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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대본에서 우리 모두는 배우"

문윤홍 대기자 | 기사입력 2023/02/01 [11:18]
김혜자 “우리 모두 인생의 멋진 대본 쓰고 멋진 연기자가 돼야”…신간 『생에 감사해』 베스트셀러 1위

"신의 대본에서 우리 모두는 배우"

김혜자 “우리 모두 인생의 멋진 대본 쓰고 멋진 연기자가 돼야”…신간 『생에 감사해』 베스트셀러 1위

문윤홍 대기자 | 입력 : 2023/02/01 [11:18]

 

  (守巖) 문윤홍 대기자 ,칼럼니스트 .


언제부턴가 "꽃길만 걸어라"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다. 특히 연초에 나누는 덕담으로 올해엔 꽃길만 걸으라고 축원하곤 한다. 이 말을 들으면 마치 우리 앞에는 가시밭길, 자갈길 같은 험한 길보다 비단길 같은 꽃길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고, 그래서 꽃길만 걸으며 사는 것이 바람직한 삶처럼 착각하게 한다.

 

살면서 듣는 말들 중에 인생은 고해(苦海)“라는 것이 실감 날 때가 있다. 지금과 같이 경기침체로 인해 생활여건이 좋지 않을 때 이 말은 더욱 실감 나게 다가온다. 삶 자체가 고통의 바다라는 것을 전제로 한 이 말은 힘들고 막막할 때, 벽에 부딪혀 앞이 안보일 때 종종 위안이 되곤 한다.

 

우리는 모두 부조리 연극의 배우…김혜자 책 『생에 감사해』 베스트셀러 1

 

평생 배우로 살아온 김혜자(金惠子)는 우리 모두가 부조리 연극의 배우라고 했다. 그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공정하지도. 공평하지도, 평화롭지도 않다. 그 부조리(不條理)한 환경 속에서 우리는 하루하루 힘껏 살아내야만 한다. 어떤 날은 꽃길을, 또 어떤 날은 자갈길과 가시밭길을 걷기도 한다. 때로는 눈앞에 절벽이 펼쳐지기도 한다. 하지만 각자 앞에 펼쳐진 그 모든 길들을 우리는 힘껏 헤쳐나가야 한다. 그것이 인생길인지 모른다.

 

  © 매일종교신문


요즘 사람들이 김혜자에 빠졌다. 그 덕분에 그가 쓴 책 '생에 감사해'가 이번 설 연휴 베스트셀러 종합 1위에 올랐다. 출간 한 달 만에 5만 부가 팔렸다.

 

특히 이 책에서 우리 모두 조금씩은 부조리 연극의 배우들이라는 문장이 눈길을 끈다. 김혜자는 우리 모두 조금씩은 부조리 연극의 배우들입니다. 단지 그렇지 않은 것처럼,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절망감과 우울증 속에서도 스스로 힘을 내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삶이고, 그것이 인간입니다(P56)”라고 설파했다.

 

부조리 연극이란 장르가 있다. 기가 막혀 웃음밖에 안 나오는 상황이 무대에 펼쳐진다.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가 대표적이다. 두 광대는 아주 오랫동안 고도를 기다려왔다. 고도는 오늘도 나타나지 않고 그들은 가자”, “안 돼”, “?” “고도를 기다려야지를 반복한다. 자기 삶조차 통제할 수 없는 무기력한 현대인의 모습을 그려냈다.

 

이 책은 ()의 대본에서 우리 모두는 배우’, ‘혜자에게’, ‘매번 처음 사는 인생으로 살았다’, ‘사랑하고 삭랑받은 기억으로 산다’,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다’, ‘혼자 저쪽에 서 있는 들풀 같은 사람’, ‘오직 행복하기 위해 태어났다’, ‘신은 계획이 있다’, ‘인생 드라마’, ‘나를 지키는 나’, ‘커튼 콜할 때까지등의 글이 담겨 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대로 미래 결정돼…나쁜 경험도 이겨내면 금은보화

 

국민 배우김혜자의 얼굴에는 한국 여자가 살면서 겪는 소용돌이가 모두 담겨 있다. 70대는 드라마 전원일기, 60대는 조미료 광고 그래, 이 맛이야!”, 50대는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 40대는 영화 마더, 30대는 드라마 눈이 부시게, 20대는 편의점 혜자 도시락으로 그를 기억한다. 중력처럼 어디에나 있는 여자. 모든 세대를 잡아당긴 국민 배우이지만 삶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김혜자는 배역 속 여자들을 연기하면서 조금씩 성장했고 인생을 배웠다고 했다. “나는요, 보통 사람도 알게 모르게 자기 인생을 연기한다고 생각해요. 하루하루 살아가는 대로 미래가 결정되잖아요. 형편없는 생각이나 하고 형편없이 하루를 보낸다면 그저 그런 인간이 되겠지요. 따라서 우리 모두가 멋진 대본을 써야 하고 멋진 연기자가 되어야 해요. 그것은 자신에게 달린 일이고요.”

 

 60년 연기인생을 살아온 김혜자 . © 매일종교신문

 

1962년 대학 2학년 때 KBS 공채 1기로 시작한 60년 배우로서 책에 담담히 풀어 놓은 그의 고백은 이러하다. “나는 직업란에 탤런트라고 쓰는 사람을 보면 무심결에 ‘아 저이는 저걸 직업이라고 생각하는구나하면서 놀랍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연기를 해와서 그런지 나는 연기가 직업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직업이라고 하면 왠지 자존심이 상합니다. ‘마더의 엄마가 아들 도준한테 나는 나야하듯이 연기는 나입니다. 숨 쉬는 것처럼….”

 

이렇듯 그에게 연기는 직업이 아니라 들숨과 날숨이었던 것이다. 숨 쉬는 것처럼 나는 나였던 배역의 선택 기준은 뭘까. 인생의 속박에 고통받는 역()이라 해도 그 속에 바늘귀만 한 희망이 보이는가. 바늘귀만 한 희망, 이것이 그가 배역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였던 것이다. 그것이 김혜자가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었다.

 

 

2021년 코로나19가 한창인데도 아프리카로 떠날 준비를 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내가 그 아이들을 얼마나 더 돌볼 수 있겠어요조금이라도 힘이 남아있을 때 가서 돌보고 싶어요.” 이 또한 바늘귀만 한 희망을 구하는 일이었음을 이 책에서 고백하고 있다. “내가 힘을 쓸 때는 연기할 때와 아프리카에서 아이들 안아 줄 때밖에는 없습니다.”

 

평소에는 흐릿한 불씨처럼 존재하다가도 배역을 맡으면 화산처럼 폭발했다. 그래야 남편과 아이들에게 떳떳해질 수 있었다그는 삶의 시궁창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 헤매는 주인공을 연기했다. 가슴에 불씨가 있어도 꺼뜨리지 않고 타오르게 하는 것은 각자에게 달린 일이다. 김혜자는 나쁜 경험도 이겨내면 금은보화로 바뀐다고 했다. 그는 나의 전부가 벗겨져 버린 것 같아 사람들 앞에 나서기 두려운 적이 있었고, 절망하고 죽음을 생각한 때가 있었다고 고백한다.

 

인생의 매니저인 신이 함께하시고 살아있음에 감사…난 오늘도 희망 전할 뿐

 

매니저도 소속사도 없이 살아온 최고 배우 김혜자는 인생의 매니저인 신이 나와 함께하고 계신다살아 있음에 감사한다고 했다. 김혜자는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교회에서 권사 직분인 그는 제가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 주님이예요라는 말에서 신앙의 깊이를 엿볼 수 있다.

 

감당할 수 있는 짐만 실어준다고 믿는 낙타처럼 무겁다”, “힘들다며 불평하지 않는다. 쓸쓸하고 불안할 땐 누군가 내 작품을 구상하고 있겠거니 생각하며 그 감정을 밀어낸다고 했다. 인생의 길을 늘 선택할 순 없다. 하지만 걷는 방식은 언제나 고를 수 있다.

 

김혜자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대배우도 나와 다르지 않구나라는 위로와 내게도 지켜야 할 불씨가 있구나라는 희망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다음은 생에 감사해눈이 부시게 마지막 대사나오는 일부분이다.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의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에 부는 달큰한 바람, 해질 무렵 우러나는 오늘의 냄새.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 것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예측 불가하기에 스트레스를 받고 불안해하기보다는 예측할 수 없기에 오히려 기대를 갖고 모험하는 자세로 삶을 대하라고 누가 말했던가. 인생을 대하는 태도가 인간의 삶을 규정한다는 생각이 든다.

 

moon47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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