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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 불교 최고 지도자, 달라이 라마도 화를 내더라!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3/11/06 [08:09]
달라이 라마 26년 수행자 청전 스님 방한

티벳 불교 최고 지도자, 달라이 라마도 화를 내더라!

달라이 라마 26년 수행자 청전 스님 방한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3/11/06 [08:09]


 
“달라이 라마도 비공식 석상에서는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화를 낼 때가 있다. 이 때문에 화(火)를 통제하는 사람이 진정한 성인(聖人)이라는 말도 하고 있다”.
 
티벳 불교 종파를 대표하는 종교 및 정치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를 26년째 최측근에서 보좌하고 있는 청전 스님이 한국을 찾았다.
 
티벳 망명 정부 다람살라의 삶의 풍경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을 담은 산문집 <당신을 만난 건 축복입니다>의 출간 기념을 위해 내한한 것이다.
 
청전 스님은 가톨릭을 거쳐 한국 불교, 티벳 불교로 이어진 ‘만행 萬行: 깨닫기 위해 세상 곳곳을 찾아다님-을 수행한 것으로도 유명세를 얻고 있는 종교인이다.
 
그는 내한 인터뷰를 통해 ‘바다와 같은 지혜를 가진 스승’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 달라이 라마 14세(환속명 텐진 갸초)도 때로는 감정을 통제하지 못해 불같은 분노감을 드러낼 때도 있다고 밝혀 종교 뉴스를 만들어 내고 있다.
 
 
▲ 최근 출판된 <당신을 만난 건 축복입니다>를 통해 히말라야 설산 자락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의 맑고 밝은 행복의 비밀을 담아내 국내 독자들의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 매일종교신문


 
청전 스님은 송광사 구산(九山, 1910~83) 스님으로 부터 “전생에 고행승이었다”는 귀뜸을 듣고 출가한 뒤 다람살라행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달라이 라마는 자비의 보살을 뜻하는 관세음보살(티베트어: Chenrezig)의 화신으로 추앙 받는 인물.
 
그로부터 “때때로 성(性)적인 문제로 괴로움을 느낀 적이 있다”는 진솔한 고민의 듣고 인간적으로 매료돼 평생 스승으로 모시게 됐다고 밝혀 유명세(?)를 얻기도 했다.
 
청전 스님은 “세계 각국에서 포교 활동을 하고 있는 종교가 내면적으로는 폭력과 위선을 동시에 갖고 있었다”라고 꼬집으면서 “외형적으로 고상한 척하지만 철저하게 잇속을 차리려는 일부 종교인들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라고 직격탄을 날려 주목을 받아내고 있다.
 
 
그가 산문집에서도 밝혔듯이 다람살라의 일상은 거의 원시 시대의 일상을 보는 듯 하다.
 
하루 14회 정전이 반복되지만 청전 스님은 그같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 ‘자연 본연의 모습을 접할 수 있어서 오히려 행복하다’고 말하고 있다.
 
새 옷보다 헌옷이 더 자유로우며 주민들은 모두가 자기 편한 대로 살고 있어 물질 문명 속에서는 체험할 수 없는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느끼고 있다‘고 덧붙인다.
 
스님은 ‘타인을 의식하는 삶은 피곤하다면서 폼 잡지 말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삶을 살 것을 권하고 있다.
 
 
▲ 청전 스님은 티벳 망명 정부 다람살라의 삶의 풍경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을 담은 산문집 <당신을 만난 건 축복입니다>의 출간 기념을 위해 내한했다     © 매일종교신문

 
스님은 ‘종교의 본질은 나보다 한단계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것이며 남을 배려하는 것’이라고 조언하고 있다.
 
달라이 라마도 화를 낼 때가 있다는 것을 폭로(?)하면서 ‘한국 사람들도 유독 화를 잘내는 민족성을 갖고 있는데 화를 참는 것이 진정한 성자(聖者)이다’라는 실생활 법어를 들려주고 있다.
 
청전은 1972년 유신 선포를 계기로 대학을 중퇴하고 성직자의 길을 선택한다.
 
신학교에서 가톨릭 신부 수업을 받다 1977년에 송광사에서 두 번째 출가를 한다.
 
참선 수행을 하다 떠오른 의문들을 풀기 위해 1987년에 동남아의 불교 국가들을 둘러보는 순례길에 나선다.
 
마더 데레사 등 여러 성자들과 더불어 평생의 스승으로 모시게 될 달라이 라마와 운명적 만남을 갖게 된다.
 
1988년부터 티베트 망명 정부가 있는 인도의 다람살라에서 수행 생활을 하고 있다.
 
찻길도 없는 해발 4,500 미터 히말라야 산속 곰빠(불교 사원)에서 생활하는 라다크의 스님들과 주민들을 위해 한국에서 공수해간 중고 시계 부터 의약품, 보청기, 손톱깎이까지 져 나르는 일도 수행의 하나라고 말하고 있다.
 
최근 출판된 <당신을 만난 건 축복입니다>를 통해 히말라야 설산 자락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의 맑고 밝은 행복의 비밀을 담아내 국내 독자들의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책자를 접한 독자들은 ‘끝이 없는 욕망을 좇느라 우리가 가장 먼저 내다 버렸을지 모를 착한 삶의 의미를 깨달게 하면서 인생에서 가장 고귀한 행복의 열매가 무엇인가를 눈 맑은 영혼의 사람들의 침묵의 언어로 들려 주고 있다’는 호평을 보내고 있다.
 
독자들의 감성을 울려준 책자 속 문장을 인용,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고지를 넘는 것과 같은 힘든 과정이 없는 인생이 어디에 있을 것인가. 나를 속이고 기만하는 것조차 내가 험고를 넘어설 수 있는 에너지가 될 때가 있다. 그래서 고통이 곧 행복의 씨앗이 된다. 그때도 찻집 아저씨의 그 말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이십 킬로미터가 넘는 길을 한달음에 갈 수 있었을 것인가. 지금도 힘든 여정을 만나면 찻집 아저씨의 말이 저절로 주문처럼 되새겨진다. “니째 도 킬로!”-39p
 
 
"푸줏간 삼형제처럼 사회 밑바닥을 이루는 순박한 민중의 삶과 접할 때마다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진실된 삶의 자리에 뿌리박은 그들의 모습은 가슴속 깊이 잠재해 있던 나의 삶을 바로 비추고 들여다보게 한다. 이처럼 그분들을 통해 나를 끊임없이 돌아보게 되니, 나의 종교는 민중일 수밖에 없다. 진실하며 위선이 없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민초들의 삶이야말로 세상의 스승인 것이다"-58p
 
 
"일행 중 한 사람이 내가 길 떠날 때 늘 챙겨가는 손톱깎이로 시종 수줍게 웃는 노인장의 손톱을 곱게 깎아드렸다. 그리고 손톱깎이를 선물로 드린다고 하니 아이처럼 좋아하신다. 이럴 때 내 인생길은 행복으로 충만해진다. 하찮은 손톱깎이 하나로 이런 기쁨을 맛보다니. 노인이 함박웃음을 지을 때마다 딱 하나 남은 아랫니 치아가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낸다. 이런 초라한 삶임에도 그날그날 매상엔 관심이 없는 듯 편한 모습이다"-77p
 
“티베트 스님이나 라다크에서 노스님들이 오시면 소매를 걷어붙이고 직접 양고기 요리를 해서 대접한다. 우리의 고추장과 된장으로 양념을 하면 양고기 특유의 역겨운 냄새가 없어져 먹기가 한결 낫다. 한번은 라다크에서 노스님들이 찾아오셔서 함께 양고기 요리를 만들어 먹었는데 얼마나 맛있었던지, 내 방의 불단에 모셔둔 부처님까지 내려와 “너희만 묵냐. 나랑 함께 먹자”고 했다는 우스갯소리를 한국의 여러 지인들에게 써 보내서 한바탕 웃었던 적도 있다. 결국 내가 신부님께 전수해준 법이라는 게 양고기 조리법이었다. 스님이 되어가지고, 그것도 고기 요리법이라니! 게다가 전수해준 분이 신부님이라니!“-142p
 
 
"반가운 스님들, 일 년에 한 번 찾아가는 나에겐 이분들이 불보살의 화현으로 다가온다. 내가 인도를 떠나서 살아갈 수 있을까? 라다크를 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인도살이 이십육 년에 라다크는 진즉 내 영혼의 땅이 되어버렸다. 한 달여 라다크 일주를 마치고 다람살라에 돌아가면 늘 파김치가 된다. 그때마다 더는 못 갈 곳이라 해놓고선 몇 달이 지나면 슬슬 그쪽 곰빠와 스님들이 내 마음속에 살아 움직인다. 그러면 다시 온갖 약품을 챙기며 내년 여름을 기다리는 것이다"-170p
 
"어느 날이나 저녁엔 쉽게 잠에 빠졌는데 이 밤은 생각이 깊어진다. 내일 들어가는 링세 곰빠의 체링 도르제 스님 때문이다. 작년 여름이니 꼭 일 년 전에 신장 결석이 탈이 되어 끝내 이승을 마쳤다. 칠십 전이라 더욱 애잔한 마음이다. 이 길을 다섯 번이나 함께 걸었었다. 만약 작년에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마땅히 그 스님이 말을 끌고 나왔을 것이다. 2007년에는 함께 한국 나들이도 했는데, 내가 이 길을 오갈 때 함께 한 인연 덕분이다. 늘 언젠가는 함께 티베트에 가자고 약속을 했었는데……. “아, 인생은 무상하지요. 체링 스님, 스님은 지금 어디에서, 또 어떤 존재자로 머무시는가요?”-175p
 
"나야 먹는 거라면 어떤 험한 먹을거리라도 문제될 게 없다. 그런데 다른 대원들이 문제다. 일부러 지 교수한테 “저 밥 먹을 수 있겠소” 물으니, 선뜻 손으로 집어먹으며 “스님, 이건 완전 기내식인데요!” 한다. 아무리 궁한 처지라도 말이 먹을 밥을 기내식이라고 하다니. 결국은 모든 사람이 이 밥을 데워 함께 먹기로 했다. 챙겨온 밑반찬으로 장아찌가 조금 남아 있어 가능할 듯했다. 말 세 마리에게 먹일 아침 끼니를 우리가 축내는 꼴이 된 것이다"-179p
 
"무엇보다도 최고의 관심거리는 손목시계다. 한국에서 쓰지 않는 헌 시계를 모아 새 약을 갈아 끼워 이런 외딴 절의 스님들께 드린다. 해마다 이삼백 개의 헌 시계를 날라 쓴다. 꼭 나이순으로 당신들 마음에 드는 시계를 고르시도록 하기에 누구나 좋아한다. 한국 곳곳의 주지 스님들의 배려로 인도 땅까지 날아온 이 헌 시계는 받아쓰는 이들에게는 대단한 선물이자 재산이기도 하다. 더러 어떤 신도 분들은 이런 사실을 알고 아라비아 숫자가 크게 박혀 있는 중국제 손목시계를 전해주시기도 한다. 이런 시계만큼은 가장 연로하신 스님들께 공양 올린다. 시계를 차보고는 그리도 좋아하시는 모습이 꼭 어린아이 같다“-185-18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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