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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시발복지지(今時發福之地)와 길인주처시명당(吉人住處是明堂)
3대가 積善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다는 명당‥최고명당 인장묘발지(寅葬卯發地)는 어떤 곳?
기사입력: 2021/02/15 [20:34]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문윤홍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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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가 積善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다는 명당최고명당 인장묘발지(寅葬卯發地)는 어떤 곳

 

동양에선 오래전부터 천지만물을 양과 음의 화생(化生)으로 보고 중화(中和)를 이룬 곳에 명당이 있다고 여겨왔다. 그래서 그러한 곳에 집터(양택)나 묘소(음택)를 택함으로써 그 땅의 기운으로 번영을 이룰 수 있다고 믿어왔다. 형국에 따라 그 명칭과 효험 또한 각양각색이다. 이를테면 와우혈(臥牛穴)을 썼으니 의식(衣食)이 풍족하고, 옥녀산발(玉女散髮)이어서 미인이 많고, 안산(案山) 앞으로 냇물이 도도하게 흘러 관운이 좋고, 물소리가 시끄럽게 들리니 우환이 그치지 않으며, 청룡과 백호혈이 약하니 재물이 귀하다는 등 산세의 기복(起伏)과 수구(水口)의 흐름에 따라 그 영험 또한 천태만상으로 다르게 나타난다.

 

무엇보다 음택 명당의 효험이 제일 빠르게 나타난다는 인장묘발(寅葬卯發)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 어느 산골 부잣집에서 머슴살이를 하는 노총각이 있었는데, 엄동설한에 노모가 갑작스레 세상을 떴다. 곤궁한 살림이라 궁리 끝에 날이 새기 전, 동네 뒷산에 몰래 시신을 묻었다. 그런데 그곳이 바로 주인집 영감이 선친을 모시려고 구해 놓은 명당자리였다. 아무리 자기 땅이라고 해도 이미 묻은 시신을 다시 파내게 할 수는 없기에, 그 머슴을 어쩔 수 없이 사위로 삼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돈이 많고 권세가 높아도 3대가 적선(積善)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게 명당이라고 하는데 아마도 그 머슴의 집안은 대대로 적선한 착한 심성의 사람들이었던 모양이다.  

 

조선 17대 왕 숙종과 금시발복지지(今時發福之地)  

 

풍수지리에서 묘를 쓰고 발복(發福)이 빠르게 나타나는 것을 인장묘발(寅葬卯發)이라고 하는데, 인시(寅時)에 하관하여 묘시(卯時)에 발복한다는 의미이다. 풀이하면 새벽 5시에 묘를 쓰면 7시에 복이 온다는 것으로, 정양향(正養向: 이기론에서 가장 대길하다는 향으로 인정과 재물이 왕성하다는 방위)으로 쓰일 산세를 인장묘발지(寅葬卯發地)라고 한다. 그중 대표적인 고사(古事) 하나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조선 19대 임금인 숙종(肅宗: 1661~1720, 재위 1674~1720)은 미행을 자주 나가기에 신하들은 임금이 언제 입궁할지 몰라 항상 긴장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민심을 살피려고 미행을 나가 여주 지방에서 남한강을 건너려고 나룻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때마침 가난한 농부가 슬피 울면서 냇가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장사 지내려고 하는 현장을 목격했다. 풍수에 일가견이 있던 숙종은 가까이 가서 보고는 깜짝 놀랐다. 냇가여서 광중(壙中: 시신을 묻기 위한 구덩이)에는 어느새 물이 가득 차 있었고 그 농부는 물이 가득찬 광중을 보면서 계속 삽질을 하고 있었다. 이 광경을 지켜본 숙종은 아무리 무지한 백성이라고 하지만 묘를 쓰려면 산에 써야지 어떻게 냇가에 써는지 의아해했다. 또 물이 찬 산소의 후손들이 절손(絶孫)되는 등 패가망신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숙종은 그 농부에게 물이 금방 이렇게 솟아나는 곳에 어찌 묘를 쓰려고 하는가?”고 물었다. 이에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젯밤에 오랜 병환 끝에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는데 아침에 저기 저 높은 언덕에 사시는 김 지관 어른이 찾아와서 저의 평소 효심에 감동했다고 하면서, 오늘 이 시간에 이 자리에다 장사를 지내야 발복한다고 자리를 잡아주셨습니다. 김 지관은 이 지방에서 아주 유명한 분이신데 이런 자리일 줄은 몰랐습니다라고 답했다.  

 

숙종은 비록 무식한 촌부이지만 갸륵하다고 생각하면서 수행한 신하에게 쌀 백 가마니를 효성이 지극한 이 농부에게 하사하고 상지관(궁중지관)을 불러 좋은 자리를 잡아주라고 명했다. 그런데 화가 난 숙종은 자리를 잡아준 김 지관이 도대체 누구이기에 사기행각을 하는지 궁금해서 그가 살고 있는 언덕 위의 집에 갔는데, 김 지관은 다 쓰러져 가는 집에서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숙종은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위엄있는 목소리로 나는 한양 사는 이 서방이라고 하는데 듣자하니 풍수지리를 좀 안다는 김 지관이 어떻게 착하고 가난한 사람을 골탕 먹이려고 냇가에다 산소자리를 잡아주었소하고 크게 꾸짖었다.

 

그러자 김 지관은 껄껄 웃으면서 저 자리는 시신이 광중에 들어가기도 전에 쌀 백 가마니가 생기는 금시발복(今時發福)할 자리이며, 나라의 상지관이 나서서 다시 좋은 자리로 옮겨줄 자리란 말이오. 아울러 저 농부는 워낙 가난하여 2대나 3대 후에 발복하는 정승·판서 자리는 필요치 않고 당장 먹을 양식이 시급하오. 가난하게 살면서도 부모를 봉양하는 효성에 감동하여 자리를 잡아준 것인데 무엇이 잘못되었소하고 반문했다.

 

숙종은 방금 자신이 조치한 내용과 똑같아 속으로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으나 김 지관이 사는 집이 너무 초라한 오두막인지라 내심 의아해하면서 비꼬는 듯한 말투로 다시 물어본다는 것이, 귀신같은 김 지관의 위용에 눌려 말을 더듬으며 임금으로서 체통이 구겨지고 있는 것도 몰랐다. 숙종은 그렇게 명당을 잘 보는 양반이 호의호식하지 않고 왜 이런 오막살이에 살고 있소하고 묻자 김 지관은 지금 저 마을 밑에 있는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 사는 양반들이 하나도 좋을 것 없소. 왠줄 아시오. 바로 여기가 천하 명당이란 말이오라고 응수했다.

 

이에 숙종은 체면 불고하고 또 물었더니 , 보시오. 좌청룡과 우백호가 있고 저 눈높이에 있는 안산(案山: 묘 앞에 있는 산)과 뒤에 있는 조산(祖山: 멀리 있는 산) 등 모든 산이 이쪽을 향해 공읍(공손히 고개를 숙임)을 하고 좌우로 문무백관이 도열하고 있는 것이 보이질 않소. 또 뒤에 있는 주산은 대귀인을 뜻하는 탐랑성(貪狼星: 성의 범주에 속하는데 죽순이 돋아나듯 뾰족하고 가지런하게 생긴 삼각형 모양의 산)이고 재물을 관장하는 수구(水口: 물이 나가는 곳)도 관쇄(關鎖:청룡과 백호가 좌우에서 서로 끝부분을 맞잡거나 한쪽이 다른 쪽을 감싸 안아 물이 빠지는 수구처가 좁아진 상태)되어 아홉 번을 휘감고 돌아 흘러나가는 불통주(不通舟: 배 한 척도 지나가지 못하게 좁은 형세)격이요. 뿐만아니라 구중궁궐 안에 계셔서 일반 백성은 평생 그 용안을 뵐 수 없는 나랏님이 제 발로 찾아와주는 천군하림형(天君下臨形: 하늘의 임금이 땅에 내리는 곳)의 명당이란 말이요.” 김 지관은 조리 있게 완벽한 해법으로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과연 그랬다. 김 지관의 말은 틀림없었고 숙종의 풍수 실력을 훨씬 뛰어넘는 도인의 경지였다. 그래서 존경심이 솟았다. 숙종은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내심 정말 용하다고 생각하면서 그렇다면 그 나랏님이 언제쯤 여기 오시는지도 아시오하고 물었다. “그거야 물론 알지요. 내가 그러고 보니 어디다 적어 놨는데 한번 보고 오겠소하고 오막살이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몇 분 후 김 지관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달려 나와 상감마마! 소인을 죽여주시옵소서하고 숙종 앞에 엎드리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그가 적어둔 날짜가 바로 오늘이었다. 이제 형세가 뒤바뀌자 숙종은 궁궐에서 신하에게 하는 식으로 헛기침을 하면서 그 신통한 김 지관에게 그대가 비록 과인에게 지은 죄는 좀 크긴 하지만 부탁 하나만 들어주면 용서해 줄 수도 있네하고 말했다. 그렇게 당당하던 김 지관이 이번에는 웬일인지 말이 제대로 안 나왔다. “무엇이옵니까, 전하!” “짐의 묏자리 하나 봐주게. 명당으로 말이야.” 그렇게 해서 숙종의 능()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 서오릉에 있으며 당시 김 지관이 소점한 명당이었다고 전해져오고 있다. 

▲ 숙종왕릉(명릉)    

 

명당(明堂)은 밝은 기운으로 가득 찬 땅으로 곧 영지(靈地)이다   

 

하늘과 땅, 바위와 물, 바람과 빛의 조화가 이뤄진 곳이 이른바 명당이다. 바위에서 기운이 품어져 나오고, 주변을 물이 감싸고 있어 적당한 수분을 제공하고, 바람을 잘 감싸주면서, 숲이 우거져 있는 곳들은 대체로 영지(靈地)이다. 그런 곳은 잠시 머물기만 해도 마음이 편해진다. 눈으로 알 수 없는 기운이 몸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래서 신령하고 신비롭다. 이러한 땅의 기운, 지기(地氣)는 가는 곳마다 다르다. 묵직한 기운, 단단한 기운, 붕 뜨는 기운, 밝은 기운, 침침한 기운 등 를 푸근하게 받아들이면서 생생한 에너지를 주는 땅이 있고, 어두운 기운이 밀려와 힘이 빠지면서 우울해지는 땅이 있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검증된 영지는 공통적으로 밝고 강한 기운을 내뿜는 곳이다. 그런 곳이 바로 명당이다. 명당 하면 묏자리를 떠올리곤 하지만, 명당(明堂)은 글자 그대로 밝은 기운으로 가득 찬 땅이다. 이런 곳에서 몇 시간 또는 며칠씩 머물면 몸이 건강해지고, 영성이 개발된다.

 

풍수란 장풍득수(藏風得水)의 준말로, 바람은 감추고 물은 얻는다는 뜻이다. 이는 하늘과 땅, 사람의 유기체적인 회통이자 우주적인 질서에 대한 파악이고, 이 질서를 따름으로써 궁극에는 자연과 인간이 상생(相生)하자는 뜻이 담겨 있다. 사찰에서 수많은 고승들이 깨달음을 얻은 데에는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 영지의 역할도 결정적이었다.

 

풍수철학을 정립한 도선국사를 비롯해 원효, 의상, 진각 대사가 공부한 구례 사성암, 의상대사가 죽기 살기로 공부에 매달렸던 서울 관악산 연주암, 원효대사가 수행한 여수 향일암, 삼국유사를 쓴 일연이 35년간 머물렀던 대구 비슬산 대견사 등 웬만한 사찰에는 고승들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 이러한 역사와 기록은 그 터가 명당이자 영지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보증서와 같다. 한편으로 풍수사상이 자칫 자신의 노력에 의한 대가보다는 위력에 힘입어 요행을 기대하려는 의타심으로 많은 물질과 정력을 낭비한 측면도 있었다. 그럼에도 좋은 풍광을 갖춘 집터는 좋은 에너지가 발생하여 새로운 활력을 준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금도 배산임수(背山臨水) 남향동문(南向東門)의 전원주택과 목 좋은 상가, 풍광이 좋고 접근성도 좋은 쾌적한 아파트 로얄층을 찾는다.

 

하지만 명당은 좌청룡, 우백호를 잘 갖춘 지형이나 지세에만 있지 않고 길인주처시명당(吉人住處是明堂)’이란 옛말처럼 어진 사람이 사는 곳이 바로 명당이다. 산이 높지 않아도 신선이 살면 명산이 되고, 물이 깊지 않아도 용이 있으면 신령스러운 곳이다. 그러고 보면 명당이란 그 어디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속에서 새롭게 만들어져 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숭조화목(崇祖和睦)의 정신으로 한 집안의 후손들이 각자 몸을 세워, 자신과 집안을 일으키면서 세상에 무엇인가 보탬이 되는 삶이 되고자 노력할 때 또 하나의 명당이 새롭게 탄생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수암(守岩) 문 윤 홍<大記者/칼럼니스트>moon47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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