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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에 적응하는 불교로의 전환 절실

보검 이치란 스님 | 기사입력 2024/01/22 [08:38]
동남아시아 불교, 새바람이 부는 베트남 불교

시대에 적응하는 불교로의 전환 절실

동남아시아 불교, 새바람이 부는 베트남 불교

보검 이치란 스님 | 입력 : 2024/01/22 [08:38]

종횡무진 한국불교의 원류를 찾아서(56)

 

항상 하는 이야기지만, 정말 동남아시아의 상좌부 불교를 볼 때 마다 불교의 원형을 지켜가는 근본 승가에 존경과 감탄을 보내게 된다. 

 

▲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불교지도자 정상회의가 열리고 있는 베트남 달랏 시삼텐 힐스 티베트 사원 대법당에서 지역 기관장이 환영사를 하고 있다.  © CRS NEWS

 

동남아시아 상좌부 불교 전통은 스리랑카에서 전해졌다. 8세기부터 12세기까지 인도에서 활발하게 흥성했던 대승, 금강승, 상좌부, 힌두교 등의 여러 전통이 벵골만을 통해 동남아시아에 계속 영향을 미쳤다. 그런 가운데 11세기경부터 싱할라 테라와다(스리랑카 상좌부)승려들과 동남아시아 엘리트들이 동남아시아 본토 대부분을 테라와다 마하비하라(스리랑카 마하비하라 大寺) 부파로 개종시키는 일을 주도했다.

 

▲ 미얀마의 쉐다곤 파고다.  © CRS NEWS

 

근대 이전의 동남아시아 불교에는 밀교라고 할 수 있는 요소가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프랑스의 한 학자는 이러한 경향을 밀교적 상좌부라고 불렀으며 그의 문헌 연구에 따르면 이것이 캄보디아와 태국의 주요 전통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밀교 테라와다의 형태에는 스리랑카 요가와차라와 관련된 "요가와차라 전통"이라고 불리는 것이 포함된다. 요가와차라 매뉴얼은 주문(만트라) ‘아라한(A-RA-HAN)’ 명상을 위한 촛불 사용 등 독특하고 비정통적인 특징을 지닌 소승불교 명상 매뉴얼이다.

 

이러한 밀교 전통에는 진언(: 아라항) 사용, 마술, 복잡한 의식 및 시각화 연습과 같은 정통 테라와다(Theravāda)에 포함되지 않은 새로운 관행과 아이디어가 포함되었다. 이러한 관행은 라마 4(1851~1868)의 근대적 개혁 이전의 태국과 근대 이전의 스리랑카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이러한 관행 중 일부는 오늘날에도 캄보디아와 라오스에서 여전히 널리 퍼져 있다.

 

버마인들은 퓨(Pyu)와 몬(Mon) 문명을 접촉하고 정복하면서 테라와다(Theravāda)를 채택했다. 아나와라타 왕(1044~1077) 통치기간 동안 테라와다는 버마 바간 왕국(849~1297)의 주요 종교가 되었다.

 

▲ 현재도 2천여 개의 탑(사원)이 남아 있을 정도로 불교가 최고의 전성을 이뤘던 바간 시대의 불교. 당시 1만 3천개의 탑(사원)이 있었다고 한다.  © CRS NEWS

 

아나와라타는 그의 왕국에서 상좌부를 전파하고 개혁하기 위해 수많은 몬, 인도 및 싱할라 상좌부 승려들을 바간으로 초대했다. 더욱이, 개혁을 따르기를 거부한 밀교 아리 불교의 다양한 승려들도 추방되었다. 아나와라타는 또한 쉐지곤 파고다와 같은 대형 사원의 건설을 후원했다. 그의 통치 이후에도 테라와다 불교는 버마 엘리트들 사이에서 지배적인 불교 형태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나츠라고 불리는 정령숭배 정신과 로카나츠와 같은 다양한 대승의 인물에 대한 숭배는 테라와다와 함께 계속해서 행해졌다.

 

▲ 라오스 승왕(종정)을 친견하는 필자.  © CRS NEWS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와 마찬가지로 라오스의 중세 불교에는 대승불교, 탄트라 불교, 소승불교가 포함되었다. 동남아시아의 테라와다의 정치적 영향력은 테라와다를 태국 및 크메르 왕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던 라오스 왕국 란상(Lan Xang, 1353~1707)의 주요 종교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되었다.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라오스의 테라와다에도 지역 영혼에 대한 숭배(락 무앙)와 마법의 물체(싱 삭싯)에 대한 숭배와 같은 수많은 애니미즘요소가 남아 있다. 이러한 관행은 종종 불교 사원의 일부였다. 위눈(재위15001520)과 같은 라오스 왕은 소승불교의 법왕 모델을 채택하고 사원과 프라방 등 팔라듐(신성한 수호자) 건립을 장려했다.

 

캄보디아를 중심으로 한 크메르 제국(8021431)은 처음에는 브라만교 힌두교와 대승불교가 지배했다. 후기 앙코르 시대에는 테라와다 불교가 부상하기 시작했다. 13세기와 14세기 동안 스리랑카, 버마, 태국에서 온 전도 승려들의 활동이 캄보디아에 테라와다를 계속 전파했다. 

 

▲ 공중에서 바라 본 앙코르 왓의 전경.  © CRS NEWS

 

1431년 앙코르 멸망 이후 대승불교는 대부분 이 지역에서 사라졌고 테라와다는 지배적인 종교가 되었다. 사타 왕(1576~1594)의 통치 기간 동안, 앙코르왓의 중앙 성소는 테라와다 스타일로 리모델링되었다. 새로운 불상과 태국풍의 거대한 불상이 추가되었다. 수많은 테라와다 수도원 공동체가 이 시기에 생겨났고, 대부분은 브라만 사원과 대승 사원을 개조한 곳에 세워졌다. 이 기간 이후 대부분의 크메르 군주는 남아시아 다르마 왕의 전통적인 방식으로 소승불교를 지지했다.

 

▲ 태국 수코타이 시대 불교 유적.  © CRS NEWS

 

수코타이 왕국(13~15세기)에는 상좌부, 대승, 크메르 브라만교가 모두 처음에 수행되었다. 나중에 태국 왕들은 싱할라 테라바다에 대한 후원을 집중시키는 정책을 계속했다. 후기 태국 아유디아 왕국(1351~1767)의 군주들도 테라바다의 강력한 지지자로 남아 있었다. 일부 수코타이와 아유디아 군주들은 짧은 기간 동안 테라바다 승려로 서품을 받기도 했으며, 이는 현대에도 태국 왕들이 계속해서 실천한 전통이다.

 

아유다야 왕도 캄보디아를 침공했으며 캄보디아 상좌부는 태국 불교 건축과 학문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유산의 일부는 현대 이전 태국의 대부분의 빨리어 사본이 크메르 문자를 사용했다는 사실이다. 17세기 후반에는 태국 왕실에 의해 불교 승려에 대한 시험 제도도 확립되었다.

보검<세계불교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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