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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守岩칼럼> 무위자연(無爲自然)과 근본을 추구한 노자(老子)와 『도덕경』

문윤홍 대기자 | 기사입력 2023/02/10 [10:16]
”인위(人爲)를 버리고 자연 그대로 행하라“…왜 현시대에 노자의 가르침 필요한가

<守岩칼럼> 무위자연(無爲自然)과 근본을 추구한 노자(老子)와 『도덕경』

”인위(人爲)를 버리고 자연 그대로 행하라“…왜 현시대에 노자의 가르침 필요한가

문윤홍 대기자 | 입력 : 2023/02/10 [10:16]

▲ 수암(守岩) 문윤홍 大記者/칼럼니스트     ©매일종교신문

 

노자(老子, ?~?, BC 6세기~BC 4세기로 추정)는 중국 춘추시대의 사상가로 도가(道家)의 시조이다. 성은 이(), 이름은 이(), 자는 담(). ()나라에서 태어나 주() 왕실의 신하가 되었다. 현대에는 노자의 원래 성이 노()씨라는 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춘추시대에는 노씨성이 있었으나 이씨 성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근거로 노자의 본래 성은 노()라는 주장이 있다. 노자는 주나라 수장실(守藏室)의 관리로 근무하다가 만년에 서쪽으로 은거하러 가다가 함곡관(函谷關)의 관령인 윤희(尹喜)의 청에 따라 도덕경(道德經)’5천언(五千言)‘을 썼다고 한다. ()를 인간과 우주의 근본으로 내세우고 도에 따르는 삶을 제창했기 때문에 그의 사상을 도가(道家)라 부른다.

노자가 제창한 도가사상은 후일 중국 사상사에서 유가(儒家)와 함께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후일 그는 도교 교단이 형성됨에 따라 태상노군(太上老君)으로 존칭되었고, 그의 저서는 도덕진경(道德眞經)으로 받들어졌다. 한대(漢代) 무렵 신선전(神仙傳)이 편찬되면서 그는 신선으로 편입되었고 그의 생애가 신비화되기도 했다. 노자가 남긴 도덕경은 흣닐 수많은 주석(註釋)이 가해졌다. 그중 하상공장구(河上公章句)왕필주(王弼注)·노자상이주(老子想爾注)가 가장 저명하다

 

늙어서 태어난 아이, 노자(老子)

 

B.C 604년 9월14일, 중국 초(楚)나라의 고현(苦縣) 여향(厲鄉) 곡인리(曲仁里)에서 한 여인이 자두나무(李樹)에 기댄 채 아이를 낳았다. 그런데 이 아이의 어머니는 떨어지는 별을 찬양하면서 62년 동안 임신해 있던 상태였고, 그때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말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아이는 주위의 자두나무를 가리키며 “나는 이 나무를 따서 성(姓)을 짓겠다”라고 말했다. 그후 그는 자두나무(李)에다 자신의 큰 귀(耳)를 상징하는 이름을 붙여 스스로 이름을 이이(李耳)라고 했다. 그러나 그의 머리칼은 벌써 하얀 눈처럼 희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두고 “노자”라 불렀다. 노(老)는 늙었다는 뜻이고, 자(子)는 ‘하늘의 아들’이라는 뜻을 가진 존칭어다.
 
노자는 유가에서 내세운 명분주의와 인위적인 조작에 반대하고 무위자연(無爲自然)에 처할 것을 주장했다. 그는 유가의 인위적인 도덕이 끼치는 폐단과 인간의 위선을 고발함으로써 좀 더 근원적인 진리로 나아가고자 했다.

▲ 노자의 초상화  © 매일종교신문


노자는 주나라에서 왕실의 장서고를 기록하는 수장실사(守藏室史)로서, 사십여 년간 일했다고 한다. 이 무렵 공자(孔子, BC 551~BC 479)의 방문을 받았는데, 공자는 노자에게 예()에 대해 물었다. 백발이 성성한 노자가 볼 때, 공자는 아직도 혈기가 왕성한 청년에 지나지 않았다.

군자는 때를 만나면 나아가서 벼슬을 하지만, 때를 만나지 못하면 뒤로 물러나 숨어야 하는 것이오. 내 일찍이 듣기를 훌륭한 장사꾼은 귀중품을 감춰놓은 채 아무것도 없는 듯이 행동하고, 완전한 덕성을 갖춘 사람은 겉으로는 다만 평범한 사람으로 보인다라고 했소. 그러니 그대는 몸에 지니고 있는 그 교만과 욕심과 위선 따위를 다 버리시오.”

 

이처럼 공자에게 따끔한 충고를 가한 노자는 스스로 재능을 숨겨 이름이 드러나지 않도록 애썼다. 그러나 주나라가 망하는 것을 보고 그곳을 떠나기 위해 함곡관에 이르렀을 때, 국경을 수비하던 관리 윤희(尹喜)라는 사람에게 붙들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가 권하는 대로, 상하(上下) 양편의 오천 자로 된 도덕경(道德經)을 완성하게 됐는데, 이렇게 본다면 윤희라는 사람이야말로 거의 노자와 맞먹을 정도로 큰 공헌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

 

만약 그가 노자에게 글을 쓰도록 종용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우리는 가장 값진 한 권의 책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이에 대해 독일의 사상가 슈테릭히는 세계에 단 세 권의 책만 남기고 모두 불태워버려야 한다면, 도덕경이 그 세 권 가운데 들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노자는 160 살 또는 200 살을 살았다고도 전해지는데, 그 최후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다.

주나라 수장실(守藏室)의 관리로 근무하다가 만년에 서쪽으로 은거하러 가다가 함곡관의 관령인 윤희의 청에 의해 도덕경(道德經)‘5천언(五千言)’을 썼다고 한다. 도를 인간과 우주의 근본으로 내세우고 도에 따르는 삶을 제창했기 때문에 그의 사상을 도가(道家)’라 부른다.

 

중국의 도() 사상과 노자의 도()

 
도(道)는 중국 사상의 용어로서 문자는 의부(意符) '道'(도, 길을 간다는 뜻)와 음부(音符) '首'(수, 길게 통하고 있다는 뜻)로 이뤄져 있고, 원래는 '길게 통하고 있는 길'이라는 뜻이다. 고대에는 제왕에게 명(命)을 내려 주는 신령(神靈)이 강하(降下)하는 통로를 가리켰다. 춘추시대(B.C. 770~403) 이래, 왕후가 백성을 지배하는 정치 및 가족·군신 간의 도덕을 주로 하는 '사람의 도'를 의미하게 되었다. 춘추시대 말에 주술·종교에 의한 것을 부정하고 왕후에 대해 인(仁)을 기초로 하는 '사람의 도'를 설교한 현자가 공자(孔子)였다.
 
전국시대(B.C. 403~221)에는 천하통일의 요구가 높아지면서 『춘추(春秋)』, 『상서(尙書)』 등을 통해 도덕과 사회질서를 정한 것은 옛 제왕들이라는 주장을 가지고, '도'는 '옛날의 도', '제왕의 도', '성인(聖人)의 도'라고 하면서 이것을 전수하고 배우는 학파인 유가(儒家)가 형성되었다. 전국(戰國)의 경쟁 속에서 제후가 제왕이 되고 천하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유가나 묵가(墨家)는 그 방법을 설명했다(맹자의 왕도론 등). 그러나 유·묵의 '옛날의 도'가 현실과 부합되지 않게 되어 도가(道家)나 법가(法家)가 나왔다.
 
도가는 정신의 자유와 육체의 장생(長生)을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 '사람의 도'는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므로 '천지의 도'(자연법칙)에 일치하는 것이어야만 하며, 나아가 '도'를 세계의 불가지(不可知)의 본체, 우주생성의 시원(始原)이라고 했다. 전국시대 말기에 음양오행실(陰陽五行說)이 생겨나 기(氣)의 운행으로 '천지의 도'를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이것을 도가에 도입하고 점술에도 적용하여 역(易)이 성립했다. 도가보다 앞서 이미 맹자(孟子, BC 372?~BC 289?)는 인간에 내재(內在)한 자연적인 '성'(性)의 실현을 도덕의 단서라고 했으며, 이어 순자(荀子, BC 298~BC 238?)는 '사람의 도'(리)는 성의 교화에 의해 천하를 통일하고 질서 짓는 '왕도'(王道)야야 한다고 하여, 전국(戰國)시대 말에는 '사람의 도'는 '천지의 도' 속에 위치하게 되었다.
 
노자의 도(道)는 인간이 행해야 할 길이라는 의미 외에 우주자연을 낳는 근본이면서 우주만물이 생성·변화하는 이법(理法)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노자는 도에 관해 무(無)·일(一)·대(大)라고도 부르고 도의 작용은 무위자연(無爲自然)한 가운데 만물을 생성·변화한다고 말한다. 이에 그는 인격적 주재자의 성격을 지닌 은대(殷代)의 상제(上帝) 개념이나 주대(周代)의 천(天) 대신 도라는 새로운 개념을 최고개념으로 제시한 것이다.이러한 의미에서 “도(道)는 만물을 생장시키지만 만물을 자기의 소유로는 하지 않는다.
 
도는 만물을 형성시키지만 그 공(功)을 자랑하지 않는다. 도(道)는 만물의 수장(首長)이지만 자기를 만물의 주재로는 하지 않는다(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생이불유 위이불시 장이부재)”(『도덕경』 51장)라고 말한다. 또 “도(道)는 자연(自然)에 법(法)한다(道法自然)”(『도덕경』 25장)라고 말한다. 이는 도 자체의 성격이 저절로 그러하다는 의미로서 어떤 목적론적 의지나 주재하는 작용이 개재되어 있지 않다는 의미를 지닌다.이에 노자는 도에 관해 군림하며 지배하는 부성적(父性的) 상징 대신 여성적으로 상징한다.
 
‘곡신(谷神)’, ‘천하모(天下母)’, ‘식모(食母)’ 등의 표현이 그것이다. 이는 그의 사상이 부계사회가 정착되기 이전의 고대의 원시모계사회에 뿌리박고 있는 흔적으로 파악된다. 노자는 또 도에서 만물이 나오는 과정에 관해 “도(道)는 일(一)을 생(生)하고, 일은 이(二)를 생하고, 이는 삼(三)을 생하고, 삼은 만물을 생한다(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 )”『도덕경』 42장)고 하는 일원론적(一元論的)인 우주생성론(宇宙生成論)을 제시했다.노자는 도에서 음양(陰陽)의 두 기운이 나와 만물을 생성한다는 기론적(氣論的) 세계관을 제시한 것이다. 노자가 제시한 삶의 자세는 도의 무위자연함을 본받는 것으로서 구체적으로는 유약하고 겸손하게 낮추는 삶(柔弱謙下)을 의미한다.
 
“유약(柔弱)한 자는 생(生)의 도(徒)이다(柔弱者 生之徒유약자 생지도)”(『도덕경』 76장), “유약은 강강(剛强)에 승(勝)한다(柔弱勝剛强유약승강강)”(『도덕경』 36장) 등의 내용에서 말하듯, 어디까지나 나를 내세우지 않고 남을 이롭게 하며 세상과 함께 사는 삶을 권장한다. 노자는 도를 본받는 삶을 실천하는 상징으로서 앞서 언급한 물, 여성, 어린이 등을 들고 있다. 부드럽고 생명력이 충일한 삶을 나타내는 표현들이다. 
 
한편 참된 덕(德)인 무위(無爲)의 덕을 실천하는 덕목(德目)으로서 자(慈)·검(儉)·용(勇)의 삼보(三寶)를 제시했다. 노자는 유약겸하(柔弱謙下) 삶의 자세 외에 현상적 인식을 넘어서 도 자체를 통찰할 수 있는 밝은 지혜(明)를 얻고 도와 하나가 될 수 있는 수행의 길도 제시했다. 이는 텅 비고(虛) 고요함(靜)으로써 마음을 비우고 덜어가는 길이라 할 수 있다.
 
그는 “텅 빔의 극치에 이르고 돈독한 고요함을 지키라(致虛極 守靜篤치허극 수정독)”(『도덕경』 16장)고 제시했다. 이에 노자는 세속적 학문을 통한 지식의 축적을 나날이 보태는 삶으로 도의 길을 나날이 덜어가는 삶으로 대비시키고 있다. 이러한 수행은 훗날 장자(莊子, BC 369?~BC 289?)를 거쳐 도교 수련으로 발전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러한 삶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실존적 자각을 필요로 하기에 그는 물욕을 추구하는 범부들과는 다른 고독한 구도자의 모습을 묘사하기도 했다. 그는 도를 자각한 인격을 성인이라 부르고 있는데 이는 인륜의 완성이라는 유가적 성인과는 다르며 자연의 도와 하나가 되어 세상의 흥망성쇠를 달관하는 은자(隱者)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 도가의 핵심 경전『도덕경』/ 규장각 도서  © 매일종교신문


노자의 사상은 근본적으로 춘추시대의 혼란한 사회를 바로잡고 평화로운 사회를 이룩하자는 정치적 측면을 포함하고 있다. 그는 지배자의 전횡을 통한 폭정을 반(反)자연적인 것으로 거부했다. 그가 인격적 주재자인 상제 대신 도를 제시하는 것은 군주에게 지배권을 부여했다는 근거를 비판한 의미를 지닌다. 노자는 형식적 제도나 규범 등 인위적 통치수단의 강화를 반대하고 무욕소박(無慾素朴)한 공동체적 삶을 높이 평가했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작은 나라 적은 백성으로 이루어진 국가’를 바람직하게 보는 소국과민주의(小國寡民主義)로 불려진다.노자는 특히 반전(反戰) 평화사상을 주창하고 부득이한 경우의 방어 전쟁만 인정한다. 그가 제시한 이상사회는 차별과 갈등이 적은 소박한 농업공동체적 성격을 지니기 때문에 그의 사회사상은 한편으로는 아득한 과거의 황금시대로 돌아가는 복고적(復古的) 성격을 지니기도 하고 한편으로 문명비판적 성격을 지닌다. 노자는 물욕의 확대 충족을 통한 문명의 발전을 비판하고 감각적 쾌락의 억제와 과도한 잉여지식의 축적까지도 경계했다. 차별과 억압, 착취가 극복된 이러한 태평세계의 이상(理想)은 도가적 유토피아의 원형으로 작용했으며 종교적으로는 이상사회인 선계(仙界)로 투영되었다.

●위선과 가식을 버려라

 

어느 날, 노자와 공자는 낙양(洛陽·뤄양)을 떠날 무렵, 공자가 다시 노자를 찾아와 작별 인사를 하자 그는 공자에게 다음과 같이 충고했다고 한다. 
“부자는 재물을 가지고 사람을 배웅하고, 선비는 말로써 사람을 배웅한다고 하오. 그런데 나는 돈이 없으므로 선비의 흉내를 내어 말로써 선물을 대신할까 하오. 총명한 사람이 자칫 죽을 고비에 이르게 되는 것은 남의 행동을 잘 비평하기 때문이오. 또 학식이 많은 사람이 자주 위험한 고비에 부딪치는 것은 남의 허물을 잘 지적하기 때문이오. 그러므로 말과 행동을 조심하고 자기의 주장을 함부로 내세워서는 안 되오,”
 
이 말을 듣고 돌아간 공자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새는 공중을 날아다니고 물고기는 헤엄을 치며 짐승은 달린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므로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는 활을 쏘아야 잡을 수가 있고, 물속을 헤엄치는 고기는 그물을 쳐야 잡을 수가 있고, 달리는 짐승은 덫을 놓아야 잡을 수가 있다. 하지만 용에 대해서는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용은 바람과 구름을 타고 구만리 하늘로 오를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만나본 노자는 바로 용이었다.”
 
과연 큰 도(大道)란 무엇일까. 노자에 따르면, 그것은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도다. 위대한 도가 무너졌기 때문에 인의가 생겨났고, 지혜가 나오고 나서 큰 거짓이 생겨났고, 집안이 불화하기 때문에 효(孝)와 자애(慈愛)가 강조되었으며, 나라가 혼란할 때 충신이 필요했다. 이처럼 유가에서 강조하는 덕들은 이미 그것들이 사라지고 없음을 반증해주는 것이다. 따라서 애초부터 큰 도리를 굳게 잡아나갔더라면, 아무 일도 없었을 것을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일을 꾸미려 하니 일이 꼬였던 것이고, 다시 그것을 억지로 고치려고 하니 일이 더 얽히고 설키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런 배경에서 노자는 유가에서 말하는 성스러움과 지혜와 인의(仁義)를 오히려 끊어버릴 것을 요구한다.
 

●그릇의 빈 곳이 쓰임 받는다

 

유가에서 말하는 도(道)란 인간의 윤리에 국한된 것이다. 하지만 노자가 말하고자 하는 도는 천지만물, 모든 자연의 이법(理法)으로서 우주의 근본 원천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도란 우리 인간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세계의 궁극적 원인으로서, 모든 법칙 중의 법칙이자 모든 척도 중의 척도이다.

 

이에 대해 노자는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이 도는 사람의 머릿속에서 개념적으로 규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도 없다. 그것은 우리가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고,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으며,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다. 왜냐하면, 도에는 어떠한 빛깔도, 어떠한 소리도, 어떠한 형체도 없기 때문이다

 

▲ 노자가 소나무 아래에 있는 평상에서 경(經)을 강의하는 모솝을 그린 ‘노자수경도(老子授經圖)’ 

© 매일종교신문

 

그러나 이 세상에서 어떤 모양을 갖는 존재는 모두 도에서 생겨난다고 말할 수 있는데, 이 도는 어떠한 시간적·공간적 한계도 없기 때문에 무극(無極)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무()가 단순히 텅 비어 있는 공무(空無)인 것은 아니고, 도리어 모든 존재를 생겨나게 하는 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노자는 무의 효용성을 이렇게 비유한다. “수레바퀴에는 서른 개의 바퀴살이 한 바퀴의 통에 모여 있긴 하지만 그 가운데가 비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수레를 사용할 수 있으며, 또 찰흙을 이겨서 그릇을 만들 때 그 빈 곳이 있기 때문에 그릇을 쓸 수 있으며, 문과 창문을 뚫고 방을 만들되 그 가운데가 비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방을 쓸 수 있다. 그러므로 유()가 이용되는 까닭은 무가 작용하기 때문인 것이다.

 

●굽은 나무가 제 수명을 누린다

 

 

공자는 “우리가 선에 대해서는 선으로 대하되, 악에 대해서는 어디까지나 정의로써 응징해야 한다”라고 했다. 반면 노자는 선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악에 대해서까지 포용하기를 가르친다. “적에게도 덕을 베풀라. 오직 다투지 않는 그것으로 인해 천하가 그와 더불어 다툴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

 

여기에서 노자의 윤리가 갖는 특성에 대해 세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소박함이다. 노자는 인간의 재치와 이기심 등 작위성(作爲性)을 멀리하고 무욕(無慾)에 처하도록 가르치며, 또한 물질적 재화에 대해서도 귀하게 여기지 않도록 당부한다. 덕을 두터이 지니고 있는 사람은 갓난아기와 같아서 독 있는 벌레도 물지 않고, 사나운 짐승도 덤벼들지 않으며, 사나운 새도 채가지 않는다. 이와 반대로 억지로 살려고 하는 사람은 재앙에 맞닥뜨리게 마련이며, 마음이 기운을 부려 뭔가를 이뤄보려고 하는 사람은 억지스런 삶을 꾸려가기 십상이다.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은 왕성하게 번창하다 보면 곧 늙어 시들어버리기 마련인데, 이는 천하 만물의 도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둘째, 노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유연성(柔軟性)이다. 마치 부드러운 물이 견고한 바위를 뚫는 것처럼, 부드러움은 딱딱함을 이길 수 있다. 이처럼 도란 어떤 의미에서 물과 같다. 그래서 ‘상선약수(上善若水: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뜻으로, 만물을 이롭게 하는 물의 성질을 최고의 이상적인 경지로 삼는 도가의 진리)라는 말이 많이 사용된다. 물은 모든 사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먼저 가려고 다투지 않으며,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머물려고 한다. 물과 같이, 모름지기 현자(賢者)는 이웃에게 선을 베풀며 유익을 안겨주면서도 다른 사람 앞에 자신을 내세우지 않으며 항상 겸손한 자세로 살아간다.

 

셋째, 무위(無爲)의 실천이다. 여기에서 무위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억지를 피하고 자연스럽게 행하는 것을 가리킨다. 억지로 꾸며서 하는 행위는 오래가지 못하고 곧 그치게 마련이다. “자기의 키를 커 보이게 하기 위해 발끝으로 꼿꼿이 선 사람은 오래 서 있지 못하고, 마음이 급하여 두 다리를 크게 벌려 걷는 사람은 멀리 가지 못하며, 스스로 나타내려는 사람은 도리어 드러나지 못한다”라고 한다. 환경이나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자기 욕심대로 정권을 잡아보려고 하거나 욕심껏 돈을 벌어보려 하는 사람은 반드시 실패하게 되어 있다. 이 간단한 이치를 모르고 욕망대로 행하다가 망한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그렇다면, 이러한 무위에 도달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노자는 먼저 분별지(分別知)를 버려야 한다고 했다.

 

흔히 사람들은 부귀영화를 좋은 것이라 여기고, 빈천굴욕을 나쁜 것이라 여긴다. 하지만 이것들은 본래 하나다. 동전의 양면과 마찬가지로, 복(福)과 화(禍)는 우리가 늘 안고 가야 하는 두 가지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재앙은 복이 의지하는 바요, 복은 재앙이 깃드는 곳이다. 올바른 것이 다시 기이한 것이 되고, 길(吉)한 것이 다시 흉(凶)한 것으로 된다. 이처럼 화복은 본래 둘이 아니고 하나인데도, 사람들은 상대적인 관념에 사로잡혀 재앙을 멀리하려 하고 복을 구하려 한다. 바로 여기서부터 모든 환란이 생겨난다.

 

굽은 나무가 제 수명을 누리고, 자벌레는 몸을 굽혔다가 펴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물은 파인 곳에 고이며, 옷은 닳아져야 새것을 입고, 욕심이 적어야 만족을 얻으며 아는 것이 많으면 도리어 미혹에 빠진다. 가끔 우리가 보듯이, 크게 이룬 것(大成)은 모자란 것 같으나 그 쓰임새에 그침이 없고, 크게 찬 것은 빈 것 같으나 그 쓰임에 다함이 없다. 크게 곧은 것은 굽은 것 같고, 크게 교묘함은 서툰 것 같고, 크게 말을 잘함은 말더듬이 같다. 이와같이, 노자의 윤리는 무위자연에서 소박하고 유연하게 살아갈 것을 우리에게 권한다.

 

●백성의 눈높이에 맞춰라

 
현자(賢者)에게 요구되는 무위자연의 도는 정치가나 통치자에게도 요구되게 마련이다. 특히 정치는 백성과 천하 만물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므로, 무위의 도덕정치가 더욱 중요한 것이다. 노자에 의하면, 정치가는 다변(多辯)을 일삼아서는 안 된다. 대통령이 말을 많이 하다 보면 말에 실수가 있게 마련이고, 국민들이 식상해하고 피곤해한다. 또한 통치자는 많은 법률을 만들 필요 없이 담담하게 스스로 덕을 펴나가기만 하면 된다.
 
정치가가 위선을 부리거나 힘으로 다스리려고 하면, 백성들이 그를 불신하고 경멸한다. 스스로 마음을 비우고 국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국정을 이끌어간다면 모두의 환영을 받을 수 있다. 천하에 금기조항이 많을수록 백성은 더욱 가난해지고, 백성들에게 편리한 기구가 많을수록 나라는 더욱 어지러워지며, 사람들의 재주가 많을수록 기이한 물건이 많이 나오고, 법령이 밝아질수록 도적도 많아진다. 이 모든 것이 억지로 백성을 다스리려 하는 데서 오는 폐단이 아닐까.
 
“현자를 특별히 대접하지 않아야만 백성들이 서로 다투지 않게 되고, 얻기 힘든 재물을 귀하게 여기지 않아야만 백성들이 도적질할 마음을 먹지 않게 되며, 욕심낼 만한 것을 드러내 보이지 않아야만 백성들의 마음이 어지럽지 않게 된다.”(不尙賢 使民不爭 不貴難得之貨 使民不爲盜 不見可欲 使民心不亂불상현 사민부쟁 불귀난득지화 사민불위도 불견가욕 사민심불란) 지식 있고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해서 특별대우를 하면 모두 학벌만 갖추려 할 것이고, 돈이 있건 없건 모든 국민이 법 앞에서 평등해야만 악착스럽게 돈 벌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고, 또한 사람의 탐심을 자극하지 않아야만 국민이 순박해진다.
 
어진 임금이 천하를 다스리는 방법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고집을 피우지 않고 백성들 편에 서서 그들의 눈높이와 마음에 맞도록 스스로 맞춰나가면 된다. 설령 백성들이 귀로 듣기 좋은 것, 눈으로 보기 좋은 것에 대해서만 욕심을 낸다고 할지라도, 천진난만한 갓난아이를 대하는 것처럼 다스려 나가야 한다. 성인은 물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나라를 다스려야 하는데, 가령 백성들이 죽음을 중하게 여기고, 먹는 음식을 맛있게 여기며, 입는 의복을 아름답게 여기고, 사는 거처를 평안하게 여기며, 행하는 풍습을 사랑하도록 하면 된다. 기괴하고 특별한 것에 마음을 두기보다 가장 평범하고 상식적인 삶을 살도록 해주면 그만이다. 그러면 백성들은 늙어 죽을 때까지 다른 나라를 부러워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 무위와 무욕의 이상사회 ‘소국과민(小國寡民)’은 『노자(老子)』 80장에 나오는 말이다. 그는 “다시 옛날로 돌아가 풍속을 즐겁게 여기게 해야 한다.”라고 했다.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나오는 ‘무릉도원’을 이상국가로 보았다.  © 매일종교신문


●작은 나라와 적은 백성을 꿈꾸다

 
유가는 춘추전국 시대의 혼란한 사회 속에서 인위적인 도덕에 의해 질서를 회복하려고 했다. 그러나 노자는 이러한 방법에 반대하고, 무위자연을 주장했다. 보통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대로 행동하기 마련이어서, 가령 재앙을 멀리하고 복을 구하려고 한다.
 
본래 하나인 이것들을 구분하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삶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띠라서 우리가 고통스런 현실을 벗어나는 길은 본래부터 타고난 자연으로 돌아가 작위(作爲) 없이 사는 것뿐이다. 유가에서는 인의(仁義)니 예악(禮樂)이니 하여 어떤 규범과 덕목을 내세우지만, 노자는 모든 억지스러움을 버리고 차라리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외친다.
 
또한 노자는 정치론에서 유가의 ‘대통일 국가’라는 이상에 맞서며, ‘작은 나라와 적은 백성’(小國寡民소국과민)이라는 이상사회를 제시했다. 인위적인 도덕과 잡다한 지식에서 벗어나 소박하게 생활하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삶이며, 위정자는 백성들의 이러한 삶을 보장하기 위해서 무위(無爲)의 정치를 시행해야 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대개 큰 사상가들이 뛰어난 제자들을 많이 배출하는 데 반해, 불행하게도 노자에게는 그 깊고 오묘한 사상을 계승하고 발전시킬 만한 제자들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학설은 후대의 사상가들에 의해 왜곡되고 변질되면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더구나 이것이 무술이나 마법, 연금술이나 불로장수법과 같은 미신과 뒤섞여버린 탓에 노자 자신의 순수한 이론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말았다.

노자의 현대적 의의

 
노자는 도가(道家)의 창시자로서 그의 책을 도덕경(道德經)이라고도 한다. 중국의 북방과 남방은 기후에 따른 많은 문화적 차이를 나타내는데 이는 남방의 부드러움이 북방의 억세고 현실적인 기질과는 다름을 보여준다. 공자는 『중용(中庸)』에서 “너그러움과 부드러움으로써 가르치고 무도(無道)함에 대해 보복하지 않는 것은 남방의 강함이고 무기와 갑옷 위에 넘어져 죽게 되는 한이 있어도 후회하지 않는 것이 북방의 강함인데, 군자는 이와같이 처신한다” 라고 했다.
 
유가사상이 현실적이라면 도가사상은 초현실적이라 할 수 있다. 무(無)나 자연(自然)은 "도(道)'의 현상이고 이것은 사람들을 불행하게 하는 모든 상대적 가치관이나 사회적 구속으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을 의미한다. 이는 자연의 한 구성요소로서 인간 본연으로의 회복 또는 인간의 절대적인 자유 회복을 뜻한다. 현실적이고 형식적인 유교가 막바지에 이르러 초현실적인 도가사상이 끼어들어 그 지나침을 막아준 것이다. 
 
도가사상의 영향으로 예술이나 문화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추구할 여유를 지님으로 중국의 예술 비평가들이 즐겨 사용한 질박(質樸)이나 고박(古樸)의 표현이 그 일면일 것이다. 개인생활에 있어 올바로 살고 큰 일을 해보려고 노력해도 뜻대로 안 될때 도가사상은 그 현실을 초극(超克)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자연 속에 묻혀 유유히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그것이 동양사상의 소극적인 일면으로 이해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그릇된 판단으로 인한 불행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적극적인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간결한 문장 속 인생의 깊은 철학이 담긴 『도덕경』

 시대를 초월한 노자의 가르침…동양고전 전문가 김용표의 『노자의 역설』 출간
 
고전은 시대가 흘러도 변하지 않는 지혜를 담고 있다. 특히 노자의 『도덕경』은 시대를 초월하는 지혜와 진리를 가장 아름다운 문체와 역설적인 방식으로 전하고 있는 고전이다. 김용표 동양고전 전문가는 최근 출간한 책 『노자의 역설-노자의 81가지 잠언』(좋은땅)에서 도덕경에 담긴 삶과 우주의 성찰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원문의 자구(字句) 하나하나를 파헤쳤다. 그리고 심원한 이론을 들이밀기보다는 평범한 삶 속에 비춰지는 노자의 81개의 역설적 통찰에 독자들이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오늘날의 현상과 대비하여 풀어 쓰는 방식을 택했다.     
 
”熟能濁以靜之徐清(숙능탁이정지서청),
 熟能安以動之徐生(숙능안이동지서생).
누가 능히 혼탁함을 고요히 해서 서서히 맑아지게 할 것인가.
누가 능히 가만히 있는 것을 움직여 서서히 살아나게 할 것인가.
철학자 하이데거가 애송했다는 구절입니다. 그는 위 두 구절을 자신의 서재 벽에 걸어 놓고 틈만 나면 쳐다보았다고 합니다. 『도덕경』 40장에 이와 상응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되돌아오는 것은 도의 움직임이요, 약한 것은 도의 쓰임입니다.” - 『노자의 역설』 본문 중에서
“‘사람은 날마다 새롭고 또 새로운 마음가짐과 각오로 살아야(日日新일일신 又日新우일신)하듯이 ‘텅 비움’에 도달하려는 과정도 매일 매일 비우고 또 비워야 한다(日日虛일일허 又日虛우일허).‘ 새로워지는 것이 하나의 과정(process)이듯이 비움에 이르는 것도 하나의 과정으로 보는 것입니다. 비움이 시작되면 그때 고요가 다가옵니다. 그리고 그 고요함을 지키고 있을 때 우리는 스스로의 참된 모습을 갖게 됩니다.”  - 『노자의 역설』 본문 중에서
 
“우리는 화가 날 때만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두려워도, 슬퍼도, 걱정돼도 똑같이 그냥 화를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두려움은 두려움으로, 슬픔은 슬픔으로, 걱정은 걱정으로 느끼고 그 감정을 그대로 느껴야 합니다. 자신의 느낌을 판단하지 않고 정확히 표현해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 『노자의 역설』 본문 중에서
 

▲ 노자의 역설  © 매일종교신문


『노자의 역설』은 노자의 『도덕경』을 일상 속에 적용할 수 있도록 전하고 있다. 내용은 원문, 번역, 해설, 담론으로 구성했다. 각 장의 주제는 독자들이 일상 속에 노자의 가르침을 적용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김용표 저자는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노자의 깊은 깨달음을 음미하고, 천천히 자신의 삶에 적용해 마음의 평안과 지혜를 얻기를 바란다.
 
그는 “이미 만들어진 편안한 길을 따라가면서 처음 접하는 사람들을 위해 쉬운 길을 보여 주고 싶었다”며 “사실은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소망이 이 책을 쓰게 된 더 큰 동기였다”고 말했다.『노자의 역설』은 총 81장으로 구성됐으며, 간결한 문장의 각 장의 제목을 통해 본문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을 함축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했다.
 
 -『노자의 역설』을 집필하게 된 동기는?
“아무런 희망도 없고 성취감도 느끼지 못하던 40대의 어느 날, 우연히 『도덕경』을 읽었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처음으로 이제까지의 삶을 스스로 돌아보게 되었다. 이후 반복해서 읽고 다양한 버전의 도덕경 주석서와 여타의 고전들을 함께 공부하면서 독서가 주는 행복감을 느꼈다. 한문에 익숙하지 않아 쉽게 다가가지 못했던 사람들을 위해 한문적 소양은 없어도 원문이 가져다주는 메타포를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해설서를 직접 써 보고 싶었다.”
 
-이 책을 꼭 읽었으면 하는 분들이 있다면?
“인생의 전환점에서 마음이 괴롭고 세상이 불편한 사람들이 읽었으면 한다. 도덕경은 조직을 이끌어 가는 리더에게도, 조직 속에서 무력감을 느끼는 사람에게도, 쓸데없이 자신과 세상에 분노하는 사람에게도 모두 좋은 책이다. 노자의 역설적 조언은 넓고 유연한 사고를 하도록 도와준다.”
 
-비슷한 장르의 책들과는 다르게 이 책만이 가진 차별화된 특징이 있다면?
“원문을 이론적으로 분석하고 한자와 한문의 고증학적인 근거를 제시하는 책들은 공부에 도움이 되지만 읽기가 쉽지 않다. 도덕경이 제시하는 철학과 사상에 일반 독자들은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 한편으로 도덕경을 발췌하여 쉽게 풀어쓴 책들은 도덕경 원전이 주는 깊은 메타포와 통찰을 독자가 스스로 체득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이 책은 그 중간을 취하여 독자가 인문의 바다에 스스로 스며들기를 바라는 면이 있다.” 
 
-평소 어떤 책을 즐겨 읽는가. 최근에 읽은 책 중에 독자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을 소개해준다면.
“인류의 전반적 역사를 다루는 책들과 동양 고전들을 많이 읽고 있다. 그래서 유발 하라리의 시리즈, 제프리 삭스, 카렌 암스트롱,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책들은 신간이 나올 때마다 챙겨 읽는다. 논어, 맹자, 순자, 장자는 곁에 두고 꾸준히 공부한다. 최근에 읽은 책 중에 리쩌허우의 『중국고대사상사론』과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 T&C재단이 펴낸 책 『헤이트』 등이 인상적이었다.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들이다.”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생각을 갖고 다른 궤적을 그리며 사는 것 같지만 내면의 고통과 고민, 의문은 의외로 비슷하다. 그리고 고전은 그에 대한 보편적 솔루션을 주고 있다. 고전이 수천 년 동안 인류에게 정신적 유산이 되었던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다. 보편적 깨달음과 자신만의 깨달음을 함께 줄 수 있는 책들이 많이 있다. 노자의 도덕경도 그중의 하나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앞으로 더 많은 독서와 공부를 통해 공자와 노자가 현대에서 콜라보를 이루는 장면을 책으로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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