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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보살좌상 및 복장유물’ 등 7건 보물 지정 예고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3/11/29 [01:47]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의 심의 거쳐 보물로 지정할 예정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보살좌상 및 복장유물’ 등 7건 보물 지정 예고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의 심의 거쳐 보물로 지정할 예정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3/11/29 [01:47]


 
문화재청은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보살좌상 및 복장유물’ 등 7건의 문화재를 보물로 지정 예고하였다.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보살좌상 및 복장유물(平昌 上元寺 木造文殊菩薩坐像 및 腹藏遺物)’은 조선 1661년(현종 2)의 조성연대, 조각승 회감(懷鑒)을 밝히는 발원문과 많은 복장유물을 동반하고 있는 중요한 보살상이다. 또 상원사 보살상은 여의를 들고 있는 문수보살상으로 희귀한 예이고, 섬세한 보관(寶冠, 보살상이 쓴 관) 등도 조성 당시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어 주목된다.
 
보살상은 안정감 있는 신체, 조용하면서도 중후한 느낌의 얼굴, 입체적이면서도 부드러운 선묘(線描)를 보이고 있어 조각적으로 완성도가 높다. 환적 의천(幻寂 義天, 1603~1690)이 작성한 발원문은 세 번에 걸친 상원사의
 
 
▲ 문화재청은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보살좌상 및 복장유물’ 등 7건의 문화재를 보물로 지정 예고하였다     © 매일종교신문


 
중창 내력, 문수보살상의 조성과정 등을 상세히 밝히고 있다. 특히 이 불상을 조성한 회감은 17세기 중엽 경 인균(印均)과 함께 많은 불상을 제작했던 조각승이어서, 당시 활발히 활동했던 조각승 간의 교류관계와 이에 따른 불상 양식의 흐름과 변천을 연구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 상(像)이다.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보살좌상 복장전적(平昌 上元寺 木造文殊菩薩坐像 腹藏典籍)’은 ‘백지묵서금강반야바라밀경(白紙墨書金剛般若波羅蜜經)’과 ‘묘법연화경 권6(妙法蓮華經 卷六)’이다. 백지묵서금강반야라밀경은 백지에 먹으로 쓴 사경(寫經, 베껴 쓴 경전)으로 전면에 ‘금강반야바라밀경’, 후면에 ‘대방광불화엄경입불사의해탈경계보현행원품(大方廣佛華嚴經入不思議解脫境界普賢行願品)’이 수록되어 있다.
 
금강경은 구마라집(鳩摩羅什)의 번역본을 저본(底本, 원본)으로 필사한 것으로 사성기(寫成記, 경전을 베껴 쓴 이유를 자세히 기록한 것)가 없어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도침(搗砧, 종이의 질감을 좋게 하려고 두드리는 작업)이 잘된 두터운 장지(莊紙)에 정성 드려 쓴 서체의 품격에서 사경체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묘법연화경 권6은 송나라의 승려 계환(戒環, 1119~1125)이 주해한 송본(宋本, 중국의 송나라 때 간행된 서적)을 저본으로 하여 고려의 최이(崔怡, 1356~1426)가 주관하여 판각한 판본을 인쇄한 것이다. 이 판본은 판각과 인쇄상태로 보아 1240년(고려 고종 24)에 판각된 판으로부터 여말선초에 펴낸 희소한 것으로, 불교사와 서지학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대구 용연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및 복장유물(大邱 龍淵寺 木造阿彌陀如來三尊坐像 및 腹藏遺物)’은 복장 후령통(候鈴筒, 복장을 넣은 통)을 비롯하여 조성발원문 등 조성 당시의 원형을 갖추고 있어 불교 조각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조성발원문을 통해 1655년이라는 정확한 조성시기, 봉안사찰, 조성주체, 제작자 도우(道祐) 등을 알 수 있고 1762년의 중수개금기(重修改金記)까지 포함하고 있어 불상의 중수개금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로 공인되고 있다. 
 
상(像)의 제작자 도우는 17세기를 대표하는 무염(無染)의 계보를 잇는 조각승으로, 본존상의 귀염성이 느껴지는 얼굴, 당당하고 장대한 신체비례, 변화가 거의 없는 강직한 선묘, 무릎 앞 법의 주름 표현 등에서 독자적 불상양식 확립에 성공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작품을 통해 도우 작품의 시기별 양식 변화의 양상과 17세기 시대적인 특징인 대중적 평담미와 종교성 속에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해 나가는 모습을 잘 살펴볼 수 있다.
 
‘대구 용연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복장전적(大邱 龍淵寺 木造阿彌陀如來三尊坐像 腹藏典籍)’, 묘법연화경 권4~7(妙法蓮華經 卷四~七)은 불교의 대표적인 대승경전으로 조선 태종 5년(1405)에 전라도 도솔산 안심사(安心社)에서 성달생(成達生, 1376~1444)과 성개(成槪, ?~1440) 형제가 필사한 것을 새긴 목판본 전 7권 가운데 권4~7의 1책이다.
 
권수 변상도(變相圖, 경전의 내용을 알기 쉽게 풀이한 그림)의 왼편에 정씨(鄭氏)가 남편 왕씨(王氏)의 명복을 빌기 위해 화공(畵工)을 시켜 그림을 그리고, 판각하여 발간한다는 조성경위를 밝히고 있다. 권말에는 간행사실을 밝히는 권근(權近, 1352~1409)의 발문을 갖추고 있어 조선 초기의 불경 간행 방식을 알 수 있는 등 서지학과 불경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대구 운흥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및 복장유물(大邱 雲興寺 木造阿彌陀如來三尊坐像 및 腹藏遺物)’은 복장 후령통을 비롯하여 조성발원문 등 조성 당시의 원형을 갖추고 있어 불교 조각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판단된다. 특히 조성발원문에 1653년이라는 정확한 조성시기, 봉안사찰, 조성주체, 제작자 도우(道祐) 등을 밝히고 있어서 이 작품이 17세기 불상연구의 기준작이 될 수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대좌 아랫면에는 벌목(伐木)부터 불상 제작까지의 전 과정을 기록하고 있는 점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이 상(像)은 도우가 수조각승(首彫刻僧)으로 제작한 첫 작품으로, 17세기 조각승의 계보, 작품 활동과 화풍 전승 관계를 살필 수 있어 중요한 자료로 인정 받고 있다. 
 
‘홍가신 청난공신 교서 및 관련 고문서(洪可臣 淸難功臣 敎書 및 關聯 古文書)’는 조선 중기의 문신 문장공 홍가신(文壯公 洪可臣, 1541~1615)의 청난공신(淸難功臣, 조선 선조 때 이몽학의 난을 평정한 공신들에 내린 호) 교서를 비롯하여 홍가신처 이씨 고신 교지(告身 敎旨, 관직을 내리는 교지), 홍가신비 신씨 추증 교지(追贈 敎旨, 죽은 사람에게 관직을 높여주는 교지), 홍가신비 성씨 추증 교지(洪可臣妣 成氏 追贈 敎旨), 홍가신 추증 교지(洪可臣 追贈 敎旨), 홍온(洪昷, 홍가신의 아버지) 추증 교지, 홍은 증직 교지(洪昷 贈職 敎旨) 총 8점이다.
 
 
이들 문서는 청난 1등 공신으로 책봉한 공신교서를 중심으로 부모를 추증한 문서와 사후 홍가신을 추증한 문서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와 함께 공신 책봉 이전 홍가신의 행적을 반영하는 문서가 포함되어 있는데, 가선대부 한성부 우윤(嘉善大夫 漢城府 右尹)에 제수될 당시 그의 처에게 발급된 문서들이다. 또 이들 문서는 홍가신과 관련한 일괄 문서의 형태를 이루고 있어 조선 중기 이몽학(李夢鶴, ?~ 1596)의 난과 관련한 역사 연구를 구체화하고, 호서지역 사족가의 존재 양태를 파악할 수 있는 1차 사료로서 조선시대 고문서학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묘법연화경 권3~4, 5~7(妙法蓮華經 卷三~四, 五~七)’은 조선 전기 왕실에서 주도하여 간행한 불경으로, 김수온(金守溫, 1410-1481)의 발문에 간행 시기와 간행 동기가 분명하게 남아 있고, 보존상태도 좋은 편이다. 또 장막동(張莫同), 최금동(崔今同) 등 일류 각수(刻手)들이 참여하여 판각이 정교하고, 정밀하게 인출하여 먹색이 진하고 고른 모습을 보여준다. 보문사 소장의 묘법연화경은 글자의 깨짐과 계선(界線)의 마멸상태로 보아 초인본(初印本)은 아니고, 성종연간(1470~1494)에 간행된 후인본으로 보인다. 그러나 보존상태가 온전하고, 인쇄상태와 지질도 뛰어나므로 판본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판단되고 있다.
 
문화재청은 보물로 지정 예고한 유물 7건에 대해, 30일간의 지정 예고 기간 중 수렴된 각계 의견을 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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