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守岩 칼럼
통도사 방장 성파 스님 “코로나사태는 인간 자만에 대한 자연의 경고”
나를 살 수 있게 하는 자연에 감사하고 주위의 모든 것 존중하는 하심(下心) 가져야
기사입력: 2020/09/25 [21:21]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문윤홍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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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살 수 있게 하는 자연에 감사하고 주위의 모든 것 존중하는 하심(下心) 가져야 

 

뭐든지 하면 된다는 생각에 취해 자연에 순응할 줄 모르는 인간의 자만이 문제이다.”

 

경남 양산 영축총림(靈鷲叢林) 통도사(通度寺) 방장(方丈) 성파(性坡) 스님은 자연을 무시하는 것은 자기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설파했다. 방장은 총림을 대표하고 지도·감독하는 최고 어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요즘 많은 사람이 힘들어 하는 현실에 대해 스님은 산문에서 구체적인 코로나19의 치료법에 대해서는 뭐라고 언급할 수 없지만, 인간의 자만 문제는 짚어봐야 한다. 뭐든지 하면 된다는 생각에 취해 자연에 순응할 줄을 모른다. 예전에는 달님도 믿고, 해님도 믿고, 산신도 믿었다. 어리석어서 그런 게 아니다. 나를 살 수 있게끔 해주는 자연환경 자체를 감사하게 생각한 것이다. 이를 미신이라고 치부하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 내가 소중하듯이, 내 주위의 모든 것도 다 소중하다. 이런 자연을 너무 무시하면 안 된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여러 신()을 믿은 것이다. 꼭 신이 있어서라기보다 내가 마음을 그렇게 먹는 것 자체가 하심(下心)이다. 상대를 존중하는 자세다. 이를 과학적으로만 판단해서 안 좋게 보면 곤란하다. 현대 세계가 아무리 달나라를 가고, 별세계를 가더라도 인간 밖에 있는 것을 무시하면 안 된다. 이는 자기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종교에 대한 시각이 바뀌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스님은 종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그런 현상이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또 종교인 자체도 그것에 맹종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종교의 가치가 다르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런 부분들은 말을 하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에, 달리 말할 것은 없다. 모두 스스로 알고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 영축총림 통도사 방장 성파 스님    

  

대상·삶의 양태 달라졌지만 인간 삶의 진리는 변함없어

 

현대인에게 부처님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스님은 “2500여 년 전이라고 하면 오래된 것 같지만, 지금과 많이 떨어졌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인간의 삶은 계속 연결돼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연결이 안 됐으면 격차가 있어 오래됐다고 할 수 있지만, 연결이 돼 있어 지금과 시간을 따질 게 없다. 시대상과 삶은 달라졌지만, 진리는 변함없이 우리와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일깨워줬다.

 

그러면 진리가 곁에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성파 스님은 부처님 말씀을 잘 듣고 새겨야 한다. 진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늘 우리와 함께하고 있다. 따라서 일상생활에 별도로 접목할 필요가 없다. 이미 우리와 접목된 것인데, 평소 이를 알아채느냐, 못 알아채느냐의 문제가 있을 뿐이라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스님은 부처님의 84000 법문이 모두 진리에 이르는 이정표다. 길을 모르고 헤매는 것보다 가르쳐 주는 길로 간다면 쉽고 빠르게 갈 수 있지 않겠나. 그래서 스님의 법문을 들으면서 공부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일상 속에서 몸소 행동해야 한다. 이를 제시한 것이 팔만대장경의 내용이라고 말했다.

 

성파 스님은 도자기, 민화, 글씨, 옻 공예 등 많은 분야에서 예술적 성취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를 했는데, 사실 하나도 제대로 한 게 없다. 하나도 옳은 게 없다. 한 가지를 한평생에 걸쳐 전념해도 될까 말까 한 데, (여러 가지를 해서) 잘 될 수 없다. 그래서 옳은 게 하나도 없다고 겸손해 한다.

 

예술과 수행은 어떤 관계에 있을까. 스님은 나는 꼭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를 하지 않는다. 수행 따로 있고, 예술이 따로 있어서 하나가 다른 하나의 방편이 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연결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목표를 세워 놓고 하지 않는다. 일상생활 속에서는 길을 정해 놓고 이를 따라가는 것이 정상이라고 한다면, 나는 길 없는 산속에서 이리도 가보고, 저리도 가보고 하면서 길 없는 길을 헤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도자기, 민화, 글씨, 옻 공예 등이 스님에게 모두 같은 것일까, 다른 것일까. “다르면서도 같다. 도자기나 그림, 옻 공예처럼 밖으로 나타나는 모습은 다르다. 하지만 한 사람이, 한 솜씨가 하는 것이니까 모두 한 가지라고 할 수 있다라고 답했다

 

상한선 없이 책 모으기 운동 펼쳐세계도서문화보존회 구상 중

 

성파 스님은 현재 ‘100만권 도서 모으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30만 권쯤 모였는데, 상한선은 없다. 앞으로 몇 백만 권이 될지 모르지만, 계속 수집할 계획이다. 요즘엔 스마트폰이 있어서 책이 필요 없는 시대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책은 아무리 말해도 소중하다. 지금 우리는 동시대에 살고 있어도 연령별로 생각이 다르다. 70, 80대 노교수들의 책에 대한 생각은 지금의 젊은 교수들과는 다르다. 당시 노교수들은 끼니를 굶어 가면서도 책을 사려고 했다. 책이 얼마나 귀중한지 몰랐다. 오로지 책을 사서 공부해 목적을 이뤄야 한다는 마음으로 살아온 세대이다. 책은 분신이나 마찬가지였다.”

 

사찰에서 도서 모으기 운동을 하는 이유는 뭘까. 스님은 농부가 논밭이 없으면 안 되는 것처럼, 책은 학자에게 논밭이나 마찬가지다. 그것으로 연구하고 가르치고 또 먹고살았다. 그런 책이지만, 지금은 도서관에서조차 받아주지 않는다고 한다. 이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다. 이거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우리나라에 등록된 도서관이 3000곳이 넘는다고 하지만, 역시 운영 등 문제로 책을 받아 줄 형편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많은 책을 모두 버릴 수밖에 없는데, 이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결국 활용할 수 있는 땅을 보유하고 있는 사찰이 나설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됐다. 이런 일은 땅이 있고, 스님이 있는 사찰이 국가적인 차원에서 꼭 나서야 할 일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앞으로 이것보다 더 큰 일이 없다. 현재는 코로나19 때문에 조금 주춤한 상황이지만, 어느 정도 안정되면 언론이나 대학에도 공문을 보내 정식 운동으로 시작하려 한다고 향후 계획도 밝혔다.

 

그 많은 도서를 어떻게 활용할 계획일까. 스님은 가칭 세계도서문화보존회를 구상하고 있다. 요즘은 세계화 시대여서 우리나라에 있는 책만 모아도 전세계에서 출판된 책을 모두 구할 수 있다. 일단 현재는 수집하는 것이 목적이다. 보관 장소나 비용을 일일이 생각하면 이런 일은 밀고 나갈 수가 없다. 일단 일을 시작해 놓으면, 누군가는 이어서 계속하게 돼 있다. 모아 놓은 장서(藏書)는 분류 작업을 거쳐 컴퓨터로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할 것이다. 통도사는 종교인이 아니라도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인 만큼 이 도서를 활용하면 통도사 전체가, 아니 영축산 전체가 거대한 도서관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찰과 일반 도서관의 기능 양립이 어떻게 가능할까. “집 없는 도서관, 땅 자체가 도서관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수백만 권의 도서를 모아 놓은 다음, 통도사는 물론 영축산 곳곳에 수만 개의 의자를 설치해 거대한 도서관으로 만드는 것이다. 숲속에서 아이, 어른은 물론 가족들끼리, 연인들끼리 와서 책을 보고 또 한편으로는 휴식을 취하면서 정신적인 안식을 얻는다면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을 것이다. 내가 있는 동안에는 이를 실현하지 못할지라도 방향만은 꼭 정해 두려고 한다.”

 

스님의 책 모으기 운동은 단순한 도서 수집 차원이 아니라 사찰의 역할과 인간의 정신 문제로까지 이어지는 큰 그림과 연결돼 있었다. 이번 추석 때 완성을 목표로 3년째 작업 중인 실물 크기의 거대한 옻칠 반구대 암각화천전리 각석창작품의 마무리 손질에다 방장 업무까지 해야 하는 성파 스님의 일과가 궁금했다. “어떻게 시간을 쪼개고 있느냐라는 물음에 스님은 쪼개는 게 따로 있나. 나날이 그냥 부딪히면서 넘어가는 것이지라고 했다.

 

성파 스님, 10년에 걸쳐 남북통일 발원을 담은 도자대장경 불사 일궈내

 

성파 스님의 주석처는 통도사를 끼고 영축산 깊숙이 분지에 자리 잡은 서운암(瑞雲庵)이다. 초막으로 있던 인법당을 손수 일궈 오늘의 서운암으로 바꾼 장본인도 성파 스님이다. 성파 스님은 통도사 주지 소임을 내려놓은 뒤 1991년부터 서운암에 머물며 도자대장경 불사를 시작했다. 10년에 걸쳐 남북통일 발원을 담은 도자대장경 조성이라는 대작불사를 일궈냈다. 2013년 도자대장경을 봉안한 장경각 불사를 마무리하기까지 30여년의 세월을 하루처럼 헌신했다. 숱한 실패를 거듭한 끝에 성공한 도자대장경 불사는 성파 스님의 대원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성파 스님은 "시대를 사는 불자들의 염원을 담았기에 가능했던 일"이라며 "이런 불사는 반드시 기록으로 남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스님은 "일제시대 때 우리 스님들이 독립운동을 참 많이 했는데, 한국독립운동사를 보면 스님들 이야기가 다 빠졌다""기록으로 남기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참사"라고 우려했다. 2600년을 이어온 부처님의 가르침은 다양한 형태로전해져왔다우리나라에 전해진 불교는 700년 전 고려팔만대장경을 탄생시켰다지금은 온전히 남아 있지 않은 초조대장경에 이은 찬란한 기록물이다거란의 침입에 맞서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국난을 극복하고자 초조대장경이 각판됐고몽고의 침입으로부터 국가와 민족을 지켜내고자 팔만대장경이 탄생했고오늘날 자랑스런 세계문화유산이 됐다. 성파 스님의 16만 도자대장경 불사는 이에 버금가는 대작불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통도사 방장 성파 스님    

 

훗날 후손들의 역사책 문화 분야에 '16만도자대장경(16萬陶瓷大藏經승려(僧侶)' 기록될  성파 스님의 생활신조는 '일하며 공부하고공부하며 일한다'이다. 일로 시작해서 일로 끝을 매듭해 () 깨치라는 의미로 풀이된다스님은 붓을 잡아 '비지지난이행지난(非知之難而行之難아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행하기가 어렵다)'이라는 경구를 즐겨 쓴다.

 

성파 스님은 “나보다  많이 아는 세상 사람들에게 무슨 법문을 하겠느냐면서 “모르는 줄 아는 것이 진짜 아는 이라고 일침했다. 눈밝은 선지식을 찾아 선방에 방부를 들이고 만행하던 시절을 제외하곤 계속 통도사에 머무르며 선농일치(禪農一致) 가풍을 이어왔다.

 

영축총림 방장에 성파스님 만장일치 추대2018년부터 10년 임기 재임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 사찰 중 불보 사찰인 영축총림 통도사 방장에 성파 스님이 만장일치로 추대됐다. 201839일 설법전에서 비공개로 열린 산중총회에 구성원 473명 중 310명이 참석해 이같이 결정했다.

 

통도사는 2017년 두 차례 방장 선출을 위한 산중총회를 개최했지만, 성원이 안 돼 1년여 동안 방장을 선출하지 못했다. 이날도 산중총회 개최 전까지 방장 추대가 가능할지 불투명했다. 하지만 방장 공백으로 말미암은 혼란은 막아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여져 각 문도회가 사전 조율 끝에 성파 스님을 단독 추천하면서 30분 만에 마무리됐다.

 

이처럼 방장 추대가 순조롭게 끝난 것은 문중 화합을 통해 통도사와 영축총림을 더욱 발전시키자는 데 구성원 모두가 뜻을 같이했기 때문이다.

 

합의 추대에는 통도사 주지 영배 스님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영배 스님은 2017년 방장 선출이 두 차례나 무산되면서 향후 사태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각 문도회의 원로스님 등을 찾아 전체 화합을 위해 투표까지 가선 안 된다며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파 스님은 1960 통도사에서 전 방장 월하(月下)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이후 월하 스님으로부터 사미계와 비구계를 각각 받았다. 1971년 통도사 승가대학을 졸업한 후 총무원 사회부장과 교무부장, 통도사 주지를 맡았으며 제5·8·9대 중앙종회 의원을 역임했다. 학교법인 영축학원 이사장, 한국전통문화연구원 이사장을 맡았고 1986년부터 통도사 서운암에서 회주로 주석하고 있다.  

 

성파 스님은 통도사 서운암 들꽃축제와 전통방식을 살린 천연염색, 약된장을 통해 불교 대중화와 전통문화 보전에 앞장서고 있다. 서예가이기도 한 스님은 성파시조 문학상, 영남시조 백일장도 매년 열고 있다.

 

성파 스님의 법문 - 눈 밝은 소는 허수아비를 사람으로 착각하지 않는다  

 

산승은 통도사 서운암에 살고 있습니다. 내방객들이 절에 오면 제가 오래 살았다고 법문을 해달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분들에게 나에게 들으려하지 말고 직접 보라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제가 가장 하기 싫은 것이 법문이고 가장 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일입니다. 그래서 법문은 될 수 있는 대로 안하고 대신 일을 하려고 합니다. 하고 싶은 것을 하니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나이에 비해 건강하다며 비결을 묻는다면, 저는 비결이 따로 있을 수 없다고 말할 겁니다. 왜 건강에 매달려야 합니까? 저는 일하기 바쁜 사람입니다. 그리하면 건강은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비법이 없습니다. 부지런히 일만 하면 됩니다. 그런 심정으로 오늘날까지 살아왔는데, 조계사에서 초하루 법회가 있다고 해서 못하는 말이나마 해보려고 부득이하게 왔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창피 좀 당하려고 했는데, 와서 보니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법당을 가득 채우고 있는 모습에서 머리 깎은 우리보다 더 지극한 신심을 느낍니다. ‘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 사람이 동행하면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는 말입니다. 나보다 잘하는 것도, 못하는 것도 보면서 배우는 것입니다. 나쁜 것도 배우게 됩니다. ‘저래서는 안 되겠다. 나는 저렇게 하지 않아야지하면서 배우는 것이지요. 피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여러분들은 나쁜 것은 되도록 멀리하려 하는데, 마음 한 번 돌이키면 그것 역시 내 스승이 됩니다.

 

살아가다보면 어처구니없는 일들을 많이 목격하게 됩니다. 그것을 내 상황에 비춰서 같은 잘못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습니다. 배움이라는 것은 바로 그렇습니다. 제 나이가 80살이 다 되어갑니다만, 오늘 이 자리에 와서도 크게 배우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진리는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한다고 이르셨습니다. 겁이 나서 할 말을 잊어버렸을 때 식겁하다고 표현합니다. 1겁은 사방 80리에 이르는 상자에 겨자씨를 한 알씩 넣어 채운 뒤 다시 한 알씩 비우는데 걸리는 시간입니다.

 

인간은 숫자를 하나부터 세어나가지만 끝이 없습니다. 숫자로는 그 무한함을 표현할 수 없습니다. 우주공간의 넓이 역시 단위로 표현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가장 크고 가장 많은 것이 바로 하나임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게 바로 하나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화엄경에 보면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이라는 가르침이 있듯이 하나에서 천만 억이 나가고 다시 돌아오면 그것이 바로 하나입니다.

 

높이 올라가다보면 공기가 없는 무중력 공간이 나옵니다. 마찬가지로 공부를 열심히 하면 일체시비가 없는 경지에 이릅니다. 청탁이 없고 고저가 없고 장단이 없는 공간입니다. 그 상태에 까지 이르지 못한 사람들은 수행을 통해 도달하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시시비비를 가리면서 고통스러워합니다.

 

이럴 경우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죽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러면 아무 시비가 없습니다. 죽었는데 어떻게 시비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항상 나보다 어려운 사람은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떠올리면 그저 감사한 마음이 생깁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편안한 삶입니다.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입니다. 처음 발심만 단단히 지키면 그것이 바로 정각입니다. 어느 사찰에 돌 석상이 있었습니다. 그 석상의 입은 세 번 끌어맨 형상입니다. 등에는 이 사람은 옛날에 말을 조심하는 사람이었다라고 새겼습니다. 입을 한번 끌어매도 말을 못하는데 세 번이니 어떻겠습니까?

 

선방에 가면 처음 절에 들어온 사람들, 사미들이 앉는 자리에 삼함(三緘)’이라고 써놓습니다. 입이 있어도 말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말을 주의해야 합니다. 평생 살아도 말은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함부로 말하면 안 됩니다. 좋은 말을 하면 선근의 씨앗이 돼 좋은 결과가 생기고 안 좋은 말을 하면 악연이 돼 안 좋은 결과가 생깁니다.

  

예전에 도를 깨친 스님이 지은 시 한편이 있습니다

 

枯草弊衣化作人(고초폐의화작인)

野禽山獸總疑眞(야금산수총의진)

荒年險世無憂客(황년험세무우객)

戰國徵兵漏籍民(전국징병누적민)

態勢長時終似舞(태세장시종사무)

形容深夜更生新(형용심야갱생신)

家牛有力兼明眼(가우유력겸명안)

直入田中喫偶身(직입전중끽우신)

 

마른풀 헤진 옷으로 인형을 만들어 놓으니

들새 산 짐승들이 긴가민가 의심하네.

흉년들고 험한 때도 근심걱정 없고

전쟁 통에 병사 모아도 족보 없는 사람이라네.

뚫어져라 쳐다봐도 미동도 하지 않지만

한밤중이면 행색에 생기가 돋아나네.

그러나 내 집에 눈 밝고 힘 센 소가 있는데

성큼성큼 논밭으로 들어가 허수아비를 먹어버렸도다.

 

이 시에서 풀을 뜯어먹는 소는 자성, 곧 스스로의 심성입니다.

심성이 밝으면 허수아비를 사람처럼 꾸며도 속지 않습니다.

들새와 산짐승들은 사람인줄 알고 오다가도 멈춥니다.  

우리들은 깨닫지 못했을 때 진짜 사람인지, 가짜 사람인지 분별하지 못합니다.

깨닫지 못했을 때 정법인지, 망상인지, 본심인지, 자성인지 분별하지 못합니다.

소가 눈이 밝다는 것은 안목이 밝다는 것입니다. 이치를 깨달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물을 바로 보고 명석하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지혜의 광명이 샘솟아 환하게 보입니다. 본인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사람을 볼 수도 있고 허수아비를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보는 눈, 지혜의 눈을 열어야 합니다. 눈은 어떻게 여느냐, 진리를 깨달으면 열립니다. 예전에 스승이 상좌를 불러 등을 밀게 했는데, 상좌가 스승의 등을 탁탁 두드리며 법당은 좋은데 부처님은 영검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허우대는 멀쩡하지만 지혜가 밝지 못하다는 말입니다. 목욕을 끝내고 방으로 돌아갔는데, 벌이 한 마리 날아다니고 있었습니다. 벌은 밖으로 나가고자 했지만 창호지에 뚫린 구멍을 찾지 못해 문에 자꾸 부딪치고 있었습니다. 상좌가 말했습니다.

 

空門不肯出(공문불긍출)

透窓也大痴(투창야대치)

百年讚古紙(백년찬고지)

何日出頭期(하일출두기)

 

열려있는 문으로 나가려 하지 않고

자꾸만 창문에 부딪치니 어리석도다

백 년을 그렇게 묵은 종이 뚫어본들

대가리 빠져 나가는 날 언제 올까?

 

여기서 공문(空門)’이라는 것은 부처자리, 극락입니다. 새가 새장에 들어가 있을 때야 비로소 숲 속이 극락임을 알 수 있듯이 여러분도 여기 조계사에 와서 법문 듣고 기도하고 마음 닦고 있으니 바로 극락임을 알아야 합니다.  

 

극락 가운데 극락입니다. 날마다 좋은 날입니다. 번뇌 망상에 사로잡히지 말고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능히 자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충분히 길러야 합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나는 극락세계에 살고 있다고 마음먹는다면 몸에 병이 나지 않습니다. 오늘 누군가는 병원에 갔겠지만 여러분들은 이렇게 조계사에 와 있습니다. 누군가는 일과를 정해놓고 병원을 찾지만 여러분들은 일과를 정해놓고 극락세계에 오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 잘 깨달으면 그대로가 바로 도()입니다. 행복은 먼 데서 빌려올 것 없이 바로 내 안에 있습니다. 내가 마음을 깨우쳐 내 법에 내가 있으면 설령 부도가 나더라도, 그로 인한 행복은 차압당하지 않습니다. 내 법은 어느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습니다.

 

남편도, 아내도 뺏을 수 없습니다. 그 보배를 스스로 알아차리면 천하의 갑부가 되고 천하의 행복을 얻습니다. 여기 참석한 분들은 이 사실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됩니다.

수암(守岩) 문 윤 홍<大記者/칼럼니스트>moon47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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