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뉴스종합범종교가톨릭개신교불교민족종교해외종교이슬람생활 종교인의 성경 분석탐방 기획
전체기사 Trend & View 마음을 비춰보는 포토에세이 종교지도자 칼럼 매일종교신문 공지 사항
편집  2020.07.05 [08:07]
김주호칼럼
매일종교신문 공지 사항
안내데스크
신문사소개
광고안내
저작권문의
구독신청
불편신고
독자투고
제휴안내
개인정보취급방침
청소년보호 보호정책
기사제보
김주호칼럼
한민족의 작은집 日本王室㉚백제 성왕 日에 다방면의 문화이식
그곳엔 지금도 배달민족의 피가 흐르고 있다
기사입력: 2016/02/29 [11:57]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김주호 기획특집본부장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카카오톡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오경박사·易·채약사 등 인간문화재 수출

전염병 창궐, 國神과 불교간 논쟁 치열
 
백제 성왕은 고구려와 신라로부터 때로는 어려움을 느끼면서 까지도 일본에 대해선 아낌없는 문화수출에 힘썼다. 그것은 단순한 수출만이 아닌 이식이었다.
 
그것은 다방면에서 이루어졌다. 즉, 계체 왕 7년에 보낸 오경박사 단양이(段揚爾)에 이은 고급 한문의 전수, 흠명 13년에 시작된 금동제 불상과 불경의 수출, 흠명 15년에 행해진 역박사(易博士), 역박사(曆博士), 채약사, 악사 등 대규모 인간문화재 수출인 것이다.
 
흠명 왕에 이어 제30세 민달(敏達: 비다쓰)왕이 등장한다. 그는 백제 외손 흠명왕의 둘째아들이므로 한민족계임이 틀림없다. 민달왕은 부왕 흠명 왕이 신라와는 숙적관계였으나 고구려와 백제에 대해선 친절을 다하는 것을 보고 배웠다.
 
민달왕은 즉위 초 물부(物部: 모노노베)의 궁삭수옥(弓削守屋: 유게노 모리야)을 대연(大連)으로, 소아마자(蘇我馬子: 소가노 우마꼬)를 대신으로 삼았다.
 
소아마자의 ‘대연’은 대신과 같은 높은 벼슬이름이다. 그는 백제목씨의 후손으로 한민족임이 분명하다. 궁삭수옥도 그 성이 가르치는 바와 같이 일본에 기술자로 건너갔던 궁삭공인(工人)의 후예라고 볼 때 그 역시 백제계 한민족이다.
 
서기 552년 4월3일 즉위한 민달왕은 5월에 이르러 그가 즉위하기 전 일본에 건너온 고구려 사신들이 여태 용무를 마치지 못하고 있는 것을 기억하고 그를 불러들였다. 왕은 여러 신하들을 고구려 사신들이 머무르고 있는 상락관(相樂館)에 보내 그들이 바치고자 하는 선물을 자기가 있는 서울(京師)로 보내라고 했다. 그리고 고구려 조정에서 보낸 국서(國書)를 여러 대신들에게 내 주며 이를 읽고 뜻을 해석케 했다.
 
그런데 3일이 지나도록 누구 한 사람 읽는 자가 없었다. 이 때 한민족계(백제인) 왕진이(王辰爾: 와신니)가 그것을 해독해 냈다고 한다. 왕은 대신들과 같이 왕진이를 크게 칭찬했다. 왕은 “이제부터 내 가까이에서 일을 하라”고 했다. 백제 출신 왕진이는 민달왕의 궁중에서 일하게 됐다.
 
민달 왕 13년(565년) 또 다시 악성전염병이 유행했다. 수옥(守屋)대연이 왕에게 “지금 유행하는 병은 소아(蘇我)대신이 불교를 일으킨 탓입니다”고 일렀다. 이 말을 들은 왕은 “불교를 처단하라”고 했다.
수옥대연이 직접 절에 들어가 법당과 불상, 불탑 등을 불사르고 비구니(여자승려)들을 잡아다가 법의(法衣)를 벗기고 매질한 다음 감금하는 사건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 때 전염병이 더욱 심해지니 ‘불상과 불당을 불태운 탓이다’는 유언비어가 나돌게 됐다.
 
민달 왕이 임나(任那)를 재건할 양 판전이자왕(坂田耳子王)을 사자(使者)로 삼은 것이 이때의 일인데 졸지에 왕과 대연이 종기를 앓게 됐다.
 
이 때 또다시 창(瘡)을 앓아 죽는 자 수없이 많았다. 이 병을 앓는 환자의 증세는 화상을 입은 것 같고, 심한 구타를 당한 것 같다고 한다. 그래서 모두가 슬피 울면서 죽어 갔다고 한다. 이런 참혹한 창병의 만연은 바로 불상을 태운 죄라는 소문이 퍼지게 된 것이다.
 
이에 마자숙니(馬子宿禰)가 민달왕에게 아뢰기를 “질병이 이렇듯 나아지질 않으니 삼보(三寶)의 힘을 입지 않으면 구하기 어렵겠습니다.” 했다.
 
왕은 마자숙니에게 “너 혼자만 불법을 행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일체 금단하라” 하고는 세 사람의 승려를 마자숙니에게로 되돌려 주었다.
 
민달왕은 더욱 병이 심해져 사망하고 31세 용명왕(用明王)이 즉위한다. 용명은 백제계 흠명왕의 넷째아들이다. 이름은 귤풍일(橘豊日). 어머니는 소아대신(蘇我大臣) 도목숙니(稻目宿禰)의 딸 견염원(堅鹽媛).
 
흠명왕은 즉위 2년 4월에 병을 얻었다. 군신들이 모여 병을 간호 했으나 별로 효험이 없었다.
 
용명왕은 “내가 삼보에 귀의 하겠으니 경들은 상의하라”고 했다. 군신들이 조정에 모여 의논하는데 수옥대연(守屋大連)은 그 반대의 주장을 폈다.
 
“왕은 어찌 국신(國神)을 배반하고 다른 신을 섬기려 하나이까? 그 연유를 알 수 없습니다.”
이때 소아(蘇我) 마자숙니(馬子宿禰) 대신이 “마땅히 조칙(詔勅)에 따라 받들 것이지 감히 이의를 제기 하느냐” 했다.
 
이어 왕의 아우와 왕자들이 풍국법사(豐國法師: 백제인)를 데리고 내전으로 들어갔다. 이때 수옥대연이 눈을 흘겨보고 크게 노했다고 한다. 이 후 왕이 죽었다.
 
이 같은 상황은 국신을 받드는 측과 불교를 숭배하는 측과의 싸움이 치열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결국 민달왕과 용명왕은 불교논쟁으로 인한 희생자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기획특집본부장)
ⓒ 매일종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카카오톡
연재소개 전체목록
김주호 칼럼●굽은 목재가 곧은 목재 위에 군림하면
보천교 신도로 독립군 지원 모금활동하다 숨진 최달연 선생 가족의 비운
한국과 베트남, 그 역사적 혈연적 관계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의 마지막 유언의 참뜻
되새겨 보는 한국과 베트남, 그 역사적 혈연적 관계
훈민정음 창제와 신미대사
개천절과 개천세(開天歲)
‘한민족의 작은집 일본왕실’41회 연재를 마치며
한민족의 작은집 일본왕실㊶(마지막 회)
한민족의 작은집 일본왕실㊵천무왕 병중 틈타 왕후 주축 백제계 다시 대두
한민족의 작은집 日本王室㊴백제계 천지왕 죽자 近江朝 후계 싸움 돌입
한민족의 작은 집 일본왕실㊳백제 복국운동자들 近江에 신국가‘日本國’건설
한민족의 작은집 일본왕실㊲신라계 약화되자 세력우위 백제와 군사동맹
한민족의 작은집 일본왕실㊱진명여왕의 연호 ‘대화’에 따라 국호를 ‘大和國’으로
한민족의 작은집 일본왕실㉟ 소아씨 백년 권세 몰락, 신라계 팽창
한민족의 작은집 日本王室 ㉞백제 의자왕 손위 누이 황극여왕
석가부처님은 우리 東夷族이다
한민족의 작은집 일본왕실㉝백제 이름으로 궁과 절, 빈소 만든 서명(舒明)왕
한민족의 작은집 일본왕실㉜백제계 성덕태자 섭정, 소아씨 가문이 정권 흔들어
한민족의 작은집 일본왕실㉛ 日 정권 완전 백제계 소아씨 세력하로
주간베스트 TOP10
배너
광고
광고
  안내데스크신문사소개광고안내저작권문의구독신청불편신고독자투고제휴안내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 보호정책기사제보보도자료기사검색
범 종교의 진정성을 두루 살펴 보고 이해함으로써 각 종교와 사회의 화평과 상생, 조화를 이룬다.
회장 이옥용 /발행-편집인 신민형 / 양형모 상임고문 / 편집국장 이부평 / 청소년보호책임자 강은나
우) 140-846 서울시 용산구 원효로 1가 70번지 (83길 21)
대표 전화: 02-703-8267 | 팩스: 02-3211-4419 인터넷 매일종교신문
등록번호:서울 (아)01319(범종교신문 등록 2009년 9월 1일,2013년 6월 15일 제호변경)
기사제보 : minhyung-s@hanmail.net
Copyright ⓒ 2009-2013 매일종교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