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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길수의 일상에서 찾는 삶의 구원과 행복
박길수의 일상에서 찾는 삶의 구원과 행복●천상의 겨울 왕국
노숙자 도갑 씨의 풍족함과 자유 이야기
기사입력: 2019/12/14 [16:32]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박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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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 도갑 씨의 풍족함과 자유 이야기 

 

나는 지난 4년 반 동안 초라하고 나약한 '바위 위의 목동'이었다. 높다란 절벽 위에 홀로 서서 저 깊고 삭막한 골짜기를 향해 정신병자처럼 쓰라린 절망을 흥얼댔다. 내 삶의 전부인 사랑하는 아내가 온몸에 생명 연장 장치만 매단 채 누워버린 후, 덩달아 표류하던 내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막막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시간이 흘렀고, 이제야 영하의 추위에도 저 깊은 계곡에서 반향이 되어 돌아오는 봄의 온기를 조금씩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슈베르트 가곡 '바위 위의 목동'이 비로소 그리웠던 아름다움처럼 그윽하게 내 두 귀를 맴도는 노래가 된 듯싶었다. 바로 그때 나는 노숙자 도갑 씨를 처음 만났다.

 

붉게 타는 가을 단풍이 생명의 신비로움처럼 느껴지던 늦가을 어느 날, 집 근처 주점 앞에서 음식물 통을 뒤지고 있던, 나보다 8살이나 더 많은 도갑 씨를 처음 본 것이다. 우연히 서로 보고 미소 짓다가, 얼떨결에 우리는 정식으로 인사까지 나누게 되었다. 찬 바람 불어 쌀쌀하기만 하던 저녁 시간, 도갑 씨는 노숙자 차림의 비렁뱅이였고, 가게마다 기웃기웃 돌아다니며 먹고 남아 내놓은 음식이 있는지 살피고 다닌다고 스스로 나에게 말했다. 몇 마디 말도 나누지 못하고, 나는 혼자 누워있는 아내에게 바로 돌아왔지만, 그때부터 노숙자 도갑 씨가 이 추운 겨울을 어떻게 버틸지 걱정스럽기만 했다. 도갑 씨는 혹한의 겨울만을 기다렸다고 넉살스럽게 말했지만, 그의 말이 도무지 미덥지가 않았다.

 

퇴근길에 남녀 젊은이들이 우글거리며 줄 서 있는 클럽 앞 주류 상자 옆에서, 두리번대던 도갑 씨를 다시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나는 그를 크게 불렀고, 그도 나를 보고 기억한다며, 오랜 친구 만났다는 듯 활짝 웃으며 다가왔다. 그리고 나는 그가 이 추운 엄동설한을 그토록 기다렸던 이유를 그제서야 알았다. 그에게 겨울은 참으로 풍족하단다. 식당마다 남아 버린 음식이 겨울에는 절대 상하지 않기 때문에 천지가 먹거리투성이라고 했다. 밤새 북적대는 주점 주변에는 먹을 것이 지천으로 깔렸단다. 밖에 내놓은 상자 안 술병에 덜 먹고 남긴 술이 얼마나 향기로운지 모른다고도 했다. 가끔 새벽 시간 바쁜 쓰레기 수거 차를 도와주면, 몇천 원의 약값도 벌 수 있다고 그는 뻐겼다.

 

나도 모르게 늘 비자금으로 딱 한 장 가지고 다니던 만 원짜리를 그의 손에 쥐여 주었다. 혹시 필요할지 모르니 비상금으로 지니고 다니면 좋겠다고 했을 때, 순간 희망 같은 기쁨으로, 자기와 친구 하자며 흥분하던 그의 밝아지던 모습을 나는 금방 엿볼 수 있었다. 그는 고령인데도 나이 들어 보이지 않았다. 자는 시간만 빼고 항상 걷고 움직이기 때문에 자기는 여태껏 아픈 곳이 한 곳도 없다고 했으며, 또 얇은 옷 여러 벌을 껴입으면 전혀 춥지 않다고 자랑처럼 늘어놓기도 했다. 그에게서는 우울증이나 좌절감, 외로움 같은 기분은 전혀 느낄 수 없었고, 누가 누구를 위로하며 격려해야 하는지, 나는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그에게서 삶은 한없는 자유로움과 풍족한 즐거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며칠 전, 내 친구 상용이가 우리 부부를 보러 또 멀리서 찾아왔다. 아내가 병이 나고 4년 반 동안, 정 깊은 상용이는 한 해도 빠뜨리지 않고 우리 둘을 찾아와 위로하며, 보태 쓰라고 약간의 돈도 주고 갔다. 참 할 말이 없고 염치 없었지만, 속으로는 힘이 솟았다. 우체국 앞을 지날 때, 그중 만 원 한 장을 꺼내, 나는 천 원권으로 바꾸어 놓았었다. 정말 근검절약하며 살더라도 도갑 씨를 만나면, 상용이처럼 나도 그에게 잔돈 천 원씩이라도 빠뜨리지 않고 주고 싶었다. 언젠가 그에게서 천 원이 얼마나 고마운 돈인가 보았기 때문이다. 아니나다를까 도갑 씨는 내가 내민 천 원이 너무 고마웠던지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았다. 그의 온 얼굴은 화색이 돌았고, 자기 전 재산이 이제 36천원이나 된다고 자랑까지 했다. 그의 거무스레한 얼굴에 흡족한 미소가 번지는 듯싶었다.

 

아무리 자유롭고 즐거운 삶을 살 수 있을지라도, 나는 노숙자로 살아가기는 싫다. 만약 아내마저 가 버리고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그때는 차라리 양로원으로 들어갈 것 같다. 노숙자의 삶은 너무 외롭고 거칠다. 노숙자가 없는 세상이면 좋겠다. 도갑 씨는 큰 병이 나 더 움직일 수 없을 때, 자신을 부르는 시설로 들어가 생을 마칠 것 같다고 했다. 그때까지는 그동안 내내 기다리던 포근한 천상의 겨울 왕국에서, 먹을 것 걱정없이 지금처럼 마음껏 편안하게 자유를 누리며 살겠다고 했다. 나는 공원 벤치에서 비둘기와 놀고 있는 그의 한가로운 모습이 과연 자유롭고 느긋한 천국의 삶인지 실은 이해하기 힘들었으나, 그를 만날 때마다 천 원짜리 한두 장씩 꼭 쥐여 주기로 마음 먹었다. 그가 지금처럼 아프지 않고, 아무 간섭도 받지 않으면서, 마음 여유롭고 행복한 노년의 삶을 영위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빌고 또 빈다.  

 

필자 박길수는 이 시대를 성실하게 살아온 평범한 인물이다. 41년 결혼생활 중 4년여 전 느닷없는 아내의 뇌출혈로 불행이 시작되는 듯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의식없는 아내를 편안한 집에서 보살피기 위해 요양보호사 자격을 땄다. 치료비와 생활비, 그리고 자신의 건강관리를 위해 장애인 도우미 자격증도 따서 출퇴근한다. 항상 아내 곁을 지키는 아버지를 위해 딸과 사위, 그리고 누구보다 예쁜 손녀가 합류했다. 그는 불행한 생활일 듯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고 구원도 받는다. 그리고 개인 블로그 박길수의 일기’(https://m.blog.naver.com/gsp0513)에서 그러한 일상을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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