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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문화와 불교-⑱ 헬레니즘과 대승불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가?

보검 이치란 스님 | 기사입력 2021/04/26 [08:09]
대승불교에 영향 미친 헬레니즘, 2천 년 전 화해융합사상 이미 실현

서양문화와 불교-⑱ 헬레니즘과 대승불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가?

대승불교에 영향 미친 헬레니즘, 2천 년 전 화해융합사상 이미 실현

보검 이치란 스님 | 입력 : 2021/04/26 [08:09]

대승불교에 영향 미친 헬레니즘, 2천 년 전 화해융합사상 이미 실현   

 

대개 서양문화나 서양문명의 원천을 논할 때, 그리스 로마 문명과 헤브라이즘을 기원으로 삼는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서양문명은 보통 고대 이집트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 그리스 로마 시대의 지중해 문명, 근세 이후의 서유럽 문명, 근대 이후의 앵글로 아메리카 문명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서양문화는 한국이나 일본에도 널리 전파되어 있다. 사실, 우리는 동양문화의 영향을 받으면서 살고 있는지 아니면 서양문화의 그늘아래서 살고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서구화된 사회구조 속에서 살고 있다.

 

서구화, 서양화는 산업, 기술, 정치, 경제, 라이프 스타일, , 규범, 풍습, 관습, 전통, 가치관, 인식, 식이요법, , 언어, 알파벳, 종교, 철학 등과 같은 분야에서 사회가 서구 문화를 받아들이거나 채택하는 과정이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식민통치기간동안 일본을 통해서 근대문화 즉 서구문화를 접했다. 해방이후에는 기독교의 확산과 관련하여 서구문화가 급속하게 유입되었다고 본다. 이것은 결국 헤브라이즘의 영향이기도 하다.

 

지난 몇 세기 동안 서구화는 전 세계에 걸쳐 점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일부 사상가들은 서구화가 현대화와 동등하다고 가정할 정도이다. 서구화는 고대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에 로마 제국은 그리스의 영향을 받고 고대 그리스 사회의 원칙과 가치관에 입각, 새로운 문화를 창조했기 때문에 서구화의 첫 번째 과정을 밟게 된다. 로마인들은 유럽의 새로운 토대를 마련하고 그레코-로만 사회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서구 정체성으로 성장할 문화로 부상했다.

 

서구화는 문화변용과 문화적응과도 비교될 수 있다. 문화변용은 문화단체와 그 개인 구성원들의 접촉으로 인해 일어나는 문화적, 심리적 변화의 과정이다. 접촉 후, 문화 패턴의 변화는 하나 혹은 두개의 문화 내에서 명확하다. 서구화와 비서양 문화에 특화된 외국 사회는 서구 이데올로기, 생활 방식, 신체적 외모에 비해 그들 자신의 사회 체계의 변화를 채택하는 경향이 있으며, 다른 수많은 측면과 함께 문화 패턴의 변화는 공동체가 서구 관습과 특성에 적응함에 따라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서구화에는 로마화, 헬레니즘, 프랑스화, 러시아화 및 게르만화를 포함한 역사적 형태가 있는 기독교화, 미국화 및 유럽화가 포함된다.

▲ 그리스의 영웅 신 헤라클레스가 인도 정복자인 그리스-박트리아 왕, 데메트리오스 1세(재위: 기원전200〜180)를 수호하듯이 부처님의 수호자로 대치된 금강수보살(金剛手菩薩바즈라빠니).  

 

▲ 그리스 신화 최강의 영웅 헤라클레스 조각상.

 

서구화 현상은 서구 관습과의 적응과 융합의 정도가 다른 공동체 내에서 다양한 규모로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사회 전반에 걸쳐 어떠한 특정 패턴도 따르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지배, 파괴, 저항, 생존, 적응 또는 변화가 원주민 문화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는 민족 간 접촉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역사를 2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런 서구화의 논리가 그리스-박트리아 왕국이나 인도-그리스 왕국에서 이미 실험된 바 있었다. 그것은 헬레니즘과 인도의 불교사상의 만남이다. 오늘날의 서구화는 매우 일방적인 서구문화의 전파이지만, 2천 년 전의 헬레니즘은 현지 토착문화의 융합에 의한 화해였다고 할 수 있다. 서양문화의 불교와의 접점을 찾아보면, 참으로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헬레니즘의 문화와 불교사상이 충돌하면서 새로운 화해융합으로서의 대승불교 흥기에 영향을 미쳤음을 가정하고 싶다.

 

앞으로 더 많은 천착과 연구와 사색이 필요하겠지만, 필자는 심정적으로 헬레니즘과 대승불교는 상호 작용을 통하여 영향을 미치면서 이른바 오늘날 동아시아 대승불교 발전에 어떤 동기 부여가 됐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헬레니즘 문화는 현지문화에 동화되어 버렸다. 그리스는 헬레니즘 문화를 동방에 가져왔지 어떤 신조(信條)를 가져오지 않았기에 지속하지 못했다. 이란인이 조로아스터교를 그리고 이슬람이 인도에서 그대로 공동체를 유지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간다라 미술은 바로 그리스 헬레니즘의 산물이다. 간다라 미술은 인도의 서북단 간다라 지방을 중심으로 기원 전후부터 수 세기 동안 번영한 불교 미술이다. 원래 불교도는 부처님을 어떤 조각 상()으로 표현하는 것을 피하고 있었지만 기원을 전후하여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을 받은 서북 인도에서 그리스 조각의 수법을 사용, 불상이나 보살상이 처음으로 만들어지고, 불상 숭배의 유행이 일어났다.

 

간다라 불상의 특징은 머리카락이 물결모양의 장발이고 용모는 눈언저리가 깊고 콧대가 우뚝한 모습이 마치 서양인 같고 착의(着衣)의 주름이 깊게 새겨져 그 모양이 자연스럽다. 조각은 거의 부조(浮彫)이고 대개는 스투파 기단(基壇)의 벽면을 장식하였다. 간다라 조각은 대월지족이 세운 쿠샨왕조의 카니슈카 왕 때에 많은 발전을 하였다. 그리스 식 불상 조각으로 대표되는 이 불교 미술은 발생지의 이름을 따서 간다라 미술이라 불린다. 간다라에서 시작된 불상 숭배는 불상 조각의 기술과 함께, 인도 본토는 물론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한국·일본에까지 전래되었다.

▲ 국보 제24호 석굴암 본존불, 간다라 미술 양식의 영향을 받아서 조성된 불상.(1962년 12월 20일 지정)    

 

석굴암은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을 받은 인도 간다라 미술 양식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석굴암은 그 구조가 기묘할 뿐만 아니라 본존 및 벽면 조상의 비범한 기술로 보아 신라 시대 예술을 대표할 만한 것이며, 중국에서도 산을 파내어 만든 석굴은 있으나 석굴암과 같은 것은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석굴암이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얀 석굴에서 영향을 받았으며, 바미얀 석굴과 석굴암은 공통적으로 원형평면 위에 배치가 되어있고 돔형 천장을 가지고 있다. 네모반듯한 전실과, 안쪽 벽에 부조로 새겨진 상, 그리고 위쪽으로 감실이 있고 그 안에 보살상이 있는 점 등이 똑같으며, 바미얀 석불의 원류가 돔 형태의 로마 판테온(신전)이라고 보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동아시아 불교에서는 대승불교와 관련하여 헬레니즘의 영향을 언급하지 않는다. 다만 간다라 미술 부분에서는 영향을 받았음을 긍정하고 있다. 이것은 가시적인 실물이 있기 때문에 부정할 수 없는 증거이다. 하지만 대승불교 형성에 헬레니즘의 영향이 있었느냐 했을 때는 침묵 아닌 침묵이 흐른다. 하지만 미술 부분에서는 영향을 받았고, 사상면에서는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논법이다.

 

대승불교가 흥기하기 전에 그리스-박트리아 왕국에서 그리스 승려들은 불교의 상위 계층에 있었다. 그들은 또한 불교전파에도 직접적인 역할을 했다. 이미 전회에서 다룬 바 있지만, 아소카 대왕의 불교전도 프로젝트에 그리스 승려들이 참여했다는 것을 언급한 바 있다.

 

그리스-박트리아는 헬레니즘 문화가 수백 년 간 지속되었으며, 불교가 왕성하게 발전했던 지역이다. 여기에는 그리스 승려 뿐 아니라, 페르시아계 승려들이 함께 불교를 수행했으며 중국에 불교를 전파한 것도 페르시아계 승려들이 담당했다.

 

중국에 불교가 전파된 것은 기원 1세기 또는 2 세기에 시작된 실크로드를 통해서이다. 이들은 처음 타림분지의 오아시스 나라들에 전파되었다. 이 오아시스의 나라들은 대부분 쿠샨제국의 영향권에 있었다. 처음 이 지역에 전해진 불교는 대승불교가 아니라, 사르바스티와다 (sarvâsti-vāda)라고 하는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였다. 이 파는 부파불교 시대의 종파로서 가장 유력한 파였고, 부파불교의 사상적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파이다. 줄여서 유부(有部)라고도 한다.

▲ 이 그림은 투르판 화염산 근처 절벽에 만들어진 베제클리크 천불동에 있는 5세기에서 9세기에 걸쳐 동굴 벽면에 그려졌던 프레스코 화인 불화(佛畵)이다. 왼쪽은 중앙아시아(소그디아나)에서 온 승려이고, 오른쪽은 동아시아 승려이다. 소그디아나 인은 고대 이란족 계열의 유목민족인 스키타이인들을 부르는 단어인 소그드인들이 사는 도시라는 뜻이다. 당나라 (7~8세기)와 위구르 통치(9~13 세기)시기에 소수 민족 공동체로 투루판에 거주했던 동부이란 사람들이다.    

 

설일체유부의 교리는 문자 그대로 모든 법(一切法)이 존재하다()’고 설명하는 부파(), ‘과거, 현재, 미래의 3세에 걸쳐 법의 실체가 존재한다. , 법의 실체는 항상 존재한다.’라는 뜻의 삼세실유법체항유(三世實有法體恒有)’는 설일체유부의 주장을 대표하는 명제이다. 대표적인 논서는 2세기 중엽 인도에서 카니슈카(재위:127~151)의 보호 아래 500인의 아라한(학승)이 편찬한 대비바사론(大毘婆沙論)4세기에 세친이 설일체유부의 설을 근간으로 저작된 경량부(經量部)구사론(俱舍論)이다. 이에 반해서 대승불교는 공() 내세워 공()철학이 정립됐다.

 

이렇게 본다면 처음부터 대승불교가 성립되어서 중국에 전파된 것이 아니고, 초기에는 상좌부와 같은 설일체유부파의 교리가 전파되었다. 상좌부의 교리철학 체계의 경전어가 빨리어였다면, 설일체유부파의 철학체계의 경전어는 산스크리트어였다.

보검<세계불교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 필자 보검스님이 4월 22일 ‘지구의 날’을 맞아 인도 수바흐르티 대학 주최 국제웨비나에서 ‘불교적 관점에서 본 인류와 환경의 조화’란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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