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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태 박사의 한국종교학
장정태 박사의 한국종교학●풍수학의 이론구성-풍수의 개념과 목적
풍수지리는 땅에 관한 탐구이며 인간 삶을 연구하는 학문
기사입력: 2020/08/11 [19:33]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장정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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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순서>

1) ()-산의 신출귀몰하고 변화무쌍한 기운을 살아있는 물체에 비유

2) ()-하늘의 양기와 땅의 음기가 결합하는 공간

3) ()-혈을 중심으로 하여 솟아 있는 산봉우리와 주위 암속·건물·도로

4) ()-평면보다 두두룩한 땅은 산이 되고 평면보다 약간 낮은 곳은 물

5) ()-혈의 좌향을 어떻게 정하여 천지의 좋은 운기를 취할 것인가

6) 비보풍수-흉지를 풍수적 조처를 통해 명당을 이루도록 하는 것

7) 풍수의 개념과 목적

▲ 풍수지리는 땅에 관한 탐구이며 인간 삶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사진은 조선왕릉 중 경기 여주군에 위치한 세종대왕의 영릉.    


풍수의 개념-산수가 신비로운 생기를 내포, 인간의 길흉화복을 좌우

 

풍수란 산수가 신비로운 생기를 내포하여 인간 생활의 배후에서 인간의 길흉화복을 좌우한다고 믿고, 거기에 인간과 생령을 일치·조화시킴으로써 인간 생활에 복리를 추구하려고 한 하나의 속신이다. 일찍이 증가의 효경 상칭장에 복기택조, 이안조지(卜其宅兆, 而安措之)하라고 하여 부모의 무덤 자리를 골라서 편안히 모시라고 한 기록이 있으나, 이때의 장묘습속은 그저 경치와 지세가 좋은 곳을 택하라는 정도로 생각될 뿐 풍수적 상지법상 그렇게 말하였다고 믿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전국 말기에 와서 풍수적 관념이 처음으로 발생하였고, 한대에 와서는 음양오행 사상을 빌어 그 원리를 정돈하게 되었다.

 

그러하여 풍수의 경전인 청오경이 편찬되기에 이르렀다. 풍수는 산천, 수유의 모양을 인간이 길흉화복에 연결해 설명하는 것으로 약칭하여 풍수설. 지리설이라고도 한다. 풍수지리가 다루는 땅은 삶의 가장 기본적인 터전이다. 인간은 땅을 딛고, 땅 위에 집을 짓고 산다. 그리고 땅()으로 돌아간다. 동양철학에서 땅은 하늘과 더불어 시작이며 마지막을 의미한다. 풍수지리는 땅에 관한 탐구이며 인간 삶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땅의 지형을 통해 인간의 삶의 변화가 이루어진다는 생각이다. 풍수는 바람과 물을 뜻한다. 인간 삶 속에 적당한 바람과 물은 살기 좋은 터전을 말한다. 그런 곳을 명당이라고 하고 그 땅은 쉽게 찾을 수 없기에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공부하는 것을 풍수지리학이라 한다. 이 말은 다른 말로는 지학, 감여라고도 하는데 국제적 학술용어로는 중국 북경어의 풍수를 그대로 사용한다.

 

먼저 풍수라는 말에서의 을 뜻한다. ‘를 통해 환경을 다루는 학문이라고 정의되는 반면 실질적으로는 땅에 대하여 신비하고 영묘한 어떤 실체를 인정하고 이것에 형용 이상의 형이상학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땅의 형세를 인간의 길흉화복에 관련지어 설명하는 동양적 자연관의 하나로서, 풍수지리지술음양설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린다. 자연에 대한 점복이 평상시와 다른 현상에 나타난 신의를 해석해 길흉을 판단하는 데 비해 풍수 점복은 이미 생겨난 땅의 형상을 보고 점복하는 것으로서 명당을 얻으면 복이 온다는 발복의식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 특징이다. 삶의 터전인 땅을 이해하고 관리하는 사상으로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불교, 도교, 유교 등과 깊은 관련을 맺으면서도 이들에게 배척당하기도 하고 또 그들과 무관하게 자생적으로 생명력을 키워 왔다. 풍수설의 사회적 기능이나 역할은 시대적으로 변하였지만, 삶의 공간을 선택하고 형설 할 때면 사람들은 이 풍수설에 의존하였다.

 

풍수에 의하면 땅은 생적동적의 존재로서 만물을 키우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그 힘의 많고 적음에 따라 인간에게 주는 혜택도 달라진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길한 정기가 왕성한 장소에 터를 잡으면 그 자손들이 부귀영화와 장생을 누리지만 반대로 흉기가 있는 장소를 택하면 불행을 겪는다는 것이다. 즉 풍수에서는 인간의 성쇠가 완전히 천과 지에 의해 정해진다고 믿는다.

 

풍수지리설에서 천지는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인생을 좌우하는 살아 숨 쉬는 물상으로서 땅에는 지맥을 통해 생기가 흐르고 있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사람이 이 생기를 어떻게 타게 되느냐에 따라 흥망이 좌우된다는 믿음에서 출발한 풍수지리의 경전인 청오경(한 대 청오자가 저술하였으며 풍수설의 경전 중의 경전으로써 근세조선 지리학 시험과목의 수위에 있었다)금낭경(진대 곽왕업이 저술한 장서로써 가장 권위있는 경전이며 시험과목의 제2위의 서적이다.)에 의하면 은 생기를 타는 것이라고 주장되고 있다.

 

풍수의 기원과 관련해서 중국기원설과 한국 내의 자생풍수설이 주장되고 있다.

 

비바람 등의 자연현상 변화가 인간 생활과 화복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생각은 이미 중국의 전국시대 말기에 시작되었다. 증자가 효경에서 부모를 잃고 슬픈 가운데 부모의 무덤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 그 예이다. 음양오행 사상이나 참위설과 혼합되어 인간의 운명이나 화복에 관한 각종 예언설이 만들어졌으며, 그것의 초기 도교의 성립 때문에 체계화되었다. 풍수지리설은 바로 그러한 사상의 하나로 나타났으며, 이후 중국을 비롯한 동양인의 생활에 영향을 미쳤다. 이설의 중심은 분묘, 사찰, 도관, 주거, 촌락, 도성을 축조하는데 재화를 물리치고 행복을 가져오기 위하여 지상을 생각하는 데 있다. 그것을 감여라고 하는데 천도’ ‘지도를 가리킨다. 감여는 지리라고도 하며 이 감여와 지리를 연구하는 사람을 풍수가, 지리가, 음양가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들은 방위를 청용(), 주작(), 백호(西), 현무()의 네 가지로 나누어 바람이나 물의 양상을 보고 구축물의 위치를 정한다. 산천, 구릉, 당탑, 가옥 등은 이들 네 개의 동물을 상징하나 그 장소나 풍수에 따라 어느 것을 주로 하는가가 다르다.

 

교외에 무덤을 만드는 데 구차히 할 수 없어서 점을 쳐서 자리를 골라 정하는데 광중을 이라 하고 묘역을 라 한다. 반드시 좋은 자리를 구해서 安葬하니 이것은 모두 신종의 예라며 부모의 무덤 자리를 골라서 편안히 모실 것을 가르치고 있다. 그것은 지금과 같이 발복을 통해 자손의 부귀를 목적으로 하고 있지 않으며 망자(死者)에 대한 예의, 편안한 사후세계를 말하는 것이다. 죽음 이후 또 다른 세계를 주장하지 않는 유학에서 무덤은 곧 그가 영원히 잠들어 있을 집과 같은 존재로 인식하고 있으므로 생전에 안락한 주거공간의 영속성으로 무덤을 보고 있다.

 

이와 별도로 풍수의 기원설로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은 불가분의 관계인 것이다. 더욱 풍수 사상이 싹튼 고대 중국에 있어서는 반드시 그러했다. 서북쪽 몽골 사막에 불어오는 한랭한 바람은 생물을 위협하고 사람의 생존에도 매우 위협적인 존재였으며, 또 황하나 양쯔강의 범람은 생존 상의 절실한 문제였다. 그래서 서북풍을 막고 홍수를 막으며 알맞은 물을 얻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으므로 거주할 택지를 선택하고 사후 유택인 음택을 잡는 데 있어 바람과 물로 인연하는 재앙을 면할 수 있는 곳을 찾는 복지 사상이 생긴 것이다. 복지는 지세나 지상을 관찰하는 상지법이 발달하고, 이것을 믿는 나머지 신앙 화해서 오늘날의 풍수 사상을 이룩한 것이다. 옛날 중국에서는 요임금, 순임금을 비롯하여 많은 제왕이 치수에 주력했으며 치수에 성공한 사람을 왕으로 추대한 것은 물이 사람의 생존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가를 증명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인간과 자연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자연환경의 생성과 변천에 대한 법칙을 연구해 이 법칙을 최선으로 이용함으로써 삶의 행복 추구를 목표로 삼는 생활의 지혜를 찾는 생활학문으로 출발했다는 주장이다.

 

산악지대를 많이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풍수 기원을 주장 자생풍수설에서 한국 풍수의 기원을 단군에서부터 내려온 한국의 전통 사상으로 이 땅을 터전으로 삼았던 옛 선인들에 의해 생겨났다는 것이다.

 

<고기(古記)>에는 이렇게 말했다. "옛날에 환인(桓因; 제석 帝釋을 말함)의 서자(庶子) 환웅(桓雄)이란 이가 있었는데 자주 천하를 차지할 뜻을 두어 사람이 사는 세상을 탐내고 있었다. 그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산(三位太伯山)을 내려다보니 인간들을 널리 이롭게 해 줄 만했다. 이에 환인은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환웅(桓雄)에게 주어 인간(人間)의 세계를 다스리게 했다. 환웅(桓雄)은 무리 3,000명을 거느리고 태백산(太伯山) 마루턱(곧 태백산 太白山은 지금의 묘향산 妙香山)에 있는 신단수(神檀樹) 밑에 내려왔다.

 

하늘의 신인 환인이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며 삼위 태백을 살폈다는 부분을 풍수지리로 해석하면 삼산 즉 주산, 좌청룡, 우백호를 말하는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그 때문에 풍수지리와의 연관성으로 살펴볼 수 있다. 단군신화가 기록으로 정착된 것이 고려 중기였던 점을 고려하면, 풍수지리는 이미 그 이전부터 우리 민족의 생활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풍수지리가 생활에 적용되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는 삼국유사 속에 여러 편이 있다. 그 가운데 몇 편을 소개하면 신라 제4대 탈해왕(B.C 19-80)에 관한 기록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신라 탈해왕이 왕이 되기 전 두 종을 데리고 토함산 위에 올라가더니 돌집을 지어 7일 동안을 머무르면서 성안에 살 만한 곳이 있는가 바라보았다. 산봉우리 하나가 마치 초사흘달 모양으로 보이는데 오래 살 만한 곳 같았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땅을 발견하고는 그곳에 주인 몰래 숯을 숨기고 그것이 자신의 조상이 대장장이 시절에 사용하던 유물이라는 주장을 통해 집터를 빼앗고 있다. 탈해는 가야국에서 자신이 이루고자 했던 왕위 계승을 제3대 노예왕이 붕어하자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그가 왕위에 오른 것은 그의 지력이 뛰어나고 신술을 가지고 있었기에 국인들의 존경을 받게 되고 신라 초기의 국정에 따라서 왕위에 오른 것으로 생각하였지만, 그가 취한 방법은 풍수에서 초 사흘달같이 생긴 땅이란 주상 청룡 백호가 혈을 삼면에 에워싸고 있는 명당을 의미하고 있다. 이것 풍수적인 방법을 통한 왕권 쟁취로 볼 수 있다. 풍수가 아니라 쇠를 다루는 앞선 문명의 소유자로 해석되고 있다. 쇠를 다루는 철기문화와의 연관성, 적어도 집단의 문화적 특징을 내세운 다툼이었다. 탈해로 대표되는 이주민과 토착세력 간의 문명충돌양상이었다.

 

이처럼 삼국유사에서도 나타나듯이 우리나라에 풍수지리 사상이 생활에 적용되기 시작한 것은 단군 시대부터이며, 단군왕검이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을 세울 때부터 풍수지리 사상은 한 나라의 터를 잡는 지리학으로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박시익은 지구상의 여러 곳에 분포된 고대인들은 그들이 점유한 지역적 조건에 떠나서 생활방법이나 사상에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한반도를 생활의 중심지로 삼았던 한국 고대인들에 있어서 풍수지리설의 기본개념이 성립할 수 있는 배경으로 분석되는 자연환경과 생활양식의 조건들을 통해 한국 기원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첫째 지리적으로 산악지이다. 풍수지리설은 인간 생활환경의 지리적 조건으로써 산, 수 및 방위에 대한 기()적인 이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산의 형태에 대한 분석은 풍수지리설의 중심이다. 한반도는 지리적으로 전체의 약 70%가 산악지대이다. 대부분의 취락지는 그 규모의 대소를 막론하고 모두 산으로 둘러싸였다. 이처럼 산이 많은 한반도는 산이나 산으로 인한 바람의 영향을 다른 지역보다 민감하게 감지할 수 있어서 풍수지리설이 발생하기에 합당한 지역적 조건을 갖춘 셈이다. 그리고 산에 대한 이론이 오래도록 전승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둘째 종교적으로 산신이 숭배되었다. 고대인들에게 태양이나 산 등의 자연숭배사상은 공통적인 신앙의 하나이다. 한반도의 고대인들도 자연을 숭배한 것은 같다고 보겠다. 한반도에 오래전부터 유행한 산에 대한 종교적인 사상은 풍수지리설의 발생 배경으로서 충분한 임무를 수행하였을 것으로 해석된다. 산신숭배의 사상과 풍수지리설의 사상 가운에 어느 것이 시기적으로 우선하였을지는 구별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들 두 사상 모두 산의 능력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출발한 것은 같다. 산에 대한 종교적 믿음은 바로 산의 물질적인 이해에 대한 실질적인 평가의 방법으로 풍수지리설로 정리될 수 있을 것으로 해석된다.

 

셋째, 분묘제도로서의 지석묘, 지석묘는 고대인의 분묘제도로서 풍수지리설의 음택에 해당하며, 한반도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지석묘의 밀집 지역인 만큼 고대의 문화적 특성을 갖추고 있다. 지석묘의 위치에서 보이는 지맥의 관념은 풍수지리설의 음택 이론 가운데 가장 핵심적 부분인 생룡에 해당하는 만큼, 지석묘 시대에 이미 풍수지리설의 중요 부분이 인식되어 적용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B.C 2~3세기를 전후하여 세워진 지석묘는 그 당시에도 이미 풍수지리설의 관념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넷째, 진산의 관념, 우리나라의 취락지는 대부분이 진산을 의지하여 발달하여 왔다. 마을을 진호 한다는 진산의 관념은 좋은 산에서 좋은 인물이 출생하게 된다는 풍수지리설의 이론과 기본 뜻을 함께한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로 분석할 때 풍수지리설의 생기론과 진산의 관념은 서로 차이가 있다. 진산은 산의 정신적·종교적 의미에 그 비중을 두어서, 이들의 기본적 관념이 구분된다. 현재까지 내려오는 풍수지리설의 용어 대부분이 중국 문헌으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것을 고려할 때에, 진산이라는 용어는 한국에서 자체적으로 발생한 풍수지리적 개념으로 확인된다.

 

다섯째, 삼신오제사상과 음양오행설의 관계, 풍수지리설은 음양오행 사상에 의하여 그 이론적 체계를 이룩하게 되었다. 그러나 중국에서 발생한 음양오행설은 그 이론의 발생 배경에 삼신오제의 사상이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한반도는 오래전부터 신앙적으로 유포된 삼신오제의 사상으로 자체적인 풍수지리의 개념이 성립될 수 있었다.

 

풍수지리설의 발생 배경으로 한반도는 지형적인 측면에서 산이 많은 까닭으로 산악과 산신에 대한 사상이 발달했다. 한국에서 풍수지리 사상은 산악지의 지리적 환경과 산악숭배 사상, 지모 사상, 영혼 불멸 사상 및 삼신오제사상 등에 의하여 자연적인 발생을 이루었다. 음양오행설은 그 사상의 발생 배경에 삼신오제사상을 두고 있으며, 삼신오제사상은 풍수지리설이 발생하게 된 모체적 사상이다. 한국의 고대로부터 내려온 풍수 사상은 신라 말기에 활발해진 중국과의 문화교류로 더욱 발전하게 되었다.

 

풍수의 목적-인생과 국가 등의 운명을 적극적으로 바꾸려는 터 잡기 학문

 

풍수지리는 생기 있는 땅()을 찾아 묫자리를 잡거나 건물을 건축하며, 촌락 또는 도시를 자리 잡게 함으로써 각각 후손 부귀, 건물 거주자의 인생번영, 도촌의 성장, 발전을 도모하려는 운명개척학문이다. 즉 풍수지리는 주어진 운명에 굴하지 않고 생기라는 자연의 힘을 이용하여 인생과 국가 등의 운명을 적극적으로 바꾸려는 터 잡기 학문으로 요약할 수 있다.

 

풍수지리학은 땅이라는 자연으로부터 생기를 받아 인간 생활의 행복과 번영을 도모하려는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생활철학이다. 또한, 자연을 적절히 이용함으로써 적극적으로 운명을 바꾸려는 운명개척 학문이라 하였다. 이러한 풍수지리의 사상과 정신은 우리 민족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해오고 있고 현재에도 음택, 양택 그리고 양기풍수 분야 등 적용대상에 따라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융건릉이 자리 잡은 화산은 조선 시대 수원부가 위치하였던 곳으로서 동구릉의 원릉과 여주 영릉과 더불어 조선 3대 명당 가운데 하나로 알려진 곳이다. 융건릉의 조성을 둘러싸고 임금과 신하, 기득권 세력과 신진세력, 정치 노선을 달리하는 각 당파 등 이해자집단간에 운명개척을 위하여 풍수지리가 어떻게 이용되었는지 역사적 사료를 통하여 밝혀내고, 아울러 융릉과 건릉을 형기풍수와 이기풍수 이론을 적용하는 방법으로 길흉을 분석하고 후손 발복과 관계를 조사하는 데 있다.

 

동기감응의 범위는 대략 30년 안팎에서 4대조 120년까지로 본다. 조선 시대에 4대를 종사한 이유는 조상의 유골이 4대에 걸쳐 후손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풍수적 이론과 관련이 있다.

 

산천 지세 형국을 보아 택지와 묘지의 길흉을 점치고 장래의 길흉 성쇠를 조절해 보려는 것이 지리 풍수의 중심 사상이다. 신라 말기부터 유행하게 된 풍수설이 고려에 와서는 태조 이후 중요한 종교적 사상으로 발전했다. 도선(827-898)에 의해 크게 선양되기 시작한 풍수설은 음양, 지리, 참위의 혼합사상이요, 그것은 도교의 산천제신에 대한 신앙과 불교의 제신신앙과 무교적 산천신앙을 혼합한 종교적 사상이었다.

장정태 삼국유사문화원장(철학박사. 한국불교사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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