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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선 '생활의 발견'
박현선의 ‘생활의 발견’●용맹이, 사과나무 밑에 잠들다
“아픔 없는 그곳에 가서 행복하게 살아라.”
기사입력: 2020/07/14 [09:22]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박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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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해줘서 고마웠어. 아픔 없는 그곳에 가서 행복하게 살아라.”

 

목줄이 풀어진 채, 배가 축 늘어져있고, 다리에 힘이 없어 보인다.

 

아버지! 용맹이를 왜 풀어놓았어요?”

수명이 다돼서, 이제 갈 때가 된 것 같다.”

아예, 먹지를 않으니 걱정이야!”

사과나무 밑에 볏짚을 깔아 편히 가게 자리를 마련해두었다.”

 

오래전, 아버지 지인이 시내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며 진돗개 새끼를 농장으로 데리고 왔다. 황금빛 털은 놀라울 정도로 윤기가 흘렀고, 눈과 이빨이 날카로워 보였다. 용맹하고 충성스러 운 개가 되라고 용맹이라 이름 지었다. 아버지가 산을 찾거나, 마실을 갈 때는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산골짜기에서 내려온 고라니를 발견할 때면 날렵한 동작으로 잡아다가 아버지께 바쳐 이쁨을 받곤 했다.

 

순간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한여름 시냇가에서 목욕을 시켜주던 일, 함께 걷던 붉은 갈대 숲길, 고기를 먹을 때면 용맹이 생각에 꼭꼭 싸매서 갖다주면 뒤도 안 돌아보고 먹던 일 들. 아버지는 용맹이를 위해 매일 읍에 있는 식당을 돌며 육류 부산물을 얻어와 끓여 먹이곤 했다. 소나무와 전나무 사이에 긴 줄을 묶어 놓고, 도르래를 달아 맘껏 뛰어놀 수 있도록 놀이터를 만들어주었다.

 

벌써 그렇게 오래되었나? 따져보니 17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힘이 풀린 눈으로 쳐다본다.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아버지 얼굴과 닮아있다. 이상한 슬픔이 밀려왔다. 다리에 힘이 빠져 주저앉았다. 등을 어루만져 주었더니, 작별 인사라도 하듯 눈을 껌뻑이며 꼬리를 흔든다. 식구가 되어 지냈는데, 헤어질 때가 되었다니. 왈칵 눈물이 솟는다.

 

우리와 함께 해줘서 고마웠어. 아픔 없는 그곳에 가서 행복하게 살아라.”

 

안개가 뿌연 새벽. 용맹이는 곧 떠날 것처럼 볏짚 위에 쓰러져있다. 이제 아침이 밝아오면 떠나겠지. 사과나무 아래 잎이 수북이 쌓여 떠날 자리를 더해준다. 사과꽃이 하얗게 핀 농장에 서 술래잡기하며 놀던 용맹이. 아버지의 애정 어린 마음도 모두 가슴에 쓸어 담고 갈 것이다.

 

아버지와 용맹이의 이별식.

 

용맹아~.”

이제, 떠나는 거니?”

설움은 묻어두고 떠나는 거야.” “자아, 용기를 내야지.”

울고 싶으면 마음껏 울어도 돼.”

 

울음소리는 점점 작아지더니 안식의 숨을 몰아쉰다. 약간 벌 어진 입 사이로 타액이 흘러내렸다. 녹음이 무성했던 여름에는 힘 있게 짖어대며 겅중겅중 뛰어오르며 마냥 행복했던 시간도 있었지.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입을 달싹인다. 아버지는 차마 볼 수 없어 외면하며 가슴에 품어 안는다.

 

용맹이는 아버지 품에서 편안히 잠들었고, 수목장으로 사과나무 밑에 묻어주었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신다.

 

용맹이 떠나고 나서 눈물을 많이 흘리시더구나. 식사도 못 하시고 어찌나 끙끙 앓는지.”

 

아버지는 용맹이 죽음 이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불면증과 피로에 시달리셨다. 어떤 죽음이든 누군가를 잃는 것은 슬픔이 진하게 남는다.

 

나는 아버지께,

힘드시겠지만, 건강을 잘 돌보셔야 해요.” “용맹이도 그러길 바랄 거예요.”

우리 가족 사랑을 듬뿍 받았고, 사과나무 밑에 잠들어 있잖아요.”

 

아버지는 농장 위에 있는 매산에 다녀오셨다. 땀에 흠뻑 젖은 얼굴을 닦으며 말씀하신다.

용맹이가 없으니, 농장이 절간처럼 조용하구나.”

박현선(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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