음"이라고 평가하며 시 주석과 만나면 대만이 외교적 고립을 탈피할 방안을 협의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대만 연합보(聯合報)는 이번 시마회(習馬會·시주석과 마총통의 만남)에서 양측이 합의사항을 공유하는 시마공식(共識)이 새롭게 채택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그동안 양안 사이에서는 지난 10년간 국민당과 공산당 영수 자격으로 7차례의 접촉이 있었을 뿐 국가원수간의 만남은 없었다.
 
중국과 대만은 1920∼30년대 항일전선에서 두 차례의 국공합작이 결렬된 끝에 양측 간에 수많은 희생자를 낸 처절한 국공내전을 거쳐 1949년 분단됐다. 냉전시기 '대만통일'과 '대륙수복'이라는 상이한 통일정책과 함께 무역, 교통, 서신왕래 등 공식 관계를 단절하는 '삼불통'(三不通) 정책을 실시하고 민간 교류도 엄격히 금지하며 극도의 대립관계를 보여왔다.
 
그러다 1992년 11월 중국의 해협양안관계협회와 대만의 해협교류기금회가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중국과 대만이 각자의 해석에 따른 국가 명칭을 사용하기로 하는 것을 골자로 한 '92공식(九二共識)'에 합의하면서 본격적인 대화의 물꼬가 트였다. 1993년 4월에는 왕다오한(汪道涵) 해협회장과 구전푸(辜振甫) 해기회장이 싱가포르에서 양안 고위당국자간에 처음 공식 접촉을 갖기도 했다. 이번 정상회담으로 주로 경제, 인적교류 방면에 치중했던 양안 협상이 앞으로 정치, 군사 영역으로 확대되면서 본격적인 해빙 무드에 접어들지도 관심사다. 하지만 2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대만의 총통선거 결과에 따라 양안관계가 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양안관계 새 역사 쓰는 시진핑…對대만전략 수정했나
분단 후 작년 첫 장관급회담 이어 정상회담까지 단숨에 돌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마잉주 대만 총통의 역사적 정상회담이 성사된 배경에는 양측의 맞아떨어지는 이해관계가 있다는 분석이 많다. 현재의 안정적인 양안 관계 유지를 희망하는 중국은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온 대만 총통선거에서 '독립노선'을 추구하는 야권이 집권하기를 원치 않고, 국민당은 정권 재창출에 '올인'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 주석과 마 총통의 이번 만남이 분단 이후 66년 만에 이뤄지는 첫 정상회담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중국의 행보에는 선거 개입을 뜻하는 '대만판 북풍(北風)' 이상의 함의(含意)가 있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시진핑 체제의 대만에 대한 파격 행보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중국과 대만은 2014년 2월 11일 난징(南京)에서 분단 이후 65년 만에 처음으로 장관급 회담을 갖고 '당국 간 직접대화'의 시대를 열었다. 이는 민간대화가 시작된 지 21년 만에 만들어진 성과물로, 대만 언론은 '신기원' 등의 표현을 써 가며 의미를 부여했다.
 
중국의 장관급 회담 수용은 '큰 양보'로 볼 수 있는 측면이 다분했다. 중국 입장에서 양안의 당국 간 회담은 중국이 한결같이 강조해온 '하나의 중국' 원칙을 스스로 훼손하는 의미로 비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의 돌파구가 열리면서 양안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도 함께 고조됐다. 마 총통 측에서는 오래전부터 정상회담을 희망해왔기 때문에 역사적 정상회담 성사의 최종 변수는 역시 시 주석의 결단이라는 관측도 같이 제기됐다. 시 주석은 장관급 회담이 끝난 지 일주일 만에 이뤄진 롄잔(連戰) 대만 국민당 명예주석과의 회동에서 '충분한 사전 준비'를 전제로 한 정상회담에 공감을 표시했다.
 
이번에 합의된 정상회담은 그의 적극적인 대만정책의 '결정판'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시 주석은 중국국가 지도자로는 이례적으로 항일(抗日)전쟁 과정에서의 국민당의 활약을 공개적으로 거론하고 항일 열병식 등 각종 국가행사에 국민당 노병들을 공식 초청해왔다. 롄잔 전 명예주석과의 2014년 회동에서는 양안이 혈통과 정신, 역사 문화에 뿌리를 둔 하나의 공동체라는 점을 강조하는 한편 대만 동포사회가 선택한 사회제도와 생활방식을 존중한다는 뜻도 강하게 표명했다.
 
지난 5월에는 베이징에서 주리룬(朱立倫) 국민당 주석과 국공 수뇌회담을 열었다. 이는 2009년 5월 후진타오(胡錦濤) 당시 공산당 총서기와 우보슝(吳伯雄) 국민당 주석 간의 회담 이후 6년 만에 열린 양당 수뇌회담이었다. 새로워 보이는 시진핑 체제의 이같은 대만 정책은 시 주석의 개인적인 정치경력과도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분석들이 많다. 그는 1985년부터 2002년까지 샤먼(厦門), 닝더(寧德), 푸저우(福州) 등 대만과 마주한 푸젠(福建)성 일대에서 17년 반을 근무했다.
 
푸젠성 성장까지 역임한 그는 지난해 11월 이 일대를 시찰하던 중 대만 상인들과 만나 "양안은 같은 조상과 같은 뿌리를 갖고 있다. 피는 이어져 있고 문화는 서로 통한다"며 "함께 손을 잡고 발전하고 융합발전하지 않을 어떤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 특히 그의 강력한 권력기반은 적극적인 양안정책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시 주석은 2014년 5월 열린 '중앙통일전선공작회의'에 참석해 통일전선 분야까지도 자신의 '직할체제'로 편입됐음을 시사했다. 중국의 정치체제에서 통일전선 업무는 민족 간 갈등, 종교문제 등을 조정하는 일을 뜻한다. 대만, 홍콩과의 관계도 넓게는 이 범주에 들어간다.
 
그러나 비교적 유연해 보이는 시 주석의 이같은 양안 정책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대전제로 한 것으로, 만약 대만이 '독립행보' 등을 보이게 될 경우에는 결국 강경한 입장으로 선회하게 될 것이라고 관측통들은 전망한다.
 

중·대만 정상회담, 대만 총통선거 판세 바꿀까
 
중국과 대만이 11월7일 싱가포르에서 개최한 첫 정상회담이 2016년 1월 치러지는 대만 총통 선거의 판세에 영향을 미칠지가 최고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마잉주(馬英九) 대만 총통은 11월5일 정상회담이 총통 선거 때문이 아니라 양안 후세대의 복지와 행복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선거를 두 달 앞두고 급작스레 회담이 잡혔다는 점에서 선거 판세에 영향을 주기 위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오랫동안 고수해온 '하나의 중국' 원칙이 훼손되는 것까지 감수하고 국공 영수회담을 국가원수급 회담으로 격상시킨 것은 대만 총통 선거가 양안 관계에 심각한 위기를 가져올 가능성을 우려한 데 따른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이 양안 관계를 규정하는 핵심 원칙인 '92공식'(九二共識)을 인정하지 않는 차이 후보가 총통 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양안 관계가 급속히 냉각하고 미국이나 주변국과의 분쟁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하고 있다는 관측이다. 92공식은 중국과 대만이 1992년 양측 민간기구를 통해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각자의 해석에 따른 명칭을 사용(一中各表)하기로 합의한 것을 이른다.
 
국민당은 지난 10월 훙슈주(洪秀柱) 후보에 대한 지명을 철회하고 주리룬 주석을 새 대선후보로 선출하는 등 불리한 선거 판세를 돌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주 후보의 지지율은 약 20%로 반중(反中) 독립 성향의 민진당 차이잉원 후보에 20%포인트 격차로 뒤처져 있다.
 
중국 당국은 중국 관광객이 대만에서 불필요한 분쟁을 일으켜 선거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을 막으려고 선거 전 한달 동안 대만 여행을 대폭 제한하라고 지방 정부에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댄 블루먼솔 미국기업연구소 연구원은 "중국이 대만과의 관계 개선을 원했다면 공식 접촉을 수년 전에 할 수 있었으며 대만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해제하고 대만 고립 정책을 멈췄어야 한다"며 "이번 회담은 다가오는 총통 선거에서 패배할 것으로 보이는 마 총통의 국민당에 생명선을 제공하기 위한 시도가 분명하다"고 말했다.
 

▲ 차이잉원 대만 민진당 대선 후보     ©

그러나 전문가들은 중국의 노력에도 이번 회담이 국민당에 유리한 결과를 가져다줄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왕예리(王業立) 대만대 정치학과 교수는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정상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되더라도 국민당이 유권자 중 소수인 일부 부동층의 지지를 얻도록 돕는데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린충핀(林中斌) 전 대만 행정원 대륙위원회 부주임은 회담에서 마 총통의 역할이 빈약한 것으로 인식되면 2014년 11월 지방선거에서 국민당이 참패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 학생들의 입법원(국회) 점거 사태보다 더 나쁜 영향을 국민당에 미칠 것이라고 관측했다. 마이클 콜 노팅엄대 중국 정책연구소 수석 연구원은 <워싱턴포스트>에 "많은 대만인들은 회담을 국민당에 유리하도록 판을 흔들려는 중국의 마지막 시도로 보고 있다"며 "소셜미디어와 저녁 토크쇼에서는 마 총통에 대한 분노가 표출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대만 야당과 시민단체는 입법원 주변 등에서 회담 철회와 마 총통 해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민주투진(民主鬪陣)과 대좌유신(台左維新), 몽유예문공작실(夢由藝文工作室) 등 학생운동단체 회원 4명은 자비로 싱가포르에 가서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으며 싱가포르주재 대만대표처에 마 총통이 대만 국민을 대표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청원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중국이 차이 후보의 총통 선거 승리 이후에도 최고위급 회담을 지속함으로써 양안 관계의 개선 추세를 유지하기 위해 이번 회담을 결정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중국문제 전문가인 정융녠(鄭永年) 싱가포르국립대 동아연구소 소장은 <명보(明報)>에 "중국 당국이 단지 대만 선거를 조종하기 위해 회담을 연다고 보는 것은 중국과 시 주석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이라며 정치 교류가 오랫동안 경제무역 협력과 대중 교류에 뒤처져 경제 발전을 가로막는 것을 방지하려는 노력이라고 분석했다.
 
중국·대만 정상회담이 남북관계에 어떤 시사점이 있나
 
중국과 대만이 분단 66년 만에 처음으로 정상회담을 열고 양안 관계의 미래 발전 방안을 논의했다. 11월7일 싱가포르 샹그릴라호텔 회담장에서 만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마잉주 대만 총통은 1분 이상 손을 맞잡고 인사했다. 회담 모두(冒頭)발언에서 시 주석은 “어떤 비바람도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다”고 했고, 마 총통은 “양안 인민은 중화민족”이라고 화답했다. 회담에서는 1992년 중국 해협양안관계협회와 대만 해협교류기금회가 ‘하나의 중국’을 원칙으로 정립한 ‘92공식(九二共識)’을 재확인하고 양안 간 핫라인 설치 등에 합의했다.
 
이번 정상회담은 양안간 거리를 좁힐 만한 실질적 성과를 낳지는 못했지만, 양안간 다리를 놓은 것은 분명하다. 그동안 양안 관계 진전으로 상호 신뢰가 깊어졌기에 가능한 일이다. 2016년 1월 대만 총통 선거용 이벤트 논란에도 불구하고, 중국·대만 국민들과 전세계 화교들은 ‘시마회(習馬會·시 주석과 마 총통의 만남)’에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이번 회담은 양안 분단사에 한 획을 긋고 정치적 통일을 향한 첫걸음을 내디뎠다는 평가를 받는다.
 
회담장에는 중국 오성홍기나 대만 청천백일기를 걸지 않았고, 두 정상은 상대방을 공식 호칭 대신 ‘선생’이라 불렀다. ‘하나의 중국’을 추구하면서도 서로를 대등한 위치의 국가원수이자 정부 대표로 인정한 것이다. 양안 관계의 변화를 예고한 대목이다. 앞으로 양안 관계가 급진전되면 동북아 평화의 새 길을 열어나갈 수 있다. 이에 한국 정부는 동북아 질서 변화를 주시하면서 시의적절한 대응을 해야 할 것이다.
 
중국·대만 정상회담은 남북관계에도 적잖은 시사점을 준다. 남북한은 남북 이산가족 상봉, 민간교류 확대, 당국회담 개최 등을 골자로 한 8·25 고위급접촉 합의를 도출해냈지만, 이산가족 상봉이 마무리되고 민간교류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당국회담 개최는 별다른 진전이 없다. 한국 정부가 세 차례에 걸쳐 당국회담 예비접촉을 열자고 제의했으나 북측이 답을 내놓지 않았다. 요구사항 관철을 위한 지연 전술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1월5일 통일준비위원회 회의에서 “남과 북의 상호 관심사와 한반도의 미래를 위한 논의들을 하루속히 시작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남북 당국회담을 조속히 열어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나아가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통해 산적한 현안들을 한꺼번에 풀어나가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 (精吾 문윤홍·칼럼니스트·moon47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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