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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선 작가-기행 산문 Ⅳ '영혼이 없는 반성'

박현선 | 기사입력 2024/03/05 [21:51]

박현선 작가-기행 산문 Ⅳ '영혼이 없는 반성'

박현선 | 입력 : 2024/03/05 [21:51]

▲ 규슈 의대 '의학 역사관'의 미군 포로 생체실험 만행을 반성하는 '생체해부사건' 전시 패널  © CRS NEWS


하하하하………

, 2시 반이나 지났는데 포로는 아직 안 온 건가?”

이제, , 도착할겁니다.”

흥미로운 사진을 꼭 찍으려고 하는데 말이야!”

클래식 사진기군요.”

, 기계만큼은 독일제니까!”

해부가 5시 쯤 끝나니까, 회식 준비는 잘 되고 있겠지?”

, 오늘의 특별 요리는 포로의 생간입니다.”

 

일본 본토에서 무차별 폭격을 실행한 미군 병사를 신속히 처리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하지만 그냥 죽이기보다는 의미 있는 성과를 내자는 의견이 나왔다. 의학 발전을 위해 포로들을 이용하는 생체 실험이었는데 당시에는 동물 대상의 의학 실험을 하였다. 하지만 결과가 분명치 않고 의문점이 많이 생겨 이 부분을 확인하는데 포로들을 이용하려고 한다. 그 첫 번째 안이 바로 의학 발전을 위하여 포로들을 실험자로 사용하는 생체해부 실험이다.

 

의사가 사람을 죽이는 건 그리 엄중한 게 아니야! 지금은 거리에서도 여기저기 공습으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잖아.”

 

▲ 규슈 의대 '의학 역사관'의 의학 기구, 자료, 전시관  © CRS NEWS

 

일본은 1931년부터 중국 만주 지역을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침략 전쟁을 일으켰다. 하지만 몇 개월이면 끝날 줄 알았던 만주 지역 전쟁은 고전을 면치 못하였다. 끈질기게 달려드는 중국인들의 저항으로 장기전에 들어갔다. 그렇다고 그 많은 중국인을 다 잡아 죽일 수도 없는 상황에서 일본은 한 가지 묘책을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전법으로 사람을 생체 실험으로 활용하여 인체에 치명적인 생화학 무기인 독가스를 사용하여 대량 살상 무기를 만드는 것이다. 일본은 1936년부터 만주 하얼빈에 방역 연구소라는 위장 실험실을 만들어 세균전 연구를 시작했는데 이것이 바로 반인류적인 만행을 저지른 731 부대였다.

 

세균 및 화학 실험 외에도 각종 무기 실험도 자행되었다. 살아있는 사람에게 탄저균이나 천연두 균을 주입하여 그 결과를 알아봤다. 독가스에 노출된 사람이 몇 분 안에 죽는지의 실험도 자행했다. 무기 실험에서는 사람을 세워놓고 총알의 관통력을 확인하거나 수류탄의 파편 반경을 알아보기 위해 사람을 모아놓고 수류탄을 던지기도 했다. 각종 질병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산 채로몸을 절단하거나 장기를 제거하기도 했다.

 

인간의 장기와 피를 동물과 연결하는 실험도 자행했으며 심지어 몸체에 바닷물을 혈액 대신 넣어 결과를 관찰하기도 했다.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잡혀온 상당수 조선인도 생체 실험에 이용되었다. 이때 생체 실험자들은 만여 명에 달했는데 주로 중일전쟁을 통해 붙잡힌 중국인이 가장 많았고, 조선인, 몽골인, 러시아인 심지어 전쟁 포로로 붙잡힌 미국인이나 영국인, 네덜란드인까지 있었다. 일본은 생체 실험 후 이렇게 잔혹하게 죽임을 당한 실험자들은 전부 소각처리로 철저하게 사건을 은폐하였다.

 

포로의 간을 잘라내 주지 않겠어?”

, 설마 이걸 젊은 장교들에게 시식시키는 건 아니겠죠?”

맞아!”

인육을 먹는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좋을지.”

………

괴로울 거 없잖아?”

이 포로 덕분에 결핵 환자의 치료법을 안다면,

그건 죽인 게 아니야, 인류를 살리는 거니까!”

 

▲ 규슈 의대 '의학 역사관'의 수술 장면 사진 전시물  © CRS NEWS

 

2015년 규슈대 의학부는 생체실험을 저지른 선배들의 만행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아 의학 역사관을 개관했다. 해부 학당으로 쓰던 자리에 천사의 집처럼 하얀 건물로 지어졌다. 안에는 규슈대 생체 해부 사건경위를 설명하는 전시물 2점을 비치하였다. 규슈 의대의 창립부터 현재까지의 유래와 업적이 연도별로 비치되어 있어 소상히 알 수 있다. 의학 기구, 수술 장면 사진 등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풍성한 역사를 보여준다. 다만 생체 실험 당사자인 미군 병사들에 대한 생체해부사건” 11번째 패널은 보여주기 식의 영혼이 없는 반성으로 보여 아쉬움을 남긴다.

 

▲ 규슈 의대 '의학 역사관'에 전시된 수술 도구  © CRS NEWS

 

- 생체해부사건(生体解剖事件) -

 

사건의 개요 (事件槪要)

 

2차 세계대전 말기인 19455월부터 6월에 걸쳐서, 제국 육군의 감시 하에 규슈제국대학(규슈대) 의학부 외과 교관들이 해부 실습실을 이용해 본토 공습을 하다 포로가 된 미군폭격기 B29의 탑승원 8명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해서 전원이 사망에 이른 사건이다. ‘규슈대학 오십년사에 따르면 실험의 주요 목적은 인간은 혈액을 어느 정도 잃어야 사망하는가, 혈액 대용으로 생리 식염수를 어느 정도 주입할 수 있는가, 어느 정도 폐를 잘라내는 것이 가능한가등이었다고 전해진다. 이어 전후(戰後), 군을 비롯해 규슈대학 관계자 30명이 기소돼 요코하마 군사법정에서 재판이 이루어졌으며 1948827일 사형판결의 5인을 교수형 23인이 유죄판결을 받았다. 후에감형(減刑)

 

무채색 풍경처럼 흐릿한 과거의 전쟁 기억은 그저 덤덤하게 잊혀져가고 있다. 그래서 두렵지만 더 기억하고 싶다. 권선징악(勸善徵惡)으로 끝나는 동화 속 설화처럼 과거의 범죄인들은 죄 값을 치렀는가?’ 묻고 싶다. 하지만 아쉽게도 답은 아니었다. 인간의 생명을 실험 도구로 , 단순히 흥밋거리로 느끼는 비루한 전쟁 속 범죄 현장이 이해를 넓혀 비운의 죽음을 맞이한 이들이 안타깝게 은폐되지 않길 바란다. 우려되는 부분도 있다. 국가 간 가해자를 넘어 피해자들의 사연을 담고 있기에 누군가에게는 아픈 기억이 되새김질 되는 건 아닌지 염려스럽다.

 

포로들을 생체 해부했던 의료인의 참회(懺悔)를 추정해 본다.

사는 게 무섭지 않았나요?”

가끔 혼자말로 하늘나라에서 잘 지내냐고묻기도 했어요. 물론 미안하다는 사과 도 하면서요.”

전쟁은 인간의 존엄을 무시한 채 생존을 위해 무감각하게 사는 법을 익혀야만 했 어요.”

끔찍한 살육을 저지른 죄책감에 어느 때는 연기처럼 흔적 없이 사라지고 싶을

때도 있었지요.”

병사들이여!

, 이제, 이 세상에서 죽음을 맞이한 날, 비로소 감옥 같은 과거에서 해방

되었소.

바라건대 피의 고통은 잊으시고, 영혼의 본향에서 평안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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