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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法의 시대화·대중화·생활화를 표방하는 원불교…정신개벽 주창
소태산이 깨달은 궁극진리 ‘法身佛一圓相’이 신앙 대상…전산 종법사 신년법문 “신성으로 공부합시다”
기사입력: 2020/01/21 [14:20]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문윤홍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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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이 깨달은 궁극진리 法身佛一圓相이 신앙 대상

전산 종법사 신년법문 신성으로 공부합시다”   

 

원불교는 1916(원기圓紀 1) 428, 교조 소태산(少太山) 박중빈(朴重彬) 대종사의 큰 깨달음을 계기로 시작된 종교이다. 소태산은 20여 년간의 구도고행(求道苦行) 끝에 만유(萬有)가 한 체성(體性)이요 만법(萬法)이 한 근원이라는 큰 깨달음을 얻은 뒤, 장차 인류와 세계의 미래가 물질문명의 발달로 인해 정신문명이 크게 약해질 것을 예견하고 인류 정신문명을 이끌어 나갈 새시대, 새종교로 원불교의 교문(敎門)을 열었다.

 

만유가 한 체성이며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 이 가운데 생멸(生滅)없는 도()와 인과보응(因果報應)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하여 한 두렷한 기틀을 지었도다.’

 

소태산이 깨달은 궁극적 진리인 법신불일원상(法身佛 一圓相)을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준으로 삼아 진리적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을 펼쳐오고 있는 원불교는 현재 105년의 역사 속에서 세계 20여개 나라에 진출해 세계 보편 종교로 발돋움하고 있다.

▲ 원불교의 신앙대상인 ‘법신불일원상’    

  

원불교는 소태산 대종사가 인류 구원의 방향으로 밝혀낸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라는 개교(開敎)표어를 바탕으로 2016년 개교 100주년을 맞아 정신개벽 서울선언문을 선포하면서, 미래 100년을 위한 원불교도의 실천강령도 발표했다.

    

원불교는 정신개벽 서울선언문에서 오늘날 인류사회는 독선과 오만, 욕심과 갈등으로 인해 인간의 존엄을 잃어가는 시대에 직면했다이에 원불교는 열린 마음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밝은 지혜’, ‘하나의 마음으로 생명을 존중하는 바른 실행을 정신개벽의 방향으로 규정하고 온 인류와 함께 정신개벽 실천운동을 전개하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 원불교는 물질을 선용하고 환경을 존중하는 상생의 세계’, ‘마음공부와 적공으로 강약이 진화하는 평화의 세계’, ‘서로 감사하고 보은하는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갈 것을 실천강령으로 제시했다.

 

원불교는 소태산이 친찬(親撰)정전을 비롯해 대종경등 교서를 결집하고, 종법사를 법주로 하여 최고결의기관인 수위단회 아래 교정원·감찰원·중앙교의회의 3권분립 체제를 갖추었다. 교구제를 시행하며, 교도를 재가교도인 거진출진(居塵出塵)과 함께 출가교역자인 전무출신(專務出身)제도를 확립했다

                       

원불교와 불교는 차이는?

 

원불교는 그 연원을 불법(佛法)에 두고 있으며, 시대에 맞는 새로운 불교이다. 그러나 외면상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차이는 신앙대상의 상징이 다르며, 불교와의 역사적 교섭관계가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교단의 운영방식과 제도 면에서도 종래의 사찰제도와는 다르게 운영되고 있다. 즉 근본적 진리는 서로 상통하지만, 교단은 기존 불교의 분파적 입장이 아니다. 창조·모방·개혁을 시도하는 새로운 교단으로 볼 수 있다. 소태산 대종사는 불법을 주체로 삼아 새 종교를 주창했는데, 그가 깨달은 일원상의 진리, 즉 법신불(法身佛)사상을 주체로 하고, 모든 종교의 장점을 취하여 시대화·생활화·대중화의 개혁을 시도한 것이다.

 

시대화란 어느 시대에 처하든지 불법을 그 시대에 맞게 구현하자는 것을 말한다. 시대적 변화에 잘 동화하면서도 높은 차원으로 사람들을 지도해나갈 수 있도록 불법을 응용하자는 뜻이다. 생활화란 생활 속에서 불법을 찾고 깨달아서 그 불법으로 새 생활을 개척해 나가자는 것이다. 대중화란 민중화, 서민화 또는 시민화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특수한 계층을 위한 불교가 아니라 누구나 다 같이 보람을 찾을 수 있도록 국한 없이 불법을 구현하자는 것이다. 원불교는 정신개벽(精神開闢)을 표방하고 있다. 다른 기성종교와는 달리 우리나라에서 발생된 종교로서 후천개벽의 이념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소태산의 수제자인 정산(鼎山) 송규(宋奎) 종법사가 법통을 이어 해방 후인 1947(원기 32) ‘원불교(圓佛敎)’라는 정식 교명(敎名)을 반포했다. 원불교 교명에 대하여 제2대 종법사인 정산은 ()이란 형이상으로 말하면 언어와 명상(名相)이 끊어진 자리라 무엇으로 이를 형용할 수 없으나, 형이하로써 말하면 우주만유가 이 원으로써 표현되어 있으니, 이는 곧 만법(萬法)의 근원인 동시에 또한 만법의 실재인지라, 이 천지 안에 있는 모든 교법이 비록 천만가지로 말은 달리하나 그 실()에 있어서는 원() 이외에는 다시 한 법()도 없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리고 ()은 곧 깨닫는다()는 말씀이요 또는 마음이라는 뜻이니 원의 진리가 아무리 원만하여 만법을 다 포함하였다 할지라도 깨닫는 마음이 없으면 다만 이는 빈 이치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원불(圓佛) 두 글자는 각자 마음에서 근본적 진리를 깨친 바탕 위에서 나타낸 것이므로 서로 떠나지 못할 관계가 있다라고 말했다.

 

최제우(崔濟愚·천도교강일순(姜一淳· 증산교계통) 이후 또 하나의 민중종교를 탄생시킨 소태산은 앞으로의 세계는 동방이 중심이 되어 발전해가며, 특히 우리나라가 그 중심국가가 될 것을 예견하였다. ‘정신의 지도국’·‘도덕의 부모국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인류 보편윤리에 입각한 민족정기(民族精氣)를 되살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인정신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점에서 원불교는 다만 불교의 혁신에 그치지 않고 기성종교에 대하여 새로운 종교의 출범이라 말할 수 있다

 

교조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   

 

원불교 교조인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1891~1943, 재임 원기 1~285)1891년 양력 55일 전라남도 영광에서 부친 박성삼, 모친 유정천의 아들로 태어났다. 7세부터 자연현상과 인생에 대하여 특별한 의심을 품고, 스스로 도()에 발심하여 20여년 간 구도고행을 계속하여 마침내 1916428, 큰 깨달음을 이루었다.

 

소태산 대종사(大宗師)는 대각(大覺)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표어를 주창하고 먼저 미신타파, 문맹퇴치, 저축조합운동을 통해 혼란한 시국 속에서도 희미해져 가는 민족의 혼()을 일깨우고, 땅에 떨어진 인륜의 정신을 바로 세우고자 하였다.

 

새회상 창립의 경제적 기초를 세운 26천여평의 정관평 방언공사, 인류구원을 위한 혈성의 기도로 법계의 인증을 받은 법인성사, 법신불 일원상을 최고의 종지로 삼아 교리와 제도를 제정한 봉래제법, 교화, 교육, 자선의 중심지 익산 총부 건설 등 소태산 대종사의 제세경륜은 인류의 빛이요, 거룩한 주세 성자의 생애였다.

 

소태산 대종사의 일대기는 대종사 십상으로 정리해 볼 수 있으며, 이는 원불교 창립의 큰 물줄기이며 초기교단사 이기도 하다

▲ 원불교 교조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    

 

소태산 대종사 십상(일대기)

 

관천기의상

7세쯤부터 우주 만유의 온갖 이치와 인간세상의 모든 일에 대해 스스로 큰 의심을 일으키어 깊은 사색에 잠기게 된다.

 

삼령기원상

11세 되던 해 문중의 시향제에 참석했다가 신통 불가사의한 힘을 가졌다는 산신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산신을 직접 만나서 모든 의심을 해결하리라는 희망을 갖고 삼밭재 마당바위를 오르내리면서 기도를 5년간 지성으로 계속했다.

 

구사고행상

16세 되던 해 봄에 고대소설 조웅전읽는 소리를 듣는 중에 주인공이 도사를 만나 신통묘술을 배워 크게 성공하고 모든 소원을 다 이루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이때부터 산신 만나기를 단념하고 보통 인간과 똑같은 형상을 가졌다는 도사를 만나 모든 의심을 해결해 보리라는 결심으로 스승을 찾아 온갖 고행을 거듭했다.

 

강변입정상

20세가 넘자 산신과 도사는 이야기 속에서나 등장하는 가공적인 존재임을 알게 되었다. 이 때부터 내 이 일을 장차 어찌할까?’하는 큰 걱정만 날로 쌓이게 되어, 우연히 오르는 주송을 외우기도 하고 때로는 등상처럼 우두커니 한곳에 서서 깊은 명상에 빠져들게 되었다. 24·5세 경을 전후해서는 일체의 사량분별을 잊어버리고 큰 정(大定)에 들게 되었고, 이 무렵 어느 여름날 선진포 나룻터에서 반일 동안이나 입정상태에서 그대로 서 있기도 하였다.

 

장항대각상

26세 되던 1916428일 이른 새벽, 동쪽 하늘이 밝아오는 것을 보고 문득 마음이 밝아지고 모든 의심이 일시에 다 풀리고 마침내 일원(一圓)의 진리를 크게 깨치게 되었다.

 

영산방언상

깨달음을 얻은 후 최초로 구인(九人)제자를 얻어 저축조합을 설치하고 미신타파·허례폐지·근검저축·절약절식·공동출역 등으로 새 생활운동을 전개하였다. 1918(원기 3) 4월부터는 1년간 구인제자들과 함께 영산 앞의 갯벌을 막아서 간석지 개간사업을 전개하였다.  

 

혈인법인상

방언공사가 끝나자 이어서 구인제자로 하여금 마음을 통일시키고 공도정신을 살리기 위해 진리 앞에 사무여한의 기도서원을 올리게 하여, 1919(원기 4) 821일 마침내 백지혈인의 이적이 나타나 새 회상창립의 법계 인증을 얻게 되었다.

 

봉래제법상

혈인기도를 끝낸 다음, 그해 10월쯤 전북 부안 봉래정사로 들어가 몇 몇 제자들과 함께 수양과 보림에 주력한 한편으로는 창립 인연들을 만나고 일원상·사은사요·삼학 팔조를 중심한 교리의 강령을 제정하고, 조선불교 혁신론, 수양연구요론등의 초기교서를 초안하였으며, 총부 건설의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신룡전법상

마침내 기회가 무르익자 1924(원기 9) 61일 전북 익산 보광사에서 불법연구회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교문(敎門)을 공개하게 되었다. 이어 익산군 북일면 신룡리(현재 익산시 신룡동)에 총부기지를 정하고 12월쯤 1차 건설을 끝내고 이로부터 제생의세의 교화사업을 펴기 시작했다.

 

계미열반상

일제의 압정 속에서 교단을 창립 발전시켜 오다가 1943(원기 28) 계미년 6153세로 열반에 들었다

 

원불교단의 최고직위 종법사(宗法師)

 

원불교에서는 교단의 최고직위를 종법사라 한다. 종법사는 원불교의 교조인 원각성존 소태산 대종사로부터 법통(法統)을 계승하는 주법으로서 교단을 주재하고 교헌에 의해 대외적으로 원불교를 대표하는 최고지도자의 지위를 갖는다.

 

역대 종법사는 교조이신 소태산 대종사(원기 128) 의 열반에 따라 법통을 계승하여 정산종법사(원기2847), 대산종법사(원기4779), 좌산종법사(원기79원기91), 경산종법사(원기91원기103), 전산종법사(원기103~ )로 이어지고 있다.

 

종법사의 자격

 

종법사는 원불교 교헌에 의해 6년을 1()의 임기로 민주적 절차와 공의로 선출된다. 법위등급이 정식출가위 즉 원정사 이상이며 연령이 74세 이하를 피선자격으로 하여 원불교의 최고 결의기관인 수위단회에서 재적단원 2/3 이상의 찬성을 받아야 선출되며 선출된 종법사는 원불교 재가출가 전교도의 대표로 구성된 중앙교의회에서 교단적으로 추대한다.

 

원불교에서는 종법사가 됨으로써 교단의 주법으로서 교단을 주재하고 원불교를 대표하는 최고 지위를 갖게 되며 원불교의 출가·재가 전()교도의 교화조직인 교화단과 최상위단인 수위단의 단장이 되며 동시에 최고 결의기관인 수위단회의 의장을 맡아 교단을 통치하게 된다.종법사는 교헌에 의하여 교화를 주재하고 이에 필요한 교서 편정권, 교규제정권, 인사임면권, 영전수여 및 사면복권 등의 상벌 시행권을 갖게 된다.

 

종법사 보좌기관(법무실) : 종법사 보좌사무를 관장

 

종법사 시봉사무법문 수필(法門 隨筆) 및 정리 사무종법사 수행(隨行) 사무종법사 대외(對外)관계 및 의전(儀典)업무종법사 내명(內命)에 관한 사무원로회의(元老會議)에 관한 사무종법실 각종 자료 및 비품관리 사무중요시사(重要時事) 품의 및 상의하달(上意下達) 하의상달(下意上達) 사무애경상문(哀慶喪門) 사무기타 종법사의 지시업무  

 

원불교의 성직자 - 교무 or 전무출신   

 

교무(敎務)란 원불교 성직자의 호칭이다. 비교하여 표현하면 불교의 승려, 천주교의 신부, 기독교의 목사에 준한다. 원불교에서는 교무를 전무출신(專務出身)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오롯하고 전일하게 몸과 마음을 공중(公衆)에 바쳐 일하는 사람을 뜻한다. 교무는 원불교에서 실시하는 대학과 대학원의 정규 교육과정을 거쳐 자격시험에 합격하여야 하며 교화의 사명을 띠고 교당이나 기관에 파견되어 성직에 봉사한다.

 

원불교 전무출신 중에는 교무와 별도로 도무(道務)와 덕무(德務)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전무출신도 있다. 도무는 교화직이 아닌 전문 직종에 종사하는 전무출신이며, 덕무는 봉공활동에 종사하는 전무출신을 말한다.

 

대종사는 교무는 지방에 있어서 종법사의 대리라는 것을 명심하여 그 자격에 오손됨이 없이 사명을 다하라고 말했다. 교무는 신앙의 수행자이며 교화자임을 명심하도록 당부한 것이다.  

 

소태산의 9인 남성 제자와 10인 여성 제자들

 

소태산 대종사의 초기제자인 9인 제자는 모두 남성들로 구성됐으며, 여성 10대 제자들도 개벽세상의 새로운 주체로서 이들과 함께 원불교 교단조직을 이끌었다. 201651일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원불교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에서 소태산 대종사의 초기 제자(초기교단 설립 주역) 9명을 성인으로 추대하는 구인선진 법훈서훈식이 열렸다. 구인선진은 소태산 대종사의 첫 표준제자로 대신성·대단결·대봉공 창립정신의 표본이라 불린다.

 

이날 법훈서훈을 받은 9인의 제자는 1916년 원불교가 개교했을때 소태산 대종사를 모셨던 정산 송규, 일산 이재철, 이산 이순순, 삼산 김기천, 사산 오창건, 오산 박세철, 육산 박동국, 칠산 유건, 팔산 김광선 등이다

 

원불교 제2대 종법사(宗法師) 송규(宋奎)의 본관은 야성(冶城)이고, 본명은 도군(道君)이다. 법명은 규(), 호는 정산(鼎山)이다. 그는 190084일 경북 성주군에서 아버지 벽조(碧照)와 어머니 이운외(李雲外)32녀 중 장자로 태어났다. 8세 때부터 할아버지의 사숙에서 한학을 접했다. 항상 좋은 스승 만나기를 염원하여 이인(異人)과 은자(隱者)를 찾아 산과 계곡을 돌아다녔다. 또한 집안에 마련한 초당에서 수련하기도 했으며 집 뒤편 거북바위에서 기도하기도 했다. 15세 때에는 이인을 만나기 위해 가야산을 세 차례나 올랐으며 그곳에서 3개월간 기도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곳에서 증산교(甑山敎) 교도들을 만나 "() 공부를 하려면 전라도로 가시오"라는 권유를 듣는다. 이에 정산은 1917년 가을 전라도로 가서 증산의 유족을 만나고, 증산의 제자들을 방문했지만 만족하지 않았다. 그후 정산은 모악산 대원사에서 3개월 동안 수련했다. 이곳에서 그는 정읍군 화해리에 사는 김해운(金海運)을 만났고, 그녀의 요청으로 그녀의 집에 가서 수련을 계속하였다. 19184월 화해리를 방문한 소태산을 만난 정산은 그의 언행에 깊이 감화를 받아 형제의 의를 맺었다. 그해 7월 정산은 영광으로 소태산을 찾아가 스승으로 모실 것을 약속했으며, 그의 첫 제자들의 모임인 수위단(首位團)의 중앙단원이 되었다. 소태산은 정산에게 옥녀봉 아래 토굴을 파고 그 속에서 6개월간 수련하도록 했다. 19193월 소태산은 9명의 제자들과 함께 교단 창립의 정신적 결속과 진리의 감응을 얻기 위해 산상기도를 행하였는데, 정산은 중앙봉에서 이 과업을 수행했다. 그 뒤 소태산의 명에 의해 정산은 전북 부안군 변산의 월명암(月明庵)에서 백학명(白鶴鳴) 주지 스님의 상좌로 2년간 있었다. 이후 3년간 정산은 소태산과 함께 새로운 회상 창립을 위한 교리와 제도를 초안하였으며 진리탐구와 수행에 정진했다.

 

뿐만 아니라 원불교 첫 사업으로 전남 영광에서 길룡천을 막는 방언공사를 통해 농경지를 확보하면서부터 소태산의 인정을 받고 핵심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방언공사가 끝나자 소태산은 송규를 비롯한 8인 제자들과 함께 교단 창립의 정신 결속과 진리의 감응을 얻기 위해 기도하였는데, 정산은 중심 위치에서 이 과업을 수행하였다.

 

그 뒤 부안 내변산에서 소태산과 함께 3년 동안 원불교정전을 초안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으며, 1924년 원불교 초기 명칭이었던 불법연구회교단의 총부가 전북 이리(현재 익산지방)에 건설되자, 연구부장·교무부장·총무부장·교정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1942년 소태산의 불교정전(佛敎正典)편찬을 보좌하다가 19436월 소태산 대종사가 열반하자 종통을 계승하여 종법사에 취임하였다. 이어 교단의 해산과 일본 불교화의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일제 압력에 대처하다가, 광복을 맞이하여 새로운 국가건설의 방향을 제시하는 건국론(建國論)을 발표하는 한편, 국가의 긴급한 사업으로서 구호사업, 교육사업, 한글보급운동 3대사업을 추진했다. 그는 교단의 재정비를 서둘러서, 1947불법연구회라는 명칭을 원불교로 정식 개명하여 선포하였고, 1948년에 원불교 교헌(敎憲)을 제정, 통과시켜 원불교 교단조직의 기초를 세웠다. 이어 장차 원불교가 나아갈 방향을 교화·교육·자선이라는 3대목표로 정하고, 영육쌍전(靈肉雙全이사병행(理事並行)으로 자기교화·인간교화·사회교화를 추진하였다.

 

일산(一山) 이재철(李載喆) 대봉도(출가교도)1891211일 전남 영광군 군서면 학정리에서 부친 이관현(李寬現)과 모친 옥타원 김화옥(玉陀圓 金華玉)4남매 중 독자로 출생했다. 부친은 함평 영광지역 동학 접주로서 농민운동에 앞장섰으며 모친은 대범하면서도 내명(內明)한 인품을 지닌 요조숙녀로서 법도에 밝았고 소태산 법하에 귀의해선 독실한 신심으로 수행에 적공하며 선력(禪力)을 인증받아 대종사의 인증을 받기도 했다.

 

일산은 팔촌 동생인 이동안을 소태산 대종사에게 귀의시켰으며 이것이 영광군 묘량면 함평 이씨 가문에서 수십 명이 출가하여 교단의 창립과 발전에 공헌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일산은 특히 화술이 능하여 초기 교단의 대외 간판 역할을 했으며 방언공사 당시 주로 외무를 담당했다. 은행 외교로 총부를 건설할 때 미약한 경제토대를 세우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는 경제 외교와 더불어 법조계 외교도 전담하는 등 초기 당시 외교인으로 대종사를 보좌했으며, 특히 경제에 탁월한 식견을 가져 초기 교단의 상조조합 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교단의 경제적 기반을 구축했다.

 

이산(二山) 이순순(李旬旬) 대호법(재가교도)은 초창기 인화(人和)의 표본으로, 187991일 전남 영광군 백수면 천정리에서 부친 이다익(李多益)과 모친 김씨 사이에 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이산은 천성이 호걸다워 호탕하게 놀기를 좋아하는 남성다운 면과 온유선량한 성품을 지녀 그의 정직함은 초창기 교단에서 인화의 표본이 되었다. 1916(원기 원년) 소태산이 대각(大覺)을 성취하자 삼산 김기천 종사의 인도로 12살 연하인 소태산의 제자가 되길 원하여 사제지의(師弟之義)를 맺었다. 19183월 간석지 방언공사가 시작됐을 때 이산은 동지들과 함께 흙짐을 져 나르는 등 온갖 힘든 일을 하면서도 조금도 사심 없이 모든 난관을 감수하며 정성을 다했다. 그후 이산은 전무출신을 단행하지는 못했으나 거진출신으로서 회상의 발전에 협조하다 194163세를 일기로 영광에서 열반했다.

 

삼산(三山) 김기천(金機千) 종사는 189025일 전남 영광군 백수면 천정리에서 부친 김다유(金多有)12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7세 때 한문사숙에 입학해 수학하였으며 재예(才藝)가 출중하여 13세 때는 학문에 문리(文理)를 얻어 시율(詩律)공부에 들어갔다. 1916년 팔산의 인도로 대종사에게 귀의해 교단 창립에 공헌했다. 출가하여 현실생활에 등한한 듯 했으나 성리연마가 깊었다. 1935년 당리교당에서 순직, 법위는 출가위로 추존되어 종사위에 올랐다. ‘철자집’, ‘교리송’, ‘사은찬송가’, ‘단원의 노래’, ‘심월송등을 비롯해 많은 저술과 감각 감상문을 발표했다.


사산(四山) 오창건(吳昌建) 대봉도는 18871017일 전남 영광군 백수면 학산리에서 부친 오문안과 모친 김중품의 3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사산은 집안대대로 불교를 믿어왔으며 특히, 그의 부친은 불심이 장하여 동네 근방에 있는 대절산에 초당을 지어 수행을 하기도 했다. 12세 때 한문사숙에 입학해 4~5년 수학했고 성년이 되어선 가사에 전력하면서 당시 일대에 전파된 태을교에 뜻을 두고 열심히 신봉했다. 사산은 일찍이 소태산 대종사와 이웃마을에서 자랐기 때문에 서로 잘 아는 사이였으나, 대종사가 대각을 이루자 그 인격과 도덕에 감동하고 대도회상의 창립취지에 찬동하여 제자가 되길 서원했다.

 

19177월 대종사가 최초의 남자 정수위단을 조직할 때 사산은 진방(震方)단원으로 임명됐으며 공석 중이던 중앙단원의 대리임무도 맡아 절약절식, 금주단연, 주경야독으로 초창기 기초사업에 혈심노력을 기울였다. 방언공사에 항상 앞장서 일했고 뒷모습이 대종사를 닮아 작은 대종사로 불리기도 했으며 영산 서무부장, 상조부장, 원평교무, 감찰원장 등으로 28년간 교단에 헌신했다. 구인제자 중에서도 대종사를 가까이 모시고 많은 보좌를 했다.

 

오산(五山) 박세철(朴世喆) 대봉도는 소태산 대종사의 조카로서 1879116일 전남 영광군

백수면 길룡리에서 부친 박다여(朴多汝)와 모친 노씨의 2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비록 학문을 배우지는 못했으나 농업에 종사하면서 부모 공양과 함께 형제 우애가 남달랐다. 15세때 숙부 박군서에게 양자로 출계한 후 농업에 종사하며 가정을 돌보던 중 대종사가 대각을 이루자, 39세 때 칠산 유건 대호법의 인도로 집안 아저씨되는 소태산을 찾아와 사제지의를 맺고 19177월 남자정수위단 조직시 손방(巽方) 단원이 됐다. 19183월 방언공사가 시작되자 오산은 매번 선두에서 심혈을 기울여 일하면서도 공은 언제나 타인에게 양보해 그의 주위에는 언제나 덕화의 기운이 연하였고 항상 기쁨의 넘쳐흘러 종전에 병으로 신음하던 몸이 약도 쓰지 않고 완치되었다. 또한 1919년 대종사의 지도로 단원들과 함께 창생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면서 생명희생의 대서원을 올림으로써 천지신명이 감응하여 백지혈인을 나투었다. 이때 대종사로부터 받은 법명이 박세철이었고 192143세때에는 수년간 저축했던 금액 전부를 원불교 기성조합에 희사했다. 47세되던 1925(원기 10) 2월 내종병(內腫病)에 걸려 양의사의 치료로 차효가 있었으나 얼마 못가 1926730일 입적했다.

 

육산(六山) 박동국(朴東局) 대호법은 소태산의 친제(親弟)로서 1897118일 전남 영광군 백수면 길룡리에서 부친 박회경(朴晦傾)과 모친 유정천(劉正天)6남매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이 한문사숙에서 공부했으며 가사에 조력하던 중 형이 대각을 이루자 제자가 되었다. 육산은 천성이 강직했으며 기품이 호협(豪俠)하고 키가 크며 용모는 대종사와 닮았다.

 

육산은 1917(원기 2) 7월 남자정수위단 조직시 이방(離方)단원이 되어 저축조합운동, 방언공사, 혈인기도 등에 동참했다. 혈인기도 끝에 법인성사를 이루고 소태산으로부터 받은 법명이 박동국이었다. 육산은 혈인기도를 마친 후에도 정신 육신물질로 대도회상 창립에 힘썼으나 얼마 후 종숙(從叔) 세규(世圭)에게 출계하여 전무출신을 하지는 못했다. 비록 재가에 머물려 지냈으나 한때 모친을 직접 시봉하기도 했고 모친이 환후 중에는 형인 대종사를 대신해 시탕(侍湯)함으로써 대종사가 안심하고 회상 창건에 전념할 수 있게 해서 공사에 큰 도움을 주었다. 그후 계속해서 가사에 종사하다가 1950(원기 35) 92153세를 일기로 영광 자택에서 열반했다.

 

칠산(七山) 유건(劉巾) 대호법은 대종사의 외숙(外叔)으로서 18801111일 전남 영광군 백수면 길룡리에서 부친 유호일(劉浩一)과 모친 이씨의 2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칠산은 어려서부터 천성이 강직했으며 기상이 호풍하고 지혜와 용단력이 출중했다. 일찍이 동학에 입문하여 득도묘술에만 발원한 관계로 범인(凡人)을 면치 못하다가 결국 그것이 무실함을 깨닫고 32세 때 퇴교하고 1916년 대종사가 대각을 이루자 대종사보다 11세나 연상이요, 외숙부임에도 불구하고 소태산의 덕화에 감동하고 대도회상 창립에 찬동하여 단호히 제자가 될 것을 서원하고 사제지의를 맺었다. 1917(원기 2) 7월 남자정수위단 조직 시 곤방(坤方)단원으로 입참하여 저축조합, 방언공사, 혈인기도 등 회상창립에 공헌했다. 혈인기도 때 칠산은 대종사로부터 법명을 유건으로 받았다. 혈인기도를 마친 후 수시로 언답 감독도 하고 사가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지냈다. 칠산은 영광 사가에 계속 머물면서 가사에 주력, 거진출진으로서 32년간 목우작농(牧牛作農)했고, 195778세 때 총부 옆 중앙수양원에 들어와 만년 수양에 힘쓰다가 196322283세를 일기로 열반하니 9인 선진 중 최후 생존자였다.

 

팔산(八山) 김광선(金光旋) 대봉도는 187996일 전남 영광군 백수면 길룡리에서 부친 김응오와 모친 강씨의 3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팔산은 10세부터 한문사숙에 나가 16세까지 수학했고 17세 때에는 길룡리 마촌 산중에 들어가 1년간 음양복술(陰陽卜術) 공부를 했다.

 

천성이 근실 강직하여 한번 하기로 한 일은 결단코 해내는 용단력이 뛰어났다. 대종사와 동향인 팔산은 대종사의 구도기에 의형제를 맺고, 적극적인 후원자가 됐다. 특히 고창 연화봉에서 구도할 때 구도지 물색 등을 도우며 구도생활의 동반자가 되기도 했다.

 

그의 나이 38세 되던 해에 대종사가 오랜 구도 끝에 일원대도를 대각했으니, 12세 연상임에도 불구하고 대종사를 스승으로 모신 예지와 심법의 소유자로서 대종사의 구도기에 후원인으로, 대각 후에는 첫 제자가 되어 정신·육신·물질을 모두 바쳐 교단 창립을 위해 무아봉공(無我奉公)으로 일관했다.

 

1917(원기2)에 대종사는 수많은 문장과 가사를 읊어 그에게 기록하게 하고 이를 법의대전이라 명명했다. 그러나 대종사는 후일에 일시적 발심을 도울 수는 있으나 정식교서로는 될 수 없을 것이라며 소각하게 했다. 19177월 구성된 남자정수위단 구성에서 태방단원에 입단 됐다. 단원들과 함께 금주금연, 근검저축 등으로 저축조합운동에 합력했다. 1918년 방언공사가 시작됐을 때 단원 중 가정형편이 넉넉하고 으뜸가는 기력의 소유자였던 그는 정신·육신·물질의 삼방면에서 솔선수범했다. 특히 방언작답 후 제방에 구멍이 난 것을 발견하고 몸으로 제방을 사수한 일화는 공심가로서의 그의 면모를 말해준다. 1919(원기4)에는 '내 한몸 던져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면 여한이 없다'는 신념으로 백지혈인의 법인성사를 이뤄냈다.

 

1924년 익산총부 건설 당시 동지들과 함께 엿장사 등을 하며 물질적 근거를 마련했다. 이후 총부 농업부원, 총부감원, 영산 서무부장 등으로 봉직했다. 1938년 순교무로 각지를 순회하며 교화에 전력하던 중 병이 재발해 1939(원기24) 61세를 일기로 열반에 들었다.

 

여성 10대 제자들은 개벽세상의 새로운 주체로서 남성 9인 제자들과 함께 원불교 교단조직을 이끌었다. 일타원 박사시화, 이타원 장적조, 삼타원 최도화는 초기 교단에서 ‘3대 여걸이라고 불렸으며, 사타원 이원화는 소태산 대종사의 최초 여성제자이자 교단의 첫 여성 전무출신이다.

▲ 소태산 대종사의 초기 10인 여성제자들  

 

오타원 이청춘은 익산 총부 건설에 동참했고 육타원 이동진화, 팔타원 황정신행, 구타원 이공주 등 3인은 재산과 학식을 겸비해 소태산 대종사의 새 회상 창업에 큰 공훈을 세웠다. 칠타원 정세월과 대종사의 부인 십타원 양하운 대사모는 각각 불법연구회 초대회장인 추산 서중안과 소태산 대종사의 정토이다

 

대종사의 여성 9인제자는 모두 기혼자들로 구성됐다. 결혼을 한 사람들이었다. 남편과 사별한 사람도 있고 두 번 결혼한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 소실이나 기녀도 있었다. 종교의 문에는, 특히 신분에 귀천이 없는 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든 것이다. 박사시화, 장적조, 최도화 등 3인은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는 노쇠한 사람들이었지만, 전문 순교로 교화 활동을 펼쳐 수백 명을 대종사 법하로 인도한 초기교단 최다 연원자로 3대 여걸로 칭송받았다. 황정신행, 이공주는 서울에 근거를 두고 상당한 재산을 가지고 있어서 초기교단의 경제적 보필에 중추적 역할을 해서 황정신행은 재가교도로 대호법의 원훈이 되고, 이공주는 출가교도로 대봉도의 원훈이 됐다. 이원화는 대종사 구도(求道) 당시에 조력자 역할을 했고, 이청춘은 기녀 출신이지만 상당한 재산을 중앙총부 건설에 희사했으며, 이동진화는 서울교화에 크게 기여했고, 정세월은 부군인 추산 서중안이 중앙총부 건설의 기초를 다지는데 공을 함께 했다. 양하운은 대종사의 부인으로서 자력생활의 모범을 보였다.

 

초기교단 여성 10대 제자들의 면면을 보면, 오늘날 여성 전무출신의 경우, 정녀제도를 더 이상 고집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남녀간 결혼여부를 자신의 선택에 맡긴다는 대종사의 정신과 남녀권리 동일의 교리정신에 맞도록 여성 교무 지원자에게 요구하는 정녀(貞女)지원서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교단 2세기가 되었으니 복장과 머리 모양도 다양성을 허용해서 현대사회에 어울릴 수 있도록 한다면 여성 전무출신 지원자가 늘어날 수 있을 것이다.

 

원불교의 교리  

 

신앙의 대상 일원상  

상징적 표현으로 부처님이나 하나님, 진리, , 태극과 같은 궁극적 진리를 가리킨다. 말로 표현하면 일원상(一圓相)이요 형상으로 표현하면 둥그런 원으로, 우주 만유의 본원이며 모든 성자들의 마음이며, 모든 중생의 본래 청정한 마음으로 우주만유의 생성 변화를 주재하지만 볼 수도 들을 수도 만질 수 도 없다.

 

우주만유의 본원이며 모든 성자들의 마음이며, 모든 중생의 본래 청정한 마음으로 소태산 대종사는 이를 둥근 일원상으로 그려주며 마치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다고 비유했다. 따라서 원불교인들은 이 일원상 진리를 닮아가기 위해 정진 적공하고 있다.

 

신앙

 

원불교 신앙  

원불교의 신앙은 나의 마음이 곧 부처이고 우주만유 삼라만상이 부처임을 믿고 천지, 부모, 동포, 법률의 은혜에 보은 감사생활을 하자는 것이며, 인과보응되는 이치가 지극히 밝고 공변되어서 가히 속이거나 어기지 못함을 알자는 것이며, 죄복과 인과를 주재하는 사은의 내역을 알아 각각 그 당처에 따라 실제적 불공을 하자는 것이다.

 

원불교도의 신앙생활  

1. 네 가지 큰 은혜: 소태산 대종사는 천지·부모·동포·법률의 은혜 베푸는 모습을 본받아 늘 감사하는 생활, 보은하는 생활, 복짓는 생활을 하라고 했다. 복을 짓지 않고는 복을 받을 수 없고 은혜를 입고 보은을 하지 않는다면 행복하게 살 수 없다. 보은을 하고 복을 짓는 사람은 어디를 가나 환영을 받게 되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이 낙원이다

 

2. 평등사회를 만드는 길: 대종사는 보은자가 되기 위한 네 가지 가르침을 주었는데, 이 네 가지 가르침을 사요(四要)라 고한다. 사요에는 자력양성, 지자본위, 타자녀교육, 공도자숭배가 있으며 이 사요는 정신개벽을 위한 사회 불공법이다. 세상을 구원하고 인류 사회를 발전시켜 이상적인 평등 세계를 만들기 위한 구체적인 가르침이다

 

3. 생활 속에서 불공: 원불교에서는 법신불 사은전에 심고를 올리고 기도하는 것을 진리불공이라 하고, 이 세상 모두가 부처님이니 우리에게 죄복을 주는 직접적인 권능이 있음을 믿고, 항상 공경하고 받드는 것을 실지불공이라고 한다. 따라서 우리가 복을 빌거나 죄를 참회할 때에는 먼저 법신불 사은전에 심고나 기도를 하고, 아울러 내가 대하고 있는 모든 사람과 사물을 부처님 모시듯 대해야 한다.

 

수행

 

원불교의 수행  

원불교의 수행은 일원상(一圓相) 진리를 닮아가고 그 진리에 합일(合一)하여 개인의 인격을 완성해 가자는 것으로, 정신수양을 통해 온전한 마음을 지키는 공부를 하고, 사리(事理) 연구를 통해 일과 이치를 아는 공부를 하고 작업취사를 통해 몸과 마음을 원만하게 사용하는 공부를 하자는 것이다.

 

원불교도의 신앙생활  

이와 같이 일원상의 수행은 삼학을 실행하는 것이다. 삼학은 일원상의 진리와 하나 되는 길인 동시에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수행을 하는 공부길이 된다. 신앙을 잘하면 바른 수행이 되고, 그를 통해 바른 신앙이 동시에 길러진다. 따라서 대종사가 일원상을 진리의 근원과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모시고 일체를 이 일원에 통합하여 신앙과 수행에 직접 활용케 하였다.

 

수행길의 도우미와 방해자  

삼학(사리연구, 작업취사, 정신수양)공부를 해나갈 때 추진력이 되는 것에는 믿음·분발·의문·정성의 네 가지가 있다. 삼학이 참마음을 회복하여 극락문을 들어가는 열쇠라면 그 열쇠는 신···성으로써 만들어진다. 삼학 공부를 방해하는 것에는 불신·탐욕·게으름·어리석음의 네 가지가 있는데, 삼학 공부를 돕는 네 가지와 방해하는 네 가지를 합하여 팔조(진행 4: ,, , 성 그리고 사연 4: 불신·탐욕·게으름·어리석음)라 부른다.

 

생활 속에서 선()  

좌선(坐禪)을 하고 염불을 하는 등 수행을 하는 목적은 일심(一心)을 모으고 마음을 안정시켜 실생활에서 마음 공부한 실력을 잘 활용하기 위함이다. 아무리 앉아서 좌선을 잘 한다 할지라도 실생활 속에서 욕심나는 대로, 화나는 대로, 자기하고 싶은 대로 한다면 공부한 효과가 없다. 대종사는 제자들에게 언제 어디서나 마음공부를 하라고 했고 끊임없이 마음공부를 하여 욕심과 집착에서 벗어나 마음의 참자유를 얻도록 가르쳤다.

 

일이 없을 때는 잡념을 제거하고 일심을 기르는 공부를 하고, 일이 있을 때는 불의를 제거하고 정의를 실행하라.’ <정전 수행편 제7장 무시선법>

 

법위등급

 

과거에는 순서가 없는 공부로 시간과 노력을 헛되게 하는 일이나 편벽된 수행법으로 병을 얻거나 생활의 터전을 등지는 일이 많았다. 대종사는 이러한 여러 가지 폐단을 없애는 공부인으로 하여금 올바른 수행의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인격과 실천의 단계를 제시해 주었다.

 

법위등급을 따라 공부하는 중에 한 가지 주의할 점은 법위등급이 다른 사람의 인격을 평가하거나 비교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며, 오직 자신의 수행을 대조하고 공부의 이정표로 삼아서 순서 있는 공부를 하는데 기준을 삼으라는 것이다.

 

그리고 법위(法位)는 부처가 되어가는 사다리 또는 층계라는 뜻에서 법계(法階)란 표현을 사용한다. 법위등급을 법계로 말할 때, 보통급을 교도(敎徒), 특신급을 교선(敎選), 법마상전급을 교정(敎正), 법강항마위를 정사(正師), 출가위를 원정사(圓正師), 대각여래위를 대원정사(大圓正師)라 부른다.

 

일이 없을 때는 잡념을 제거하고 일심을 기르는 공부를 하고, 일이 있을 때는 불의를 제거하고 정의를 실행하라.’ <정전 수행편 제7장 무시선법

 

보통급 - 법문에 입문

보통급은 유무식·남녀·노소·선악·귀천을 막론하고 처음으로 불문(佛門)에 귀의하여 보통급 십계를 받은 사람의 급이요, 보통급은 사람이면 누구나 해야 할 공부임을 알리신 법문이다. 의미를 좁히면 이 법 도량에 입문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처음으로 불문에 귀의하여'라는 말씀을 하였다. 대산종사는 이 보통급을 불지출발이라고 했다.

 

특신급 - 마음이란 그 어떤 감정도 다 그럴 수 있음을 알아지는 급

특신급은 특신급 십계를 받아 지키며, 모든 사업, 생각이나 신앙이나 정성이 다른 세상에 흐르지 않는 사람의 급이다. 대산종사는 특신급을 큰집 발견이라고 하면서 '뜻이 세워져서 마음이 딴 생각을 하지 않는 경지'라고 표현했다

 

법마상전급 - ‘그러면 안된다는 마음과 싸우는 급

법마상전급은 십계를 받아 지키며, 법과 마를 일일이 분석하고 원불교 경전 해석에 과히 착오가 없으며, 천만 경계 중에서 사심을 제거하는 데 재미를 붙이고 무관사(無關事)에 동하지 않으며, 법마상전의 뜻을 알아 법마상전을 하되 인생의 요도와 공부의 요도에 대기사(大忌事)는 아니하고, 세밀한 일이라도 반수 이상 법의 승()을 얻는 사람의 급이다.

 

법마상전급에서는 공부 거리를 찾아내는 공부 단계입니다. 따라서 상전급 부터는 속깊은 마음공부가 시작됩니다. 대산종사는 상전급을 심리교전(心裏交戰)이라고 했다.

 

교전이란 서로 엉켜서 싸운다는 뜻이다. 즉 교전은 나와 싸울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악습() 즉 고정된 나와의 싸움이며, 공부를 해보면 할수록 내가 얼마나 억센지 스스로 알게 되기 때문이다.

 

법강항마위 - 지금 있어진 나를 그대로 보는 급

법강항마위는 육근(六根)을 응용하여 법마상전을 하되 법이 백전백승하며, 경전의 뜻을 일일이 해석하고 대소유무의 이치에 걸림이 없으며, 생로병사에 해탈을 얻은 사람의 위()이다.

 

법강항마위부터는 성인의 문턱에 들어선 초성위(初聖位)여서 계문이 따로 없다. 다만 스스로 정해서 실행하는 심계(心戒)가 있다.

 

그런데 대종사는 법마상전급까지는 급()이라 하고 항마부터는 위()라고 한 것은 무슨 이유일까? 즉 급은 내 자신이 공부하는 것으로 내 자신의 공부가 한 단계씩 올라감을 뜻하며, 위는 내 공부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음을 말하며 동시에 남을 제도할 힘이 쌓여서 제 위치(자리, 능력)를 갖추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항마위부터는 초견성으로 첫 성위에 올라 남을 제도할 힘이 있다고 하여 법사(法師)라 하는 것이다. 즉 법의 스승이라는 뜻이다.

 

출가위 - 모든 마음이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있음을 찾아 증명하는 경지

출가위는 대소 유무의 이치를 따라 인간의 시비 이해를 건설하며, 현재 모든 종교의 교리를 정통하며, 원근친소와 자타의 국한을 벗어나서 일체생령을 위하여 천신만고와 함지사지를 당하여도 여한이 없는 사람의 위이다

 

출가위가 되면

 

1) 가는 곳마다 동남풍을 불리게 된다.2) 언제나 텅 빈 마음으로 살아간다.3) 마음속에 아무런 사량계교나 분별 시비가 없다.4) 우주 만물의 온갖 이치와 인생의 모든 일에 조금도 막히고 걸릴 것이 없다.5) 심량광대, 원융무애, 호호탕탕하여 걸리고 막힐 것이 없다.6) 차별에도 집착하지 않고 평등에도 빠지지 않아서 평등과 차별을 자유자재로 운용한다.7) 겉으론 보통 사람과 다를 바가 없으나, 자기 자신을 남김없이 다 바쳐버린 헌신봉공의 생활을 하되 겉으로 아무런 흔적도 없고 다시는 중생세계로 퇴전하지 않는다.8) 모든 종교의 근본정신에 정통하여 어느 한 종교에 집착하지 않는다.9) 때로는 무언설법을 한다. 말로 하지 않더라도 항상 진리를 설하는 것이다.  

 

대각여래위 - 천만방편을 터득하여 만능을 기르는 위

대각여래위는 대자대비로 일체 생령을 제도하되 만능(萬能)을 겸비하며, 천만 방편으로 수기응변(隨機應變)하여 교화하되 대의에 어긋남이 없고 교화 받는 사람으로서 그 방편을 알지 못하게 하며, 동하여도 분별에 착이 없고 정하여도 분별이 절도에 맞는 사람의 위이다.

 

대각(大覺)이란 '큰 깨달음'이다. 여래(如來)란 말 그대로 '오는 듯하다'는 뜻이다. 무엇이 오는 듯하는가 하면 경계가 오는 듯할 뿐 마음은 출렁이지 않는다. ()란 말 그대로 '자리'를 말한다. 따라서 큰 깨달음을 얻는 경지를 뜻한다.

 

여래위는 천만방편을 터득하여 만능을 기르는 위이며 그리하여 있어진 마음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사용하는 위이다. 대종사가 자기가 나를 버리고는 갈지언정 내가 먼저 버리지는 아니한다고 설한 것이 바로 '이용하는 법을 알면 천하에 버릴 것이 하나도 없나니라'라는 뜻이다. 사람 따라 이용하는 법을 알면 내칠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

 

전산 종법사 원기105(2020) 신년법문 

 

원기 105 새해를 맞이하여 재가·출가  교도와  국민과 모든 인류의 앞날에 법신불 사은의 한량없는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시대의 구세성자(救世聖者) 오신 대종사께서는 복혜의 원천인 일원의 진리를 천명하시어 모든 인류가 다같이 복과 혜가 구족한 광대 무량한 낙원에서   있도록  길을 인도해주셨습니다. 우리는  길만 따라가면 한량없는 복혜의 주인공이   있습니다.어떻게 하면  길을 따라갈  있을까요. 대종사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스승이 제자를 만나면 먼저 그의 신성을 본다왜냐하면 공부인이 독실한 신심이 있으면 그법이 건네고 공을 이루는데 신심이 없으면  법이 건네지 못하고 공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심이 있어야 대종사님의 법을 받아  길을 따라서 공을 이룰  있습니다. 대종사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신심은 법을 담는 그릇이 되고의두를 해결하는 원동력이 되며 계율을 지키는 근본이 되므로 신이 없는 공부는 죽은 나무에 거름 하는  같아서  결과를   없다.”

 

그러므로 독실한 신을 세워야 마침내  공부가 결과를 보게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떠한 마음이 신심일까요. 대종사는 말씀하십니다.

 

신심은 무엇인가

 

첫째스승을 의심하지 않는 것이니 천만 사람이 천만 가지로  스승을 비방해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으며  직접 보는 바에 무슨 의혹되는 점이 있어도 거기에 사량심을 두지 않는 것이 신이요,

 

둘째스승의 모든 지도에 오직 순종하며 자기의 주견과 고집을 세우지 않는 것이 신이요,

 

셋째스승이 어떠한 방법으로 대하더라도  달게 받고 조금도 불평이 없는 것이 신이요,

 

넷째스승의 앞에서는 자기의 허물  모든 것을 조금도 속이지 아니하고 사실로 직고하는 것이 신이니

 

  가지가 구비하면 특별한 신심이라 능히 불조(佛祖) 법기(法器) 이룬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가지 특별한 신심을 갖추어 일원대도 영겁법자가 되고 일원회상 영겁주인이 되어 일원대법륜을 굴려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신심을 가지고 공부해 나가는  위험한 고비가 있다고 하셨습니다그것은 중근의 고비입니다

▲ 전산 김주원 종법사  

 

중근이란 자세히 아는 것도 없고 혹은 모르지도 아니하여 항상 의심을 풀지 못하고 법과 스승을 저울질하는 근기입니다 과정에서 모든 병증이 발동하여 평생의 수고를 헛되게 하거나 영생의 앞길을 망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중근의 고비는 참으로 무서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중근의 고비를 넘으려면 처음의 발원을 다시 챙기고 신심을 돈독히 하며 중근의 말로가 위태함을 자주 반조하고  있는 이를 가까이하여 적공해야 합니다. 대산 종사께서는 법마상전급의 중근과 법강항마위의 중근을 말씀하시며 “상전급의 중근은  자력으로 넘어설 수도 있으나 항마위의 중근은 반드시 스승의 지도가 필요하다 하셨으니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주세성자는 우주의 대진리에 합일하여 무한동력을 얻으셨으므로 우리가 신성을 바치면  힘을 타서 제생의세의 큰일을 이룰  있습니다.선후천이 교역되는  시대를 맞이하여  교도와  인류는 주세성자의 대도 정법에  신성을 세우고 공부해서 모두  광대무량한 대낙원에서 즐기시기를 마음 깊이 심축합니다.

원기 105 새해 아침                               

종 법 사

수암(守岩) 문 윤 홍<大記者/칼럼니스트> moon47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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