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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종 7주기 김수환과 탄생 100년 정주영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6/02/15 [08:25]
용인 법화산, 수많은 영혼 안식처 천주교 묘지와 삶과 생활의 터전 현대 연구소

선종 7주기 김수환과 탄생 100년 정주영

용인 법화산, 수많은 영혼 안식처 천주교 묘지와 삶과 생활의 터전 현대 연구소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6/02/15 [08:25]


‘사랑하고 용서하세요.’, ‘이봐, 해봤어?’의 실천이 진성성 강조보다 중요 
여야, 진영, 이념, 종교의 패거리 문화로는 정치사회갈등 해법 難忘

 
용인 법화산 북동 자락엔 천주교 묘지가, 남서 자락엔 현대 연구소가 있다. 20 여만평 천주교 묘역에는 수많은 영혼들이 황량한 모습의 산자락에 잠들어 있고 마북 현대연구소는 산자락 숲속 곳곳을 아늑하게 점령하고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생활의 터전이 되었다. 1967년 조성된 천주교 묘지엔 올 2월 선종 7주기를 맞은 김수환 추기경의 한 평이 안되는 묘지가 있고 1984년부터 들어서기 시작한 마북 현대연구소엔 지난해 말 탄생 100년을 맞은 정주영 회장의 별장이 있었다.
 
법화산 정상길과 둘레길 20여 리를 산책할 때마다 30-50년 전부터 법화산을 에워 싸고 일구어진 삶과 죽음의 광대한 공간에 감탄한다. 그리고 이곳 용인 법화산뿐 아니라 전국 방방곡곡, 전 세계 곳곳에 뻗친 천주교와 현대의 위용에 감히 근접할 수 없는 필부의 한계를 느끼게 된다. 현대연구소와 천주교 묘지가 들어선 법화산 빈틈과 주변에 널려져 있는 수많은 아파트 단지의 아파트 한 채 마련하기 위해 평생 목매달고, 그마저 선망하며 사는 세입자들이 있다. 또한 한평 누울 자리를 마련하기 위한 장례의식에 쩔쩔매는 사람들이 많으니 전 세계는커녕 법화산을 차지한 천주교와 현대의 위용만으로도 그 창대한 뜻과 의지, 그리고 실행에 경외감을 느낀다.
 
그리고 김수환 추기경의 임종 전 마지막 메시지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용서하세요.’와 정주영 회장의 기업가 정신을 대표하는 어록 ‘이봐, 해봤어?’에서 그 위용의 원천을 찾게 된다. 김 추기경의 ‘하나님 뜻’이 천주교 세상을 일궜으며 정 회장의 ‘도전과 불굴의 의지’가 현대의 세상을 일으켰다는 생각이다. 범인(凡人)으로선 갖추기 힘든 뜻과 의지, 실천인 것이다.
 
▲ 법화산 남서 자락의 현대 연구소 일부(사진 위)와 북동 자락의 천주교 묘지 모습     © 매일종교신문
 
그러나 김 추기경과 정 회장 역시 찬사와 비난이 엇갈렸던 인물이다. 김 추기경은 유신독재시대에서 5공에 이르기까지 권력과 폭력에 맞선 양심의 대명사였으나 2004년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에 대해 ‘시기상조’라며 부정적 태도를 보이자 진보진영으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이어 사립학교법 개정 반대, 노무현 대통령 탄핵정국 때의 촛불시위 자제 촉구, 반미주의와 북한 체제 비판, 친일파 청산에 대한 유감 표명 등으로 변절자란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정 회장의 공과(功過)에 대한 평가는 더욱 극단적이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불굴의 의지로 대한민국의 산업을 일으켰고 소떼를 몰고 북한을 방문하는 기상천외의 발상으로 금강산 개발 등 대북 통일사업을 펼친 그의 공에도 불구하고 생애 내내 정경유착, 독과점의 폐해에 대해서는 비판을 받았다. 심지어 그의 사생활을 놓고 헐뜯는 사람까지 생겨났으며 말년 정치에 뛰어들어 대통령 선거에 나설 때는 ‘노욕(老欲)’, ‘망령’이란 모욕스런 말까지 들어야 했다.
 
천주교와 동장정교회의 1천년만의 화해, 12년만의 개성교단 페쇄와 몰수
-공(功)은 공대로 인정하고 과(過)는 반면교사로서 새겨 두는 소통과 화해 절실

 
정주영과 김수환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이 시대의 개선과 발전의 반면교사가 되는 것일 수 있다. 반목과 비판이 훗날 화해와 융합으로 나타나는 역사발전의 흐름과도 같다. 1054년 교황 레오 9세와 동방교회의 대주교 케룰라리우스의 상호파문과 반목으로 동서교회가 분열되었다. 그러나 지난 2월 12일 프란치스코 교황과 키릴 총대주교가 천년만에 만나 화해했다. 또한 마녀사냥, 십자군전쟁 등 가톨릭의 독선적 권위는 급기야 면죄부 판매로 인해 1517년 종교개혁으로 개신교와의 반목을 생겨나게 했다. 그러나 1965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동방정교회의 파문을 해제했을 뿐 아니라 개신교를 형제로 인정하는 소통과 화해의 조치를 취했다.
 
시대의 발전, 그리고 역사의 발전은 결국 반목과 질시를 떠나 이해와 소통, 화해를 통해 이루어진다. 자기 편만이 진리이고 정의이며 진정성을 갖춘 것이라는 독선과 아집은 갈등과 분열을 심화시킨다. 공(功)은 공대로 인정해주고 과(過)는 반면교사로서 새겨 두어야지 한편으로 치우친 극단적인 평가와 행동은 합리적이고 공익적인 결실을 기대하기 어렵다.
 
▲ 중단과 폐쇄, 몰수란 연이은 불행한 조치로 남북갈등과 진영갈등을 동시에 증폭시키고 있는 개성공단.     ©
 
개성공단 중단과 폐쇄, 몰수란 연이은 불행한 조치도 그러한 차원에서 바라보게 된다. 남한과 북한은 서로 상대를 헐뜯으며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정치판과 사회는 여야와 진영 편을 갈려 자기 편만이 옳은 생각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교회도 똑같이 보혁진영으로 나뉘어 갈등을 증폭시킨다. 보수 목회자단체는 “북한의 반복되는 도발에 추가적 제재를 이행하라”, 진보성향 단체는 “온 민족의 평화 염원을 짓밟는 개성공단 중단 조치를 철회하라"고 촉구한다. 물론 남북, 중국을 비롯한 주변국가의 입장 뿐 아니라 개성진출기업과 국민여론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지 않은 소통부재의 독선적인 그릇된 정책이란 지적은 반면교사로 활용될 수 있다. 그러나 엎지러진 물 상태에서 합리적이고 모두에 이로운 해법제시는 없고 비판을 위한 비판, 진영 편에 선 비난이 앞서기 때문에 사회갈등은 깊어지고 해법은 난망이다.
 
국사교과서. 위안부협상, 세월호 문제로 분열된 정치, 사회, 종교
-해법제시는 없고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앞서는 진영다툼

 
국사교과서. 위안부협상, 세월호 문제 등에서도 합리적, 상식적 해법은 모색치 않고 개선공단 논란과 마찬가지로 정쟁과 사회적 갈등과 분열로 치달았다. 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해선 ‘그릇된 내용 수정’, ‘유신 시대로의 회귀’란 팽팽한 대립이 있었고 위안부 협상 타결을 놓고는 ‘한·일관계의난제를 푸는 진일보한 접근’, ‘피해자와 국민을 철저히 배신한 외교적 담합’이란 찬반입장이 맞섰다. 세월호 특조위 조사에 대해서도 2년째 국민의 여론과 감정을 갈라놓고 있다. 소통과 화합, 중용을 통해 큰 틀의 해법을 제시해야 할 종교가 진영 편 진정성을 내세우며 사회여론을 휘두른다.
 
게다가 종교간 질시와 반목을 거듭함으로써 정치사회의 모범이 되기는커녕 조롱거리가 된다.
 
조계종 종교평화위원회는 연말의 공영방송 시상식에서의 기독교 연예인 수상자들의 종교적 표현의 소감에 대한 모니터링 조사결과를 발표하며 ‘국민의 윤리적, 정서적 감정을 침해해 국민의 기본권을 해칠 수 있다’고 했다. 이에 교회언론회는 ‘‘신앙과 종교의 자유에 시비를 거는 이상한 종교’라는 비아냥조 표현으로 비판을 하는 등 치졸한 다툼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봉은사역. 통도사역 등 지하철 역명을 놓고도 신경이 날카롭다. 부처님 오신날의 시내 연등설치를 ‘우상숭배’라며 금지요청하는 개신교계나 크리스마스때 시청앞 트리에 십자가를 철거하라는 불교계나 일반 국민들에겐 코미디로 여겨진다.
 
▲ 방송에서의 연예인 수상소감을 놓고 불교계와 개신교계의 반목과 비아냥이 생겨났다.     ©
 
지난 1월 말에는 국회서 ‘재수굿 문화공연’과 함께 역술인· 무속인들이 ‘합동 국운 발표회’를 가졌는데 개신교계에서 ‘민의의 전당에서 무당굿으로 국운을 도모하는 굿판을 벌였다’는 비판으로 장소를 알선한 알선한 새누리당 이이재 의원이 곤욕을 치뤘으며 김무성 대표가 사과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주최 측 취지대로 ‘이 시대 사명자들의 희망 메시지’라고 보면 힘없는 국민의 일원이 국운을 기원하는 전통문화행사로서 볼 수도 있을 텐데 ‘나라 망치는 무속행위’로 매도된 것이다. 일반국민들에게는 이 행사 역시 국회에서 법회나 기도회가 열리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단지 많은 표를 몰고 갈수 있는 종교의 힘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사과를 해야하는 상황이 안타깝다.
 
진성성을 내세우는 사람보다 실천하는 사람이 만드는 바람직한 사회
- ‘사랑하고 용서하세요.’, ‘이봐, 해봤어?’란 말에 ‘진정’이란 토 달지 않았다

 
이러한 우리사회 정치·사회, 종교의 반목과 질시, 갈등과 분열은 진정성을 내세우고 자신만이 진실이며 정의라는 독선과 아집에서 나오는 것일게다. 자기기만, 자아도취로 빠진 상태에선 더욱 증상이 심해진다. 더욱 불통이 되고 상대에도 있을 일말의 진정성에 대해선 귀와 마음을 닫는다. 그리고 여야, 진영, 이념, 종교의 패거리 문화에 휘둘려 쉽게 비판하고 함부로 상대를 재단(裁斷)한다. 다른 패거리에 있을 ‘옳음’마저 ‘틀림’으로 해석해야 내 패거리의 이익이 되고 내 속이 풀린다. 합리적·상식적 해법 찾기보다 속 푸는 게 우선이 된다.
 
김수한 추기경과 정주영 회장은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용서하세요.’, ‘이봐, 해봤어?’란 말에 진정, 진실이란 토를 달지 않았다. 다만 묵묵히 실천했을 뿐이다. 현 사회의 정치, 종교인이툭하면 말로 내세우는 진정성에 비교할 수 없는 진정, 진실함이 담겼다. 변절자, 정경유착자 등의 비판을 의식하기보다는 ‘사랑과 용서’, ‘불굴의 도전의식’을 실천하는데 최선을 다한 인물들이다. 진정성을 외부에 강요하지 않고 자신의 진정성에 충실한 인물들이란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거룩한 뜻’과 ‘남들이 꿈꾸지 못한 웅지’를 펼쳤을 것이다.
 
천주교 묘지와 현대 연구소가 에워 싼 법화산 산책을 하며 나부터 집단진영이 내세우는 진정성에 휘둘리지 않는 내 내부의 진정성을 찾고 우리의 정치, 사회, 종교도 그러한 진정성을 속으로 갖춰 합리적 해법을 도출하는 살기좋은 세상을 이루는 상념은 그저 상념에 그치는 것일까? 그래도 상념으로나마 이렇게 나와 세상이 즐거울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해야겠다. (발행·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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