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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바지에 굿 대신 봉사...‘무당’ 인식 확 바꿔 놓은 요즘 무당 홍칼리

신민형 | 기사입력 2021/09/02 [17:35]
수필집 『신령님이 보고 계셔』에서 ‘자신 돌보고 사랑할 용기’ 주는 무당이야기

청바지에 굿 대신 봉사...‘무당’ 인식 확 바꿔 놓은 요즘 무당 홍칼리

수필집 『신령님이 보고 계셔』에서 ‘자신 돌보고 사랑할 용기’ 주는 무당이야기

신민형 | 입력 : 2021/09/02 [17:35]

 


수필집
신령님이 보고 계셔에서 자신 돌보고 사랑할 용기주는 무당이야기 

"착하게 살면 그게 무당"...작가·미술가·무용수 삶서 조울증, 2019년 계룡산서 내림굿

"나는 행복해서 무당 하고 있다. 누군가를 위해 간절히 기도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다."

 

지존 무당의 개념을 빠꿔 놓은 90년생 요즘 무당홍칼리(본명. 홍승희)가 펴낸 수필집 신령님이 보고 계셔(위즈덤하우스 .268.15천원)는 구시대 미신으로 치부되던 무속이 여느 기성 종교와 같이 삶을 합리적으로 치유하고 현대적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무당 홍칼리는 오색으로 꾸며진 신당 대신 카페에 앉아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글을 쓰고, 점사를 보고, 손님을 만난다. 카카오톡 메시지로 예약을 받아 상담을 진행하고 한복보다는 편안한 청바지를 즐겨 입는다.

 

그는 책에서 무당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진솔하게 풀어냈다. 프리랜서 작가이며 미술가이자 무용수이기도 했던 저자는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수많은 문제와 대면하게 됐고, 급기야 조울증까지 걸렸다.

 

"죽기 싫어서 마음 수련을 해보고자" 스님이 되려 했으나 몸에 새긴 '타투'가 걸림돌로 작용했다.

 

이번에는 무당이 되려고 했지만, 돈이 문제였다. 굿 내림을 하려면 2500만원이 필요했는데 통장 잔고는 20만 몇천 원이 고작이었다. 프리랜서라 대출도 어려웠다. 당시를 떠올리며 저자는 "돈이 없으면 나는 앞으로도 계속 힘들 수밖에 없을 거라는 의미 같았다"고 회고했다.

 

무턱대고 떠난 인도에서 그는 마침내 인연을 만났다. 공연을 하던 중 '엑스터시' 상태에 빠졌고, 이를 흥미롭게 지켜본 지인이 고국에 있는 무당을 소개해 줬다. 이번 무당은 내림굿 비용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저 "착하게 살면 돼 그게 무당이야"라고 말해 줄 뿐이었다.

 

무당이 됐지만 역시나 쉬운 일은 없었다. 무당은 기도 시간을 포함해 하루 12시간 일하는 고된 직업이었다. 특히 여러 사람의 고민을 들어야 하기에 감정 노동의 피로도는 생각보다 컸다고 한다. 역학과 기도뿐 아니라 기후 위기, 페미니즘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할 시간도 필요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이렇게 해보라 저렇게 해보라 충고하는 일이지만, 중이 제 머리 못 깎듯, 무당들도 자신들의 뜻대로 되는 일이 별로 없다고 말한다. 저자의 경우에는 연애가 특히 그랬다고 한다. 예컨대 애인의 바람을 신령님이 알려줘서 헤어졌지만, 일주일 만에 다시 그를 만나는 악수를 뒀다.

 

"신령이 알려주면 뭐 하나, 결국 내 마음대로 다시 그 사람을 만났다. 연애를 했고, 그것도 꽤 많이 했고, 대부분 망한 연애를 했다."

 

책은 이 밖에도 저자가 만난 귀신의 종류, '여자 사주''남자 사주'로 나눠 점을 보는 업계의 인습, 무당의 도제식 교육에 대한 비판, 궁합을 새롭게 해석하는 법 등 무속에 얽힌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수록했다.

 

홍칼리는 글을 쓰고, 반려견 커리를 돌보고, 사회문제를 성실하게 공부하며, 인간 아닌 동물의 삶까지 존중하고자 비거니즘을 말한다.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한 무당계의 노동 착취를 단호하게 지적하고, 관습적으로 여자 사주’, ‘남자 사주로 구분된 사주풀이도 거절한다.

 

점사를 볼 때도 정답을 알려주는 대신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다정히 청한다. 마주 앉은 이에게 직접 운명을 해석할 힘을 주고,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가도록 돕기 위해서다. 묻는 무당, 듣는 무당 홍칼리에게 좋은 무당의 역할은 좋은 친구의 역할과 비슷하다. 내 안의 답을 이끌어내 주고 곁에서 함께 고유한 이야기를 써나가는 운명의 공동 창작자다.

 

"나는 행복해서 무당을 하고 있다. 무당이 된 후 가장 좋은 점은 누군가를 위해 간절히 기도할 수 있다는 점이다. 모든 존재를 끌어안을 수 있고, 정화할 수 있는 이 직업이 좋다."

 

그의 생각과 행동은 세상이 오해해온 무당이라는 직업을 새롭게 바라볼 계기를 제공할 것이며, 믿는 이들은 물론, 믿지 않는 이들에게도 자신을 돌보고 사랑할 용기를 줄 것임에 틀림없다.

 

책속으로

무당이 된 나를 걱정하는 상상과 다르게, 나는 행복해서 무당을 하고 있다. 무당이 된 후 가장 좋은 점은 누군가를 위해 간절히 기도할 수 있다는 점이다. 모든 존재를 끌어안을 수 있고 정화할 수 있는 이 직업이 좋다. 낮에는 따뜻하게 사람들을 감싸고 밤에는 고요하게 기도할 수 있는 일상이 행복하다.

- p.8 프롤로그 케이크를 나눠 먹고 싶어서중에서

 

차별받고 밀려난 몸들이 나를 방문한다. 무당은 신이 되어 왕처럼 군림하는 사람이 아니라, 신과 신 외의 모든 것 사이에 서서 낙인찍힌 몸까지 끌어안는 존재다. 다양한 몸들과의 만남이 오늘도 설렌다. 그래, 내가 이래서 무당이 된 거지.

- p.41 몸에 새긴 부적중에서

 

나와 커리는 세상 많은 존재가 그렇듯 혼자 우뚝 솟은 게 아니라, 연약한 몸으로 누군가에게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까 내가 커리와 함께 사는 이유를 굳이 말하자면, “우리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여서요라고밖에 답할 수 없다. 무당도 돌봄을 나누며 살아가는 지구의 구성원 중 하나라는 걸, 나는 이 새삼스러운 사실을 꼭 짚어야 한다.

- p.111커리와 나중에서

 

옛날에는 여성이 글을 읽고, 표현할 수 있는 직업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한 직업이 기생이나 무당이었다. 기생과 무당은 유일하게 남성들 앞에서 말을 하고,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춤을 출 수 있었다. 말할 힘, 나의 말이 말로 다가갈 힘은 지금의 여성들에게도 절박한 요구다. 무당이 되기로 선택하는 일은 나의 말을 멈추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나의 말은 다른 이의 말들로 채워지고, 그들의 말에 공명하면서 가능해진다.

- p.118~119 읽는 무당중에서

 

비건은 단순히 고기를 안 먹는 생활 방식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내가 모르는 고통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상태, 그 상태로 살아가겠다는 지향이다. 들리지 않는 고통에 귀 기울이고, 내가 등진 아픔은 없는지 살피는 태도다. 공장식 축산으로 살아서 고통 받고, 인간이 만든 환경 때문에 병에 걸리고, 도축되거나 살처분당하는 동물들의 고통은 뉴스에서도 말해지지 않는다. 그들의 넋은 어떻게 되는 걸까? 무당마저 그들의 고통에 고개를 돌리면, 누가 그들을 위해 기도해줄까.

- p.131~132 비거니즘을 굿판으로중에서

 

운명학은 개개인의 삶을 신화로 만드는 미신이 아니라 고정된 언어를 해체하고 삶을 다르게 해석해보자는 실천에 가깝다. 고정된 관념을 자꾸 버려야 하는 이유는 삶의 무한성을 파괴하지 않기 위해서다. 운명은 하나의 좁은 직선 도로가 아니다. 뻔한 관념은 있어도 뻔한 인생은 없다.

- p.170~171 결혼 못 할 팔자?중에서

 

무엇에든 기대게 되는 것은 의지가 박약하거나 우스운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누구나 무언가에 대한 간절함이 생기면 본능적으로 더 나은 답을 찾으려 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타로 카드를 펼쳐볼 수도 있고, 여기저기 고민을 들고 다니면서 조언을 구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순간은 선택의 연속이다. 선택이 아닌 것이 없다. 이 글을 읽을지 안 읽을지도 선택이고, 이 책을 살지 말지도 선택이다. 내가 이 글을 쓸지 말지 역시도. 선택의 순간마다 나의 결정을 의심한다면 인생은 정말 피곤해질지도 모른다. () 그런데 나도 이 글을 편집자님에게 보낼지 말지 결정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아무래도 식구들에게 물어봐야겠다.

-p.182~183 짜장면을 먹을까요, 짬뽕을 먹을까요?중에서

 

다양한 성별 정체성, 성적 지향을 가지고 있는 손님들은 자신이 이상한 게 아닌지 확인하러 나를 찾아온다. 나는 괜찮다고, 이상한 게 아니라고 답변한다. 이런 손님들은 굳이 점집에 오지 않아도 될 정도로 자신이 이미 답을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기 위해,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는 걸 확인받기 위해 무당을 찾는다.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드는 사회의 분위기에 지쳐서 점집을 찾는 것이다.

- p.226 이분법을 벗어나는 판 깔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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