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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란의 종교가 산책
이치란의 종교가 산책●인도의 종교와 불교 이야기-⑭
시크교는 이슬람교영향으로 힌두교를 개혁하여 만든 종교
기사입력: 2020/04/15 [16:08]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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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크교 창시자 구루 나낙(1469∼1539).  


시크교는 이슬람교영향으로 힌두교를 개혁하여 만든 종교   

 

인도는 종교천국이다. 인도에 잠깐 있는 동안에도 힌두교 이슬람교 시크교를 접하게 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머리에 터번을 쓰고 다니는 인도인들을 종종 보게 되고, 홍콩이나 동남아시아에서도 쉽게 목격하게 된다. 영국에도 시크교도들이 많은데, 그것은 인도 펀자브에서 영국으로 이민을 가서 살고 있는 인도인 시크교도들이다.

 

시크교는 15세기에 펀자브에서 생겨난 인도산 종교이다. 재미난 것은 이슬람교와 힌두교의 혼합에서 생긴 종교이다. 구루 나낙은 본래 하층 카스트 출신의 힌두교도였지만, 카스트 제도를 반대했다. 그는 처음엔 이슬람에 관심을 보였다. 그는 이슬람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나 무슬림이 된다는 것은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이슬람의 좋은 점을 가미하여 힌두교의 개혁 종파를 만들었다. 처음엔 일종의 힌두 개혁파였지만, 결국에는 이것이 시크교가 되었다. 나낙은 1469년 펀자브 지방 라호르 근교에서 태어났다. 지금은 파키스탄 지역이다. 그가 하층 카스트였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는 차별적인 카스트 제도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단호하게 힌두교의 카스트를 반대하고 부정했다. 또한 힌두교의 신을 인정하지 않았고, 신관(神觀)이 유연했다.

 

그가 보기에 어떤 종교에서는 유일신을 강하게 주장하지만 그의 신관은 좀 달랐다. 신은 모두 동일하다는 신학을 주장했으며, 계급과 종족의 차별을 부정했다. 신은 동일한 것으로 누구나 차별 없이 접근할 수 있다는 이론을 폈다. 또 죄를 지으면 그 후세에 응보를 받는다는 인과응보, 업과 윤회의 사상을 가르쳤다. 또 우상숭배와 고행을 반대하고 묵상으로 신을 섬길 것을 역설했다.

 

시크라는 용어는 산스크리트어로 '교육' 또는 '학습'이라는 뜻의 시스야(sisya)에서 전래했다는 설과 '가르침'이라는 식사(siksa)에서 유래했다는 두 가지 설이 있다. 그러나 원리는 동일하다. 그는 모든 사람 안에 자리하고 있는 하나뿐인 신의 메시지, 모든 인류의 평등함과 하나 됨 신의 창조물과 영원한 진리를 전파하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인도 밖으로 진리 투어를 나가기도 했다. 구루 나낙은, 신을 보려면 마음속의 눈,’ 가슴으로 봐야한다고 강조했다. 시크교 신도는 거의가 인도 펀자브 지방에 집중돼 있고 인도 전역에도 소수이지만 분포해 있다. 인도와 전 세계 포함해서 약 3천 만 명 정도 된다. 전 인도의 총리 만모한 싱도 시크교도이다. 대부분의 시크교도는 남자의 경우 상투를 틀고 터번을 두른다.

▲ 인도 펀자브 암리차르에 있는 시크교의 황금사원(구루드와라).  

 

▲ 인도 총리를 역임한 만모한 싱    

 

시크교 개조(開祖) 나낙(14691539)은 파키스탄 라호르 근처에서 출생했으며, 하급 카스트 출신이었다. 30세 경에 신의 계시를 받아 전도생활에 들어가 널리 인도 각지를 순회하면서 힌두, 이슬람 설교자들과 종교 문답을 벌이고, 또 메카를 순례하고 만년에는 고향에 정주하여 포교활동에 전념하였다. 구루 나낙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 이탈리아의 로마, 스리랑카, 그리고 티베트를 여행하면서 반드 차코 (Vand Chakko: 남들과 나누고, 곤경에 있는 사람들을 돕는다), 키랏 카로 (Kirat Karo: 돈을 정직하게, 착취하거나 거짓 없이 버는 것을 의미), 나암 자프나 (Naam Japna: 성스러운 이름을 외치면서 신을 언제나 기억하는 것; 신을 향한 끊임없는 헌신) 등의 원칙을 가르쳤다. 힌두교의 번잡한 카스트, 미신, 종교 의식을 배격하고, 인간의 절대 평등을 주장하였기 때문에 신도중에는 하급 카스트 출신이 많았고 개창자의 지위는 구루(스승)의 칭호를 갖고 후계자에게 계승되었다.

▲ 남인도 탄조르 화풍으로 그린 시크교 10명의 구루 초상화.  

 

시크교가 지금은 하나의 독립된 종교가 되었지만, 초창기에는 힌두교 내의 하나의 개혁운동으로 시작됐다. 시크교는 자이나교나 불교와 달리 이슬람의 중요한 요소를 힌두교에 조화시킨 일종의 힌두-이슬람의 종합이지만 신분제도를 없애고 카스트 제도를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고기를 다 먹고 운동을 장려한다든지 기존의 힌두교와 이슬람을 섞으면서 꽤 다른 모습의 종교로 변형시켰다. 이슬람과 힌두교 양쪽 모두의 몇 안 되는 공통점이었던 여성 차별을 철폐했다. 그래서 시크교도들로 하여금 지참금 문제로 아내를 학대하는 일을 금기시하게 했다. 5대 구루는 이슬람으로부터 심한 박해를 당하기도 했다.

 

시크교 경전은 제5대 구루인 아르잔 데브가 선대 구루들의 가르침을 집대성해서 만들었다. 신의 영광을 노래하는 찬가(讚歌)를 모아서 편찬했다. 6대 구루 무렵부터 무굴 제국의 지배에 대한 저항운동을 활발히 전개하여, 교단은 민족주의자, 불평분자, 비적(匪賊)들을 흡수하여 군사적 집단의 양상을 띠고 항시 무굴 황제와 충돌하였다. 6대 구루는 회교도들과도 친하게 지냈으며 회교 사원도 지워줄 정도였다. 9대 구루는 목숨을 바쳐 힌두교를 크게 구할 정도였다. 하지만 초기의 평화로운 자세를 잃고 점차 전투적 색채를 짙게 띠어 이슬람교와는 멀어지게 됐고, 18세기 중엽에는 불법단체로 몰려 소멸의 위기까지 처했으나 곧 세력을 회복하고, 란지트 싱을 수장(首長)으로 받들어 교단의 재통일에 성공하였다.

▲ 시크교 경전 스리구루 그란트 사이브.

 

▲ 시크교 음악가들이 시크교 경전인 ‘스리구루 그란트 사이브’ 찬가를 부르면서 와헤구루 신을 찬탄하고 있다.    

 

1799, 마하라자 란지트 싱은 인도 펀자브 안에 시크교 연합을 결성했다. 펀자브 지방을 근거지로 하여 서유럽식 군대를 편성하여 영국세력과 항쟁하였고, 1845년 시크 전쟁이 발발되기도 하였으나, 1849년 영국의 지배에 굴복하였다. 세계 대전에 참전한 시크교인들은 예부터 지금까지 대전의 사자들로 일컬어진다. 두 번의 세계 대전 동안, 8만 명의 시크교 군인들이 전사했고 10만 명이 부상당했다는 통계가 있다. 그래서인지 인도의 군인들 가운데는 터번을 쓴 시크교도가 많고 고급 장교도 상당하다.

▲ 시크왕국을 꿈꾼 마하라자 란지트 싱(1780~1839년)  

 

마하라자 란지트 싱(Maharaja Ranjit Singh은 인도 시크교도 왕국의 창시자이다. 펀자브에서 출생했으며, 펀자브지방에 할거하던 시크교도의 세력을 규합하여 19세기 초에 시크 왕국을 건설하였다. 그의 펀자브 정복은 영국의 요구와 충돌하였으나, 세 차례의 마라타 전쟁에도 영국에게 굴복하지 않은 유일한 왕국으로서 독립을 지켰다. 1839년 그가 죽은 후 여러 세력으로 분열되기 시작하여 1840년대에 시크전쟁에서 두 차례에 걸쳐 패배함으로써 멸망하였다.

▲ 인도육군의 시크 경보병대가 인도 공화국 건국 기념일에 행진하고 있다.

 

시크교가 인도에선 소수 종교지만 자이나교 못지않은 부유층 종교로 명성이 높다. 또한 인도군 상층부를 어느 정도 장악하고 있는 것도 눈여겨 볼일이다. 시크교 교리 자체가 자기 일을 열심히 하라고 가르치기 때문에 펀자브 주에서 농업 관련으로 부를 얻은 시크교도들도 많고 다른 나라로 가서 사업에 뛰어들거나 군대로 가서 특수부대로 근무하는 경우도 많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인도에서 추진한 녹색혁명 덕택에 얻은 부를 바탕으로 미국 등 서방 국가로 떠난 이민자 중 다수를 차지하는 사람들이 시크교도이기도 하다. 황금사원에 누구라도 먹을 것과 잠자리를 내주는 기금은 바로 부유한 시크교들의 헌금에서 나온다.

▲ 런던에 있는 시크교도들이 인도 정부에 불만을 표출하는 데모를 벌이고 있다.    

 

▲ 매년 4월 13∼14일에 열리는 시크교 축제인 바이사키. 캐나다 토론토.  

  

신은 하나다라는 개념은 시크교의 핵심 개념 중 하나로서 와헤구루(Waheguru)’라는 신을 믿는다. 이웃한 이슬람교와 힌두교 등의 개념들을 관용 있게 포용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일신교다. 시크교의 3가지 원칙은 남자포(Naam Japo: 신을 섬기는 노래를 하고, 신의 이름으로 명상을 하는 것을 말한다.),키랏 카로(Kirat Karo: 신이 주신 각자의 능력과 재능을 이용해 열심히 일하라.), 반드 차코(Vand Chhako: 자신이 가진 것을 남들에게 베풀어라.)이다. 5가지를 경계하는데, 시크교도들은 5가지 도둑이라고 표현한다. 인간을 나약하게 만드는 5가지의 도둑은 정욕..탐욕.집착.오만이며, 목샤(해탈)에 이르는 5가지 덕목은 진리탐구.만족하는 마음.연민의 정.겸손.사랑의 실천이다 보검<세계불교네트워크 대표>

▲ 시크교 구루의 강연을 듣기 위해서 모여든 미국 시크교도와 미국인들. 유바 시, 캘리포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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