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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꿔라”…‘혁신의 거인’ 이건희 회장 떠나다
끊임없는 도전·혁신의 승부사…파산 직전 한국반도체 인수해 세계 ‘초일류 삼성’으로 키워내
기사입력: 2020/10/29 [19:37]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문윤홍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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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는 도전·혁신의 승부사…파산 직전 한국반도체 인수해 세계 ‘초일류 삼성’으로 키워내

 

대한민국 재계의 거목(巨木)이 스러졌다. ‘반도체 신화’를 통해 삼성(三星)을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이끈 이건희(李健煕, 1942~2020) 삼성전자 회장이 10월25일 서울 강남구 일원동 서울삼성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78세. 2014년 5월 급성 심근경색증으로 서울 이태원동 자택에서 쓰러진 뒤 6년5개월만이다. 그는 단지 삼성을 대표하는 기업인만이 아니라 산업발전과 기술혁신에 영감을 준 정신적 지주였다.


삼성전자는 이날 이 회장이 투병생활을 해온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별세했다고 밝혔다. 삼성 측은 “장례를 간소하게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으며, 조문과 조화는 정중히 사양한다”고 전했다. 이 회장은 도전과 혁신을 통해 우리나라가 IT(정보기술) 강국으로 올라서는 초석을 닦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1974년 파산 직전의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며 IT 산업의 모태인 반도체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주위 만류에도 이 회장은 “기술 식민지에서 벗어나는 일, 삼성이 나서야 한다”며 사재(私財)를 보태 한국반도체를 인수했다.

▲ 1993년 이건희 회장이 독일 프랑트푸르트에서 신경영을 선언하고 있다. /삼성 제공    


불가능해 보였던 꿈을 이 회장은 현실로 이뤄냈다. 삼성은 1986년 7월 1메가 D램을 생산하면서 반도체 산업을 본격적으로 꽃피우기 시작했다. 삼성은 64메가 D램 개발로 기술 주도권을 확보한 데 이어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 기술과 생산 모두에서 명실상부한 세계 1위 기업으로 우뚝섰다.

 

1987년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 별세 이후 그룹 회장에 취임한 고인은 1993년 신(新)경영선언(프랑크푸르트 선언)을 통해 초일류 삼성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 회장은 품질경영을 통해 ‘메이드 인 코리아’를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1990년대 초반 삼성의 신수종 사업으로 휴대폰을 꼽고 내놓은 ‘애니콜’의 불량이 잇따르자 1995년 3월 ‘화형식’이라는 충격요법까지 동원했다. 한때 11.8%에 달했던 삼성 휴대폰 불량률은 2%대까지 떨어졌다.

▲ 2004년 반도체 설비를 방문해 방호복을 입고 있는 이건희 회장. /삼성 제공  

 

1995년 8월 애니콜은 마침내 국내 휴대폰 시장에서 세계 최강 모토로라를 밀어내고 51.5%의 점유율로 정상에 올랐다. 한국은 모토로라가 시장점유율 1위를 내준 유일한 나라다. 1987년 10조원이 채 못되던 삼성그룹의 매출은 2018년 기준으로 386조원을 넘기며 39배 늘었다. 현재 삼성은 메모리 반도체, TV, 스마트폰 등 20여개 품목에서 글로벌 1위를 지키고 있다.

 

이 회장은 국내 스포츠 발전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 서울사대부고 재학 시절 레슬링과 인연을 맺은 이 회장은 1982∼1997년 대한레슬링협회 21∼24대 회장을 지내며 한국 레슬링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이 회장은 1993년부터 3년간 대한올림픽위원회(KOC) 부위원장을 지낸 데 이어 1996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IOC 위원으로 선출돼 스포츠 외교에 힘을 보탰다. 동료 IOC 위원들과 친분을 활용해 강원도 평창이 3차례의 도전 끝에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2009년부터 1년 반 동안 대회 평창 유치를 위해 170일간 해외 출장을 다녔을 정도다. 이 회장은 1995년 학력과 성별, 직종에 따른 불합리한 인사차별을 타파하는 ‘열린 인사’를 도입해 사회적 변화를 이끌었다. 인재를 중시했고, 여성 차별을 과감히 없애고 동등한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점도 크게 평가받는다.

 

유족으로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사위 김재열 삼성경제연구소 사장이 있다.

 

잊지 못할 명언 “지금 안 변하면 잘해야 2류”…대전환 이룬 ‘신경영 선언’
'싸구려'에서 '초일류'로 바꾼 한마디… "마누라·자식 빼고 다 바꿔라"

 

‘초일류’ 삼성의 역사는 10월25일 별세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꿈을 현실로 바꿔온 여정(旅程)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 회장은 1987년 선대 이병철 회장의 뒤를 이은 직후부터 2014년 병마에 쓰러지기 직전까지 부단히 삼성의 혁신과 변화를 이끌었다.

이 회장을 잘 아는 이들은 그가 한국 대표 기업의 총수였지만, 편안히 잠을 이룬 날이 많지 않았을 정도로 무거운 책임감과 위기감을 느꼈다고 전한다. 이 회장이 임직원들 앞에서 “등골이 오싹해진다”는 표현을 종종 쓴 배경이다. 특히 뼈를 깎는 아픔을 감내하고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 이 회장은 과거의 체질과 제도, 관행에서 벗어난 철저한 혁신을 몸소 실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삼성이 한국의 국민 기업을 넘어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우뚝 선 이후에도 그의 노력은 이어졌다.

▲ 1987년 회장 취임식에서 삼성기를 건네받는 이건희 회장. /삼성 제공

 

‘뉴삼성’(New Samsung)을 향한 이 회장의 여정은 1987년 12월1일 회장 취임식에서 큰 그림이 공개됐다. 이 회장은 이 자리에서 ‘삼성 제2의 창업’을 선언했다. 그는 “삼성은 이미 한 개인이나 가족의 차원을 넘어 국민적 기업이 됐다”며 “미래 지향적이고 도전적인 경영을 통해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킬 것”이라고 약속했다.

 

글로벌 경영환경의 격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일류(一流)가 돼야 하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기업이어야 하는데, 삼성의 수준은 그렇지 못하다는 게 이 회장의 당시 진단이었다. 이때까지 삼성이 실질보다 외형 중시의 관습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삼성이 만든 제품은 동남아 등 일부 시장에서 부분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을 뿐이었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 시장에서는 ‘싸구려’ 취급을 받고 있었다. 이 회장은 “우리는 자만심에 눈이 가려져 위기를 진정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의 못난 점을 알지 못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망할지도 모른다는 위기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내가 등허리에 식은땀이 난다”고 질타했다.

 

이 회장의 위기의식은 1993년 2월 전자 관계사 주요 임원이 참석한 가운데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열린 수출상품 현지비교 평가회의에서 또 한 번 표출됐다. 현지 매장에서 삼성 제품은 고객으로부터 외면 받아 한쪽 구석에 먼지를 뒤집어쓴 채 놓여 있었다. 이를 본 이 회장은 “삼성이란 이름을 반환해야 한다. 한쪽 구석 먼지 구덩이에 처박힌 것에다 왜 삼성이란 이름을 쓰는가. 그나마 진열대에 놓여 있는 제품 중에는 뚜껑이 깨져 있거나 작동이 안 되는 것도 있지 않은가. 이는 주주, 종업원, 국민, 나라를 기만하는 행위”라고 통탄했다.

 

그해 6월 이 회장은 일본 도쿄(東京) 오쿠라 호텔에서 자신이 일본 기업 교세라에서 스카우트한 후쿠다 다미오 삼성전자 디자인고문과 마주 앉았다. 후쿠다 고문은 삼성의 문제점을 샅샅이 보고했다. 삼성은 국내 최고라는 자만심에 빠져 일찍 퇴근하고, 삼성 직원은 외국인 고문 얘기는 무슨 수를 쓰든지 듣지 않으려 한다는 등 비판 내용이 가득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이 회장은 후쿠다 보고서를 읽고 또 읽었다. 

 

‘세탁기 사건’은 이때 터졌다. 삼성사내방송 SBC가 제작한 일종의 사내 품질고발 영상물에 세탁기 뚜껑 여닫이 부분 부품이 들어맞지 않자 직원들이 거리낌 없이 덮개를 칼로 2㎜를 깎아내고 조립하는 장면이 나왔다. 교대자를 바꿔가며 이런 식으로 제품을 대충 끼워 맞추는 장면에 이 회장은 또다시 충격을 받았다.

 

이 회장은 비장한 각오로 임원과 해외 주재원 등 200여 명을 프랑크푸르트 캠핀스키 호텔로 불러 모아 새로운 삼성을 여는 회의를 주재했다. 유명한 ‘프랑크푸르트선언’이 이때 나왔다. 이 회장은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2류나 2.5류가 될 것이다”며 “지금처럼 잘해봐야 1.5류다”면서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그러면서 아내와 자식을 제외하곤 모두 바꿀 정도의 혁신을 주문했다. 이러한 주문은 여전히 회자될 정도로 국민 뇌리에 깊이 박혔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직전의 위기상황에서도 이 회장의 혜안(慧眼)은 빛났다. 그는 1997년 신년사에서 “이제 더 이상 재래식 모방과 헝그리 정신만으로는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 갈 수 없게 되었다”고 진단했다.

▲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왼쪽)와 유년시절 이건희 회장. /삼성 제공  

 

삼성이 비상경영에 들어간 지 1년 후인 1997년, 대한민국에는 외환위기가 닥쳐왔다. 위기에 미리 대비하고 허리띠를 졸라맨 삼성은 외환위기라는 거센 파도 속에서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급변하는 세계 디지털시장을 선점하는 기회를 만들어냈다. 2014년 마지막 신년사에서도 이 회장의 도전과 혁신에 대한 갈망은 계속된다. 이때 이 회장은 “더 높은 목표와 이상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자”고 말했다.

 

78년 삶에 담긴 경영철학…거침없는 추진력·시대 앞선 경영감각…글로벌삼성 이끌어

 

‘20개의 세계 1등 제품을 만든 기업가’, ‘기술보다 사람을 중시했던 인재양성가’, ‘영화감독을 꿈꾸고 레슬링을 즐기던 승부사’….

 

글로벌 기업 삼성의 오늘에 지대적인 영향을 끼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에게 붙는 수식어는 셀 수 없이 많다. 27년 동안 삼성그룹을 이끈 그의 리더십을 온전히 표현할 방법은 없다. 이 회장은 ‘은둔의 기업가’(The Hermit King)로 알려졌지만, 경영 일선에서는 남다른 경영감각으로 존재감을 과시했다. 거침없는 언사와 추진력으로 거대 기업을 이끌었던 이 회장은 무엇보다 사람을 중시했다. ‘디자인경영’을 비롯해 ‘열린채용’, ‘품질경영’ 등 남다른 경영철학에서 엿보이는 그의 리더십은 삼성의 오늘은 물론 미래의 동력으로 남아 있다.

 

●유년시절 ‘무한탐구’, 훗날 삼성 경영 토대


이 회장은 1942년 1월9일 대구에서 삼성의 창업주 호암 이병철 회장의 3남5녀 중 일곱번째이자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이 회장은 1947년 부친과 함께 서울로 상경했다. 이후 ‘선진국을 경험해 보라’는 부친의 뜻에 따라 초등학교 5학년 때인 1953년 일본 도쿄로 유학을 떠났다.이 회장은 초등학교 때부터 과학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남다른 것으로 전해진다. 평생 즐겨 쓴 휘호가 ‘무한탐구’(無限探究)였을 정도다. 대학 시절에는 자동차에 심취해 자동차 구조에 관한 한 전문가가 됐다. 유학을 하는 동안 이 회장이 탄 자동차만 6대였다. 언젠가는 미국에서 4200달러에 구입한 자동차를 한참 타다가 600달러를 더 받고 판 것으로 전해진다.

▲ 유년 시절 이건희 회장 모습. /삼성 제공    

 

이 회장은 차가운 기업가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대중문화와 스포츠에도 관심이 깊었다. 일본 유학 시절엔 영화에 심취해 1200편 이상을 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등학교 때는 레슬링부에 들어갔고, 2학년 때 전국대회에서 입상한 적도 있다. 럭비도 즐겼다.


이 회장은 에세이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1997)에서 “럭비는 한번 시작하면 눈비가 와도 중지하지 않는다. 걷기도 힘든 진흙탕에서 온몸으로 부딪치고 뛴다”고 회상했다. 이 회장이 스포츠에 가진 열정은 훗날 대한레슬링협회장을 역임하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을 맡는 등의 활동으로 이어졌다.


●‘반도체’·‘모바일’·‘가전’ 삼각편대

 

재계에서는 이 회장을 삼성그룹 ‘제2의 창업주’라고 부른다. 이 회장이 삼성그룹의 총수를 맡은 뒤로 사업과 경영 전반이 체질개선을 통해 혁신기업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그가 일본과 미국 등지에서 쌓은 경험들은 훗날 삼성전자의 ‘반도체’·‘모바일’·‘가전’의 삼각편대 사업 포트폴리오로 이어졌다.부친인 이병철 회장이 일군 삼성은 ‘삼백’(三白)으로 불리는 설탕과 밀가루, 면방직이 주축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 자동차와 조선과 같은 중후장대 산업이 급격히 성장하면서 삼성은 현대에 이어 재계 2위에 머물렀다.


이 시기에 이 회장은 “천연자원이 없는 나라에서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하이테크 산업밖에 없다”는 구상으로 반도체 산업 진출을 결심했다. 당초 삼성의 반도체 진출은 기대보다 우려가 높았다.

▲ 1993년 미국의 격주간 종합경제지 ‘포춘’과 인터뷰하는 이건희 회장. /삼성 제공    


그러나 이 회장은 “기술 식민지에서 벗어나는 일, 삼성이 나서야 한다”며 의지를 다졌다. 삼성은 1982년 ‘64K D램’을 출시하며 반도체 시장에 본격 진출했고, 1993년에는 세계 최초로 ‘64M D램’을 개발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1990년대 진출한 휴대전화 산업도 오늘날 ‘삼성폰’의 근간을 다졌다. 당시 휴대전화는 핀란드 노키아와 미국 모토롤라가 시장 주도권을 쥐고 경쟁했다. 사실상 후발주자가 뛰어들기 힘든 구도에서 이 회장은 “반드시 1명당 1대의 무선 단말기를 가지는 시대가 올 것”이라며 투자를 지속했다. 1995년 3월 구미 사업장에서는 임직원 200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무선전화 15만대를 불태운 ‘애니콜 화형식’ 충격요법을 동원했다. 이후 이른바 ‘이건희폰’으로 불리는 제품들이 흥행에 성공했다. 애니콜을 기반으로 삼성은 훗날 스마트폰 시장에서 세계 1위 ‘갤럭시’를 만들었다.


‘삼성TV’ 역시 이 회장의 안목에서 비롯됐다. 과거 동양방송(TBC)에 근무했던 이 회장은 TV와 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이 회장은 당시 브라운관이던 TV가 평면TV의 형태로 전환될 것을 예측하고 액정표시장치(LCD) 전환에 투자를 단행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투박한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TV디자인의 혁신을 위해 디자인팀을 이탈리아 등지로 파견해 ‘보르도TV’를 제작했다. 그 결과 세계 TV시장에서 삼성이 1위에 올랐고, 13년째 세계 시장 1위를 지키고 있다.
 
●비자금 수사로 퇴진, 복귀했지만 상속분쟁


이건희 회장이 이끈 27년간 삼성은 성장가도를 달렸지만 위기의 순간도 적지 않았다. 이 회장은 에세이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서 “1987년 회장에 취임하고 나니 막막하기만 했다. 삼성 내부는 긴장감이 없고 내가 제일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자”는 이른바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은 이런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 반도체 30주년 기념서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014년 반도체 30주년을 맞아 기념서명을 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이 회장의 경영 방식이 난관에 부딪힌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자동차산업이다. 이 회장은 1995년 숙원이던 자동차산업에 진출했지만 외환위기를 겪으며 실패했다. 삼성이 고수해 온 무노조 경영 원칙 또한 여론의 질타 대상이 됐다. “정치는 4류, 행정은 3류, 기업은 2류”라며 정계와 거리를 둔 이 회장이지만 정경유착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재용 시대' 본격 개막… 자율경영 유지될 듯
지배구조 개편 초미 관심…회장 승격 절차 조만간 검토될 듯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별세 이후 삼성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주축으로 한 ‘이재용 시대’가 본격 개막했다. 이 부 회장은 2014년 5월 이 회장이 쓰러진 직후부터 사실상 삼성을 이끌어 왔지만, 향후 구체적인 지배구조 개편 방식과 시점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재용 총수 체제로 공식 전환

 

재계와 삼성 관계자 등에 따르면, 삼성그룹은 이 부회장의 회장 승격 절차와 시점 등을 조만간 검토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을 비롯한 총수 일가와 각 계열사 사장단이 이끄는 자율경영체제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3남 중 막내로 치열한 후계경쟁을 거친 이 회장과 달리, 이 부회장은 일찌감치 후계자로 낙점돼 실질적인 총수역할을 해왔다. 이 회장은 아들 이 부회장과 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의 3남매를 뒀는데, 이 부회장이 그룹 핵심인 삼성전자를 포함한 전자 계열사를 전담하고 있다.

▲ 2012년 7월29일 이건희 회장 가족이 영국 런던 올림픽파크의 아쿠아틱스 센터에서 열린 2012 런던올림픽 남자 자유형 400m 결승을 참관하고 있다.

 

둘째 이부진 사장은 호텔신라를 이끌고 있으며, 앞으로도 호텔·레저사업 분야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막내 이서현 이사장은 2018년까지 제일모직(현 삼성물산 패션 부문) 사장을 재임했다가 현재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상태다. 일각에서는 이 이사장의 경영 복귀설을 점치기도 하지만, 이 부회장이 챙기는 핵심 계열사를 물려받을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與 압박에 지배구조 개선하나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와 한국거래소 등에 따르면, 이 회장은 삼성전자 2억4927만3200주 등 10월23일 종가기준으로 약 18조2251억원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 등 3남매가 지분 일부를 사회공헌 차원에서 환원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별세한 10월25일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상주인 이재용 부회장이 들어서고 있다.  

 

이 회장의 주식 처분을 계기로 삼성이 지배구조 개편에 들어갈 가능성도 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의 경우 이 부회장이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이고, 삼성물산이 삼성생명 지분을 약 20% 보유하고, 또 삼성생명이 삼성전자의 실질적 최대주주 역할을 하며 경영권을 갖춘 체제다. 이런 형식 지배구조를 지주회사 체제로 개편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게다가 여당에서는 삼성 지배구조와 맞물린 보험업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 법이 통과되면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삼성전자 지분을 총자산의 3% 외에는 모두 매각해야 한다. 이에 따라 외국 기업의 경영권 공격 가능성과 주식 매각에 따른 법인세 처리 등을 고려해 지배구조 개편 방안을 신중하게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용 시대 안착 과제는 ‘사법리스크’


이 부회장은 2014년부터 삼성을 진두지휘하며 방산·화학 계열사를 매각하거나 미국의 전장기업 하만을 인수하는 등 과감하게 계열사 개편작업에 나섰다. 반도체 사업 강화를 위해 경기 평택에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공장을 세우고, 국내외 반도체 생산현장을 직접 방문하는 등 투자도 아끼지 않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미·중(美中) 무역갈등 여파로 대내외 불확실성이 급증하는 가운데 이 부회장이 현장경영을 이끌며 선방했다는 평가도 나오지만,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당장 상속에 따른 세 부담 처리와 지배구조 개편 문제를 고민해야 할 상황이지만, 이 부회장이 연루된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재판과 국정농단 뇌물혐의 파기 환송심이 발목을 붙잡고 있다. 그는 2016년 국정농단 사태 이후 검찰에 10차례 소환돼 조사를 받았고, 특검 기소에 따라 80번의 재판을 받았다.


재판 상황을 고려해 이 부회장이 단기간에 후계작업과 지배구조 개편 등을 추진하기보다는 장기 과제로 설정해 놓고 순차적인 로드맵을 시행할 것이란 관측이 주를 이루는 이유다.

 

‘초격차’ 앞세운 이재용… 뉴삼성 속도낼 듯
6년간 실질적인 삼성 수장…미세공정 생산라인 직접 챙겨…지배구조 재편·상속세 등 과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별세로 삼성그룹은 공식적으로 이재용 부회장이 이끌게 됐다. 재계의 관심은 이 부회장이 그리는 ‘뉴 삼성’의 청사진이다. 지난 6년간 이 회장을 대신해 그룹을 맡아 온 이 부회장은 ‘초격차’의 기술력을 강조하면서 굵직한 인수합병(M&A)을 단행했다. 당장 눈앞에 놓인 국정농단과 삼성바이오로직스 재판, 그룹 지배구조 재편, 상속세 마련 등의 현안은 이 부회장이 해결해야 할 과제다.

 

이 부회장이 삼성그룹의 실질적 총수 역할을 해온 지난 6년은 그의 리더십을 엿보게 한다. 거대 기업을 이끄는 수장이지만 격을 따지지 않고 합리적인 방식을 추구했다. 현장에서 임직원들과 소통할 때는 사전에 공지 없이 방문하거나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함께하는 식이었다.

 

그가 현장에서 강조해온 것은 ‘기술 초격차’다. 이 부회장은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고 미래 수요에 대비하려면 ‘기술 초격차’가 반드시 유지돼야 한다”,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도 삼성이 놓치지 말아야 할 핵심은 장기적이고 근원적인 기술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이미 반석 위에 오른 반도체와 스마트폰에 이어 미래 먹거리인 4대 신산업으로 ‘인공지능(AI)’, ‘5G(5세대 이동통신)’, ‘바이오’, ‘전장’을 꼽았다. 미래 반도체 경쟁의 핵심기술인 미세공정은 이 부회장이 직접 챙기는 현안 중 하나다. 10나노미터 이하의 미세공정을 위해서는 극자외선(EUV) 생산라인이 필수적인데, 이 부회장은 이를 위해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회사 ASML을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지난 6년 사이 굵직한 M&A도 그의 경영방식을 보여준다. 그가 삼성그룹의 운전대를 잡은 뒤로 석유화학과 방산, 케미칼 등이 한화와 롯데에 매각됐다. 2016년에는 미국 전장기업 하만을 80억달러에 인수해 이목을 끌기도 했다.

 

당장 이 부회장이 해결해야 할 과제도 산적해 있다. 10조원에 달하는 이건희 회장 재산에 대한 상속세와 그룹 내 지배구조 재편이 대표적이다. 상속세는 5년간 연부연납할 가능성이 제기되지만, 최대 6등분을 해도 해마다 1조6000억원 가량의 현금을 마련해야 한다. 오너 일가의 재산 상당부분이 주식으로 묶여 있어 현금을 조달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관측이다.


삼성물산을 중심으로 짜인 지배구조를 손보는 일 또한 난제다. 현재 지배구조는 ‘이 부회장→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짜여 있다.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이 삼성생명을 매각해 상속세를 납부하고 지배구조를 재편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당장의 사법리스크도 이 부회장의 경영행보에 부담이다. 국정농단 파기환송심과 삼성바이오로직스 재판이 본격 시작될 경우 경영공백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포스트 이건희' 이재용의 4대 신사업은?
AI, ‘빅스비’로 재탄생… 반도체와 융합 시장 선점 박차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별세로 삼성은 이재용 부회장의 시대를 맞이하게 됐다. 생전의 이 회장이 ‘반도체·모바일·가전’을 중심으로 삼성의 사업 근간을 다진 만큼, 향후 ‘이재용호’ 삼성이 나아갈 방향에도 관심이 모인다.

 

10월27일 재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이 회장이 쓰러진 2014년 5월부터 사실상 삼성의 총수 역할을 맡아 왔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018년 이 부회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하면서 공식적으로 총수에 오른 상태다.

 

지난 6년간 이 부회장의 경영 행보를 살펴보면, 향후에도 굵직한 M&A(인수합병)와 투자로 그룹 전반의 변화를 꾀할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의 경영 기조는 2018년 발표한 경제 활성화 및 신산업 육성 계획에서 엿볼 수 있다. 당시 이 부회장은 3년간 180조원의 투자 계획과 함께 미래 4대 신사업으로 ‘인공지능(AI)’, ‘5G(5세대 이동통신)’, ‘바이오’, ‘전장’을 꼽았다. 불과 3년이 지났지만 4가지 신사업 모두 삼성그룹 내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0월19일 베트남 하노이에 건설 중인 베트남 연구개발(R&D)센터를 찾아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4차 산업혁명과 함께 주목받는 AI는 ‘빅스비’로 재탄생해 삼성 모바일과 가전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 AI는 비단 모바일이나 가전과 같은 세트 사업에만 활용되는 것이 아니다. 삼성전자의 핵심 사업인 반도체와 4대 신사업 중 하나인 전장 등에서도 AI는 활용 범위가 무궁무진하다. 삼성은 AI 생태계 육성을 위한 인재 발굴과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삼성은 반도체 부문에서 메모리 경쟁력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경쟁력 세계 2위다. 두 분야의 기술력을 접목할 경우 ‘AI 반도체’ 영역에서도 시장을 선점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메모리나 파운드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진한 팹리스(반도체 설계) 부문의 경쟁력이 부족해 이 부문 육성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최근 모바일 AP 엑시노스 개발을 위해 구글, ARM, AMD 등과의 협력을 강화해 팹리스 경쟁력을 높일 것으로 관측된다. 삼성은 시스템반도체 부문에서 세계 1위로 올라서기 위해 2030년까지 133조원을 투자한다는 ‘반도체 비전 2030’를 발표한 바 있다.

 

한국과 미국 등지에서 상용화된 5G 시장에서는 이미 삼성의 영향력이 커지는 추세다. 삼성은 최근 미국 최대 통신사인 버라이즌과 5G 장비 계약을 맺는 등 시장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통신장비는 호환성 등을 이유로 특정 제조사의 제품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강해 추후 6G 시장 선점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 최근 화웨이의 통신장비 보안 이슈가 불거진 만큼, 삼성의 시장 점유율도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바이오는 이 부회장이 ‘제2의 반도체’로 육성하는 핵심 사업이다. 바이오는 바이오시밀러 제품 하나를 개발하는 데 6∼7년간 2000억원 이상의 개발비가 쓰이는 만큼 장기적 투자와 안목이 필요한 시장이다. 이 부회장은 현장에서 줄곧 “단기적인 기회와 성과에 일희일비하면 안 된다”고 강조해왔다. 삼성은 바이오 육성을 위해 인천 송도에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설립해 ‘바이오 클러스터’로 키운다는 전략이다.

       
향후 굵직한 M&A에 대한 기대감도 높다. 이 부회장은 삼성의 운전대를 잡은 뒤로 그룹 내 시너지를 기대하기 어려운 사업은 과감히 매각했다. 2014년 한화에 석유화학과 방산 부문을 매각했다. 2015년에는 삼성SDI 케미칼 사업부와 삼성정밀화학, 삼성BP화학을 롯데에 넘겼다. 미래 신사업을 위한 인수에도 적극적이다.

 

2016년에는 미국 전장기업 하만을 80억달러에 인수해 재계의 관심을 모았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향후에도 수익성이 떨어지는 사업을 매각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부회장의 현장 경영도 눈길을 끈다. 이 부회장은 국정농단 파기환송심과 삼성바이오로직스 재판 등의 사법리스크에도 현장경영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달에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속에 입국이 허용된 네덜란드와 베트남 등지를 직접 뛰어다니며 현지 시장 상황을 검토했다.

 

이 부회장이 현장에서 늘 강조해온 것은 ‘기술 초격차’다. 이 부회장은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고 미래 수요에 대비하려면 ‘기술 초격차’가 반드시 유지돼야 한다”(2018),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도 삼성이 놓치지 말아야 할 핵심은 장기적이고 근원적인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2019)이라고 강조해 왔다.

 

문재인 대통령 “도전·혁신 리더십, 위기 때 큰 귀감”
여야 “‘새로운 삼성’ 약속 실현되길” “국민의 자부심 높였던 선각자”…경제계 일제히 애도

 

문재인 대통령은 10월25일 별세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유족에게 “그분이 보여준 리더십은 코로나로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위기극복과 미래를 향해 도전하는 우리 기업들에 큰 귀감과 용기가 돼줄 것”이라며 조의를 표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빈소를 찾은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을 통해 “한국 재계의 상징이신 고 이건희 회장의 별세를 깊이 애도하며 유가족분들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어 “고 이건희 회장은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리더십으로 반도체 산업을 한국의 대표 산업으로 성장시켰으며, 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석권하는 등 삼성을 세계기업으로 키워냈고, 한국의 대표기업으로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며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빈소에 조화를 보냈다.

▲ 문재인 대통령  


여야 정치권은 이 회장을 애도하면서 사뭇 다른 반응을 보였다. 더불어민주당은 고인의 공과(功過)를 동시에 거론하면서 ‘삼성 개혁’을 촉구했다. 허영 대변인은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기업인으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그의 인생은 파란만장했던 영욕의 삶이었다”면서 “삼성은 초일류 기업을 표방했지만, 이를 위한 과정은 때때로 초법적이었다”고 논평했다.
이어 “이 회장 타계를 계기로, 이재용 부회장이 지난 대국민 사과에서 약속했던 ‘새로운 삼성’이 실현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별세한 10월25일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이건희 회장 별세 관련 속보를 지켜보고 있다.    

 

이낙연 대표는 페이스북에 “고인은 고비마다 혁신의 리더십으로 변화를 이끄셨지만, 불투명한 지배구조, 조세포탈, 정경유착 같은 그늘도 남기셨다”며 “삼성은 과거의 잘못된 고리를 끊고 새롭게 태어나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국민의힘은 이 회장을 “국민의 자부심을 높였던 선각자”로 부르며 고인의 공적을 높이 평가했다. 배준영 대변인은 “(이 회장의) 미래를 선도할 인재에 대한 애정과 철학은 지금도 인재 육성의 교본이 됐다”며 “고인의 뜻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 혁신과 노력을 통해 다가올 미래를 준비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성명을 통해 “볼모지 대한민국에서 기업가 정신으로 도전해 삼성전자라는 글로벌 리더 기업을 우뚝 세워내셨다”며 “경제계의 큰 별이 졌다”고 애도했다.

 

경제계는 10월25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별세 소식에 일제히 애도를 표하며 그의 혁신정신을 강조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이날 논평을 통해 “이 회장은 삼성을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켰을 뿐 아니라 대한민국 경제를 선진국 반열에 올려놓은 재계 최고의 리더였다”고 추모했다. 전경련은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꾸자’는 고인의 혁신 정신은 우리 기업인의 가슴속에 영원토록 남아 있을 것”이라며 “고인의 정신을 이어받아 우리 경제가 처한 위기를 경제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이날 배포한 논평에서 “경영계는 불굴의 도전 정신과 강한 리더십으로 우리나라 산업발전을 견인했던 재계의 큰 별, 이 회장의 별세 소식에 존경심을 담아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경총은 ‘도전을 멈춰서는 안 된다’는 고인의 발언을 언급하며 “경영계는 반세기를 지나 100년 기업을 향해 도약하는 삼성에 '끊임없는' 발전이 있기를 기원하는 한편, 위기마다 도전 정신과 강한 리더십으로 한국 경제의 지향점을 제시해줬던 고인의 기업가 정신을 이어받아 지금의 경제위기 극복과 경제활력 회복에 최선의 노력을 다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무역협회는 “한국경제계에 큰 획을 그은 이 회장의 별세에 무역업계는 깊은 애도를 표한다”면서 “고인의 업적과 정신을 기려 무역이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한국 경제의 중심축으로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뉴욕타임스 “원대한 전략적 방향 제시한 큰 사상가”
AP통신 “李 리더십으로 삼성 도약”…日언론, 반도체 등 기업 성장 다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별세 소식이 10월25일 전해지자 주요 외신들도 긴급 뉴스로 타전하며 삼성을 세계적 기업으로 키운 고인의 경영철학을 집중 조명했다.뉴욕타임스(NYT)는 이날 장문의 부고 기사를 통해 삼성전자를 스마트폰·텔레비전·컴퓨터칩 거인으로 키운 ‘혁신가’로서의 모습과 함께 두 차례 기소됐다가 사면된 어두운 이면을 두루 짚었다. 신문은 고인이 1987년 선친으로부터 그룹을 물려받았을 때 삼성전자는 “싸구려 TV나 못 미더운 전자레인지를 할인매장에서 파는 기업이라는 인식이 서방에 있었지만, 회사를 끊임없이 기술 사다리 위로 밀어 올리면서 1990년대 초반 이후 전세계 메모리, 평면 패널 디스플레이, 모바일 시장을 차례로 장악해 나갔다”며 이 회장을 “원대한 전략적 방향을 제시한 큰 사상가(big thinker)”라고 평했다.                 

▲ 뉴욕타임스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별세 소식을 긴급뉴스로 전했다. /뉴욕타임스 캡처  

 

특히 1993년 경영진에게 낡은 업무·사고방식을 버리라며 “처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고 일갈하고, 1995년 휴대전화 결함이 발견된 후 구미공장에 쌓아둔 5000만달러어치 불량품을 불태우며 ‘품질’을 강조했던 일화도 소개했다.

 

아울러 NYT는 고인이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전력이 있다면서 “재벌이라고 불리는 한국의 가족 소유 거대기업이 영향력을 유지하려고 때때로 하는 미심쩍은(dubious) 방식을 고인도 재임기간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AP통신은 “이 회장의 리더십하에서 삼성은 세계 최대 스마트폰·메모리칩 생산자로 도약해 전체 매출이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5분에 1에 이른다”고 했다. AFP통신은 “삼성전자를 글로벌 테크 거인으로 변모시킨 이 회장은 2014년 심장마비로 병석에 눕게 됐다”며 “은둔형 생활방식으로 유명한 고인의 구체적 상태에 관해서는 공개된 바가 적고, 그의 마지막 날들 역시 미스터리에 싸여 있었다”고 전했다.

 

일본 언론은 삼성이 일본 기업을 추월해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고인이 주역이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춰 사망 소식을 비중있게 다뤘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삼성전자는 일본 대기업이 자랑했던 반도체, 디스플레이 사업 확대에 주력했다”며 “현재는 부품에서 완제품까지 취급하면서 스마트폰, TV, 반도체 메모리 등 각 분야에서 세계 최고로 군림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아사히신문은 “(고인은) 과감한 투자로 반도체, 휴대전화 등의 분야에서 세계 톱 기업으로 키웠고, 삼성그룹 전체의 수출규모는 한국 수출 총액의 30%를 점하고 있다”고 전했다. 소년기 일본에서 지낸 경험과  와세다(早稻田)대 상학부 졸업 학력을 소개하기도 했다.

▲ 일본 아사히신문(인터넷판)은 10월25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사망과 관련해 ‘삼성 이건희 회장 사망…세계 톱 기업으로 키워’라고 보도했다. /아사히신문 캡처  


요미우리신문은 이 회장이 소년 시절 일본에서 산 경험이 있고, 1965년 일본의 사립 명문인 와세다(早稻田)대학을 졸업했다고 전했다. 신문은 또 이 회장은 마쓰시타(松下) 전기 창업자인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 1894~1989)를 존경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일본 기업의 품질개선과 경영수법에 정통했다고 했다. 이 회장에 대해 교도통신은 “반도체와 휴대전화 사업을 중심으로 삼성전자를 세계적 브랜드로 키웠다”고, 지지통신은 “삼성전자를 스마트폰, 반도체, 평면TV 등에서 세계 톱 클래스의 IT 기업으로 성장시켰다”고 전했다.

 

중국 언론도 이 회장 별세 소식을 긴급 보도했으며,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微博)에서도 주요 화제에 올랐다.
 

‘종교인 이건희’ 위해 원불교 최고지도자 전산 종법사, 빈소 찾아 법문 낭독

 

원불교는  전북 익산 중앙총부에서 오도철 교정원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장의위원회를 열고 이 회장 장례를 원불교 교단장으로 치르기로 결정했다. 망자 넋을 기리며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원불교 종교의식인 천도재는 서울 원남교당에서 10월31일부터 49일간 매주 1번씩 7번 열리며, 11월8일에는 원불교 중앙총부에서 추도식이 열린다. 열반식부터 발인식까지는 장례식장에서, 입장식은 장지에서, 천도재는 교당에서 각각 이뤄진다. 이 회장은 1973년 장모인 고 김윤남(신타원 김혜성) 원정사를 통해 원불교에 입교한 뒤 아내 홍라희 여사와 함께 종교활동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원불교는 10월25일 “원불교 중앙총부(전북 익산시)에서 오도철 교정원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원불교장의위원회를 오후 3시에 열어 (유족들과의 협의 아래 고인의)장례를 원불교 교단장으로 치르기로 했다”고 말했다. 원불교는 이어 “(고인의 넋을 기리고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종교의식인) 천도재는 고인의 소속 교당인 서울 원남교당에서 매주 토요일에 진행하기로 했다”며 “11월8일 원불교 중앙총부에서는 교도들이 참석한 가운데 추도식을 열어 고인의 명복을 전 교도가 함께 축원한다”고 덧붙였다. 원불교 관계자는 이와 관련, “(유족들과 협의를 통해)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는 특별하게 원불교식 종교의식을 갖지 않기로 했다”며 “다만 교단장인 만큼 서울교구를 중심으로 서울 교당 등에서는 추도식이 열리고, 마지막 천도재는 서울교구 교구장 주재로 치러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건희 회장은 원남교당 소속으로 1973년 1월 원불교에 입교했다. 장모 고(故) 김윤남(1924~2013 법호 신타원, 법명 혜성)씨와 인연으로 인도됐다. 1987년 중산이라는 법호를 받고, 1991년 대호법의 법훈을 서훈했다. 대호법은 원불교 재가교도 가운데 공부와 사업에 큰 업적을 쌓은 교도에게 주는 법훈이다.

 

1991년 중앙중도훈련원을 희사(기증)해 현재까지 원불교 교도의 각종 교육과 훈련을 하는 도량으로 사용하고 있다. 전북 익산 왕궁면에 위치한 원불교 중앙중도훈련원은 이 회장의 법호 중산과 홍 전 관장의 법호 도타원(道陀圓)의 앞 자를 따서 이름 지어졌다. 중앙중도훈련원은 원불교 교도들이 정기적으로 기도하고 수행하는 일종의 기도원이다.

▲ 원불교 최고지도자인 전산 김주원 종법사(가운데)가 10월27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들어서고 있다.    

 

원불교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회장은 평소 "기도하고 행동하라. 기도와 행동은 앞바퀴와 뒷바퀴다", "샘물은 퍼낼수록 맑은 물이 솟아난다. 아낌없이 베풀어라", "세상에 우연은 없다. 한번 맺은 인연을 소중히 하라"고 강조해왔다.

 

2007년 원불교 최고지도자였던 이성택 전 교정원장은 당시 삼성전자가 히트한 휴대전화 '애니콜'의 원조가 실은 원불교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애니콜이 "애니타임, 즉 때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수행하는 '무시선 무처선(無時禪 無處禪)'"의 맥락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원불교의 미주 총부 역할을 하는 원다르마센터도 2011년 이 회장과 홍 여사가 약 120억원을 시주해 만들어졌다. 뉴욕에서 북쪽으로 약 2시간 거리 49만 6000㎡(약 15만평) 규모의 땅에 세워진 원다르마센터는 원불교의 미국 포교 전진기지로 원불교 신자들의 수행공간도 겸하고 있다.

 

한편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장례 셋째 날인 10월27일 생전 고인이 입교한 원불교의 최고지도자가 빈소를 찾아 고인을 애도했다. 원불교 최고지도자인 전산(田山) 김주원(71) 종법사는 이날 오전 9시께 빈소가 차려진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을 방문했다.전산 종법사는 장례식장 지하 2층 17호실에 마련된 빈소를 찾아 이 회장의 영정 앞에서 직접 법문을 읽었다고 원불교 측은 설명했다. 전산 종법사의 방문이 유족의 요청에 따라 이뤄졌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가족장으로 진행되는 이 회장의 장례는 특정 종교 식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상징화성공장 마지막 출근 후 작별부친 뛰어넘은 승어부추도사

 

한국 재계 1위 기업을 일구고 글로벌 1등 상품 수십개를 만들어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1028일 영원히 잠들었다. 위대한 족적을 남긴 거인의 삶을 살았지만 이 회장의 마지막 가는 길은 차분하고 조용했다.

 

이 회장의 영결식은 이날 오전 730분 삼성서울병원에서 시작됐다. 부인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과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과 고인의 동생인 이명희 신세계 회장과 그의 아들인 정용진 부회장, 고인의 조카인 이재현 CJ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조동길 한솔그룹 회장 등이 그의 마지막을 배웅했다.

 

영결식은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비공개 가족장으로 진행됐다. 이수빈 전 삼성생명 회장의 약력보고, 고인의 고교 동창인 김필규 전 KPK 회장의 추억 회고, 추모영상 상영, 헌화의 순서로 진행됐다김필규 전 회장은 “‘승어부’(勝於父)라는 말이 있다. 아버지를 능가한다는 말로, 나는 세계 곳곳을 돌아다녔지만 이건희 회장보다 승어부한 인물을 본 적이 없다고 추억했다

▲ 10월28일 경기도 화성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에서 임직원들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운구차량이 사업장을 빠져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추모영상은 198712월 삼성그룹 회장 취임 이후 2014년 쓰러지기까지 변화와 도전을 통해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키운 이 회장의 다양한 면면을 조망했다. 850분쯤 장례식장을 나선 운구 행렬은 생전 이 회장의 발자취가 담긴 공간을 돌며 이별을 고했다. 용산구 한남동 리움미술관과 자택, 이태원동 승지원 등이다. 이후 이 회장은 사재를 털어 정보기술(IT) 강국 대한민국의 초석을 놓은 삼성전자 기흥·화성 반도체 사업장으로 마지막 출근을 했다. 운구차는 15분가량 천천히 사업장 내부 도로를 돌며 배웅나온 수백명의 임직원과 작별했다. 화성사업장을 뒤로한 이 회장은 수원 가족 선산에서 안식에 들었다.  

 

이건희 회장이 남긴 족적무한 개척·탐구 정신, 인재 중시대한민국에 큰 울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1028일 영면(永眠)에 들면서 지난 27년간 그가 보여준 리더십이 다시 조명받고 있다. 오늘날 이 회장이 남긴 것은 세계 일류 기업과 제품 이전에 정신이다. 남들보다 먼저 시장을 내다본 개척자 정신과 끊임없는 탐구 정신, 끝내 세계 1위에 올라서고야 마는 집념, 글로벌 톱에 이르러서도 안주하지 않는 위기의식 등이다. 재계는 물론 우리 사회 전반에서 그의 지난 말과 행동들이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삼성 창업주인 이병철 선대 회장을 비롯해 이건희 회장이 공통적으로 내건 이념은 사업보국’(事業報國)이었다. 식민지와 전후시대를 겪은 이들에게 경영은 특정 기업의 이윤을 넘어 국가 경제와 국민 생활에 도움이 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이건희 회장은 사업에서 넓은 시각을 가진 선각자였다. 그는 사업을 무작정 키우기보다 앞을 내다보고 준비했다. 오늘날 삼성이 키운 주요 사업들은 대부분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와 개발을 지속해야 하는 것들이다. 그것은 이 회장의 경영 철학이 개인과 기업의 사사로운 이윤 추구를 넘어선 것이기에 가능했다. 대표적인 것이 반도체와 휴대전화 사업이다. 생전에 이 회장은 천연자원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하이테크 산업밖에 없다”, “언제까지 그들(선진국)의 기술 속국이어야 하겠냐. 사재를 보태겠다며 반도체 산업을 맨손으로 일궜다.

 

애니콜 화형식은 그의 경영 철학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단순히 기업의 이윤을 추구하거나, 내수 시장만을 노린 것이라면 그와 같은 충격요법이 필요하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그는 주로 냉철한 기업가적 면모를 보였지만, 무엇보다 사람을 우선시했다. 2003년 한 언론 인터뷰에서는 한명의 천재가 10만명을 먹여 살린다며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경제가 어려울 때도 젊고 유능한 인재들을 많이 뽑아서 실업 해소에도 더 노력해 달라”(2010)고 주문했다. 일찍부터 여성 인재의 중요성을 언급했고, 청년들에게는 스스로의 주인이 되라’, ‘자신의 주인이 자기 자신이라고 강조했다.

 

이 회장이 떠난 뒤에도 그가 보여준 자세와 정신은 오늘날 삼성을 비롯한 우리 사회에 자산으로 남았다. 또 이 회장의 DNA는 후계자인 이재용 부회장에게 고스란히 이어졌다. 이 부회장은 201911월 이병철 회장 추모식을 마친 뒤 향후 그룹을 이끌 방향으로 사업보국위기극복을 제시했다. 당시 그는 사업보국 이념을 기려 우리 사회와 나라에 보탬이 되도록 하자고 말했다. 이날 삼성서울병원에서 열린 이건희 회장 영결식에서 이 회장의 동창인 김필규 KPK 전 회장이 부친의 어깨너머로 배운 이건희 회장이 부친을 능가하는 업적을 이루었듯이 이건희 회장의 어깨너머로 배운 이재용 부회장은 새로운 역사를 쓰며 삼성을 더욱 탄탄하게 키워나갈 것이라고 격려한 이유다.
         

이건희 회장 생가 ‘호암고택’ 기념공원 조성
대구 250㎡ 규모 방 4개짜리 한옥…인근 삼성상회도 원래 터에 복원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태어난 대구 중구 인교동 ‘호암고택’ 일대를 기념공원으로 조성하고 삼성그룹 모태인 옛 ‘삼성상회’를 복원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본격 추진된다. 10월27일 대구 중구에 따르면 호암고택(湖巖古宅) 터는 현재 중구 성내동과 인교동 등 일대에 들어서는 1831가구, 2만5000㎡ 규모의 서성지구 주택재개발 정비사업구역에 포함돼 있다. 재개발사업이 1000가구를 넘으면 3000㎡ 규모의 공공 공원을 조성해 지방자치단체에 기부해야 한다.


서성지구 재개발추진위원회 관계자는 “경제 성장의 발자취를 남긴 이 회장이 태어난 역사적인 공간인 만큼 고택을 없앨 이유가 없다”면서 “대구시와 삼성과 협의해 고택을 공원 부지로 편입해 그대로 보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는 부인과 자녀 등과 함께 250㎡ 규모의 방 4개짜리인 이 한옥에서 생활했다. 1942년 태어난 이건희 회장의 생가이다. 이 회장은 1947년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이사하기 전까지 6년여간 이곳에서 지냈다. 현재 호암고택은 삼성문화재단 소유로 재단 측과 협의가 필요한 사안이다. 조합 설립 후 관리처분 전 삼성 측이 고택을 없애버리면 마땅한 방법은 없다.

▲ 대구 중구 인교동 호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고택을 시민들이 살펴보고 있다.  

 

호암고택에서 250여m 떨어진 삼성상회 터(80㎡)의 옛 건물을 복원하자는 움직임도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삼성상회는 이병철 창업주가 1938년 중구 인교동에 건립했다. 옛 건물은 1997년 철거해 현재 터만 남아 있다. 삼성은 2016년 북구 침산동 대구삼성창조캠퍼스에 옛 건물을 복원했다.


1991년 삼성상회 터를 매입한 산업 공구 유통업체 크레텍책임은 중구와 함께 옛 건물 복원이 필요하다는 데 뜻을 같이하고, 관련 사업을 조만간 삼성 측에 제안할 예정이다. 회사 측은 2011년 터 일부를 대구시에 기부채납해 현재 삼성상회가 있었던 곳임을 알리는 표식과 기념 조형물 등을 세웠다. 최영수 크레택책임 회장은 “삼성상회 건물은 원래 자리에 복원하는 것이 옳다”며 “논의가 진척되면 삼성과 협의해 옛 건물 목조 자재 등을 다시 대구로 가져와 복원할 계획”이라고 했다.


대구 중구는 재개발을 추진하는 호암고택과 삼성상회 터를 근대골목투어와 연계해 지역 관광인프라로 발전시킬 복안이다. 류규하 중구청장은 “삼성상회 옛터와 이 회장 생가를 이어 중구에 삼성그룹 발원지로서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역사적 의미가 담긴 공간으로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수암(守岩) 문 윤 홍<大記者/칼럼니스트>moon47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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