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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세벽의 간증
물성(物性)으론 하나님 만날 수 없다
기사입력: 2014/12/25 [09:48]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이화서 기자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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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심장에 스텐트(stent)를 두 개 삽입하고 새 생명을 얻은 지 몇 개월 후 어머니가 재생불량성 빈혈로 2개월 안에 돌아가실 거라는 진단이 내려졌습니다. 저는 심장이 막혀 죽게 되었을 때도 살고 싶다는 열망도, 두려움도 없었습니다. 저는 허무주의자였고, 무신론자였습니다. 저는 우울증과 자살 충동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수술 직적 간호사가 내미는 서류(수술 중에 죽을 수도 있으며, 만약 죽더라도 병원 측은 책임이 없다)에 사인하면서도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습니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시급한 수술이어서 미룰 수가 없었습니다.
 
심전도를 체크하고 혈액을 검사했을 땐 모든 것이 정상이었는데, 수술실에서 조영술로 제 심장을 살펴보니 예상과 달리 관상동맥이 막혀 있었습니다. 의사는 제가 어렸을 때 열병 같은 것을 심하게 앓아서 관상동맥에 상처가 생겼는데, 그곳에 오랜 동안 피 떡이 쌓여 왔을 거라고 했습니다.
 
죽음 앞둔 어머니의 당부
 
어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저는 어렸을 때부터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했습니다. 살기는 틀렸다고 포기했을 때 기적같이 살아난 적도 있다고 한 말도 떠올랐습니다. 제 머리 맡에 앉아서 간곡히 기도하던 어머니의 모습도 생생하게 되살아났습니다. 저는 또 다시 쉰 언저리에서 죽을 만큼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된 것입니다.
의사는 정맥을 따라 가늘고 긴 철사를 밀어 넣어 막힌 부분을 찔러 본 후 너무 오래 진행되어온 피 떡이라 제거하기 어렵다며 다시 한 번 가족을 부르라고 설득했습니다. 만약 뚫지 못하면 수술 중에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죠. 그러나 저는 가족들에게 연락하지 않고 버텼습니다.
 
의사는 한 시간여 씨름한 끝에 피 떡으로 막힌 혈관을 뚫고 스텐트를 삽입한 후 눈시울을 붉히며 제 손을 잡고 감격스러워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살아난 것이 그다지 기쁘지 않았습니다.
 
저는 삼십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물질적 풍요를 누리면서부터 더 이상 기독교인이 아니었습니다. 모태신앙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떠난 뒤로도 처음 10여 년 동안은 기독교인이었습니다. 타락하고 죄에 중독되어 살면서도 저는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십여 년이 지나자 불가지론자로 바뀌었고, 다시 무신론자가 되었습니다. 사실 하나님을 버리고 난 뒤 한동안은 자유롭고 편안했습니다. 하나님 눈치 볼 일도 없고, 죄책감에 시달릴 필요도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자유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그 자리에 우울과 공허가 들어서기 시작한 것입니다. 허무주의가 제 영혼을 갉아먹고 있었습니다. 그때의 제 정신세계를 반영이라도 하듯 쓴 소설《죽음대역배우 모리》는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2개월 밖에 살지 못한다는 진단은 제 영혼을 자극했습니다. 내 죽음 앞에서는 그토록 무덤덤했던 저는 맹렬하게 어머니의 삶에는 집착했습니다.
 
의사는 어머니의 혈소판과 백혈구 수치가 너무 낮고, 또 수혈을 해도 수치가 거의 올라가지 않고 있기 때문에 감염이나 내부출혈로 돌아가실 거라고 했습니다.
 
물질적 풍요로 하나님 떠나
 
저는 어머니의 목숨을 담보로 결단을 내려야했습니다. 수술을 하기 전에 최고 좋은 혈소판 (한 사람에게서 받은 혈소판은 값이 10배 이상 비쌈) 을 쏟아 부었으나 겨우 삼만 정도였습니다. 최소한 오만 정도 되어야 수술할 수 있다는데, 더 이상 올라갈 가능성이 없었기 때문에 모험을 감행했습니다.
 
어머니가 질병과 사투를 벌이고 있을 때 저에게 하신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전에는 하나님께 내 아들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지만, 이제는 내 아들이 좋은 글을 쓰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그 말씀을 들었을 당시 마음에 담아 두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일생 믿음으로 살아오신 어머니, 내 어릴 적 나를 품에 안고 성경말씀으로 양육하던 어머니, 질병으로 죽어가는 내 머리맡에서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눈물로 기도하던 어머니의 소원을 들어드리고 싶어졌습니다.
 
그러나 2개월 안에 책을 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머니가 이 책, 《예수》를 쓰는 동안은 살아 계실 거라는 믿음으로, 또 기어이 이 책을 보여드리겠다는 믿음으로 틈틈이 자료를 모으고 집필을 구상하였습니다.
 
교수가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골수이식을 하자고 했습니다. 외삼촌의 골수를 어머니에게 이식하는 동안 저는 이제 어머니는 살아나시겠구나 하는 기쁨으로 설렜습니다. 어머니는 1년여 동안의 투병생활 끝에 정상적인 혈액을 되찾았고, 나는 어머니에게 드릴 《예수》를 출간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를 집필하는 것은 저에게 큰 축복이었습니다. 돌이켜보니 《예수》를 쓰는 동안 내 심령을 사로잡은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글을 쓸 수 있게 인도하신 분은 성령이었던 것입니다.
 
25년 전 하나님을 떠나 로메슈제의 꿀처럼 달콤한 세상의 것들을 빨아먹어왔습니다. 30대에 이룬 성취는 저에게 풍족한 재물을 주었고, 저는 그 물질적 풍요를 타락으로 탕진했습니다. 인간이 지을 수 있는 죄는 다 지었고, 나쁜 짓은 다했습니다.
저는 광고회사의 카피라이터로, 프리랜서로 일하다가 여관에 틀어박혀 쓴 소설이 한 공모전에서 당선되어 소설가로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글쓰기는 저에게 허무를 가르쳤고, 절망을 안겨주었습니다. 그 와중에 저는 문학상을 받았고, 《죽음대역배우 모리》라는 소설을 써서 작가로서 성공하는 듯 보였습니다.
 
어머니가 통원치료를 받는 동안 저는 《예수》의 집필을 끝내고 출간된 책을 어머니에게 드렸습니다. 어머니는 그 책을 읽으면서 너무 좋아하셨고 기뻐하셨습니다. 인터넷에 감동의 리뷰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뭔가 손해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욕망을 자제하는 일은 손해로만 여겨졌습니다. 살면 얼마나 산다고 죽고 나면 그뿐인데 양심의 가책을 받으며 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면에서는 알 수 없는 그 무엇이 저를 짓눌렀습니다.
 
영성 살아나 유신론자 되다
 
그러나 이미 제 영혼이 거덜 나 있었기 때문에 항상 하나님이 없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저는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술을 마시면서도 어떤 갈증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결판을 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어쨌거나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좀처럼 교회로 갈 수 없었고, 기도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저는 어느 날 새벽 집에서 가까운 한 교회를 찾아가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당신이 계신다면 저에게 어떤 식으로든 응답해 주십시오.’
텅 빈 교회에 앉아서 실컷 울었습니다. 그대로 교회에서 살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면 또 다시 불신앙이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사나흘 후쯤이었습니다. 저는 깊은 기도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네가 19살 때 이미 다 보여줬는데, 무엇을 또 보여 달라고 우느냐. 내가 너에게 보여줬지만 너는 어떻게 살았느냐?”
 
사실 이런 순간을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에는 좀 어색합니다. 정확한 표현이 없기 때문이죠. 아무튼 저는 너무 놀랐습니다.
 
19살 때 친구의 권유로 집회에 참석하고 사흘 후 목사의 이마에 방울방울 맺히던 피가 목사의 얼굴을 뒤덮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무슨 뜻인지 이해되진 않았으나 뭔가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대학입학 선물로 받은 시계와 주머니에 있던 돈 전부를 바쳤습니다. 바로 그날 저는 성령의 체험을 하였습니다. 뜨거워졌고, 몸이 다 익는 것 같은 체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고향에 계신 어머니에게 전화로 이 말씀을 드렸더니, 거의 같은 시간에 어머니도 부흥집회에 참석하셔서 큰아들인 저를 하나님께 바쳤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제 기도 중에 그 사실을 지적하셨습니다.
 
그 후 매일 새벽 제단을 쌓으며 열심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점차 허무주의와 물성이 물러나고 영성이 되살아나 다시 유신론자가 되었습니다. 삼십 년 가까이 하나님을 부인하고 살아온 저를 용서하시고, 다시 받아주시고, 새 옷을 입혀주시고, 살찐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베푸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성의 시각으로는 우주를 다 뒤져도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영성이 닫힌 사람에게 하나님은 없습니다. 그저 희망 없는 인간이 있을 뿐입니다.(정리: 이화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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