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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기도 성지’ 삼각산 금선사 목정굴과 템플스테이

문윤홍 | 기사입력 2023/04/03 [21:07]
순조 탄생의 영험담이 전해지는 목정굴…나만의 휴식 필요할 때 금선사 템플스테이

‘관음기도 성지’ 삼각산 금선사 목정굴과 템플스테이

순조 탄생의 영험담이 전해지는 목정굴…나만의 휴식 필요할 때 금선사 템플스테이

문윤홍 | 입력 : 2023/04/03 [21:07]

삼각산 금선사(三角山 金僊寺)청와대와 경복궁이 위치한 인왕산(仁旺山)이 바로 보이는 종로구 구기동에 위치해 있다. 자하문터널을 지나 구기터널 입구에서 이북5도청을 뒤로한 후 북한산국립공원 비봉코스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세속의 세계를 벗어난 첫 번째 관문인 금선사 일주문을 만나게 된다.

 

금선(金僊)은 부처님을 지칭하는 말로, 즉 금선사는 부처님 절이라는 뜻이다. 금선사는 여말선초(麗末鮮初)에 창건된 사찰로 전해진다. 금선사에 대한 기록은 창건주 이외에는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를 만든 김정호(金正浩)가 제작한 서울 지도인 수선전도(首善全圖)에 절 이름이 나와 있는 것을 보면 이 절의 사세(寺勢)가 결코 약한 곳은 아니었음을 유추해볼 수 있다.

 

서울시 종로구 비봉길 137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 조계사 말사인 금선사는 600여년 전 조선초 태조 이성계(李成桂) 곁에서 조선의 건국과 한양 천도를 도왔던 무학(無學)대사가창건했다.

 

▲ 삼각산 금선사의 일주문  © CRS NEWS


무학대사가 창건…300일 관음기도로 조선왕조의 대를 이은 순조 탄생의 영험담 전해져

 

금선사에 전해져 오는 대표적 이야기가 조선 제23대 왕이었던 순조(純祖)의 탄생에 얽힌 영험담이다. 금선사에서 수행한 스님의 도력(道力)으로 조선왕조의 대()를 잇게 된 이야기가 전래되고 있다. 불교를 배척하고 유교를 숭상하는 배불숭유(排佛崇儒)의 시대라 불법(佛法)을 폄훼하려는 움직임이 노골적으로 일어나고 있던 시대였던 만큼 운신의 폭이 좁았던 스님들을 옭죄는 이야기와 스님의 도력이 드라마틱하다.
 
조선 제22대 정조(正祖) 때의 일이다. 암행어사 박문수(朴文秀)가 민정을 살피기 위해 경향(京鄕) 각지를 유랑하다가 경북 문경에 있는 사불산(四佛山) 대승사(大乘寺)에 들렀는데 젊은 스님들이 전각 위에 걸터앉아 재미나게 장기 두고 있는 광경을 목격하게 됐다

장 받아라.” 한 스님이 소리쳤다. 옆에 있던 스님이 장은 무슨 장을 받으라는 게요?”
 
스님, ()장입니다.” 다시 옆에 있던 스님이 말()로 상을 치면서 차()의 길을 트면서 큰 소리로 멍군을 받으시오라고 소리 질렀다.

 

암행 길에 오른 박문수는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아니 스님들이 절에서 염불(念佛)이나 참선(參禪) 같은 수행을 해야지 이 무슨 신선놀음인가. 또 깨우침을 얻은 스님들이라면 세간에 나가 널리 부처님 가르침을 펼쳐야지 절에 틀어박혀 장기놀이를 하다니.”

 

못마땅하게 생각한 박문수는 한양으로 돌아와 이 사실을 임금에게 고하였다. “전국을 돌아보니 중들이 사찰에서 장기나 두고 무위도식(無爲徒食)하고 있으니 무엇인가 일을 시키지 않으면 안 될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가뜩이나 불교를 배척해 왔던 조정은 전국의 사찰에 명하여 스님들이 닥종이로 한지를 만들어 진상케 했다. 닥종이가 없는 금강산과 같은 절에 있는 산승(山僧)들에게는 석청에 잣을 넣어 만든 잣박산을 진상하도록 명했다.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지방 토호세력들도 스님들에게 족보를 만들 종이를 바치라느니 잔치 음식을 만들어 오라느니 하면서 괴롭히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니 진정으로 수행하려고 하는 스님들도 정진을 할 수 없게 되고 급기야는 절을 떠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이러한 세태를 보고 대구 팔공산 파계사(把溪寺)에서 수행하고 있던 용파(龍波)스님은 크게 염려하며 시정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관청에 가서 호소를 해 보기도 하고, 상소문을 써서 올려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이거 도저히 안되겠구나. 다른 방도를 써야겠다.”

 

용파스님은 부처님의 가피를 입어 이 일을 해결해야겠다고 작심하고 거제도로 들어가 100일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스님은 아예 들어갈 때 배삯만 가져가고 나올 때에는 물 위로 걸어 나올 각오로 기도에 임했다. 식량도 딱 100일치만 가지고 섬으로 들어갔다.


내 이곳에서 신통력을 얻기까지 단 한 발짝도 물러나지 않으리라.” 그러니 기도 정진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식량도 다 떨어졌고, 며칠간 굶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속에 노인이 나타나 호통을 치며 이렇게 말했다.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서 무슨 수행을 그리도 열심히 하시는가. 이제 식량이 없으니 큰 일이구만. 며칠 뒤에 내가 식량을 해결해 줄 터이니 우선 저 아래에 있는 돌꽃(石花)으로 끼니를 연명하시오.”
 
꿈에서 깬 용파스님은 노인의 말대로 바닷가로 내려가 보니 석화가 있었다. 3일을 이것으로 연명하니 무서운 태풍이 몰아치더니 육지에서 배가 한 척 밀려왔다. 그 안에는 쌀 두 가마니와 소금 한 말이 들어있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로구나. 분명 이것은 부처님이 보내신 게 틀림없을 것이야.” 마음을 다잡은 용파스님은 무섭게 수행에 몰두해 드디어 신통력을 얻어 바다 위를 걸어서 육지로 나왔다고 전해진다.

 

이것을 본 사람들은 용이 파도를 타고 오는 것과 같다고 하면서 용파(龍波)스님이라고 불렀다.

 

육지로 나온 스님은 축지법을 써서 한달음으로 한양에 당도했다. 스님이었지만 산발(散髮)을 한 상태로 임금을 만날 날을 기다리며 물지게를 지고 물을 팔았다. 그러나 임금을 만나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도저히 안되겠다. 신통력을 써야겠다.”

 

스님은 한강 물을 청룡과 황룡이 엉키어 올라가는 서기방광(瑞氣放光)의 신비한 모습을 만들었다. 때마침 대궐을 거닐던 정조 대왕이 이 광경을 보고 그 연원을 알아보게 했다. 신하들은 급히 상서로운 기운이 나오는 집을 추적해 보니 다 늙은 노인이 누더기 한 장을 덥고 드러누워 있었다. “도대체 당신은 누구인데 여기에 있는 거요?” “시골에서 온 중입니다.”
 

용파스님은 자신이 이곳에 오게 된 사연과 임금을 만나서 하려고 하는 말에 대해 소상하게 설명했다. “참으로 기이한 인연이오. 나는 임금님을 모시는 별감이오. 내 마침 전하의 명을 받들기 위해 이곳에 왔으니 빨리 가서 전하를 알현하시지요.”

 

궁궐로 들어간 용파스님은 임금에게 눈물로 호소했다. “사람들 가운데에는 게으른 사람도 있고 부지런한 사람도 있는데, 어찌 전하께서는 일부 스님들의 게으른 모습만 보시고 전체인양 처분을 내리시니 조선 팔도의 수행자들이 곤경에 처해 있습니다. 이 처분을 거두어 주소서.” 정조는 보통 스님이 아님을 단박에 알고 조건을 내걸었다.
 
좋소. 그렇다면 그대도 나의 부탁을 들어주시오. 아직 내게 후사가 없어 걱정이니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시오.” 용파스님은 정조의 청을 받아들이고 잠시 천안통(天眼通)을 열어 이 문제를 해결해 줄 인물을 물색했다. “, 전하. 그렇게 해 올리겠습니다.

 

다만 소승이 만나 함께 기도해야 할 스님이 있으니 그렇게 하도록 윤허해 주십시오.” 정조의 허락을 받은 용파스님은 금선사로 발길을 옮겨 그곳에서 주석(駐錫)하고 있던 농산(聾山)스님을 만났다. “제가 조선에서 스님들에게 박해를 가하는 폐단을 없애기 위해 임금과 약조를 했는데, 소승이 임금의 후사를 이어주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선정(禪定)에 들어 살펴보니 이 일을 해 주실 분이 농산스님 밖에 없어 보여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소승은 아직 이생 에서 할 일이 많아 지체해야 되겠기에.”

 

그렇게 해서 용파스님은 남양주 수락산 내원암(內院庵)에서, 농산스님은 금선사 목정굴(木精窟)에서 300일 관음기도에 들어갔다. 기도 정진한 지300일째가 되어 회향하던 날,정조의 후궁인 수빈 박씨가 태몽을 꿨다. “소승은 농산이라는 사람인데 삼각산 금선사에서 관음 정진 중입니다. 용파스님의 청으로 이제 제가 수빈 마마의 몸속에 들어 가 이 나라 대를 이을 것이니 그리 알아주십시오.”

 

▲ 농산 스님이 300일 관음기도 후 순조(純祖)로 환생했다고 전해지는 금선사 전경.   © CRS NEWS


다음날 왕실에는 발신을 알 수 없는 봉서(封書) 하나가 올라왔는데 경술(庚戌) 618일 세자탄강(世子誕降)’이라 적혀 있었다. 수빈 박씨는 급히 금선사에 사람을 보내 자초지종을 알아보니 목정굴에서 정진하던 농산스님이 앉은 채로 열반에 드는 이른바좌탈입망(坐脫入亡)했고, 굴 안에는 상서로운 기운이 가득했다고 전해왔다.

 

경술년 618일이 되니 서북쪽으로부터 맑고 붉은 서기가 왕실에 닿아 산실청(産室廳)을 휘감고 있었다. 왕실에서 관원들에게 그 진원을 추적하게 하니 그곳은 다름 아닌 바로 목정굴이었다. 그 상서로운 기운은 왕실로 이어져 수빈 박씨의 산실과 연결되어 있었다.

 

농산스님의 입적과 순조(純祖)로의 환생(還生)을 목도한 정조는 조선에서 스님을 피팍하던 폐습을 없애고 내수사(內需司)에 명하여 목정굴 위에 절을 크게 중창하게 하였으니 곧 금선사이다. 이후 금선사는 왕실의 비보사찰(裨補寺刹)이 됐다. 지금도 금선사에서는 매년 음력 618일에 순조의 탄신제(誕辰祭)를 올리고 있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농산스님이 금강산 만회암(萬灰庵)에서 평생 천수주력으로 도력을 얻었으며 전남 완도에 있는 고금도에서 석화를 양식으로 1000일 기도를 한 뒤 도를 통했다고 전해진다.

 

금선사 법회가 열리는 반야전(般若殿)을 지나면 200년이 넘은 소나무가 중앙에 자리하고 있으며, 소나무를 지나서 108계단을 오르면 금선사의 주불이 모셔진 대적광전(大寂光殿)이 있다. 대적광전은 사찰의 가장 중심부이면서 가장 높은 곳에서 그 위용을 과시하는데, 우측으로는 삼성각(殿閣)이 있고, 북한산의 일급수가 모였다가 흘러내리는 홍예교가 자리해 있다.

 

대적광전 아래에 있는 미타전(彌陀殿)과 연화당은 정면 3, 측면 1칸의 콘크리트 2층 건물로, 2004년 법안 스님이 신축했다. 1층은 연화당(蓮花堂)’이라는 편액이 붙은 건물로, 영가들의 유골(영옥 처리)과 위패를 봉안하는 추모 시설로 활용되고 있다.

 

금선사 신도를 중심한 소량(600)의 추모관이며 냉난방을 겸비한 최신형 공간으로 아미타원불과 지장보살원불이 내부를 장엄하고 있으며 아늑한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2층은 제사의식과 각종 강의를 위한 미타전이 있다.

홍예교에서 맞은편으로 보이는 적묵당(寂默堂)5칸 전통 목조건물로, 원형 초석을 두고 그 위로 두리기둥을 세워 익공(翼工)을 받친 모습인데, 여느 사찰의 요사채처럼 중앙 3칸은 툇마루가 있는 다담방을, 좌우 협칸은 요사채로 구성되어 있고 아래에는 대중 공양간인 심검당이 위치해 있다. 반야전 아래엔 농산 스님이 300일 기도한 후 순조임금으로 환생한 관음기도 성지인 목정굴이 위치하고, 이 목정굴 수월관세음보살이 바라보는 정면에는 인왕산이 보인다.

 

금선사와 목정굴은 일제시대 이후 폐사(廢寺)가 돼 많은 사료(史料)들이 분실됐다. 그러나 1949년 도공 스님과 철우 스님의 중건으로 조금씩 모습을 찾아가다가 법안 스님이 1994년 부임하면서 불사를 시작해 19963월 복원해 목정굴에 수월관세음보살을 봉안하고 전통사찰로 등록했다. 서울시 유명문화재 161호로 지정된 금선사 신중탱화는 지정문화재로서는 유일하다. 금선사 신중탱화는 1887년 그려진 불화로, 그림 상단에는 제석천이, 하단에는 위태천이 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모두 불법(佛法)을 옹호하고 수호하는 신중 가운데 제왕들이다.

 

관음기도 성지 목정굴…자식 점지하는 영험 전해져

 

관음 기도를 하고 관세음보살을 만날 수 있는 관음 도량에는 각 사찰마다 특성들이 있다. 이러한 대표적 특성들은 바로 관세음보살보문품에서 말하는 어려움에서의 구제와 바라는 것을 얻는 구원에 대한 것인데, 금선사에는 아이가 없는 사람들이 간절하게 기도 발원을 하면 아이를 얻을 수 있게 해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 목정굴 안에 모셔진 수월관음보살상.  © CRS NEWS


목정굴 안에는 수월관세음보살상 앞으로 물이 휘돌아나가게 설계돼 있다. 이는 삼각산에서 내려오는 물의 기운이 그곳에서 모였다가 나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관세음보살과 물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고요한 목정굴 내부는 그야말로 선정(禪定)에 들기 위한 최고의 장소가 아닐 수 없다. 목정굴은 24시간 개방하기 때문에 언제든지 기도할 수 있는 곳이다.

 

순조 탄생의 이야기가 바탕이 됐는지 금선사 목정굴에는 지금도 아이를 가지려고 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금선사 주지 스님도 아이를 낳고 싶어도 못 낳았던 사람들이 100일 기도 후 꿈을 이루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다고 증언한다. 그 중 최근의 한 사례로는 연구로 늦게 결혼한 박 모 교수(금선사 여신도)가 아이가 생기지 않아 목정굴 관세음보살상 앞에서 백일기도를 했다.

 

어느 날 박 교수는 목정굴 불상 옆에 물안개가 떠오르더니 스님이 가사를 수하고 아이를 점지해 주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그 뒤 박 교수는 실제로 건강한 아이를 낳았다.

목정굴 굴법당 바깥으로는 커다란 바위가 둘러싸고 있고, 그 바위 옆으로는 계곡물이 흐른다. 겨울에는 계곡물이 고드름처럼 얼어 있었지만 물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 이곳에서 앉아 기도하면 그 어떤 간절한 기도라도 성취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금선사 템플스테이는 외국인에게 인기…스님과 별빛 야행, 만다라 체험, 숲속 명상 등 특별프로그램도 진행

 

코로나 팬데믹으로 지난 2년여 동안 힘들게 보낸 사람들의 지친 심신을 추스르고 일상의 평안과 건강을 되찾는데 금선사 템플스테이가 주목받고 있다. 금선사 템플스테이는 최근 들어 내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들에게도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금선사는 도시형 라이프스타일의 현대인들에게 스트레스, 시름, 걱정에서 벗어나 걸림 없이 꿈꿀 수 있는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템플스테이 프로그램 중 하나인 싱잉볼과 함께 감미로운 기타연주를 들으며 눈을 감고 아무런 생각 없이 잠깐 누워 있다 보면 어느덧 지친 몸과 마음이 치유되어 가벼워짐을 느낄 수 있다. 또한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일반적으로 진행되는 사찰 안내, 싱잉볼 명상, 예불과 더불어 스님과 별빛 야행, 만다라 체험, 숲속 명상 등의 특별한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 금선사 템픞스테이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운영되고 있다. 금선사 홈페이지  © CRS NEWS


금선사의 사찰 안내와 싱잉볼 프로그램은 외국인 참가자들에게도 영어로 편안하고 여유롭게 진행이 되어 평일에도 외국인 참가자가 두드러지게 많다.

 

금선사에서는 템플스테이뿐 아니라, 전통 산사 문화재 활용사업을 통해 매년 5월과 10월에 역사 전문가와 함께 금선사에서 출발해 북한산 진흥왕순수비지(사적 제228) 답사를 할 수 있고, 월별로 금선사 신중도(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61)를 주제로 한 사불(寺佛) 체험과 함께 다양한 강의들도 접할 수 있다.

 

또한 202210월에는 금선사 해행당 앞에서 펼쳐진 크로스오버를 주제로 한 문화예술 음악 공연으로 서로 다른 종교와 여러 계층의 대중들에게 화합의 장이 마련이 되어, 금선사가 전통 산사(山寺)에서 문화예술 공간으로 탈바꿈되는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금선사 템플스테이 정기프로그램

 

1. 평일 휴식형

싱잉볼 명상과 함께하는 감미로운 음악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며 휴식과 재충전의 기회를 제공한다. 공양 시간, 예불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으며, 원할 시 체험 프로그램도 가능하다.

 

2. , 토요일 체험형
별빛야행, 숲속명상, 싱잉볼 명상, 참선, 예불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불교 전통문화 체험과 명상에 대한 이해를 높여준다.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은 고등학생 이상의 모든 내외국인 참가가 가능하다. 초등학생, 중학생, 고령자는 보호자를 동반해야 한다매주 월요일은 휴무이다.

 

수암(守岩) 문 윤 홍 大記者/칼럼니스트

moon47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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