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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란의 종교가 산책
이치란의 종교가 산책●인도의 종교와 불교 이야기-33
불교의 전파: 북방대승불교 중앙아시아 경유, 중국 한국 일본에 확장
기사입력: 2020/08/26 [15:18]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보검 이치란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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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의 전파: 북방으로는 대승불교가 남방으로는 상좌부 불교가 전파, 확장됐다.    


불교의 전파
: 북방대승불교 중앙아시아 경유,
중국 한국 일본에 확장 

    

불교는 기원전 5세기경 샤카무니 붇다에 의해서 창시되었고, 아소카 대왕 때 불교가 인도 영토는 물론 북쪽과 남쪽인 실론 섬에 전파됐다. 이 무렵 미얀마 타이 반도에도 전해 졌다고는 하지만, 전설에 가깝다. 동남아시아에는 중세시대인 1112세기에 실론에서 전파됐다.

 

북방으로는 기원 1세기 또는 2세기에 실크로드를 통해 한()나라 때 중국에 들어왔다. 중국에서 불교 승려들이 처음으로 문서화된 불경번역 작업은 기원 2세기 경, 쿠샨 제국의 지배하에 있던 타림분지에 있는 서역을 거쳐서다. 북방으로 전해진 불교가 중국 땅까지 이르는 데에는 남방보다도 400년 이상 차이가 난다.

▲ 인도불교가 중국에 전파되기 전에 확장된 타림분지인 서역.    

      

남방으로 전해진 불교 전파는 차회에서 소개하기로 하고 인도에서 중앙아시아를 경유하여 서역과 중국에 전해진 경로를 간략하게 살펴보자.

 

인도 불교가 중국에 전파되는 계기가 된 것은 쿠샨제국의 카니슈카 1세 덕분이었다. 카니슈카 대왕(재위: 기원 후 127150)은 쿠샨 왕조의 제3대 왕이다. 쿠샨제국은 원래 중국 기련산과 둔황지역에 있던 월지국이었다. 이들은 몇 세기 전에 흉노한테 밀려서 지금의 아프가니스탄까지 이동했던 민족이다. 하지만 이동하면서 같은 월지 족을 타림분지의 몇 군데에 남겨 놓고 갔으며, 접촉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고, 몇 세기가 지나면서는 그 영향력을 타림분지에까지 미치게 된 것이다.

▲ 불교도 왕으로 일컬어지는 카니슈카 기념 금화.  

  

기원전 3세기 무렵 인도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 대왕이 불교도 왕으로서 부처님 당시로부터 별로 변하지 않은 인도 원형불교를 스리랑카와 인도 서북부 등지에 전파했다면, 기원후 2세기경, 쿠샨제국의 카니슈카 대왕은 대승불교를 중앙아시아와 타림분지에 불교를 전파하는 후원자 역할을 했다. 카니슈카의 가장 큰 공적은 카슈미르에서 제4차 불전 결집을 후원한 일이다.

▲ 신심 깊은 카니슈카 대왕이 승려들의 영접을 받으면서 한 사원에 이르러 부처님께 경배하는 행렬을 묘사한 그림.    

 

사실, 카니슈카 대왕은 불교라는 종교만이 아닌 힌두교, 조로아스터교에 대해서도 관용적이었다. 그렇지만 불교를 후원하는데 각별했다. 4차 불전 결집이 없었더라면 불교가 힌두쿠시산맥과 파미르고원을 넘었을까 의심이 들 정도로 그의 공적은 크다고 할 것이다. 불교가 타림분지의 서역을 통과할 무렵에는 이미 인도 서북부는 불교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고, 그레코불교라고 하여 그리스의 헬레니즘과도 융합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리스 왕이 불교에 귀의하여 불교를 보호하고 승려들을 우대한 분위기가 중앙아시아에 보편화되었다. 따라서 파르티아 출신들이 대거 불교 승려가 되어서 불교를 서역과 중국에 와서 역경을 하게 되고, 나중에 쿠샨제국 출신 승려들 또한 서역과 중국에서 활약하게 된다.

 

파르티아는 이란계였다. 조로아스터교가 주류 종교로 페르시아에 오랫동안 존속했으며, 인도불교는 그리스의 헬레니즘과 융합하고 조로아스터교의 교리와도 절충하면서 대승불교가 형성되어 서역과 중국 한 나라로 전파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남방으로 전해진 순수한 인도의 원형불교와는 다르게 중국으로 전해진 대승불교는 남방불교와는 그 성격이 사뭇 다르게 전개되었다.

▲ 동아시아(중국) 스님을 가르치는 파란 눈의 중앙아시아(이란계) 스님. 투루판 화염산 근방의 절벽 천불동 동굴에 9세기경에 그린 벽화(프레스코화법).  

 

현재 동아시아 불교 전통이라고 하면 중국 한국 일본 베트남 불교를 말하는데, 북부 인도와 중앙아시아 그리고 타림분지의 서역에서 한나라에 전해졌던 초기 대승불교는 지금의 동아시아 불교 전통과도 다른 불교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의 동아시아 불교는 당송 시대의 중국불교라고 해야 타당하겠다.

▲ 중국에서 지 루지아첸(지루가참)으로 알려져 있는 쿠샨제국 출신의 로칵세마스님이 불교경전을 한문으로 옮기는데 심혈을 경주하고 있다.  

 

중국 한 나라에 전해진 대승불교는 교리 상으로도 헬레니즘과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 교의(敎義)가 섞였지만 예술 면에서도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때문에 중국 한나라에 전해졌던 대승불교는 지금의 동아시아불교 전통과도 조금은 다른 모습이지만, 그렇다고 인도원형불교와도 동질의 불교라기보다는 다소 차이가 나는 불교였다. 지금의 동아시아 불교인 중국 한국 일본 베트남 불교는 중국 당송 시대의 불교전통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한국불교는 중국 송나라 선종불교의 영향을 너무나 강하게 받아서인지 인도의 원형불교나 초기 대승불교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다. 지금 눈으로 목격하는 일이지만, 남방으로 전해진 스리랑카 태국 미얀마의 상좌부 불교와 한국 불교를 비교해 보자. 또 인도 후기 대승불교의 모습인 티베트 불교와의 모습을 비교해 보자. 너무나 다른 모습인 것이다.

 

중국 당송시대의 불교 전통이 동아시아 불교의 핵심을 이룬다고 봐야할 것이다. 물론 사상적으로는 인도에서 형성된 중관 유식사상이 뼈대를 이루고 있지만 정토사상이나 화엄철학은 그리스 페르시아적인 사상적 영향과 절충이 있었다고 보며, 이 부분이 한국불교가 재정립해야할 과제라고 본다.

▲ 낙양 교외 12km 지점에 위치한 후한 명제(明帝) 때의 사찰. 전승 및 문헌으로 확인되는 중국 최고(最古)의 절. 후한 명제 11년(68년), 가섭마등(迦葉摩騰)과 축법란(竺法蘭) 두 승려가 대월지(쿠샨제국: 아프가니스탄) 경내에서 만난 왕준, 채음(蔡愔) 등 후한의 사신을 따라 흰 말에 《사십이장경》(四十二章経)과 불상을 싣고 수도 낙양에 왔다는 전설에 따라 백마사(白馬寺)라는 이름을 붙였다.  

 

불교 경전을 중국어로 번역 한 최초의 문서화 된 번역은 기원후 148년에 파르티아 왕자로서 승려가 된 안시가오 (安世高)의 중국 도착과 함께 발생하게 된다. 그는 뤄양(낙양)에 불교 사원을 세우고 불교 경전을 중국어로 번역하는 일을 조직하여 닻을 올린 것이다. 안세고는 기본 교리, 명상 및 아비다르마(구사론)에 대한 불교 텍스트를 번역했다.

 

사실 대승불교의 전적이 최초로 한역된 것은 인도 북부 간다라 국에서 온 쿠샨제국 출신의 로칵세마(지루가참)에 의해서다. 로칵세마(활동전성기164186)8천송반야경((Aṣṭasāhasrikā Prajñāpāramitā Sūtra八千頌般若経))과 같은 중요한 대승경전을 한역했다.

 

중국으로 전해진 대승불교는 한동안 제 모습을 갖고 있다가 당송 시대를 거치면서 종파불교로 분화하면서 정토와 선종사상이 두각을 나타내게 되었다. 특히 선종불교 전통은 한국에 크게 영향을 미쳐서 현재의 한국불교는 선종불교 전통을 그대로 계승하여 남방 상좌부와는 전연 다른 모습이고, 초기 대승불교나 후기 대승불교의 모습을 갖고 있는 티베트 불교와도 아주 다른 모습으로 변형됐다. 그러므로 서구 불교학자들은 이런 한국불교의 모습을 보고 동아시아불교라고 명명하여 중국 한국 일본을 한 묶음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3국 불교도 상당한 차이가 나는 것이 사실이다. 중국은 원각경, 일본은 법화경, 한국은 금강경을 선호하고 있다.

보검<세계불교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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