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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문화와 불교-⑫ 그리스-불교 예술

보검 이치란 스님 | 기사입력 2021/03/15 [07:42]
그리스 미술 조각, 불상 조성에 영향

서양문화와 불교-⑫ 그리스-불교 예술

그리스 미술 조각, 불상 조성에 영향

보검 이치란 스님 | 입력 : 2021/03/15 [07:42]
▲ 간다라 양식의 불상(기원후1〜2세기).    

 

그리스 미술 조각, 불상 조성에 영향 

 

그리스-불교 예술은 박트리아인, 인도인들과 그리스인들 간의 교류로 시작됐다.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와 인도 아 대륙 북부에서 군사 작전을 벌일 때, 불교는 대부분 인도 북동부에만 국한하였으나 그리스 식민지가 형성된 북서부 인도에서는 불교가 아직 생소했다. 다만 소수의 불교 승려들이 다른 전통의 고행 수행자들과 함께 섞여 있을 뿐이었다. 마우리아 왕조의 창시자인 찬드라굽타만 해도 자이나교 신자였고, 스스로도 말년에는 자이나교 승려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찬드라굽타의 손자인 아소카 대왕에 이르면 인도 아 대륙의 종교적 상황이 급변했다. 불교는 국교로 지위가 격상되었고, 각 지역에 불교 전도승을 파견하는 선교가 이루어졌다 

 

불교는 남아시아는 물론 중앙아시아 전역에 널리 퍼졌다. 아소카 칙령에도 언급된 바와 같이 그리스인까지도 불교로 개종시켰다. 이 과정에서 그리스 예술과 불교가 만나게 되었고, 조각으로 붓다는 구체화되어 불상(佛像)으로 나타났다.

▲ 라오콘 군상(헬레니즘 후기). 라오콘 군상은 트로이 제관(祭官) 라오콘과 그의 두 아들이 포세이돈의 저주를 받는 장면을 묘사한 고대 그리스 조각상. 바티칸 미술관 소장.    

 

그리스 미술은 광의로 해석하면 크레타와 미케네의 미술을 포함한다. 보통 그리스 미술이라고 하면, 아르카이크에서 헬레니즘 시기에 이르는 미술을 말한다. ‘아르카이크, 그리스어의 '아르크' '아르카이오스', '처음' '오랜'을 의미하는 말에서 유래하고, 고대 그리스인이 고전기 이전의 미술을 그렇게 부른 연유에 의한다. 오늘날에는 아르카이크 시대는 기원전 7세기 중엽 이후 그리스 각지에서 대리석으로 등신상 또는 거상이 제작되기 시작한 무렵부터, 기원전 5세기 초 무렵까지를 가리킨다. 그리스는 이 무렵 이집트나 동방과의 접촉으로 대리석으로 된 모뉴먼트(기념건조물)한 조각을 제작하는 일을 배운 것이다.

▲ 그리스 고대 아테네의 조각가 페이디아스(기원전 480년경〜기원전 430년)가 파르테논 신전 안의 프리즈(방이나 건물의 윗부분에 그림이나 조각으로 띠 모양의 장식을 한 것)를 보여 주면서 설명하고 있는 그림.    

 

그리스 조각도 다른 원시 미개의 민족처럼, 제물 숭배의 시대를 거쳐서 점차로 조각 본래부터의 모양을 갖추어 온 것으로서 최초의 조각상은 나무를 잘라서 소박한 조형(造形)을 시도하여 신상으로서 신전이나 성지에 보존되어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 양식은 목조 신상에서 석상으로 바뀌고 후에 대형 조각으로 발전해 갔다.

 

조각은 초기 단계에는 종교적 목적으로 제작되었다고는 하지만, 비종교적인 상도 제작되었다. 페르시아와의 전쟁의 승리로 지중해 세계의 패권을 장악한 아테네에서는 5세기 후반부터 이상미를 추구하는 고전기에 돌입하였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 원정은 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가 융합된 헬레니즘 시대를 열었으며, 이런 특성은 로마에까지 계승되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재위: 기원전 336기원전 323)의 동방 원정에 의한 그리스 문화가 오리엔트 문화와의 접촉으로 동방적 요소와 융합하고, 뚜렷한 변화를 가져오게 한 시대가 전개되었다. 정치적으로 도시국가(폴리스) 체제는 붕괴하고, 강대한 지배권을 가진 군주제로 전환, 종교적으로는 올림포스의 신들로부터 개인적인 쾌락의 추구로 옮겨졌다. 이러한 시대사조를 기본으로 해서 흥기한 헬레니즘시대의 미술이 등장했다. 새로운 미술의 중심은 본토를 떠나 알렉산드리아·안티오키아·소아시아의 페르가몬 등으로 옮겨졌다. 각종의 다양한 민족이나 문화와의 접촉과 현실 생활에 대한 새로운 관심은 그 소재를 무한정으로 넓혀, 세속적인 서민의 일상생활의 다양한 모습에까지 확장됐다.

 

한편, 슝가(Shunga) 제국에 의해 마우리아(Maurya) 제국이 전복 된 후, 불교는 점차 인도 전역에서 쇠퇴했다. 그렇지만 많은 그리스 승려들은 계속해서 불교를 실천하고 그레코-불교 예술을 발전시켰다. 이것은 헬레니즘 그리스-박트리아 왕국 (기원전 250130 )과 인도-그리스 왕국 (기원전 18010)의 통치 기간에 분명했다. 인도 그리스 시대와 나중에 쿠샨 제국 아래서 그리스 불교 예술은 간다라와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번성하여 타림 분지의 예술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다시 인도로 스며들었다.

 

야바나(그리스) 왕 메난드로스 1세는 소테르 (구세주)라는 칭호를 받았는데, 아마도 이것은 박해를 받고 있는 불교도들을 돕는 데에 따른 감사 호칭으로 추정될 정도이다.

 

밀린다 팡하(Milinda Panha(밀린다 왕문경)에 따르면 메난드로스는 독실한 불교도였으며 아라한 (arhat)이라는 칭호를 얻었으며 불교 방식에 따라 스투파(stupa )에 묻혔다. 메난드로스(메난더) 왕의 죽음 이후, 인도-그리스 왕국은 곧 붕괴되었고 인도-스키타이(Indo-Scythians)가 그들의 영역을 정복했다. 인도-스키타이인들은 쿠샨제국에 의해 차례로 정복되었다. 쿠샨제국 황제 카니슈카는 독실한 불교도였으며 불교전파와 불교예술 진흥에 힘썼다. 그의 가장 큰 불교에 대한 공적은 실크로드 전역에 대승 불교와 불교 미술을 전파한 일이다.

▲ 아소카 대왕에 의하여 기원전 3세기에 세워진 산치대탑. 안에는 부처님 사리가 봉안되어 있다.  

 

불교 예술은 아소카(Ashoka) 대왕의 통치 기간 동안 마우리아 제국 아래에서 처음으로 분명 해지고 널리 퍼졌다. 마우리아 예술은 초기 불교 예술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것은 아소카의 기둥을 포함한 수도와 마우리아 시대에 건설되고 처음으로 장식된 산치(Sanchi) 스투파와 같은 마우리아제국 전체에서 발견된 예술에서 분명하다. 마우리아 예술을 포함한 초기불교 예술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용되는 종교(불교)와 관련된 다양한 구조와 상징을 묘사했다. 다르마차크라(Dharmachakra법륜), 연꽃 및 보디(Bodhi 보리수) 나무와 같은 상징은 불교를 대표하는 일반적인 도상학(圖像學)이 되었다. 또한 이러한 불교 예술 형식에는 다양한 신화적 존재가 포함되었다. 더욱이 마우리아 예술은 ​​특히 사리탑 전체의 부조에서 발견되는 작품으로 부처님의 탄생, 왕실 행렬, 깨달음 등을 통하여 부처님의 삶을 묘사한다.

 

흥미롭게도 이 조각들은 다른 인간과 다양한 신을 의인화한 형태로 묘사하지만 부처님은 의도적으로 인간의 표현으로 보여 지지 않았다. 대신 부처는 다양한 상징으로 묘사되었다.

 

우리는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바미안 석불을 기억할 것이다. 본래 동불(東佛)과 서불(西佛)로 조성되었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에 의하면 동불은 544595년간인 570년경에 서불은 591644년 사이인 618년경에 완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석불들은 절벽 한 면을 파서 세워진 것이며 그리스 조형미술의 영향을 받은 간다라 양식이다. 신라시대 혜초(慧超,704~787) 스님의 왕오천축국전에서도 바미안 석불을 소개하고 있을 정도다.

 

200138일과 39일 이슬람 국가를 포함한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슬람 원리주의를 내세운 탈레반 정권에 의해 로켓탄으로 파괴되었다. 이후 UNESCO를 포함한 국제 사회의 지원을 받아 복원중이다.

 

혜초 스님은 중국에서 바닷길로 인도에 다다랐고, 사성지 등의 모든 성적(聖蹟)을 순례하고 오천축국(五天竺國 인도)의 각지를 두루 다녔다.

 

인도의 여러 곳을 다닌 뒤 동쪽으로 향했는데, 카슈미르인 계빈국(罽賓國), 아프가니스탄의 범인국(犯引國, 바미안), 토화라국(吐火羅國,발흐)등을 경유하여, 당나라 총령진에 도착, 둔황에 들렀다가 장안(長安)에 도착했다. 그의 인도기행문인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1908년 발견되어 동서교섭사 연구에 귀중한 사료로 평가되고 있다.

▲ 38m 높이의 동쪽 불상.    

 

▲ 38m 높이의 동쪽 불상.     © 매일종교신문

 

이 불상들 가운데 서불은 남성을 상징하는 살살(빛이 우주에 가득 빛난다)불상과 동쪽 불상은 여성을 뜻하는 샤마마(왕대비) 불상을 상징한다. 사암(砂巖)절벽을 파서 세운 간다라 양식의 영향을 받았지만, 인도의 굽타, 사산조 페르시아, 동로마의 비잔틴제국과 토하라국의 예술이 종합된 그야말로 불교예술의 혼합의 극치를 보여주는 명작이다.

 

바미안 석불 주위에는 수많은 동굴 사원이 있었으며 한때 많은 승려들이 거주하면서 수행했던 역사적인 불적지다  

보검<세계불교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 필자 보검스님이 인도에서 힌두 무소유 유랑사두(승려)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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